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스크래치가 났다.

by 유니

우리 회사는 지하철 역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곳이라,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 건물 위치는 산과 인접해 있어, 고도 차이에 따라 주차장이 여러 군데로 구역이 나뉘어져 있는데, 주차하기 좋은 곳은 늘 일찍 차는 편이다. 내가 애용하는 제 5 주차장은 우리 사무실과 가장 가까운 위치이고, 오전 11시 경 이후로는 그늘이 져서 뜨거운 여름에도 햇빛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매우 좁은 통로'를 지나와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운전이 미숙한 사람은 쉽게 범접하지 못하는 곳이라, 주차 공간은 늘 넉넉히 남아 있는 편이다. 내가 그 곳에 대는 이유는 내가 운전에 능숙해서냐고? 그럴리가. 나는 경차니까!


긴 연휴 끝에 오랜만에 출근한 그 날, 적당히 야근을 하고 퇴근하던 길은 유난히 어둡게 느껴졌다. 주차장 쪽은 가로등도 충분치 않아 그 좁은 주차장 통로를 빠져나올 때는 내 차의 헤드라이트에 의존해야 했다. 통로가 또 하필 'ㄱ'자인데, 그 코너를 돌던 즈음.. 쓰윽....하고 조수석 뒷자석 즈음의 위치에서 차가 벽에 끼는 소리가 났다.


당황해서 차를 멈췄고, 불길함이 엄습했다.

머리속에 떠오른 한마디, '아.. 망했다.'


차를 다시 뒤로 살짝 빼고(그러면서 한번 더 문지르고) 공간을 좀 더 만든 다음, 다시 차를 돌려 그 곳을 빠져나왔다.

긁힌 걸까? 모서리에 충돌방지 스펀지 같은 게 대어져 있었으니까, 어쩌면 긁히지 않았을지도 몰라.

라고 믿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퇴근 후 바로 운동을 하러 가려던 길이었으므로, 심란하고 가라앉은 마음으로 헬스장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우리 동네 헬스장 주차장도 참 지랄맞다. 주차장 들어가는 길이 좁고 커브가 심한데다, 중간에 떡 하니 기둥이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주차 공간도 넉넉치 않아, 이미 주차된 차를 피해 주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좀전의 회사 주차장 일로 이미 나의 간은 콩알만해진 탓에, 헬스장 주차장 통로를 기다시피 들어가 주차하는데에도 거의 10분이 걸렸다.


차에서 내리고, 드디어, 차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아... 차는 생각보다 많이, 넓게 긁혔다.

아닐거야, 저 하얀 것은 페인트일거야.

손가락으로 아무리 문질러봐도 내 손가락만 먼지로 까매질 뿐, 긁힌 자국이 없어지진 않았다.

23년식 무사고 차량인데, 내게 온 지 한달도 안되어서 긁다니.

나의 마음에도.. 스크래치가 났다.

난 자동차 운전과 안맞는건가. 운전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도 많이 긁고 자잘한 사고가 잦은 건가.

학창시절 아이큐 검사 때 공간지각력은 거의 만점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그런 건 소용이 없는 건가?


너무 슬퍼서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사실, 남편의 잔소리가 이미 육성으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심란한 마음으로 그 날 밤을 보내며 다시는 그 주차장에 주차를 하지 않으리, 다짐했다가... 갑자기 또 오기가 발동했다. 한 번 긁었다고 계속 그런 곳을 피해다니기만 할 순 없지 않은가? 한 번 긁었다고 포기하기엔, 그 주차공간은 다른 장점이 많았다.

그래, 포기하지 말고 다시 부딪혀 봐야겠다. (차로 부딪히겠다는 건 아니고. )

그 곳에서 한 번 더 긁게 되면, 그 때 다시 생각해봐야지.


KakaoTalk_Photo_2025-05-10-22-25-48.jpeg 출근하면서 찍은 주차장 통로. 저 앞의 왼쪽 모퉁이가 바로, 내 차가 긁힌 곳..


KakaoTalk_Photo_2025-05-10-22-26-08.jpeg





사고가 난 다음날 밤, 학원을 마친 아들을 픽업해서 들어오던 남편이 말했다.

"이실직고 해라."

그 뒤를 따르던 아들이 말했다.

"엄마, 이실직고 하시지."


".....봤어?"

귀신같은 사람들 같으니. 잘(?) 숨겨뒀는데 하루만에 발견하다니.

긁힌 곳이 다른 차에 가려져 안보이게 하려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다른 차 옆에 주차를 했는데, 내가 주차한 이후에 그 옆 차가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의 숨기고 싶은 과오는 하루만에 가족들에게 들통났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매우 좁고, 그날따라 주차장이 너무 어두웠다고 얘기하는 내게 남편은 구차하다며 핀잔을 주었다.

"왜 얘기 안했어. 얘길 하지.."라는 아들에게,

"너무 마음이 상해서 말할 수 없었어. 왜? 얘기하면 네가 엄마 위로해주려고 그랬어?"

"그러엄!"

음... 난 네가 집에 들어오면서, 이실직고 하라고 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믿었던 도끼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