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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서시

스티로폼을 먹는 벌레

by 엽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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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먹어서 안되는 것을 먹고 산다.

나는 먹지 못할 것을 먹고 산다.

스티로폼이라는 것을,

나는 그런 것을 먹는다.

그리고 살을 찌운다.


나는 스티로폼을 먹는다.

내가 큰턱으로 스티로폼을 씹는 동안

너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스티로폼을 삼키는 동안

너는 환호성을 내뱉는다.

내가 스티로폼을 삼킨 배를 쥐고 있는 동안

너는 깔깔깔깔 웃는다.

내가 멀건 변을 추리는 동안

너는 성과를 축하하며 잔을 들어올렸다.

상을 받고, 노래를 부르며, 모두의 미래와 인류와 지구를 노래했다.


나는 어째서 스티로폼을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며, 어쩌면 또, 너의 말이 어쩌면 내가 스티로폼을 먹고 산다는 것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냐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본래 내가 먹던 것을 잊어버리고,

이제 나는 스티로폼을 먹고 사는 벌레이기에

내 앞에 놓인 스티로폼을 조용히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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