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소설

방주

신의 연민과 사람의 연민에 대하여

by 엽서시

-1-

어느 순간이었다. 神은 도도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불현듯 神은 도도새의 흔들리는 날갯죽지 근처에서 따끔한 고통을 느꼈다. 병야자나무 아래서 휘둘러지는 스페인 군인의 곤봉이 스친 탓이었다. 神은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 神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숨 막히는 듯한 고통에 한참을 데굴데굴 구르던 神은 겨우겨우 목구멍에서 뭉친 매연 연기를 뱉어낼 수 있었다. 적어도 썩은 지 몇 억년은 되는 듯한 고사리 줄기가 타면서 남긴 재가 神의 목구멍 어딘가에 그을음을 남기며 사라졌다. 神은 얼굴을 찌푸렸다. 순간 神의 왼쪽 더듬이 한 쪽이 축축한 석유에 적셨다. 새 옷을 망친 것에 神이 분개할 틈도 없이 그 옷은 이라크 어딘가에 떨어진 미사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神은 고개를 저었다. 아프리카의 검은 대륙 위 어디선가 사생아로 태어난 검은 아이가 울었다. 神은 귀를 막았다. 아우성이 神을 감쌌다. 神을 뒤덮고 있는 모든 것, 더듬이와 촉수와 집게발과 깃털과 꼬리와 손가락과 털과 옷을 불사르고서야 그것은 깩깩거리는 소음을 남기며 사라졌다. 한참 후에야 神은 고개를 들었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도하는 동시에,

神은 우울했다.

한없는 허기 같은 슬픔이 神의 텅 빈 배를 울렸다. 적란운이 神의 어깨에서 피어났다. 神의 둥근 어깨를 감싼 수증기가 神을 끌고 어딘가의 대기를 휘저으며 다녔다. 떨어지는 듯 나는 듯한 그 공간 속에서 문득 神은 어느 때 지구를 뒤덮던 물살을 떠올렸고, 그 위를 떠다니는 작은 조각배의 환상을 보았다.

사모아섬 가까운 태평양 어딘가에서 한 무더기의 적란운이 우뚝 멎었다.

神의 손가락이 하늘 어딘가를 건드렸다.

“방주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神의 슬픈 목소리가 맺혔다. 그러나 스콜이 쏟아지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그 말을 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2-

노아는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다. 아직 창 밖은 파랗고 차갑게 식어있었다. 노아는 주름진 손으로 장판 위를 더듬어보았다. 새벽 어느 샌가 자기도 모르게 장판을 껐는지 모른다. 또는 장판이 고장 났는지도 모른다. 한숨을 쉬며 노아는 더듬더듬 자명종 시계를 찾았다. 시계는 새벽 4시 30분에서 딱 3분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미지근한 이불 밑으로 다시 손을 넣어보는 노아의 팔위에 하얗게 살비듬이 일었다. 문득 3분 잠에 연연할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빤 기억도 가물가물한 녹황색 스웨터 위로 하얗게 노아의 입김이 번져갔다.

딸깍, 관절이 꺾이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 거울 위의 노란 전구가 필라멘트에 걸린 노란 불빛을 뱉었다. 몇 번 힘겹게 눈꺼풀을 깜박이던 노란 전구가 마음을 굳혔는지 은은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노아는 세면대에 모아지는 차가운 물에 손을 담갔다. 손바닥 가득히 묻힌 물을 떠다 정확히 코끝 아래로만 훑어 내렸다. 그리고 재빨리 수건을 걷어 버성버성한 흰 수염에 맺힌 한기를 닦아냈다.

거실의 불은 켜지 않았다. 밤새 반지하의 습기가 한기와 만나 관절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꺾고 부르트는 온갖 것들로 변해있었다. 옷을 걸치는 순간 뒤늦게 자명종이 제 시간, 새벽 4시 30분을 알리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자명종을 끄려던 노아는 잠깐 자명종이 한참 제 목소리를 내도록 두었다. 그러다 윗집 주인집이라도 들으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허겁지겁 노아는 시계를 덥석 눌러 입을 막았다.

옷을 입고 노아는 괜히 빈 벽을 바라보았다. 세 달 전에 죽은 할멈의 사진이 걸려있던 자리였다. 딸애가 청승스럽다며 액자를 가져갔다. 영정도 아닌 할멈의 살빛이 담겨 있던 그 액자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노아는 애써, 이제 무언가를 바랄 나이가 아니지 않느냐며 스스로 다독였다.

