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소설

타타르

칸과 칸을 이룬 사람들을 위하여

by 엽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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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카락

타타르는 행진한다.

몽골은 행군한다.

눈이 무겁다. 눈과 비 그 사이의 어중한 간격만큼의 무게다. 그러나 이 무게는 타타르의 무게다. 몽골의 날씨다. 길은 어둡고 굴곡지고 질척이고 미끄럽다. 십장 이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말에서 내렸다. 말의 털이 무겁다. 말은 온 몸으로 숨을 쉬는 것처럼 김을 뿜어낸다. 행렬은 말과 사람이 뿜어낸 희뿌연 김으로 둘러 싸여있다.

행렬의 어딘가에 칸이 있을 것이다. 모전으로 만든 장막 아래 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칸의 머리 위에 어떤 장막이 비를 가리던, 칸의 머리카락은 이 비에 젖고 있다. 칸이 이 행렬, 그 자체이므로. 칸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이 행렬이므로. 칸은 아무 명령도 내리지 않는다. 아무런 지휘도 아무런 연설도 하지 않는다. 칸은 생각하고 움직일 뿐이다. 그러면 타타르는, 몽골은, 칸이 되어 움직인다.

흙과 물이, 지친 발굽과 무거운 신발이 튄다, 끌린다. 푸륵거리는 말의 주둥이에 침이 늘어진다. 거품이 섞인 침이 떨어진다. 곱은 손으로 말의 등에 쌓인 젖은 눈을 턴다. 칸의 군사 한 명에게는 말이 세 마리가 필요하다. 삶은 쌀과 따뜻한 난로는 필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말은 필요하다. 말은 타타르와 몽골의 혼이며 곧 칸의 의지다.

칸은 누구도 보지 못한 땅과 도시와 성과 마을로 자신의 몸을 이끌고 움직인다. 그의 눈이 성을 보고 그의 귀가 도시를 듣고 그의 코가 새로운 흙의 냄새를 맡으면 그 뿐이다. 그 입이 열리기 전에 그의 몸뚱이가, 그의 팔이, 그의 머리카락이 움직여 그 모든 것을 다시 칸의 것으로 만든다. 말이 달리는 땅 만큼, 그의 의지는 실현된다.

지금 칸의 의지는 강하고 억세다. 바람이 용오름치며 터져 나왔다. 인내와 자비의 여신의 눈에 흙이 던져졌다. 칸의 몸 안에 분노와 진노와 격노가 피워낸 불은 칸의 게르마저 태워버릴 정도로 타올랐다. 그 불을 끌 수 있는 것은 술탄의 피 뿐이다.

호라즘. 저주받은 지평선 끝의 나라. 향락과 타락으로 나락진 그늘에 술탄이 뱀의 혀를 감추려고 애쓰고 있다. 칸의 혀를 자처하는 사자의 얼굴을 짓뭉갠 자. 칸의 자비를 걷어찬 자. 그를 보는 칸의 물은 말라붙었다. 칸의 신발이 그 대가리를 짓밟아버릴 것이다. 오오, 칸이시여. 우리를 이끄소서. 그 저주받은 나라를 멸망시키도록 자신을 이끄소서.

녹은 눈에 젖은 평원이 끝나면 사막이 나타날 것이다.

호라즘이 지옥의 입구에 발을 디민다.

타타르는 행군하는 도다.

몽골은 행진하는 도다.

2. 손가락

칸의 분노는 지명하셨다. 손바닥에서 흩어진 물이 아래로 떨어지고, 마른 가지 끝의 불이 위로 솟구치는 것처럼.

자비하신 칸께서는 그 자신의 자비를 호라즘 땅의 무슬 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대상에게 자신의 의지를 맡기셨다. 450명의 상인과 종자들은 그 자비의 일부가 되어 흰 낙타의 모피, 한족의 비단, 한족의 은괴, 남쪽 땅의 비취 등을 모아 호라즘 땅으로 떠났다. 우두머리가 된 힌두인은 칸의 자비를, 관대함으로 술탄의 머리에서 악한 생각을 뿜어내는 종기를 지우려는, 담고 사막으로 향했다.

