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대계 직장 생활의 전반전 종료
이상하게 햇수를 세는 건 암산이 잘 안 되어서 손가락을 접어가며 세어봤는데, 올해 10월에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만 5년이 된다. 스스로 딱 9년 회사원으로 살자고 생각해둔 게 있는데, 얼추 계산해보니까 지금이면 전반전이 딱 끝난 시점이다. 그렇게 갖게 된 첫 휴가다. 물론 중간중간 여행도 다녀오고, 다름 3-4일씩 쉬고, 연말에 팀이 다 같이 한 주 쉰다던가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스스로는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나는 내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에는 자부심도 자기연민도 없다. 아, 연민은 조금 있을지도. 당연히 주변에서 나무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내가 왜 자꾸 그러는지를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주변에서 "뭘 또 휴가 때 안 쉬고 일을 하냐"라고 걱정스레 한마디 얹는 게 눈치 보여서 쉬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여튼, 그러니 이번 휴가가 내 5년 조금 안 되는 직장생활 중 첫 휴가인 셈 치자.
스스로 쉬지 않았던 사람이 이제 진짜 휴가를 내게 된 이유는? 결론부터 말하면 '쉬지 않으면 안 된다'의 안 되는 이유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이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이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한 이유, 동료들을 위한 이유. 쉬지 않으면 그런 것들에 금이 가고 조금씩 깨진다는 것을 하나하나 다 경험했기 때문이다. 누군 내게 스타트업 세 개 정도 돌린 것도 아니면서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나는 월급 받으면서 나름 괜찮은 회사에 다니면서, 누군가는 회사를 말아먹어야 깨닫는 걸 기초체력이 작은 덕분에 이 정도 삶의 반경 안에서도 깨달을 수 있었다,라고 정리할 수도 있겠다.
내게는 죽을 때까지 그 위를 걸어야 할 삶의 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게 지금껏 내 삶의 축복이자 저주, 빛이자 그림자, 누군가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이유이자 지긋지긋하도록 가시돋힌 눈길을 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큐비클 속 삶의 전반전은 이 조건과 내가 맺어야 만 하는 관계를 깨달아가는 시간이었고, 후반전은 그 관계를 받아들인 큐비클 속 삶이 어떨지를 펼쳐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 사이, 지금의 내게 주어진 15분의 달콤한 휴식시간은 전반전을 복기하고 후반전을 위한 정신력, 체력을 가다듬는 시간이 될 것이고.
이제 나는 곧 강원도 고성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