모자를 눌러썼다. 목장갑을 두 개를 겹쳐 썼다. 겉에 것에는 구멍이 조금 나 있는 까닭이다. 흐물흐물해진 마스크를 고쳐 쓰고 노아는 집을 나섰다. 리어카를 끌기 전 흰 봉다리에 사료를 두어 줌 퍼다 담았다.

봉다리를 리어카 손잡이에 묶고 몇 번 손가락을 움직여 본 후 노아는 리어카를 끌고 집 밖을 나섰다. 오늘은 화요일이다. 아래 빌라 쪽을 돌면 내놓은 우유곽이랑 박스 몇 개는 주울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이사 간 사람이 없으려나, 노아는 생각했다. 노다지 중에 노다지라면 이사를 끝낸 집에서 발겨놓은 박스들일 것이다. 물론 동네 우유집이나 신문 집에 연이 닿아있는 노인네들도 있다지만 이제 겨우 열 달 가까이 리어카를 끄는 신입인 노아에게 그런 줄이 있을 리 없다. 다만 남들보다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 운수 좋게 남이 보지 못한 폐지가 있다면 그 것으로 족한다. 만일 이사를 간 집이 두 집만 있어도, 노아는 그날 하루를 정말 운수 좋은 날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만일 그 이상의 횡재가 있다면야.

빈 수레가 요란하다더니, 오늘따라 리어카 덜컹거리는 소리가 컸다. 오늘은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포에서 바퀴에다가 바람이라도 좀 넣어야겠다고 노아는 다짐했다.

추웠다. 일흔을 먹어도 추운 것은 추운 것이다. 옷깃에 거북이 같은 목을 묻으며, 요새 젊은 것들은 알리 없는 1.4후퇴 때의 추위를 떠올려보기도 하지만 그때는 젊기라도 했지, 하는 오히려 서러운 생각만 눈앞에 뿌옇게 서려왔다.

문득 노아는 벌써 빌라에 다다른 것인지 고개를 들어보았다. 노아의 눈동자가 주름진 눈꺼풀과 눈곱을 떼고 번쩍 띄었다. 101호에서 어제 이사를 갔던 모양이다. 잔뜩 발겨진 상자들이 어린애 키만큼이나 쌓여있었다.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노다지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는 3분이나 일찍 눈이 떠지더니만.

노아는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마스크에 어린 습기가 얼어붙는 것도 모른 채 노아는 천천히 박스들을 추려 모으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한 집을 돌았을 뿐인데 벌써 리어카가 절반이 넘게 골판지로 찬 것이다. 허둥대며 박스를 묶은 노아는 근처 혹시 흘린 라면박스라도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오호라!

노아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할 정도였다. 101호와 한 블럭도 떨어지지 않은 빌라 옆에도 잔뜩 박스가 쌓여 있었다. 두 집이나 이사를 간 모양이었다. 노아는 재빨리 다시 제 리어카로 돌아갔다. 리어카가 쿨렁이며 묵직한 몸을 움직였다. 전과 달리 삐걱거리는 군말 없이 따라오는 리어카의 무게가 고마웠다.

그렇게 빌라촌을 미처 한 바퀴 돌기도 전에 노아는 리어카에 한 가득 박스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이었고, 횡재한 날이었지만,

그러나 이날의 횡재는 이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평소 길바닥에 떨어진 골판지도 줍던 노아가 흥청거리는 듯한 기분으로 흰 입김을 뿜으며 3단지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노아는 벌어진 입을 채 다물지 못했다. 303동 앞 관리사무소 앞에 누가 책과 잡지를 잔뜩 묶어 버려둔 것이다. 노아는 몇 번이고 손을 꼽아보았다. 3단지 분리수거는 목요일이니, 오늘 관리사무소 앞에 버려진 것은 가져가도 된다는 계산이었다.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잔뜩 콧구멍까지 올라온 노랫소리와 콧물을 손등으로 비벼 닦고 노아는 열심히 잡지 묶음을 나르기 시작했다.

그때,

“거, 누구요?”

노아는 발걸음을 멈췄다. 아뿔싸. 3단지 경비다. 경비의 손목에 매달려 흔들리는 회중전등이 노아와 리어카를 재빨리 훑었다.