그러나 대상들이 호라즘 땅에 들어서는 순간, 술탄의 오만한 총독이 칸의 물건을 뺏고 칸의 사람들을 죽였다. 그럼으로써 총독은 단지를 깨뜨렸다. 그러나 술탄은 그 총독을 벌하지 않았다. 우유부단한 그는 어머니의 말에 빠져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였다. 단지에 담겨 있던 칸의 분노는 깨졌다. 이제 그 분노는 온 땅의 끝으로 뻗어나가리라. 오만한 신의 이름 아래서 자만을 행하던 자들의 거만함은 땅에 추락하리라. 그는 짐작하지 못하리라. 페르시아의 해가 뜨는 곳에서 페르시아의 해가 지는 곳까지 호라즘과 셀주크, 모든 사라센인들과 투르크인들은 천년간 칸의 이름을 감히 혀에 담지 못하리라. 오만한 총독이여, 가엾은 총독이여.

그러나 자비로우신 칸은 자신의 분노를 힘껏 휘두르기보다는 그 단지를 더욱 끌어안기를 원하셨다. 술탄의 머릿속에 담긴 악한 종기를 직접 끄집어내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칸께서는 술탄에게 다시 자신의 혀를 보내 그 총독을 벌할 것을 말하셨다.

그렇지만 인간은 오만하도다. 어리석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주제에 영원한 신의 이름을 끌어 자신을 파멸시키는 구나. 술탄의 칼이 칸의 사람들의 목을 베었다. 술탄의 송곳과 작은 끌이 칸의 혀를 후벼 팠다. 칸은 초원을 가로질러 온 눈과 코와 귀와 혀를 잃은 자신의 사람을 직접 보았다.

칸의 단지는 깨졌다.

칸께서는 저주받은 페르시아 땅에 전쟁을 선포하셨다.

어리석은 술탄의 도시들이 성벽에 쇠뇌와 포를 늘어놓는구나. 망루 꼭대기 마다 마다 파수꾼들이 동쪽에 이는 먼지바람 한 줄기에 떠는구나. 저주받은 호라즘의 땅에서 병사의 칼과 파수꾼의 눈을 믿고 자신의 도시에 누워 즐기는 자는 술탄의 썩은 몸뚱이 하나뿐이로구나. 그러나 칸은 사막을 건널 것이다. 파수꾼이 보고 병사들이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사막은 칸의 발을 들어 어리석은 술탄의 머리 앞에 그를 내려놓을 것이다.

칸이여, 우리를 이끄소서. 그대가 원한다면 우리의 말은 하늘을 달려 바다에 뛰어드나이다.

3. 머리카락

우리는 칸의 머리카락이다. 칸의 손톱이다. 칸의 솜털이다.

우리의 죽음은 칸에게 어떤 슬픔도 끼치지 않아야 한다. 칸의 앞에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더욱 중요한 사람들이 칸의 손가락이 되고 칸의 팔뚝이 되고 칸의 어깨가 된다. 또는 칸의 눈이 되어 앞날을 지켜보거나 칸의 혀가 되어 칸의 지혜를 내뱉는다. 그들을 잃는 다면 칸은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검은 옷을 두른 사막의 사람들은 우리가 사막에 있는 동안 칸의 눈이 되어 길을 보여줄 것을 약속했다. 그들의 주술사는 술탄의 목에서 조여 나오는 피로 칸의 분노가 가라앉을 것임을 예언했다. 그들이 혹여 배신하는 일이 없도록 그들의 족장과 칸이 피를 섞어 마셔 맹세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이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사막 위에서 우리의 말이 걸을 수 있는 길을 보여 줄 것이라고 했다. 낙타를 탄 그들은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들의 하늘은 그들에게 그들이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가 다시 사람이 되는 것을 허락한 듯 보였다.

사막의 낮이면 병사들은 말을 돌보는 데 모든 시간을 보냈다. 말들을 위해 모전으로 그늘을 드리웠다. 사막의 밤에는 움직였다. 사막의 입김은 아주 거칠어 밤이 되면 가죽옷을 여며야 할 정도였다. 사막의 사람들은 낙타를 타고 말없이 길을 안내했다. 낙타의 발이 딛는 곳에는 땅이 없었지만 말의 발굽이 딛는 곳에는 땅이 있었다.

