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애와, 아비의 이야기
마을주민:(호들갑스럽게)아유, 그럼. 맨날 있지, 맨날 있어. 그냥 기특하다니까.
마을주민: 머리 검은 동물은 은혜를 모른다는데······. 보면 짠하지. 그럼.
마을아이:(흥분한 듯)매일매일 거기 있어요, 매일.
애새끼들이 골목에 바글바글, 끓어 넘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집에 까지 들렸다. 애써 TV에 눈을 돌렸다. 이 시간에는 만화 영화도 항상 재미없다. 하지만 저 소리가 듣기 싫어서라도 꾹 참고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것도 곧 꺼야한다. 주인 할머니가 오실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마다 후닥닥, 일어났다. 아뿔싸, 미처 TV를 끄지 못했다. 주인댁 할머니는 내가 마루에 있는 할머니네 TV를 보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할머니가 밖에 나갈 때 몰래 봐야 한다. 시장보다는, 할머니가 미장원이나 고스톱 치러 갈 때가 더 좋다. 그럴 때 할머니는 거의 두 세 시간씩 집에 안 올 때도 있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인상을 잔뜩 쓴 채로, 마루에 거칠게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장바구니에는 파가 삐죽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난 파를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역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오늘 저녁도 아마 멸치찌개겠다, 싶어 인상을 찡그렸다.
“모가 저리 시끄럽다냐, 잉. 대낮부터. 아덜이 학교는 안 가구······.”
언제나 그렇듯, 할머니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할머니는 참 못생겼다. 주인 할아버지가 왜 이런 할머니랑 같이 사는지 알 수 없다. 주인 할아버지는 날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은 용돈도 주곤 한다. 내게 사탕 같은 거라도 주는 사람은 할아버지뿐이다. 겉으로 보기엔 얄팍한 주머니에 어떻게 사탕을 그렇게 많이 숨겨 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집에 잘 없고 대부분은 이렇게 할머니랑 나뿐이다.
할머니는 나를 싫어한다. 할머니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시끄럽고 공부를 안 하고 잘 안 씻고 냄새가 나며 발이 더럽기 때문이다. 물론 발이 더러운 것보다도 맨발로 마루에 발자국을 내는 것을 특히 싫어하신다. 그렇지만 밖에서 들어오고 나면 아무리 조심을 해서 걸어 다녀도 마루바닥에 발자국이 남는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나는 괜히 우리 방 쪽을 바라보았다. 물론 아빠는 없다. 내가 일어났을 때도 없었고, 내가 혼자 아침밥을 먹고 TV를 보러 가기 전에 방에 들렀을 때도 없었으니까. 뭐 아빠가 있다 해도 좋을 건 없다. 아빠는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하다. 간혹 날 혼낼 때 빼고는 말도 길게 하지 않는다. 사실 날 혼낼 때도 할머니처럼 길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뭘 잘못했는지 따박따박 말하고 나서 때린다. 할머니처럼 길게 말하는 사람도 없다.
분명 나는 자국을 내고 다니지 않았어도 할머니는 용케 내 발자국을 찾아내곤 하신다. 내 발자국을 찾기 위해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눈에 힘을 주어 마루를 샅샅이 뒤지는 할머니는 무섭기까지 하다. 틀림없이 할머니는 내 발자국을 찾아낸다. 그리고 날 혼낸다. 내가 하도 안 씻었기 때문에 굳이 발자국을 찾지 않아도 냄새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하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내가 냄새가 나는 이유는 다른 애들처럼 아빠가 목욕탕을 데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창원이만 하더라도 주말마다 아빠랑 같이 목욕탕을 간다. 창원이네 아빠는 배를 타기 때문에, 가끔씩만 집에 있지만 그래도 집에 있을 때는 창원이한테 엄청 잘해준다. 나한테도 가끔 잘해준다. 그건 뭐 창원이네 아빠만 그런 건 아니고, 우리 반에도 배를 타는 집 아빠는 다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 아빠는 배를 타지 않는다. 2년 전에 아빠가 탄 배가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는 다치지 않고 돌아왔지만, 아무튼 그 이후로는 아빠는 배를 타지 않는다. 배를 안타는 건지 못타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빠가 선주한테도 막 화내고 그랬기 때문에.