“이거······. 가져가도 되는 줄 알고······.”

노아는 머쓱하게 뒤통수를 훑었다. 아마 나이로 치면야 제가 십년은 위에 있을 터지만 나이로 꼬장을 부릴 입장도 안 될 뿐더러 3단지 경비는 깐깐하기로 폐지 줍는 노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3단지 경비는 언짢은 표정으로 노아와 리어카를 바라보았다.

“이미 잔뜩 실었구만, 어딜 또. 욕심만 많아 가지구······. 다 늙어가지고 들고는 갈 수 있을려나······.”

늙은 귀에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일부러 들으라는 심보가 분명했다. 그렇지만 노아는 그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제 염치에도 욕심을 부리는가 싶기도 했다.

“그럼 여기 실은 것만이라두 가져가겠습니다.”

“됐수. 어차피 사람 불러다 치우느니. 댁이 가져가슈.”

고개를 숙이는 노아의 정수리에 3단지 경비가 툭 한 마디 던지고는 뒤돌아 걸어갔다.

“조금이라도 쓸 사람이 써야지, 원······.”

신문과 잡지를 실은 노아는 묵직한 기쁨을 끌고 단지 밖을 나섰다. 수레 무게 때문인지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입김으로 축축해진 마스크를 젖히자 뿌연 수증기가 노아의 입에서 번져나갔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집에서 식사를 했겠지만 수레에 실린 무게가 곧 지갑에 들릴 지폐 몇 장으로 바뀔 것을 생각하니 식은 밥이 입에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큰 길 쪽으로 나선 노아는 두리번거리며 식당을 찾았다. 아침도 나오는 듯한 분식집 앞에 리어카를 댔다. 당장 식당 주인이 나왔다. 식당 주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노아는 먼저 고개를 숙이며 리어카를 끌고 건물 뒤로 돌아갔다.

당연하지, 당연하지.

식당 안에서 노아가 모자를 벗자 물씬 땀방울들이 벗겨진 이마 위로 흘렀다. 묵은 살 냄새가 옷깃으로 흘렀다. 오랜만에 맡는 제 땀 냄새가 노아는 슬프도록 흐뭇했다. 식당 주인이 내온 순두부찌개를 떠넘기며 노아는 처음으로 오늘 같기만 하면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알 수 없는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눈물인지 땀일지 모를 미지근한 것을 눈가에서 닦아내며 노아는 부지런히 뜨거운 것을 입으로 불어가며 먹어댔다.

순간 노아의 숟가락이 멈췄다. 노아는 잠깐 순두부찌개에 든 분홍색 새우의 살점을 바라보았다. 오그리고 있는 비릿한 살점을, 노아는 입에 떠 넣는 대신 상에 있는 휴지 하나를 펴고 모았다. 찌개 안에는 모두 여덟 마리의 새우가 들어있었다.

밥 한 그릇을 비운 것 역시 오랜만이었다.

일찍 나오셨네요.

짠한 간이 베어있는 인사말을 건네며 식당 주인은 노아에게 3500원을 받았다. 순간 노아는 낡은 가죽지갑을 들고 메뉴판에 순두부찌개가 5천원이 아니었던가 생각했다. 그러나 노아는 그냥 천 원 짜리 네 장을 건네기로 했다. 무언가 고마운 마음이 들어 인사말이라도 건네고 싶었다. 어젯밤 꿈자리 얘기라도 할까 했지만 갑자기 말문이 막혀 노아는 그냥 말없이 돈을 냈다. 오백 원 잔돈을 받고 식당 문을 열자 벌써 밖은 밝아져 있었다. 한기가 서며들자 노아는 다시 모자를 썼다. 그렇지만 뿌듯이 배 안에 느껴지는 묵직한 것이 든든하기만 했다.

죽어도 좋다,

라는 말을 이럴 때 하나보다, 노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사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건물 뒤에서 얌전히 엎드려 있는 수레의 손잡이를 잡았다. 수레 한 쪽에 매달린 흰 봉다리에는 아까 찌개에서 떠냈던 새우 살점들을 쏟아 넣었다.

고물상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지만 노아의 앙팡한 다리에 힘이 붙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며 노아는 거친 숨을 다스리며 오늘 아침에 꾸었던 꿈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았다. 알 수 없는 꿈이었지만. 그 꿈 때문에 3분을 일찍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렇게 좋은 하루를 맞았고······.

