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때문에 라면을 끓이나.
서른마흔이 되고, 혼자 또 라면을 끓일 나를 위해
온갖 사치가 모인 마트에서 내가 부릴 수 있는 허영이라곤 고작 그중에 조금 더 비싼 라면을 집는 일이다. 그나마도 햇반은 제일제당 것을 집지 못하고 다른, 처음보는 회사의 햇반을 집는다.
무엇을 위해 라면을 끓이는가.
세 끼 밥도 먹지못할 하루를 살기위해
새벽에 일어나는가.
군복을 입고 일어나 욕으로 배를 채울 하루를 위해 비실비실 이불을 개는가.
한달 구십만원을 적금을 내어, 일년이면 태어난다는 그 천만원이 나를 말려죽이는가.
시인을 꿈꾸고 작가를 그렸던 나는 어느 냄비 밑바닥에 쓸쓸히 말라붙어있는가.
여기 이 빈 봉지가 다시 라면을 끓이고
서른마흔이 되어 혼자 끓일 라면을 위해
나는 또 라면을 집는가.
어느 냄비 밑바닥에 켜켜이 쌓인 검댕이 사이 끼인 나를 잊고 혼자 라면을 먹다 죽을 송장을 위해 나는 라면을 끓이고 또 라면을 먹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