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온 가을이 한창 진행되려던 10월 후반, 부쩍 커버린 아들의 겨울 옷을 사러 수내동 백화점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여느 주말 오후의 일상처럼 아들은 친구들과 농구를 하러 나가고, 나는 남편과 함께 운동을 하러 동네 헬스장에서 가려던 참에, 내 수중에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억을 되짚어본다.
백화점 2층 의류 매장에서 옷을 보고는, 여자 화장실에 들렀다가,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가 길가에 대어져있던 차를 타고 집으로 왔었지. 그 중 내가 손에서 핸드폰을 놓을만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아들이 덥다며 입고 있던 조끼패딩을 벗었고, 난 그걸 손에 들고 있었다. 화장실 안에서 옷걸이에 아들의 패딩을 걸어두며, '나갈 때 까먹고 그냥 가면 안되니까 잘 챙겨야지..' 란 생각을 하며, 뒷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변기 옆 화장지 걸이 위 선반에 올려두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올 땐 내 머릿속에는 아들의 패딩 생각밖에 없었으므로 핸드폰은 까맣게 잊고 나온 것 같다.
대략의 복기를 하곤, 남편과 함께 다시 백화점으로 갔다. 다급하게 다시 찾은 백화점 2층 화장실, 내가 들어간 칸을 찾아 안을 들여다 보았지만 핸드폰은 없다. 누군가가 주워서 분실물로 맡긴 건 아닐까? 고객센터를 찾아갔다. (고객을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업의 마인드가 반영된 탓인지, 고객센터를 찾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거기도 접수된 것이 없다고 했다.
백화점에 두고 나왔다가 다시 찾으러 간 게 거의 40~50분 차이인데, 그 사이에 내 핸드폰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남편이 애플의 '나의 찾기' 기능으로 내 사라진 핸드폰의 위치를 확인했다. 위치는 백화점에서 멀지 않은 빌라 단지 쪽, 피자집과 커피숍 주변 쯤으로 나왔다. 누군가 들고 간 모양이다.
남편과 다시 차를 타고 그 주변으로 갔다. 근처 피자집에도 물어보고, 커피숍 앞도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1층인지, 그 위의 2~4층 어디쯤의 가정집인지... 그걸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며 아이폰에서 제공하는 '사운드 재생' 기능을 눌러가며 현관문에 대고 소리를 들어보기까지 했지만, 찾을 순 없었다. 그렇게 사운드를 재생해댄 탓인지 핸드폰의 전원을 끈 것 같았다.
탐정이라도 된 기분으로 한동안 그 인근을 서성이다, 핸드폰이 없는 나는 핸드폰이 있는 남편을 시켜 경찰에 신고했다. 분실지역에서 신고를 해야 한다기에 남편과 나는 다시 백화점으로 이동했다. 2층 여자화장실 앞에서 두 명의 경찰을 만나, 핸드폰의 위치가 이동된 걸 확인했기 때문에 단순 분실이 아니라 도난 사건으로 접수가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현장에서 나는 사건 신고를 위한 조서를 작성해서 건넸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유심을 새로 구입해서 오래 전 사용했던 핸드폰에 끼웠다. 근시일 내 외근도 예정되어 있고 여기저기 연락을 주고 받아야 할 곳들도 있었기에, 전화통화 가능한 수단이 필요했다. 애플 계정으로 접속해서 잃어버린 핸드폰은 분실모드로 설정하고, 핸드폰 뒤 케이스티파이 카드홀더스탠드에 넣어둔 탓에 같이 사라진 삼성카드는 분실 신고를 했다.
집에 와서도 나와 남편은 내 잃어버린 아이폰의 위치에 변화가 있는지 수시로 모니터링했다. 언젠가 남편이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우린 흥신소 해도 잘 할 것 같다고. 뒷조사는 나보다 남편이 훨씬 소질이 탁월했지만, 난 한 번 꽂히면 좀 더 집요했다.
그 날 밤 11시 반쯤이었던가... 분실 핸드폰의 위치가 다시 옮겨진 걸 확인했다!
심란한 주말을 지나, 월요일이 되었다. 경찰서에선 연락이 없어, 내가 분당경찰서로 연락을 했다. 담당 형사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아냈고, 내가 수집한 정보들을 전달했다.
핸드폰을 두고 나온 시간, 그리고 인근 주택지역으로 핸드폰 위치가 확인된 시간, 다시 그 인근지역으로 이동한 시간, 세 가지 단서를 가지고 형사는 조사를 시작했다. 나는 대한민국 경찰의 능력을 믿고 싶었다. 제발...!