오르막길을 다 올랐을 때였다. 갑자기 4단지 앞에서 웬 차가 불쑥 튀어나왔다. 꽤 빠른 속도였다. 정신이 팔려 있던 노아는 미처 보지 못했고,

대신 뒤늦게 경적소리를 들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변상을 할 도리가 없는데······. 노아가 아무렇게나 떨어진 모자를 주워 집어 들었다. 차 문이 열리면서 젊은 남자가 튀어나왔다.

“아, 시팔. 뭐야.”

노인을 눈 위아래로 훑어보던 남자는 재빨리 제 차 앞으로 가 보았다. 차는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노아는 고개를 꾸벅거리며 쓰러진 수레를 세우고 잽싸게 떨어진 종이 뭉치를 올리고 수레 손잡이를 쥐었다.

“이봐요, 할아버지! 저기요!”

뒤에서 남자가 뒤를 물 듯 고함을 몇 번 질렀지만 노아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수레를 끌고 내리막길을 향해 내달았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에이, 시팔.”

남자는 투덜거리며 다시 차 문을 열었다. 노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내리막길을 헐레벌떡 내려가고 있었다. 아직도 심장이 뛰었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오고, 남자의 검은 차가 온데 간데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서야 노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제야 어디를 어떻게 치인건지 걱정이 들었다. 옆구리를 세게 박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옆구리에 둔탁한 무감각함이 천천히 번져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리막길을 내려오고 한 걸 보면 아직 기운은 멀쩡한 모양인데,

갑자기 울컥 아까 먹은 순두부찌개가 올라왔다. 무얼 어떻게 하기도 전에 노아는 가로등 아래에 왝왝거리며 붉은 것을 한 사발 토해냈다. 고개를 들고 한 발짝을 떼려 했을 때 푹 어질어질한 현기증이 노아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두 발짝 쯤 앞으로 나아간 노아는 그만 픽 쓰러지고 말았다.

창자가 끊어진 듯한,

아니, 창자가 끊어진 고통이 무감각하던 옆구리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노아는 몸을 뒤틀었다. 뱃속에서 무언가가 사그락거렸다. 아마 갈비뼈나, 갈비뼈 조각이나, 갈비뼈 부스러기 뭐 그런 것들일 것이다. 노아는 무어라 입이라도 열고 싶었지만 그만 입을 다물었다. 노란 물이 입에서 한줄기 흘러나왔다.

이렇게 죽을 줄은 내 몰랐구만.

조금은 더 얌전하고 깨끗하게, 죽을 줄 알았지, 그만.

노아는 헐떡거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순간 노아의 눈앞에 흰 봉다리가 들어왔다. 노아는 숨을 몰아쉬며 손을 뻗었다.

흰 봉다리 안에는 사료가 들어있다. 할멈은 곧잘 동네의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곤 했다. 고양이들이 쓰레기를 헤집어놓는다고 동네에서 다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할멈은 몰래몰래 차 뒤에 그릇을 놓아가며 고양이들 사료를 먹이곤 했다. 죽기 몇 달 전 할멈은 다른 고양이들은 몰라도, 처음부터 밥을 먹여 길렀던 그 퉁퉁한 누런색 고양이에게 유난히 집착했다. 노아는 할멈이 그 고양이에게 딸애이름을 붙인 것을 알고 있기에 그냥 묵묵히 모른 척 했을 뿐이었다. 언젠가는 한 번 그 고양이는 수놈이라고 짓궂은 농담을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노아는 그저 꾹 참았다.

할멈이 죽고,

할멈이 걸려있던 액자도 치우고.

이제 고양이랑 노아는 똑같은 신세였다. 같이 할멈이 남겨놓은 것을 먹으며, 살았다. 숨을 쉬도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서, 먹고, 그리고 살았다.

할멈이 죽기 전에 사놓은 사료 푸대, 그 사료 푸대에 있는 사료만큼은 다 먹이고 싶었다. 언제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다 먹일 텐데.

할멈이, 그 미칠 정도로 착한 여자가. 자식 딸 다 키워 보내고 없던 돈까지 쥐여주던, 죽기 한 달 전에도 김치를 담그고 갔던 그 여자가. 갑자기 입에 문 걸레처럼 노아의 안을 한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죽긴 죽어도 고양이 밥은 누가 주고 가야 할 텐데.