그 이후로 아빠는 다른 아빠들처럼 배를 안타고 읍내로 일을 나간다. 한번 나가면 한 일주일 쯤 있다가 주말이 되면 가끔 들어오곤 한다. 그렇지만 주말에 온다고 해서 나랑 목욕을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집에 누워서 잠만 잔다. 맨날 엄청 피곤하다면서. 난 아무리 학교에서 힘들게 체육을 해도 토요일이랑 일요일에는 하나도 안 피곤한데 말이다.
난 할머니가 나를 혼내는 동안 지금처럼 딴 생각을 한다. 할머니가 날 혼내는 내용은 항상 똑같다. 만화처럼 나도 한번 외워보려고 했지만 만화랑은 다르게 할머니가 날 혼내는 내용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외우지는 못했다. 할머니는 오늘도.
내가 TV를 보는 게 아까워서가 아니라, 애들은 바깥에서 뛰어노는 게 맞는 데 노상 집에 틀어박혀서 공부도 안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겠냐는 것이며,
우리 아빠는 무얼 하느라 밖엘 나가서 집엘 오지 않느냐는 것이며,
아빠가 요사이 집에 들어온 거 다 안다,
오늘이라도 우리 아빠가 집에 오면 여태 말 안들은 것을 단단히 일러바치겠다,
며 나를 혼냈다.
그렇다. 요새 아빠는 바싹 익은 계란후라이 노른자처럼 집에 눌러 붙어 있다. 물론 오늘은 어딜 갔는지 아침부터 집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읍내로 일을 나간 건 아닌 것 같다. 아마 동네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요샌 돈이 없으니 술도 못 먹으면서도 아빠는 항상 밖에 있다.
읍내에서의 일이 떨어진 건 조금 슬프다. 읍내에서 일을 할 때만 해도 월세도 꼬박꼬박 냈었는데. 사실 난 아빠가 뭘 하는지 잘 모르지만 말이다. 아빠가 내게 아빠가 뭘 하는지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뭐 그것만 아빠가 내게 얘기 안 해주는 건 아니다. 우리 집엔 엄마가 왜 없는지, 엄마가 어딜 갔는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아마 아빠는 내가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면 도망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다.
참, 덧붙여서 말할 것이 할머니가 특히 화가 난 것은 내가 요즈음 학교를 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왜냐면 학교가 여름방학을 한 것이고, 사실 이건 나랑 아무 상관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아침마다 내가 늘어지게 자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못생긴 얼굴로 ‘공부도 못하는 놈이 죽어라고 학교도 안 간다’며 중얼거리곤 했다. 결국 내가 방학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는 것이며 학교만 연다면야 내가 왜 가지 않고 집구석에 틀어박혀 쌀을 축내겠냐는 것을 할머니에게 납득시켰을 때에도 ‘니가 평소에 잘 했으면 방학이라고 학교가 온다는 애를 집으로 보내겄냐’며 내 말을 무시했다. 참, 할머니답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또 아빠 생각을 했다. 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아빠는 선생님이랑 상담을 했다. 나에 관한 상담이었다. 난 그날 죽을 각오를 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아빠는 처음 학교에 불려가는 거였다. 물론 내가 가정통신문을 잘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빠는 참관수업 같은 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각오랑 다르게 상담을 하고 온 날 아빠는 날 때리지 않았다. 그냥 날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짓고는-
한숨을 한 스무 번쯤 쉬고 난 다음 내 머리를 북북 문대고 그냥 방에 들어갔다. 뭔가 말하려는 거 같기도 했다. 어쩌면 아빠가 나한테 사과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웅경이랑 싸우고 교무실에 불려가고 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다 아빠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뭐 기대한 건 아니다. 그래도 아빠는 할머니처럼 날 싫어하지는 않는다. 아빠가 말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아빠가 날 좋아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사실 할머니도 처음부터 날 싫어하지는 않았다. 내 말은 그러니까 물론 할머니가 못생긴 것은 맞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날 괴롭히는 못된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사연이 길지만, 아마 할머니가 날 싫어하게 된 건 내가 서울에서 내려온 할머니 손자를 발로 차는 걸 본 이후 인 것 같다. 그때 할머니 며느리가 분명 괜찮다고 했는데도 할머니는 몹시 화를 내며 거의 날 쫓아내려고 까지 했다. 아빠가 그날도 집에 없었기에 망정이지 아빠가 집에 있었다면 난 맞아 죽었거나, 아니면 할머니 말마따나 우리 둘 다 길거리에 나앉을 뻔 했다.