칸이 이끄는 곳에는 길이 있다. 병사들은 말 위에서 단단하게 말린 고기를 씹고 굳은 양젖을 씹는다. 칼로 베어낸 수태차를 끓여 먹는다. 마른 우유를 물에 푼다. 사막은 길다.

그만큼 술탄이 치러야 할 대가는 크도다.

우리는 칸의 머리카락이다. 칸의 손톱이다. 칸의 솜털이다.

4. 눈

호라즘의 술탄이 투르코만 출신의 야만인이라는 사실은 모든 무슬림들이 알고 있었다. 무슬림들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은 술탄께서도 알고 계셨다. 무슬림들조차 호라즘의 술탄을 증오하지만 그들의 오만한 신은 그들의 형제를 치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칸께 칸의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줄 것을 바랐다. 벼락 끝에 달린 마치 같은 칸의 힘이 그들 형제의 나약하고 조악한 껍질을 산산이 조각내기를 바랐다.

무슬림의 우두머리인 칼리프는 자신의 벙어리 노예의 머리에 비밀스런 사실들을 적어 칸에게 보냈다. 칸께서는 노예의 머리에 적힌 진실을 아시고는 혹 호라즘의 술탄이 그 진실을 아는 일이 없도록 하셨다. 수많은 벙어리 노예들의 머리가 칸에게 칼리프의 목소리를 전하고 초원으로 던져졌다.

호라즘은 강한 나라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글을 읽고 쓰며 모든 분야의 학문에 통달해있었다. 그들이 쌓아올린 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웅대하고 장대하며 화려하고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탑에서 떨어지는 아픔은 그만큼 크리라. 그들의 견고한 갑옷이 찢어지고 벌어진 상처는 다시는 아물지 못하리라.

칸께서는 그 도시들을 하나하나 깨부수다보면 막상 부하라에 도달하면 자신의 뜻이 어느새 지쳐있을 것을 걱정하였다. 적의 머리를 벨 때는 칼이 가장 날카로울 때여야 했다. 칸께서는 지리한 소모전 없이 술탄의 눈앞에 나타나기를 바라셨다. 칸의 비밀스런 뜻이 칸의 땅 끝까지 전해지기도 전에 수많은 계책들이 칸에게 바쳐졌다. 그리고 칸은 사막의 길을 택하셨다. 칸의 분노처럼 뜨거운 낮과 칸의 의지처럼 냉철한 밤사이에서 칸의 병사들은 날카롭게 벼리어질 것이다.

5. 머리카락

타타르 전사는 피가 없다.

이미 그들이 흘려야 할 피는 분노로 끓어올라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하늘을 뒤덮고 재앙처럼 몰려있는 검은 구름들이 그들의 피다. 타타르 전사에게는 억센 근육과 성긴 뼈만이 존재한다. 적의 목을 내려치기위한 모든 것을 제외한 것은 없다.

몽골은 그래서 죽지 않는다. 몽골의 피는 하늘을 거슬러 초원으로 돌아간다. 마른 가족의 손에 후두둑 떨어지는 피는 그들이 살아서 쥐여주지 못하는 동전이다. 하늘에서 짊어져 내려오는 동전이다. 그들이 가져오는 부귀와 영화가 우리의 땅을 적신다.

우리의 시체는 수레에 실을 필요가 없다. 내버려두시오, 형제여. 그대의 손에 내 더러운 살이 묻는 것이 싫다오. 천으로 코를 막고 돌아가시오. 역병이 무섭거들랑.

어둠을 짓누르며 칸의 몸이 움직인다. 어둠을 밀치고 칸의 팔뚝이 움직인다. 어둠을 떨쳐내며 칸의 주먹이 칸의 손가락을 편다. 어둠을 닦아내고 칸은 온 몸을 일으켜 저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우리들, 칸의 머리카락이 곤두서 칸의 분노를 전한다. 저들에게 칸의 분노를 알린다.