그렇지 할멈?

자신이 전능하다는 생각도 잊은 채, 노아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노아의 눈에 흐릿하게 눈물이 고였다. 눈을 껌벅여 눈물을 지워내고 싶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끊어진 창자가 미칠 듯이 아팠다. 여전히 머리뼈를 울리는 어지러움에 노아는 고개를 저으며 흰 봉다리로 손을 움직여 보았다.

눈을 메운 눈물 위로 어떤 영상이 맺혔다.

웬 아줌마가 자동차 뒤의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쏟아 붓고 있었다. 사료 위에는 하나, 둘, 셋······. 여덟 마리의 새우가 허리를 꼬부리고 놓여 있었다. 사료를 부운 아줌마가 떠나고 자동차 밑에서 어느새 슬쩍 누런 고양이가 나타났다. 정기적으로 밥을 얻어먹은 탓인지 살진 녀석이었다. 사료 위에 놓인 새우 냄새를 맡던 녀석이 사료에 북실북실한 주둥이를 가져다 댔다. 두어 입 사료를 우물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

어느새 노아는 자신이 둥실 공중에 떠올라있음을 눈치 챘다. 고양이와 빤히 눈을 마주친 노아는 손이라도 흔들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자신은 손도 발도 없는 존재였다. 한참 노아를 바라보던 고양이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그릉그릉한 목울림 소리가 노아의 귓가를 간질였다. 고양이가 천천히 꼬리를 움직였다.

천사들의 손이 노아의 영혼에 닿았다.

더 이상 배의 고통은 없었다.

노아는 그렇게 죽었다.

-3-

나중에 노아는 다른 영혼들에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글쎄, 신이란 양반은 처음 봤지만, 꼭 나 알던 사람 중에 3단지 경비 같더군.”

노아는 몸을 조아렸다. 神은 대단히 언짢은 표정이었다. 흠, 세 번째로 神이 헛기침을 쿨럭였을 때 노아는 다시 한 번 쪼그라든 몸을 다시 한 번 움츠렸다. 神은 잔뜩 골이 난 그 표정 그대로 한없이 부풀어 오르더니 갑자기 또 가라앉기 시작했다.

“내가 꿈속에서 그랬지. 너에게 전능한 힘을 주겠노라고. 그러니 너는 방주를 만들어 네가 구하고픈 모든 것들을 실으라고. 넌 진실로 전능한 하루를 살지 않았더냐?”

노아는 무어라고 변명을 하려 했다. 그렇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네가 한 것은 고작, 고양이 한 마리에게 밥을 준 것이 고작이구나. 너는 심지어 너 자신도 살려내지 못했다. 죽기 전까지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한 것이 전부다.”

神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노아에게 손짓했다. 천사들이 노아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려놓았다. 노아는 잠깐 멈춰 서서 대체 자신이 저 노인에게 무얼 잘못한건지 떠올려 보려 했지만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끊어질듯하던 배의 통증이 가라앉은 것이 고마웠다. 이 것도 다 저 노인네 덕택이겠지 싶었다. 무언가 이야기라도 하고 싶어 노아는 멈칫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몇 남지 않은 이빨을 오물거리고 있는 노아에게 노아의 어깨에 다시 천사들이 손을 얹었다.

저 분은 다 아십니다.

어서 가요, 할머니 계신 곳으로 가야죠.

천사들은 입을 열지 않았지만 노아는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첫 번 째 생각보다는 두 번 째 생각에 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사들을 따라나섰다.

고개를 돌리고 있던 神은 살며시 주름살과 비늘 사이에 낀 눈물을 털어냈다.

오래전 神은 인간들에게 단 한 명의 의인이라도 있거든 도시를 벌하지 않겠노라고 했었다. 오래전 神은 인간들에게 장터에서 단돈 닷 푼에 팔리는 갈가마귀 새끼를 기억하겠노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전 神은 인간들에게 내가 만든 이 모든 것을 다시 벌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었다.

神의 손가락이 문득 하늘 어딘가에 닿았다. 神의 손가락이 허공에 반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반원에 색색의 빛깔을 칠해 넣으며 神은 다시금 그 약속과 말들을 입 안으로 되새겼다.

방주는 끝났다.

어딘가에 큰비가 지고 神의 약속인 무지개가 떠올랐고 사람들은 무심히 하늘 아래를 지나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