사실 아빠가 날 때리는 것도 다 할머니가 일러바치기 때문이다. 할머니만 아니면 내가 아빠한테 맞을 일도 없다. 왜냐하면 아빠가 나한테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아빠한테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꼭 그것 때문은 아니다. 할머니 생각도 그렇지만 내가 하는 일 대부분이 맞을 만한 일이기 때문에, 굳이 내가 말할 이유는 없다. 나도 그정도는 안다.
아무튼 할머니는 또 구시렁거리며 걸레를 들고 마룻바닥에 선명한 내 발자국을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마룻바닥을 닦는 동안 난 맘에 들지는 않지만 바깥으로 나가 놀기로 마음먹었다.
골목은 온통 멸치를 찌고 난 비린내로 가득했다. 언제나 해마다 이맘때면 늘 그랬지만. 특히 방학 때면 아침점심저녁으로 멸치찌개를 먹어야 했다. 놀랍게도 할머니는 평생을 멸치찌개를 먹고도 질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아침점심저녁으로 배가 고파왔기 때문에 나 역시 군말 없이 멸치찌개를 먹었다.
애들 떠드는 소리가 와그랑와그랑 이쪽 골목으로 굴러오고 있었다. 분명 카메라가 이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 할머니 얘기를 하느라 말하지 못했다. 오늘 SBS에서 카메라가 왔다. 때마침 학교도 안가는 애들은 그래서 아침부터 카메라랑 그 근처의 아저씨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 하얀 봉고차는 사실 뭐 동네 봉고차랑 별 다를 게 없었지만, 그 봉고차에서 나오는 물건들은 좀 신기하긴 했다. 아저씨들은 처음에는 웃으면서 우리들을 찍어주면서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시간이 지나자 우리를 좀 귀찮아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아저씨들 근처에 있었다.
웅경이새끼랑 그 새끼 똘마니들만 나오지 않았어도, 난 지금까지 아저씨들 옆에서 카메라랑 마이크를 만져보고 있었을 텐데. 박웅경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잘 사는 애다. 3학년이랑 4학년 때도 회장을 했고 지금도 무슨 피아노 학원에 학원을 여러 개 다닌다. 지금은 반장이 아니다. 사실 걔가 회장이 되면 햄버거가 됐건 피자가 됐건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도 은근히 바랐지만, 이번 담임선생님이 회장을 돌아가면서 시키는 바람에 애꿎은 햄버거만 날아가고 말았다.
아무튼 박웅경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 살고, 그래서 걔 근처에는 뭔가 신기한 것이 많았다. 집에서 셰퍼드를 기르는 것도 웅경이네 집이 유일했다. 대부분 집에서 똥개 아니면 출처가 의심스러운 진돗개를 기르는 게 보통인데 웅경이네 집만이 유일하게 셰퍼드를 길렀다. 사실 난 개를 좋아한다. 그치만 할머니가 개를 죽어라고 싫어하기 때문에 집에서 개를 못 기른다. 그래서 개랑 놀고 싶으면 창원이를 불러다 창원이네 똥개인 뽀삐랑 놀곤 한다. 뽀삐는 키가 작고 노란 암컷 똥개인데 작년에는 창원이네 아버지가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하마터면 잡혀 먹을 뻔했다. 그렇지만 나와 창원이가 창원이네 엄마한테 호로자식 소리를 들어가며 떼를 쓴 덕분에 뽀삐는 살렸고 다른 집 똥개가 죽었다. 물론 뽀삐는 그 사실을 모른다.
다시 웅경이네 셰퍼드 얘길 하자면 웅경이새끼 말로는 무슨 대회에서 상도 탔다고 한다. 그치만 그건 틀림없이 뻥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셰퍼드가 아침에 웅경이 아빠랑 산책 나가는 거 아니면 집 밖을 나가는 것을 한 번도 못 봤기 때문이다. 산책 잘나가는 걸로 상 타는 거라면 자기네 집 뽀삐도 대상감이라고, 창원이가 씨부렁거려서 우리를 웃기기도 했다.
