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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 박하림 Sep 06. 2020

가본 적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 01

만난 적 없는 이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내뱉지 않은 말의 명료함






얼마 전에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에 대해 남긴 한줄평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적 없는 어제의 세계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 


나는 그 말을 듣고 플라톤이 <향연>에 소개한 반쪽 인간에 대한 전설을 들려 드렸습니다. 헤드윅이라는 작품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따르면 태초의 인간은 하나의 몸통에 머리 둘, 팔 넷, 다리 넷을 지닌존재였습니다. 머리는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도록 나있었지만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지성은 둘이지만 영혼은 하나인 셈이었죠. 이들은 사방을 보고, 들을 수 있었고, 두 개의 머리로 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나로 이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덕에 이들은 전지전능했고, 신을 경배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화가 난 제우스는 이들을 둘로 갈라버려 무력하게 만들었고, 아폴론은 이들의 갈라진 부위의 살갗을 당겨 꼬매어주었습니다. 이 봉합의 흔적이 오늘날 우리의 배꼽이라고 하네요. 또 아폴론은 반쪽 인간들이 온전한 태초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서로의 반쪽을 찾을 수 있도록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영혼의 짝을 찾는 여정을 거듭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십대 시절부터 내게 가장 불가해했던 감정은 그리움이었습니다. 20년도 채 안 산 어린 애가 그리울 게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어요. 그런데 나는 순간 순간 너무 그리워서 마음이 저며지는 듯한 장면, 장소를 종종 마주치고는 했습니다. 그런 감정을 처음 느꼈던 건 일곱 살 때였습니다. 재밌게도 만화로 만든 신약 성경 편을 읽은 직후였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고, 그게 너무 따뜻하게 느껴져서 그 속에 한없이 머물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고, 그 때문에 나는 감정이 물리적 세계에 갖는 실체적 에너지라는 뉴에이지스러운 사상을 그때부터 길러왔습니다. 쉽게 털어놓지는 않지만, 지금도 그런 사상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다음으로는 아홉 살 때 아빠와 거실에서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센이 목욕탕에서 일을 하게 된 후 어느 아침, 발코니에 두 다리를 내놓고 앉아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 센과 가오나시와 보가 떠나면 돌아올 수 없는 기차를 타고 제니바를 찾아가는 장면. 히로의 도움으로 하쿠가 자신의 본래 이름을 기억해내고, 그들이 과거 맺었던 인연에 대해 들려주는 장면. 이 영화가 준 충격이 너무 강렬해서 나는 열한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열 세살 귀국 할 때까지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좀 미친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내가 그 영화 속에 살아가는 것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어요. 그게 가능했습니다.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는 꽤 늦게까지 동화 속 세계에 머물렀던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성에 눈을 뜨고, 싸이월드 감성에 빠지고, 멋을 부리러 고속터미널이나 서현에 놀러가고, 좋아하는 연예인을 팬질할 때 나는 여전히 센과 치히로, 소설 모모, 후지와라 신야와 공지영의 에세이집, 매트릭스, 성경책, 불교 경전 같은 것에 빠져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늦게 잃어버린 만큼 후유증도 진하게 오래 갔습니다. 내가 나만의 세계를 잃어 버린 건 중학교 1학년 11월 즈음이었습니다. 찬바람이 불면서 내 인생에 흘러들어오던 공기도 훅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조차도 나의 오랜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쯤부터 나는 특목고 진학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고, 공허함, 무의미함, 무상함과 같은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같은 좀비 같은 삶의 고통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계속 짙어져만 갔습니다. 내가 가장 공부를 잘 했던 시기였지만 가장 어리석은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영혼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부터였습니다. 

그 전에, 마치 내게 닥칠 어둠을 예고라도 하는 듯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는 신기할 정도로 모든 것이 쉽게 흘러갔던 시기였습니다. 아까 말했던, 내 인생에 흘러들어오는 공기가 변하는 것 같은 경험이 보다 높은 강도로, 오랜 기간 지속되었고, 그동안에는 신선이라도 된 마냥 몸과 마음에 걸릴 것 없이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해낼 수 있었습니다. 물리학과 화학 공부에 미쳐서 하루종일 그날 배운 이론에 대해서 생각했고, 글도 정말 많이 썼고, 영화도 아주 많이 봤고, 음악도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 켠에 '뭔가가 이상하다'는 쎄한 느낌이 깊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학년 새학기가 시작되자 그동안 힘차게 흐르는 것 같던 내 삶의 공기가 소름끼칠 정도로 갑자기 멈춰 버렸습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사막에 서있는 것 같은 시간이 시작되었고, 한 발자국 떼는 것조차 힘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염 없이 읽고 또 읽었던 화학 교과서를 어느날 갑자기 한 페이지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게 되었고, 시험을 치를 때에는 문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adhd 증상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있었지만, 그렇게 격렬한 증상들이 왜 하필 고등학교 2학년 때 밀린 빚을 한꺼번에 상환이라도 받으려는 것처럼 몰려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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