CCTV 영상들을 확인한 형사는, 핸드폰을 잃어버린 직후부터 1시간 남짓 시간 동안 여자화장실 앞 CCTV에는 70명 이상이 오갔고, 피자집 주변인 1차 이동 지역은 CCTV는 주변 차량 등으로 사각지대가 많았다고 했다. 결국, 의심할만한 사람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 CCTV 영상을 나에게 주면 나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찾을 수 있는데....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억울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대한민국에서, 아이폰을 훔쳐가다니.
화면잠금을 해놔서 풀기도 어려울 것이고, (여러 번 잘못된 패스워드를 입력하면 일정 시간 잠금상태가 된다.) 거기다 분실모드 설정까지 해놔서 화면 잠금 해제 후 애플 계정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할 것이며, 계정 비밀번호를 모르면 포맷을 하지 못해 판매도 불가능하다. 이런 걸 잘 모르고 가져간 걸 보면, 어리거나 혹은 나이가 오히려 많은 사람일것 같다고 남편은 추측했다.
처음 일주일 정도는 오래된 아이폰으로 근근히 버텼지만, 그 임시 아이폰은 마이크가 고장난 상태여서 쓰기가 영 불편했다. 얼마 전 지인을 빌려줬다가 아래 모서리 부분을 깨먹은 채로 돌려받은 적이 있는데, 그 때 마이크 기능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행간에 숨은 나의 분노가 느껴지는가..) 그래서 전화가 오면 에어팟을 끼고 통화를 해야했다. 그걸 까먹고 그냥 통화버튼을 눌렀다가, 상대방이 여보세요를 반복하는 중에 일방적으로 끊고 다시 전화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결국 핸드폰을 새로 샀다. 폰을 잃어버린 죄인이라 고용량 또는 고사양을 고집하지 못하고, 적절한 선(Pro 모델과 512GB 고용량을 포기한)에서 타협한 모델로.
핸드폰을 잃어버린지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내겐 새로운 핸드폰이 생겼지만, 난 잃어버린 핸드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아쉬운 건 사진 정도였다. 핸드폰 백업을 해둔 건 잃어버리기 약 1년 전이 마지막이어서(그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 그 사이 약 1년이 사라졌다. 그 사이 대만과 홍콩 여행도 다녀왔고, 잠시 11개월 머문 직장의 후반부 기록도 사라졌다. 퇴사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눈 내용도 캡쳐해 두었는데...
찾고 싶다, 찾고 싶다, 찾고 싶다.....
나의 위치 찾기 기능으로 잃어버린 핸드폰의 위치를 모니터링하던 것도 뜸해져가던 즈음, 경찰서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사건에 진전이 없어 도난사건을 종결처리 하겠다는 거였다. 안돼! 내 마음은 아직 그 사건을 종결하지 못했다고! 아쉽고 서글픈 마음으로 오랜만에 확인한 내 핸드폰의 위치를 다시 확인해보았더니... 4주간 이동이 없던 핸드폰은 내가 잃어버린 장소, 백화점 쪽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위치로 기록된 시점은 이미 3일 전. 그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혹시 도둑이 당근마켓에 팔아먹으려고 백화점 근처에서 켰다가 여전히 그 모양이어서 다시 끈건가, 혹시 도둑이 백화점 직원인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나는 형사에게 캡쳐 이미지와 함께 문자를 보냈다. 나는 종결처리 못하겠다고.
다음 날, 형사에게 전화가 왔다. 실시간 위치가 확인이 되면 뭐라도 해볼 수 있겠지만, 3일 전의 기록으로는 어렵다 했다. 그렇겠지... 요즘 워낙 핸드폰 도난 신고도 많은데, 대부분 찾기가 어렵단다. "어제도 비슷한 사건 때문에 동탄까지 갔다 왔어요."
그래, 경찰의 고충도 이해한다. 하지만 난.... 찾고 싶다......
답답한 마음에 GPT에게도 물어봤다.
"훔쳐간 사람이 핸드폰을 거의 한달만에 잠깐 켰다가 다시 전원을 껐어. 분실모드를 해제해야 좀 더 방심하게 만들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분실모드를 해제해 ‘방심하게 만드는 전략’은 현실적으로 효과가 거의 없고, 오히려 위험성이 더 큽니다. 오히려 분실모드를 유지하는 것이 안전성과 회수 가능성 모두에서 더 유리합니다."
AI의 단호박같은 만류에, 분실모드를 해제해볼까 하던 마음을 접었다.
지난 토요일, 한창 바쁜 시기라 나는 회사 출근을 했다. 퇴근 길에 운전을 하다 신호 대기하던 중, 심심한데 나의 위치 찾기나 한 번 볼까? 하며 확인했는데...
19분 전! 불과 얼마 전! 다시 백화점에서 위치가 확인된 기록이 있었다!