카메라 아저씨들은 웅경이네 집도 들렀다. 웅경이네 아빠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래서 멋 모르는 애들은 웅경이네 아빠를 찍으러 온 줄 알기도 했다. 그렇지만 난 아저씨들이 뭘 찍으러 온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헛소리 말라며 그 녀석들 뺨을 한 대씩 때려주었다.
아니, 것도 그럴 것이, ‘세상이 이런 일이’에서 왜 웅경이네 아빠를 찍으러 온단 말인가. 카메라 아저씨들이 웅경이네 집에서 웅경이 아빠를 인터뷰 한 것은 웅경이 아빠가 이장님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이었다. 왜냐면 애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TV는 우리 아빠도 인터뷰했기 때문이다. TV에 우리 아빠 인터뷰도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아빠가 너무 머리를 많이 긁었고, 카메라 아저씨도 잘 모르겠다고 한 걸 봐서 아마 TV에는 안 나올 것 같다.
카메라 아저씨들은 바로 내가 개새끼라고 이름붙인 주인 없는 똥개를 촬영하러 왔다. 사실 개새끼는 원래 이름이 개새끼는 아니고, 원래는 이름도 있고 주인도 있었다. 그런데 주인이 바다에서 죽은 이후로 개새끼는 미쳐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계속 부두를 맴돌면서 이 배 저 배의 냄새를 맡고, 가끔은 부두 아래 바윗돌에서 파도도 맡고 아무튼 제정신인 개들은 하지 않을 짓을 했다. 아마 한 2년 쯤 됐을 거다.
그래, 2년 쯤 됐을 거다. 우리 아빠가 배를 타지 않게 된 것도 말이다. 2년 전인가 아빠가 탄 배도 사고가 났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아빠는 배를 안 타게 되었다. 선주한테 막 화도 내고 했기 때문에 배를 못 타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빠가 읍내에서 돈을 번다는 얘기는 이미 했다. 그건 웅경이 아빠랑 똑같다. 그렇지만 우리 아빠도 웅경이 아빠처럼 읍내에서 뭘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노가다를 한다. 노가다라고는 하지만 맨날 다른 일을 하는 모양이다. 근데 나도 잘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말 해준 건 아니지만 웅경이 아빠 꼬붕으로 있었던 건 분명하다. 아무튼 일이 많을 때는 며칠씩 집에 안 올 때도 있고 요새처럼 일이 없을 때는 집에 있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분명 일을 안 나갔는데도 집에 없었다. 사실 난 아빠가 날 때릴 때만 빼면 다 괜찮았기 때문에 별 신경은 안 썼다.
그리고 아빠는 개새끼랑도 조금 친했다.
사실 개새끼는 우리가 아무리 꼬여도 별 반응이 없었다. 우리가 개새끼를 꼬신 건 뭐 여자애들처럼 불쌍하다 쓰다듬어주고 싶다 이래서가 아니다. 사실 개새끼는 맨날 침도 흘리고 털도 지저분하고 어른들 말에는 미친개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별로 쓰다듬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우리는 발로 한 대 찰 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원이가 말한 대로 가게에서 우유를 사서 꼬여봤지만 먹으러 오기는커녕 도망가 버렸다. 결국 그래서 그 우유는 창원이네 뽀삐가 다 먹었다. 내가 뽀삐가 우유 먹는 걸 보고 먹고 설사나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뽀삐가 다음날 진짜 설사를 하는 바람에 창원이랑 거의 싸울 뻔했었다. 그치만 다행히 다음날인가 해서 뽀삐는 나았다.
