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소설

빅 레드 몬스터

브라이언의 크고 붉은 괴물을 위하여

by 엽서시

빅 레드 몬스터, 케인의 답장은 너무나도 늦게 도착했다. 내가 브라이언의 다락방을 치우고 있을 때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브라이언에게 온 편지란다."

나는 어머니의 주름진 눈이 보기싫어 편지를 급하게 채어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편지봉투에는 수없이 많은 소인이 찍혀있었다. 몇 번이고 농장을 탈출노예 장고의 등처럼.

너덜너덜한 편지 봉투만큼이나, 포스터와 온갖 사진들로 너덜너덜한 다락방에 앉아 나는 편지를 뜯어보았다.

편지는 케인이 보낸 것이었다. 빅 레드 몬스터, 케인.

친애하는 브라이언에게.

너의 형 다니엘에게 편지 받았다. 나의 스케줄 때문에 너를 직접 찾아가지 못한 것을 용서하렴. 나의 승리를 바란다니 고맙구나. 너와 같은 진정한 팬이 있기에 레슬러들은 레슬매니아XXX에서 자신의 기량을 뽐낼 수 있었단다. 안타깝게도 나는 레슬매니아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다음주 경기에서 너를 생각하며 경기에 임했단다. 나의 싸움에 대해 네 형이 전해주었으리라 믿는다. 나는 이미 네가 진정한 전사라고 생각한단다. 다니엘을 통해 다시 연락하마.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을 다시 사과한다.

씹할. 코웃음이 나왔다. 가는 펜으로 쓴 글씨는 결코 악필이라고 할 수 없었다. 레술러는 커녕, 차라리 늘 코듀로이 바지만 입고 다니는 그 대머리 상담 선생이 썼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만큼.

눈시울이 뜨거워진 게 느껴졌다. 가엾은 브라이언. 케인이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알았다면. 그야말로 무덤에서 일어날 일인데!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빅 레드 몬스터', 케인은 프로레슬러다. 6.7피트의 키, 324파운드의 몸무게. 그야말로 몬스터다.

어쩌면 당신은 케인, 하면 붉은 가면을 쓴 벙어리 괴물의 모습을 떠올릴지 모른다. 브라이언의 말에 따르면 그 때의 케인은 무자비한 학살자나 다름없었다.선역이건, 악역이건 할 것 없이 케인의 손아귀에 붙들린 레슬러들은 자신의 체중이 케인의 키 높이에서 떨어지는 공포를 맛봐야 했다.

그공포를 등짝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고스란히 척추로 받아들이느냐는 그날 케인의 마음먹기에 따라 달려있었다.

그날 케인이 '초크슬램'으로 상대를 끝내기로 마음먹었다면, 케인은 상대 레슬러의 목줄기를 들어 그대로 내리찍으면 그만이다. 만일 그날 집안에 우울한 일이라도 있어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면 상대를 거꾸로 들었다가, 그대로 바닥에 비석처럼 꽂아버리면 그만이다. 목뼈가 박살나 뻗어있는 상대에게,

1,2, 3!

핀폴 승리!

만일 2000년대 초반이었다면, 케인이 승리를 거두는 것은 말 그대로 한 입에 케잌을 베어무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케인은 이기지 못했다. 다른 젊고 빠른 레슬러들이 링 이곳 저곳을 빠르게 오가며 케인에게 공격을 가한다. 정신없이 얻어 터지던 케인이 비겁한 공격, 이를테면 철제의자로 상대의 등을 후려갈긴다거나 하며 잠깐 승기를 잡지만, 젊은 레슬러들은 다시 일어난다. 케인의 초크슬램이 터질리없다. 어이없게도 그 거대한 덩치는 링 위에 쓰러지고 만다.

1,2, 3!

패배한 케인은 식식 거리며 링을 빠져나가고, 내 동생 브라이언은 팝콘을 집어던진다.

브라이언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 브라이언은 케인의 광신도였다. 그야말로, 케인에 미쳐있었다.

간혹 케인이 상대 레슬러를 인형처럼 들어서 내다꽂을 때마다, 브라이언은 그 가냘픈 상체를 흔들며 좋아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경기가 케인의 승리로 이어지는 법은 없었다.

1, 2, 3!

땡땡땡!

