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피신

나이듦에 대하여

by 유니

설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부산에 계신 아빠로부터 연락이 왔다. 설 쇠고 분당에 있는 우리 집에서 신세를 좀 질까 하니, 남편에게 잘 얘기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본인이 직접 다니시는 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시며 지난 12월에 한동안 우리 집에 있다가 가셨는데, 한 달이 좀 지난 시점에 다시 오시겠다 하는 이유가 뭘까. 사실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엄마로부터의 피신.

아빠는 말씀하셨다. 엄마가 아빠 때문에 많이 불편한 것 같으니 당분간 마음 편하게 해주고 싶으시다고. 사실 엄마가 얼마나 거친 말들을 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부모님 세대에 아무것도 없는 빈 손으로 척박한 삶을 일구며 가정을 이루고 사는 세월은 녹록치 않았을 것이고 여러가지 부침도 많았으리라. 그 세월이 켜켜이 내려앉는 동안, 엄마는 아빠에 대한 원망과 한을 가슴에 쌓았다. 그게 그렇게 한이 될 일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자식 입장에서는... 솔직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가난한 살림과 새엄마의 눈칫밥에 일찌감치 집을 떠나 떠돌며 살아야 했던 아빠는 젊은 시절부터 줄곧 운전을 하셨다. 오래 전엔 트럭 운전을 하셨다고 들었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기억하는 아빠는 레미콘 운전을 하셨다. 그러다 아빠는 환갑무렵, 우연한 교통사고를 시작으로 수차례 입퇴원과 수술을 거듭하며 살아오셨고, 수입도 점점 줄어들다가 더이상 일하지 못하게 되신지는 6~7년쯤은 된 듯 하다.

거동이 불편하고, 수입이 없고, 밥은 꼬박꼬박 잘 드시는 아빠에 대한 엄마의 원망은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간혹 친정에 내려갔을 때, 사위도 있고 손주도 있어서 엄마가 웬만하면 참을텐데도, 가끔 아빠에게 소리지르듯 내뱉는 말들은 날카로웠고 모욕적이었다.

어렸을때부터도 집을 벗어나는 게 소원이었던 나는 대학교 때부터 독립을 했다. 결혼 이후에는 점점 친정에는 자주 오지 않게 되었고 부모님과 통화도 조금씩 더 뜸해졌다. 가족의 일은 적당히 모른 척 외면하고 사는 게 마음이 편했다. 한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보려 했지만 부모님이 나의 조언을 들으실 리 만무했고, 숱한 좌절을 거치며 나는 마음을 조금씩 놓는 선택을 했다.


고관절 인공관절 치환술을 두 번이나 받으셨던 아빠는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셔서 이제는 지팡이를 필요로 하시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손잡이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거동이 불편하다보니 자주 넘어지셨고, 이제는 덜 넘어지기 위해 아주 잰걸음으로 걸으신다. 일반인에 비해 이동속도는 거의 1/10이 될까말까한 수준이다.

인공관절 수술 이후에는 근력 회복을 위한 운동이 필수라고 했지만 아빠는 다리가 불편하시다는 이유로 많이 움직이기를 힘들어하셨고, 운동능력은 점점 떨어지셨다. 움직이기 힘들어서 운동을 안하신건지, 운동을 안해서 움직이기 힘들어지신 건지는 모르겠다. 젊은 입장에서 보면 아빠가 답답하지만, 내가 그 나이,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았으니 쉽게 말하기도 조심스러운 노릇이다.


20대에 부모님 두 분을 떠나보냈던 남편은 가족에 대한 마음이 끈끈한데다 형들과 형수들이 부모님을 모시는 모습을 봐오기도 했던 탓인지, 아빠가 우리 집에 계시는 것에 대해 싫은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언제 가시느냐고 보채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거동 불편한 장인어른이 한 집에 계시고, 이래저래 챙겨드려야 하는 것만으로도 여러모로 불편할테지. 한편, 아빠는 영 사위 눈치가 보이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같은 눈치밥이라 해도 부산 집에서 엄마에게 시달리는 것보다는 이 곳이 나으신 모양이다.


아빠는 이 곳에서 며칠이나 더 계실지 잘 모르겠다. 언제 내려가실 생각이시냐고 여쭤보지도 않았다. 맞벌이를 하는 상황에서 입맛 까다로운 외동아들 방학 끼니 챙기기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집에 혼자 계실 아빠의 끼니와 간식을 챙기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아빠가 알아서 드시겠다 하신다해도 냉장고 어디에 뭐가 들었는지도 잘 모르시는데다 우리집 부엌살림을 모르시니, 따로 챙겨드리지 않으면 기껏해야 라면을 끓여드시는 정도겠지. 하지만 그마저도.. 부산 집에서는 불편한 몸으로 어디든 나가서 엄마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몸도 마음도 불편한 생활보다는 나으실 듯 했다. 그런 연유로 나는, 더 계시란 말도, 빨리 내려가시란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빠와의 동거가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 다시 오셔서 함께하는 게 몇번이나 더 반복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거동이 확연하게 불편해지셔서 이번에 머물다 내려가실 때 과연 혼자 기차역까지는 가실 수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이니.. 어쩌면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거나, 한 번쯤 더 머물다 가시지 않을까.

아빠와 함께 하는 동안 '노년의 삶'에 대해, '나이듦'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몇 번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글로 써보려고 한다.

아빠가 우리집에 오실 때마다 이 생각들을 글로 남겨봐야겠다 생각만 했던 것을, 이제는 실행에 옮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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