아무튼 뽀삐가 중요한 건 아니고, 아빠가 개새끼를 쭈쭈쭈쭈 하고 부르면 개새끼는 아빠 주위로 살금살금 다가오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내가 아빠랑 똑같이 쭈쭈쭈쭈 하고 부를 때는 오지 않았다. 애들 말로는 아빠가 죽은 개새끼 주인의 친구라서 개새끼가 그걸 알아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아빠가 자기 친구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아빠는 아무도 친구가 없는지도 모른다. 아마 아빠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아빠한테 물어봤지만 아빠도 개새끼가 왜 아빠를 따르는지는 모른단다. 내가 끈질기게 묻자 아빠는 날 때리고 싶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난 속으로 어쩌면 아빠가 개새끼를 때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애들도 모르는 일이지만 나 역시 개새끼한테 몇 번 밥을 먹이려 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로, 개새끼를 때리려는 생각이 없었다. 다만 개새끼를 잘 먹여서 내 편으로 만들어 놓으면, 다음에 개새끼를 시켜 웅경이새끼를 물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다. 그렇지만 개새끼는 내가 주는 밥은 먹지 않았다. 다음날 가봤을 땐 파리만 잔뜩 밥에 붙어 있었다. 내가 진득하니 한 삼 일정도 밥을 주었지만 녀석은 한 번도 내 밥에 주둥이를 대지 않았다. 결국 할머니가 밥그릇 하나가 없어진 걸 눈치 채는 바람에 얼른 밥그릇을 씻어다가 도로 주방에 갔다 놔야 했다. 그 이후로는 밥을 준 적 없다.
어쩌면 SBS에서 개새끼를 찍으러 온 건 개새끼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이다. 나는 물론이고 동네 애들 중 개새끼가 밥을 먹는 걸 본 애는 아무도 없다. 누가 개새끼는 고양이를 잡아먹고 사는 게 틀림없다는 소리를 했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요새처럼 멸치를 쪄다 말리려고 늘여놓으면 동네에는 고양이들이 슬쩍슬쩍 나다녔다. 가끔 진짜로 멸치를 채가는 녀석도 있었다. 하지만 개새끼가 고양이를 먹고 살리는 없었다. 내가 안다. 슈퍼 앞에서 아저씨들이 우리한테 고양이를 잡으면 한 마리에 3천 원씩 준다고 해서, 우리가 일요일 하루 종일 고양이를 잡으러 다닌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고양이들은 진짜 빠르다. 게다가 골목으로 들어가면 고양이는 온통 숨을 데를 찾기 때문에 절대 잡을 수가 없다.
아무튼 카메라와 애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난 심호흡을 했다. 제발 웅경이 새끼만 없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얼른 뛰어가서 웅경이 새끼가 있는지 보고 오려 했다. 그런데 웅경이 새끼는커녕,
카메라 앞에는 아빠랑 애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개새끼를 붙들어 잡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난 어안이 벙벙해져 입을 딱 벌리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도 날 알아챘다. 그렇지만 아빠도 당황했는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아빠의 표정은 꼭 방학 전에 우리 담임이랑 상담을 하고 온 날 표정이랑 비슷했다.
사실 아빠가 아니면 개새끼를 잡을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개새끼가 말을 듣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빠밖에 없다. 그걸 방송국에서 어떻게 알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빠가 먼저 나서서 개새끼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갑자기 배신감이 들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라 아저씨가 무어라고 아빠에게 말을 시켰다. 아빠는 표정을 바꾸고 카메라에 대꾸를 하며 내 앞을 지나쳤다.
와그랑와그랑 떠드는 애새끼들 중에 창원이가 있었다. 난 얼른 창원이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야, 씨발, 왜 우리아빠가 저그에 있냐?”
“야, 야, 준희 니네 아빠 끝내준다야. 개새끼 잡느라고 119아저씨들아 왔닝데도 몬 잡은 걸 니네 아빠는 기냥 쭈쭈쭈쭈 하드니만 잡아버렸다야.”
“우리 아빠가 개새끼를 잡았다고? 우리 아빠가 모한다고 개새끼를 잡냐?”
“그건 나도 모르제. TV에서 개새끼 불쌍허다고 새주인 찾아준다더라.”
“아, 진짜? 누구 집에다 갖다 준다데?”
“글씨. 아마 웅경이 새끼 아니겄냐. 솔찍히 다른 집 갖다 주면 다 버리거나 잡어묵지 않겄어.”
창원이 말에 재빨리 카메라가 멀어져가는 골목길을 바라보았다. 정말 웅경이네 집쪽으로 가고 있었다. 어쩌면 웅경이 새끼가 나오지 않은 것도 지네 집으로다가 카메라가 올 줄 알았기 때문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흥미가 식었다. 집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이번에는 창원이가 옷깃을 잡아끌었다.