아, 오늘도 케인의 패배입니다, 캐스터들의 말과 함께 브라이언도 링 가운데의 케인처럼 대자로 뻗었다. 다른 경기는 볼 필요도 없었다. 브라이언의 말에 따르면, 그건 남자가 아닌 배우들의 경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한번은 브라이언이 워낙 흥분하다가 팔에 꽂힌 바늘이 빠진 적도 있었는데, 브라이언은 경기가 마칠 때까지는 관을 꽂을 수 없다고 절규하며 간호사를 요리조리 피하기도 했다. 물론 결국 덩치 큰 간호사에게 붙들려 굴욕의 태그아웃을 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브라이언의 소망은 하나였다. 케인의 승리를 라이브로 보는 것. 케인의 승리에 대한 브라이언의 집착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어쩌면 케인 그 자신보다도 케인의 승리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덩달아 브라이언의 병세도 심해졌다. 숙모와 친척들이 케인의 침대를 둘러싸고 기도인지 뭐인지를 하고있을 때, 브라이언은 소리를 죽인 TV화면 속 케인의 움직임을 좇았다. 어머니가 병실 밖에서 숨죽여 울 때 브라이언은 이어폰으로 들리는 케인의 테마곡, 'Veil of fire'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제 당신도 내가 케인에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를 짐작하리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난 내 의지대로 프로레슬링을 시청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이다. 케인일지 뭐일지 하는 것도 브라이언이 떠들어대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브라이언의 형이었고, 브라이언은 마지막 18살 생일파티마저 병실에서 보내야 했다. 이전 생일들은 잠깐 몇 시간이라도 집에서 저녁을 먹었었는데.
브라이언에게 아직도 다락방이 그대로 깨끗하다는걸 보여주기위해, 그 녀석의 생일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이 빌어먹을 다락방을 구석구석 치우곤 했다.

브라이언은 이 다락방을 자기 심장처럼 소중히 생각했다. 아마도 그것은 어느정도 어머니의 영향이 있지않았나싶다. 숙모들과 마찬가지로 열성적인 교회신자인 어머니는 브라이언이 '사탄 복장을 하고 사탄처럼 욕설을 내뱉는' 레슬러들에게 빠져있다는 사실을 영 탐탁치 않아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마치 시나이산을 내려와 우상을 불태우는 모세처럼 정기적으로 브라이언이 모아놓은 포스터나 피규어 같은 것들을 모아다 버리곤 했다. 이에 대한 브라이언의 반응도 가히 볼만했었다. 그런 날이면 집안은 TLC매치(역자:프로레슬링에서 테이블과 사다리, 의자를 사용한 공격이 허용되는 변칙경기)를 치룬 것처럼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브라이언은 어머니에게 자신이 입원해 있는 동안, 어머니가 절대로 이 방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을 다짐받은 것이다. 그리고 브라이언은 생일이나 추수감사절같은 날마다 집에 와 그 약속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니 브라이언 자신도 병실에서 치러진 18살의 생일파티가 갖는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동생은 그런 일에 우울한 모습을 보이는 녀석이 아니었다. 녀석은 어느 때보다 더욱 그악스럽고 떠들썩하게 행패를 부렸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녀석의 입술이 파랗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파티가 끝나고 내가 피자박스를 치우고 있는동안 브라이언은 침대에 누워 혼자 열심히 지껄이고 있었다. 형, 조지는 대학에 갈 건가봐. 티미는 고등학교만 마치고 군대에 갈거래.

그래.너도 누워있지만 말고 일어나서 군대에 가렴. 가서 병신같은 새끼들 엉덩이에 총이나 갈겨줘. 퉁명스러운 내 대답에 브라이언은 낄낄대며 웃었다. 그러더니,

"형,나 소원이 있어."

이따위말을 지껄였다. 뭐? 무슨 소원인데. 그러니까 형,

"나 케인이 이기는 걸 보고싶어."

씹할,심장에 금이 간다고 표현하던가. 툭 친 쐐기가 나무를 쪼개는 것처럼 내 심장도 쪼개지는 것 같았다.

같이 병실에 있던 친구가 17살에 입대해서 총을 들고 뛰어다닐 때, 18살을 먹은 내 동생은 침대에 누워 마지막으로 자신의 빅 레드 몬스터가 이기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케인을 이기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건 결단코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Make a wish'에 편지를 쓸 수도 없었다. 내 동생은 그 단체가 바라는 처럼 코찔찔이 애들은 아니니까.

결국 나는 케인에게 편지를 썼다.

동생이 당신의 팬인데, 내 동생은 지금 죽을 병에 걸려있다, 아마 이번 열여덟 살 생일이 마지막인지도 모른다, 이런 내 동생의 소원은 당신의 승리를 보는 것이다. 레슬매니아(역자: 프로레슬링에서 1년에 한 번 있는 가장 큰 경기) 입장석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우승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 한 번, 그저 단 한 번만이라도 당신이 이기면 된다,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케인의 연락은 없었다. 나도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케인은 레슬러지, 환자에게 편지를 써주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뒤로 브라이언은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내 동생의 최후를 묘사하지는 않다. 의사는 내 동생이 겨울을 견디기 힘들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내 동생은 그 겨울을 넘겼고, 올해 6월까지 견뎠다. 마지막 세 달은 시력을 잃은 상태였고 거의 의식도 없었다. 하지만 동생은 끝까지 잘 싸워주었다.