그 때 난 서현 즈음을 지나던 중이었고,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집으로 가던 차를 돌려 일단 수내역 백화점으로 내달렸다. 이미 분실 핸드폰의 전원은 다시 꺼진 듯 했으나, 우선 마지막 위치로 기록된 지점으로 한 발, 한 발, 찾아가보았다. 고도는 확인이 되지 않는 관계로(해외에서는 된다는 얘기가 있더라) 1층부터 갔다. 백화점 바로 옆 바깥부분이었는데, 한동안 벤치에 앉아있는 중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그 옆 벤치에 놓여진 짐가방도..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주택이던 우리집에 도둑이 든 적이 있었다 했다. 범인은 잡지 못했지만 그 날 이후 엄마는 주변 모든 사람들이 다 의심스럽게 보였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 심정이 내 심정이다.
당시 상황을 나의 사건 담당 형사에게도 알렸는데, 그는 혹시 모르니 분실물센터에 한 번 가보라고 했다. 처음엔 설마 거기 있겠어, 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분실물센터 위치를 여쭤본 청소하는 여사님께서 가리키는 손 끝이 내 분실 핸드폰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위치와 비슷한 지점 즈음이어서, 왠지 그 곳에 내 핸드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겨났다.
분실물센터는 지하 1층 식품관 귀퉁이, 주차장 출구 쪽에 위치해 있어 찾아가기가 다소 복잡했다. 유리문을 똑똑 두들기고는, 혹시 분실물 중에 아이폰이 있느냐 여쭈었다.
"언제 잃어버리셨어요?"
"잃어버린지는 좀 됐어요."
뭔가 있는 듯, 저 쪽을 찾아보라며 직원들 간에 얘기가 오갔고, 혹시 테두리가 은색이냐며 물었다. 설마... 설마....?
안그래도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연락이 없어 찾아드리질 못했단다. 내 폰이 여기 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연락을 하겠어요, 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배터리가 없어 켜지지도 않는 상태여서 그 분들이 뒤적뒤적 찾아낸 충전기로 잠깐 충전을 한 후 겨우 전원을 켜고, 내가 비번 입력으로 화면 잠금을 해제해서 보여드리는 것으로 본인 확인 절차가 끝났다.
그렇게 난 한 달 일주일 만에 나의 잃어버린 핸드폰을 다시 만났다! 하지만 역시나, 핸드폰 뒤에 붙어있던 케이스티파이 카드 홀더 스탠드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기가 쓰려고 가져갔으려나, 아님 팔아먹었으려나.
분실물 센터 직원분들 얘기로는, 11월 29일에 여자 화장실에서 분실물로 접수가 됐다고 한다. 그 때가 일주일 전, 위치가 확인된 그 시점이었던 모양이다.
핸드폰을 찾아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형사에게 전화해서 핸드폰을 드디어 찾았다며, 이게 다 형사님 덕분이라는, 50%만 진심인 인사치레를 건넸다. 그래도 찾은 걸 같이 기뻐해주는 형사의 목소리에서, 그의 진심을 느꼈다.
핸드폰은 다시 찾았지만, 의문은 남았다. 도둑은 왜 훔쳐간지 한 달이 되어서야 다시 주워간 그 장소에 갖다놓았을까? 다른 데 버릴 수도 있었을텐데, 왜 그 장소였을까?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행동을 지우고 싶었던걸까? 왜 한달이 지난 시점이었을까?
시간이 좀 지나면 잃어버린 사람이 포기하고, 뭔가 핸드폰을 어찌 해볼 수 있는 상태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포기한걸까? 남편의 추측처럼, 사건 즈음에 주변을 오가는 경찰을 보며 심리적 압박을 느끼다가 슬쩍 갖다 놓은 걸까?
그라고 '나의 위치' 앱에서 실행한 '사운드 재생' 기능은 왜 아이폰이 다시 켜진 지 한참 지나서야 울리는가. 그 도둑도 핸드폰 전원을 켰는데 갑자기 사운드가 재생되며 끌 수도 없는 상태가 되는 바람에, 놀라서 전원을 다시 끌 수 밖에 없었겠다 싶었다.
아이폰의 나의 위치 찾기 기능은 꽤 쓸만했다.
다만, 이동 경로 기록이 되면 좋겠다. 악용의 우려가 있다면, 적어도 분실모드 설정 이후 시점부터라도 기록되면 좋겠다. 도둑을 잡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될텐데.
그리고 한동안 지원되지 않던 그 기능이 얼마전부터 한국에서도 지원되기 시작한 건, 꽤 괜찮은 타이밍이었다.
나의 아이폰 도난 사건은, 내게 최신 모델 핸드폰을 선사하고 다시 돌아왔다.
이제 되찾은 나의 예전폰은 사진 백업 후 당근마켓으로... 고이 보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