“야, 준희, 너 집에 가게?”
“웅경이 새끼 재수 없어서 그냥 갈란다.”
“그래두 니네 아빠 TV 나오는디·······.”
“나오면 웅경이네 아부지가 나오겄지 우리 아빠가 나오겄냐. 갈란다.”
하며 창원이 손을 뿌리쳤다.
아까 나를 바라보던 아빠 표정이 자꾸 떠올랐다.
신발을 바라봤다. 밑창이 덜렁거리는 내 신발,
사실 일주일 전, 그러니까 방학 전의 일이었다. 읍내에서 일마치고 온 아빠가 웬일로 신발을 줬다. 하얀색, 운동화였다. 너 신발 덜렁거리는 거 꼴 보기 싫었다며 방구석에 신발을 내던지고서는 아빠는 이불을 덮었다. 아빠가 오자마자 이불을 덮어쓰고 꿈지럭거리고 있던 나는 재빨리 신발을 낚아챘다. 하얀색, 운동화였다. 상표가 떼어져 있는 게 좀 찜찜했지만,
상관없었다. 다음날 좋아라고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갔다. 눈치 채야 했다. 웅경이새끼 발에 작다고 버린 신발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아빠한테 따지자 아빠는 그냥, 아는 사장님이 줬다고만 했다. 그 사장님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웅경이 아빠인 게 틀림없었다. 사실,
상관없었다. 웅경이 새끼 신발을 신는 건 상관없었는데 그 새끼가 자꾸 날 보고 거지새끼라고 놀려대는 게 싫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뭐 상관없었다. 왜냐면 내 전 신발은 진짜 거지 새끼 신발처럼 너무 덜렁거렸기 때문이었고 일주일만 참으면 방학이라 그 새끼 볼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참았어야 했지만,
어찌어찌하다가 웅경이를 때려주게 되었다. 많이 때린 건 아니지만 웅경이 새끼는 그래도 꽤 아팠을 거다. 결국 담임선생님이 우리를 교무실로 불렀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다시 교실에 와서 담임선생님이 형편이 어려운 친구를, 어쩌구 하길래 냅다 그 자리에서 신발을 웅경이 새끼한테 집어던지고 맨발로 집에 와버렸다. 그리고 쓰레기통에서 다시 신발을 찾아 신었다. 밑창이 완전히 떨어져 무슨 슬리퍼처럼 덜그럭 거렸지만 상관없었다.
사실 상관없었다. 애들 앞에서 우리 집 가난하다고 말하는 거쯤은. 사실 우리 집 못사는 거 모르는 애는 우리 반에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 담임선생님이 날 거지새끼로 생각한다는 게,
상관있었다. 다음날은 어쩐지 가기 싫어서 학교를 안 갔다. 학교 마칠 때 쯤 되어서 집에 들어왔는데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던지 할머니가 또 못생긴 얼굴로 날 다그쳤다. 상관없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아빠한테도 말했다. 그건 상관있었다. 맞았다. 아팠다. 상관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학교에 다녀온 아빠에게 두들겨 맞을 줄 알았는데,
아빠는 날 때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꼭 방금 날 봤을 때랑 똑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다시 무어라도 집어던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담임선생님과 달리 아빠는 날 때릴 게 분명했으므로 참았다. 그날 밤은 무척 어색하고 조용하고 길었다. 아마 주인집 할머니만 그날 밤을 좋아했을 것이다.
집에 들어와 조용히 우리 방에 들어갔다. 곧 주인집 할머니가 저녁을 먹으라고 성화였지만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하고 나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멸치찌개 냄새가 진동을 했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지, 먹기 싫음 먹지 말라며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배가 고팠지만 왠지 밥을 먹으면 무언가 배신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계속 아까 아빠 표정을 떠올렸다. 그 생각을 하면 어쩐지 배고픈 걸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자 배가 고픈 것도 잦아들었다.
개새끼와 웅경이 새끼 생각도 했다. 웅경이 새끼가 개새끼인 건 사실이지만, 개새끼와 웅경이 새끼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러니까 개새끼는,
진짜 말도 못하게 더럽고 침도 흘리고 못생기고 말랐고 털도 뻣뻣하고 지저분한데다가 냄새는 맡아본 적 없지만 분명히 더러움에도 개새끼인 것이고,
웅경이 새끼는 얼굴도 하얗고 머리도 길고 축구도 좀 잘하고 옷도 비싼 것만 입고 신발도 좋은 것 신지만 나한테 두들겨 맞는 재수 없는 개새끼인 것이다.