동생은 죽었다. 그리고 동생이 바랐던 케인도 승리를 거두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동생이 죽기 전에 그토록 보기 원했던, 2014년 4월 6일 일요일, 루이지에나 뉴올리언스 메르세데스 벤츠 슈퍼돔에서 열린 레슬매니아XXX의 WWE 월드 헤비급 챔피언 매치에서, '빅 레드 몬스터' 케인은 경기에 나오지도 못했다.

그리고 나는 경기를 보지 않았음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케인에게서 화가 왔던 것이다. 나는 통화가 이어지고 나서도 한참동안 내가 '빅 레드몬스터' 케인과 통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브라이언이 이 사실을 들을 수 있다면 병실을 박차고 나올텐데.

케인은 브라이언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는, 물론 바뀔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시나리오에 자신의 승리가 없다는 사실을 담담히 전했다.

브라이언이이 사실을 안다면 곧바로 쓰러지겠지. 나는 뻔뻔하게 답할 수도 있었다. 당신이 이기건 지건 상관없어요. 어차피 브라이언은 시력을 잃어 당신의 경기를 볼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아마도 동생이 궁금해질문을 던졌다.

이기지 못하죠? 당신이 최고라는데.

수화기 속 케인은 잠시 침묵했다.

승리할 자격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승리하는 것은 아니란다. 나는 승리가 아닌 경기에 의미를 두고 있다. 브라이언도 그 경기의 가치를 알거라고 믿는다.

무례하게도(브라이언이 알았다면 무덤에서 뛰쳐나와 나를 죽이려 들겠지만) 나는 케인의 말을 끊었다.

그렇지만 그 '가치'가 내 동생의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네요.

케인은 다시 침묵했다.

"모든 사람이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레슬러도, 다른 사람들과 같단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싸움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단다."

이번에는 내가 침묵했다.

"그렇지만 레슬러는 승패가 정해진 싸움일지라도 포기하지 않는단다. 결과는 정해져 있더라도 그 과정은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 나는 네가, 그 과정을 브라이언에게 꼭 전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가 미안하다, 라고 말했던가. 전화를 어떻게 끊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내가 예의바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브라이언은 죽었다. 편지봉투를 바라보았다. 날짜를 보니 케인은 아마 레슬매니아가 끝나고 이 편지를 보낸 듯 했다.

리모컨을 쥐었다. 브라이언은 항상 TV의 소리를 죽이고 시청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합이 이어질수록 볼륨은 점점 올라갔고, 결국 화가 난 어머니가 다락방으로 쫓아올만큼 큰 볼륨으로 시합을 보곤 했다.

전원을 누른 나는 움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브라이언. 볼륨을 줄이고 갔어야지.

TV에서 레슬링 시합이 한창이었다. 아마 지난 경기의 재방송이었을 것이다. 잠시 후 빅 레드 몬스터, 케인의 시합이 있을거라는 캐스터의 흥분한 목소리에도 나는 최대한 무표정하게, TV를 응시했다.

레드 몬스터. 오, 엿이나 처드시지. 나는 리모컨을 들었다. 어차피 질 싸움을 뭣하러 본단 말인가.
그 순간 인이 등장했다. 말 그대로 악당의 등장이었다. 케아은 악당처럼 싸우기 시작했다. 크로스라인, 이어지는 해머링. 선역을 맡은 레슬러들의 뒤를 치고, 반칙을 했다. 필살기를 쓰려 했지만 정의는 그에게 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마침내 케인은 반격을 맞더니 떡이기 시작했다. 반격이 이어졌다.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지더니, 오, 맙소사, 다시 이어졌다.

"케인,믿을 수가 없습니다. 방금 그 킥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있어요!"

캐스터는 흥분해 있었다. 화면을 보았다. 케인은 이미 수 차례의 큰 기술에 당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 케인은 거구를 일으키고 있었다. 상대 레슬러의 얼굴에도 순수한 놀라움이 떠올라 있었다.

"아,믿지 못하겠군요. 케인, 웃고 있어요. 상대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는 의미 같습니다. 아, 케인, 웃고 있습니다. 맙소사. 악마와 계약이라도 한, 아, 또 다시 넘어지지만, 케인, 다시 일어납니다. 이미 한계를 넘었어요.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지금 케인이 아닌, 악마를 보고 있는 기분이겠군요!"

나는 리모컨을 내려 놓았다. 다시 쏟아지는 상대의 공격 속에서 빅 레드 몬스터, 절대 이기지 못하는 레슬러, 케인. 그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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