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꿰어가는 조건

뭐 이리 거창한가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외로 거창한 밑밥

by 정다면



보통 누군가의 '삶'에 어떤 조건이 진다는 건 그 조건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는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삶'의 조건이 된다는 건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에 따라다니는 스티커 같은 것임을 말한다. 그가 안고 살아가야 할, 그의 자아의 일부이자 페르소나의 뿌리이며 잘 다듬어진 자존심의 핵이 되기도 하고 통제 되지 않는 불덩이가 되기도 하는 유별난 혹은 특별한 무언가 말이다.


누구나 그런 조건이 있다,라고들 하지만 그렇게 뭉뚱그리기는 어렵다. 지금까지의 사회라는 건 그런 조건들이 생각보다 유별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쩔 수 없이 삶을 조건 짓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의 인생은 그 난이도가 약간 까다롭다. 유별나지 않은 사람들이 피땀눈물을 흘려 만든 사회 속에서 그들은 그 사회 때문에 피땀눈물을 흘리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일구느라 피땀눈물을 흘린 이들이 유별난 이들을 보고 씁쓸해 하는 것도, 유별난 이들이 그 속에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지 못해 슬퍼하는 것도 그저 늘 일어나고 반복되어온 자연현상일 뿐이다.


나는 양극성장애 타입 II와 ADHD가 둘 다 있는 사람이다. 둘 다 선천적으로 지니는 신경회로 상의 특징이자 신경 기능의 발달 불균형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은 나를 매우 유별난 인간으로 만든다. 아마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생각보다 무난해서 그 정도로 유별나지는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피땀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내가 나 스스로를 계속 지옥을 몰아왔던 것은 사람들이 피땀눈물 흘려 일군 사회 속에서 그들과 어깨동무를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 나랑 어깨동무 해줄 사람을 찾고 내게 어깨를 둘러달라, 나도 어깨를 빌려주겠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을 목발 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경험들이 있었고, 그 순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마음과 때로는 뜨거워서 견딜 수 없는 갈등을 일으켰다. 그런 갈등의 순간들을 피하려면 별이 되기보다 원이 되어야 했고, 나 자신을 갈아내는 과정에서의 피땀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걱정 안 해도 된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원이 될 수 없는 인간이라, 갈고 깎아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뾰족뾰족 해진다.)




유별난 조건을 지닌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방향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어떻게든 어깨동무를 하며 살거나, 지구의 달이 되어 살거나. 전자는 스스로를 위한 작은 영웅이 되는 길이고, 후자는 아름다운 예술가가 되는 길이다.


지금 내가 내 삶에 지어진 조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이제껏 나만 아는 영웅으로 살고자 애쓸 만큼 애썼다는 마음의 소리가 견딜 수 없도록 시끄럽게 메아리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증이 쳐놓은 사고를 수습하느라 자존심을 구겨야 하는 상황에서 도망치기를 멈추었고, 가족을 포함한 타인의 어깨를 빌릴 수 없는 순간을 위해 스스로를 위한 목발도 잘 깎았다. 양극성만 아니면 더 많은 성취를 이루고 자유를 누리고 멋진 사람이 되었을 텐데, 하는 억울함을 어떻게 달래고 재워줘야 하는지도 깨달았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것들을 스스로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신뢰도 얻었다. 그리고 팀의 에이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쩌면 약간 골칫덩어리가 되더라도, 어쨌거나 어색하게나마 어깨동무도 둘러보고 웃어도 보고 울어도 보고, 엎어져서 창피해하며 도망가려다 내게 어깨를 빌려줬던 사람들에게 붙잡혀도 봤다. 무엇보다 다 포기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었던 시간들, '내가 애초에 보이지도 않았다면 저 사람들이 도망치려는 나를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도 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불필요한 슬픔도 잘 달래서 보내줬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았다. 누군가의 든든한 어깨가 되고 있냐의 기준이 나 자신이 아닌 외부에 있어서 그렇지. 이제는 다르게 살아봐도 되지 않을까, 떨리는 어깨를 그냥 떨리게 두고, 누가 기대고 있는 것도 아니니 삐딱하게 서있어도 되는, 그러면서도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사랑받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어느 정도 거리에서 어떤 포즈로 서있을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의외로 똑바로 서있기 힘든 사람에게 '그냥 서있으면 되지'라는 말은 꽤 막막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관종스러움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도 생각해보고, 어깨의 떨림이나 삐딱함, 가끔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순간 같은 것들을 예전보다는 훨씬 잘보일 테니 어떻게 해야 꽤 멋지게 비스듬해질 수 있을까, 그런 것도 은근히 고민된다. 리드미컬한 어깨의 떨림, 햇빛의 명과 아래로 드리워지는 암의 대비를 멋지가 투영하는 삐딱함, 넘어질 때에 피어나는 먼지 속 은근한 향기, 뭐 이런 것들을 나름대로는 암컷에게 실컷 구애하는 수컷 종달새처럼 열심히 찾아서 뽐내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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