그러니까 앞의 개새끼와 뒤의 개새끼는.
다른 것 같다. 아니, 다르다. 다르고말고.
개새끼는 그러니까 웅경이 개가 될 수 없었다. 웅경이 것이 될 수 없다. 그랬다.
계속 생각을 했다. 웅경이네 아빠는 개를 안 먹는다. 아니, 개를 먹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른 집 아빠들과 다르게 자기 집 개를 먹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개새끼도 웅경이네 집에서 죽을 것이다. 셰퍼드처럼 좋은 사료를 먹고 샴푸로도 목욕을 하고 개집에서 잘 것이다. 이제 파도에 맞는 일도 없고 소금기 때문에 털이 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개새끼는 배부르고 등 따시게 잘 살다가 늙어죽을 것이었다.
그건 개새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새끼는 뽀삐도 아니고, 웅경이네 셰퍼드도 아니었다.
개새끼는 개새끼였다. 개새끼가 샴푸로 씻고 개밥을 먹고 개집에서 자면 그건 개새끼가 아니다. 개새끼는 개새끼여야 하고, 개새끼가 개새끼여야 하는데, 개새끼가 개새끼니까 SBS ‘TV특종 세상이 이런 일이’에서 취재하러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개새끼가 아무것도 안 먹고 집도 없이 자고 돌아다니고 한 것들이 웅경이네 들어가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개새끼라 해도 그렇다.
개새끼는 개집에서 늙어죽는 게 아니라 부두에서 주인을 기다리다 죽어야 했다. 그게 개새끼가 원하는 것이었다. 개새끼가 뽀비도 아니고 셰퍼드도 아닌 다름 아닌 개새끼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개새끼가 진짜 개새끼가 아니라면, 진작에 우리가 주는 우유도 내가 주는 밥도 먹었을 것이다. 개새끼는 누구 말도 듣지 않았다. 그래서 개새끼였다.
물론 아빠 말은 쪼금 들었다. 어쨌거나 개새끼는 개새끼였고, 그건 나도 알고 아빠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개새끼를 아빠랑 웅경이랑 SBS가 망쳐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난.
까지 생각하고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언제 잠이 들었던 건진 모르지만. 그리고 옆에 있는 아빠를 흘겨보았다. 내가 같이 덮고 있던 이불을 박차서 그런지 옆에 잠들어 있었던 아빠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화들짝 놀랬다. 그렇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아빠가 뭐라고 옆에서 막 했지만 난 재빨리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아빠가 소리를 질렀다. 신발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섰다. 뒤에서 우당탕퉁탕하고 아빠도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잠에서 깨지 않기를 바랐지만,
상관없었다. 아마 지금은 아빠가 있으니까 아빠가 내 대신 할머니한테 혼날 것이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아빠는 날 죽어라고 때릴 게 분명했다. 게다가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알면 더 때릴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죽어서도 편히 땅에 묻히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그것도 지금 아빠한테 잡히지 않은 뒤의 일이었다.
뛰었다. 뒤에서 아빠가 따라 달려오는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혹시 몰라서 골목을 두어 번 더 꺾었다. 개들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웅웅, 골목을 울렸다. 잇달아 들리는 욕설소리를 피하면서 웅경이네 집을 향해 달렸다. 웅경이 새끼네 집은,
컴컴하고 커다랗고 조용했다. 숨이 찼다. 지금이 몇 시쯤 될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담을 넘기 시작했다. 웅경이네 집에 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3학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웅경이네 생일파티에 반 아이들이 모두 초대되었지만 난 안 갔다. 그래서 이번이 처음으로 웅경이네 집에 들어가는,
끙차, 쿵. 하고 마당에 떨어졌다. 그 순간 웅경이네 셰퍼드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순간,
셰퍼드랑 눈이 마주쳤다. 셰퍼드는 나를 보고 고개를 휘젓고는 다시 제 집으로 슬쩍 기어들어갔다. 그걸 보고서야 웅경이가 접때 지네 집 셰퍼드가 도둑을 세 명인가를 잡았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도둑은 무슨,
하고 난 마당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셰퍼드가 있는 쪽이 아니라, 차가 있는 창고 쪽에서 개새끼를 보았다. 개새끼는 초록색 목줄이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잠을 자지 않은 채로 엎드려 있었다. 숨을 쉬고 있어 배가 불룩불룩 했다. 난 조심스럽게 개새끼한테 다가갔다. 개새끼야, 개새끼야, 물지 마라, 이 개새끼야, 하면서.
