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내 인식구조에 따라 세상을 보면 만사 오케이라면서요, 거짓말쟁이

by 정다면




양극성장애의 킥은 인지왜곡에 있다. 인지의 '왜곡'이 되는 이유는 양극성에 영향을 받은 인지가 상식과 다른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를 좀 잘했어서 그렇지 나는 문제아였다. 초등학교 1학년, 내 인생에 '지각'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겨난 바로 그 날부터 맨날 지각하고 매일매일 엄마가 아무리 챙겨줘도 늘 준비물을 한두개씩 놓고 갔다. 그래서 교과서와 필기구 외의 교구가 필요한 미술, 음악과 같은 수업 때는 종종 혼자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만 하거나, 착한 친구의 지점토를 조금 나눠받아 혼자 꽃을 빚거나, 했다. 체력도 좋고 에너지도 많았다. 키는 평생 또래 집단에서 제일 컸고, 타고난 근수저여서 짖궂은 친구들과 장난이라도 쳤다간 내가 한 짓만 장난이 아니게 될 때도 있었다.


그게 초등학교 3-4학년 여자아이로서의 내 생활이었다. 초등학생의 느낌도 없고, 여자아이 느낌도 없고, 성적은 좋은데 문제는 많아서 모범생도 문제아도 아니고. 지각이나 준비물을 놓고오는 일에 있어 훈육이 되지도 않고 하다못해 신발끈도 맨날맨날 열심히 묶는데 맨날맨날 풀려있으니 도대체 스스로를 뭐라고 이해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막막함을 막연히 느꼈던 것 같다. (하도 신발끈 잘 묶을 고민을 하고 시도했는지 지금도 그 운동화의 색깔, 감촉, 모양 다 기억난다.)


세상이 나를 초등학생으로도, 여자아이로도, 범생이로도 문제아로도 대하지 않으니 나는 또래 아이들이 경험하도 받아들이는, 지각하고 인식하는 세상과는 계속 다른 세상을 눈에 담게 되었던 것 같다. 꽤 오랫동안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대하는 곳이라는 것도 몰랐고, 학교라는 데가 뭐하는 곳인지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 왕성한 호기심과 강렬한 충동들을 바탕으로 세일러문과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네이버 블로그에서 하이엔드 브랜드들의 런웨이 쇼를 구경하고, 댄스 가수들의 공영방송 무대를 챙겨봤다. 그러니, 매트릭스 같은 영화를 한 번씩 보면 나 같은 아이는 '와 충격적이다, 생각할 거리가 많다'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관이 기존 세계관에 때려박히는 것 같은 경험을 했을 수 밖에.


호기심이 너무 많아서 세계관을 정리한다는 개념을 체득하기도 전에 너무 많은 인풋이 들어와버리는 바람에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세계관, 사회상, 관계라는 개념 같은 것들을 이해하고 싱크를 맞추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호르몬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한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 시절부터는 양극성이 내 안의 질서를 맞췄다, 부쉈다, 여기를 맞추면서 저기를 부쉈다, 하는 바람에 진전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희한하게도, 나는 머리가 그렇게 나쁘지 않고, 논리적 사고도 얼추 할 수 있고, 내가 이해한 바를 개념화 할 수도 있고, 구조화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대화에 실패하는 경험이 많았다. 잘 말해서 해결한다, 서로를 이해한다, 공감한다, 이런 말이 도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교에서 칸트의 인식론을 배웠을 때, 20년 가까이 묵은 세상에 대한 내 분노가 (속으로) 폭발했다. 권위적인 거짓말쟁이! (여기서 잠깐. 철학도들은 여기서 나의 조악함에 버튼이 눌릴 수도 있다. 그 시절의 내가 그랬다 정도로 이해해달라.) 우리가 지각하는 게 세상이구나, 하고 살면 된다고? 그럼 사람들이 각자 다 다르게 지각해서 세상을 다르게 이해하면 어떡할 건데? 하고 파고들어보니까, '우리는 각자가 인지하는 것만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세상이라는 객관적인 실체는 있고, 인간은 그것을 지각하는 공통의 틀이 있기에, 그 두가지로 보편성, 필연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닌가. 그럼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있는 타인과의 인지부조화는 어떻게 설명해야 해? 그저 내 인지기능이 비정상 내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돌연변이라는 것인가?


물론 철학의 세계는 깊고 넓어서, 나와 내 양극성이 긍정되는 사상들도 많이 있었고, 그들 중에는 내가 느끼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위대한 철학자들도 있었다. 나 같은 사람과 칸트 같은 사람이 모두 설명이 되는 세계관과 인식론도 있었고,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들 때문에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 같은 내 모습을 투영해서 적어서 그렇지, 나는 기본적으로 대철학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칸트도 그 중 하나다. 그의 사상이 만들어낸 모멘텀의 크기와 깊이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그 속에서 잉태된 사상들이 그가 말한 것과와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을 함께 설명할 수 있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 세계를 함께 설명하고, 위로를 얻는 것은 얻는 것이고, 늘 내게는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라는 질문만이 남겨졌다. 내 존재가 긍정되는 것과 내 삶이 긍정되는 것은 별개의 일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처음으로 밤이 내린 세상의 끝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느끼기에, 밤하늘은 내가 좋아하는 짙은 남색과 진한 보라색이 어우러진 빛을 내고 있었고, 별도 많이 보였고, 끝을 등지고 돌아다본 세상에는 고요하고 작게 부서지는 파도소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내가 서있는 세상은 분명 아름다운 곳임을 맞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기 위해 세상의 끝까지 왔고, 그곳에서는 내가 어떤 동네에 가서 사는 게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동서남북 중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감도 안 왔다. 게다가 나는 세상을 약간씩 희한하고 이상하게 지각할 수밖에 없는 조건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바다는 배를 타고 건너면 된다'라는 나의 믿음이 엉망인 게 아닐까, 같은 생각을 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내가 만난 의사 선생님들은 모두 나의 강인하고 끈질긴 좀비 같은 초자아 내지는 메타인지 능력을 신기해했다. 그리고 안심했다. (그래서 가끔은 진료실에서 나의 말에 너무 많은 신뢰를 줘버리기도 했다.) 나의 메타인지는 내 상태가 조증인가 울증인가, 지금 병적인 상태에서 생겼던 트라우마에 영향을 받고 있는가 아닌가,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스스로 판단하는 데에 꽤 뛰어나다. 정확도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자아가 아무리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가고 있어도 잘 흔들리지 않는다. 적어도 남들 앞에서는. 그건 그야말로 사람들 속에서 피땀눈물을 흘리며 끊임 없이 눈치 보고 고민하고 위축되고 상처 받고 이겨내고 이겨냈다고 착각하면서 한 방울 한 방울 석순처럼 키워낸 것이다.


이건 다른 사람들 '만큼'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가능했다. 그 열망은 내 나름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꾸준한 삶의 방향성에서 피어난 것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좋은 물건을 선물하고, 가족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어떤 의미로든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꽤 베이직 한 방향성이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좀비 같기만 하던 메타인지가 퓨즈가 끊겨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올 것(?) 같은 순간까지 갔던 지점에서, 내 삶의 방식과 내가 살고 싶은 방향성이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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