개새끼를 쓰다듬었다. 개새끼는 처음으로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아마 오늘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줄을 끊어줄까, 했지만 가위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냈다. 그래서 한참 동안 끙끙거리고,
매듭을 풀어야 했다. 목줄을 만지는 순간 개새끼는 일어나서 내가 하는 짓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 개새끼도 나처럼 흥분해있었다. 난 개새끼를 탈출시켜야겠다는 생각에 골몰해 있었고 마침내,
매듭을 풀었다. 그렇지만 개새끼를 끌고 다시 담장을 넘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개새끼의 목줄을 잡고 끌면서 웅경이네 대문을 살짝 밀어보았다. 다행히 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하나 둘 셋,
하면서 대문을 활짝 열고 달음질을 쳤다. 뒤에서 셰퍼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셰퍼드는 목줄이 있었고,
나랑 개새끼는 목줄이 없었다. 어디까지 달음박질을 쳤는지 모르겠다. 중간에 두 번 정도 목줄을 놓칠 뻔 했다. 맨발이었기 때문에 발바닥이 아팠다. 그리고,
파도소리가 들렸다. 부두,
에 다다랐을 때에는 발바닥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유리조각에 찔린 발바닥을 보려 고개를 숙이는 순간,
개새끼가 달아나버렸다. 어어, 하는 순간이었다. 내 손을 벗어난 개새끼는 일자로 곧장 달려 나갔다. 그러더니 밤에 물들어버린 바다에
풍덩 빠졌다. 나도 부두로 달려갔지만 사실 좀 무서웠다. 그래서 대신 소리 질렀다. 고함 지르고 악을 썼다. 발을 동동 구르며,
“개새끼야아아!”
“잘가라, 개새끼야!”
“응, 네 주인 찾아 가라, 개새끼야!”
“뒈져라. 개새끼야!”
했다. 어쩐지 욕설에 울음이 조금 섞였다. 그래서 마지막엔 개새끼야, 라는 말 밖에는 못했다. 바다 위로 들썩 들썩 보이던 개새끼도 조금씩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순간 겁이 났다. 정말, 개새끼가 죽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개새끼를 구하려고 바다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무서웠다. 밤바다에는 귀신이 득실득실하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바다가 온통 귀신투성이로 보였다. 바다가 개새끼를 잡아먹은 것 같았다. 주인도 잡아먹고 개새끼도 잡아먹고 이제 나까지 잡아먹으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울음이 터졌다. 개새끼야, 미안해를 말하고 싶었지만 울음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나왔다. 그래도 밤바다를 향해 미안해미안해, 하며 계속 외쳤다.
그때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난 계속 계속 울었다. 차라리 누가 날 잡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다가온 누군가가 내 머리를 만졌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 손은 나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무어라 발버둥도 치지 못한 채 그것에게 안겼다.
아빠였다. 아빠는 말없이 내 머리에 왼손을 얹은 채, 오른손으로 날 끌어안았다. 그러고 한참을 있었다. 내 울음이 멎을 때 까지. 내가 울음을 멈추고 나자 아빠가 제 얼굴을 내게 가만히 댔다.
“아빠도 미안하다.”
아빠가 속삭였다. 아빠의 뺨에 잔뜩 솟은 수염이 거실렸지만 꾹 참았다. 아빠가 미안하다는 말이 아빠가 비벼대는 수염 때문인지 개새끼를 잡아다가 웅경이네에 갖다 준 것 때문인지 아니면 신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처음 듣는 그 말이 좋았다. 편했다. 그래서 나도 엉거주춤 아빠를 안았다. 눈을 감았다.
아빠는 나를 때릴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를 때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