우리의 진지에 타오르는 불길이 전투를 알린다.

검은 말의 갈기.

짙은 초원의 냄새를 풍기는 갈기가 얼굴을 사납게 때린다. 땅이 말의 발굽을 때린다. 우리의 손은 맞춤하게 다듬어놓은 활을 쥔다. 시위를 잡는다. 화살을 고르고 시위를 겨눈다. 활이 굽는다. 화살촉의 끝을 빼고 세상이 뿌옇게 흐려진다.

화살.

화살.

화살.

무슬림들이 말에서 떨어진다.

훈. 타타르. 우즈베크. 키르기스. 고크투르크와 타브가치. 셀주크. 호라산. 사라센.

그리고 투르크인들. 스스로 늑대라 칭하는 자들. 늑대의 잿빛가죽과 울음을 자신의 문장으로 자처하던 자들. 그러나 그들은 전사라기엔 말에서 내린지 오래된 늙은이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늑대라기엔 성안에 쑤셔 박혀 오래된 거북이에 지나지 않았다.

키메르. 쿠찬. 사카. 스키타이. 사르마트. 알란. 타타르. 카자흐. 키타이와 카라 키타이. 오이라트. 위구르. 만주. 몽골. 흉노. 주르체트. 선비. 돌궐. 키단. 융적. 훈. 트르크멘.

진정한 늑대들, 진정한 초원의 아들들, 푸른 하늘의 자식들, 칸의 사람들이 분노했다. 그들의 단창이 사라센인들의 터번을 뚫었다. 구부러진 칼이 투르크인들의 목을 쑤시고 지나갔다. 송곳화살이 무슬림의 입을 꿰고 그들을 고꾸라뜨렸다. 늑대를 자처하던 성안의 거북이들은 진짜 초원의 늑대들 앞에 모조리 배를 보이고 나뒹굴었다. 사슴 같은 그들의 말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우리의 강한 말들은 화살에 배를 꿰뚫린 채 다리를 후들거리고 있는 그 사슴들을 짓밟고 지나가버렸다. 크림색과 조개껍데기 색깔의 말가죽에서 피와 내장이 터쳐나왔다. 비단옷에 싸인 그들의 팔뚝이 휘두르는 곡도는 우리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들의 활은 타타르의 갑옷을 뚫기에는 너무 작고 약했다. 그들의 창은 몽골의 어깨를 박살내기에는 너무 낭창낭창했다.

키메르와 쿠찬의 시커먼 곡도, 피를 잔뜩 집어삼킨 그들의 칼은 아직도 투르크의 피를 더 원하고 있었다.

사카는 어깨로 키르기스의 화살을 받아냈다. 그러나 키르기스의 화살은 미처 양털로 이어진 그 질긴 옷을 뚫지 못했다. 사카의 월도가 허공에서 무지개빛을 가르며 내리치는 동안 키르기스 궁수의 입이 마지막 숨을 쉬기 위해 벌어졌다. 키르기스의 작은 칼이 허둥대며 허공을 빗겨 갈랐다. 스키타이의 창은 빠르다. 터번을 둘러싼 머리의 귀를 꿰며 다른 하나의 숨구멍이 뚫린다.

사르마트. 초원의 개들. 야만인들. 그들의 말발굽은 우즈베크들을 밟는데 거침이 없다. 야무진 곤봉 같은 발굽이 우즈베크들의 앙팡한 가슴을 짓씹어댄다.

알란과 타타르. 이들이야 말로 늑대들이다. 그들의 활은 양끝이 서로 닿을 것처럼 구부러진다. 당겨졌던 시위가 그들의 팔뚝을 감싼 가죽을 때린다. 화살이 사라센인의 눈으로, 호라산의 입으로 달려 나간다. 아니, 뚫고 나가 땅에 박힌다. 땅에 박히고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붕 제 몸을 떤다.

카자흐. 서쪽 대초원의 사람들. 그 곳의 추위는 그들을 그 지역의 바람보다도 더 냉혹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창이 그곳의 바람처럼 고크투르크인들의 뱃속을 뚫고 지나간다.

고크투르크여, 타브가치라 불리던 전사들이여, 이 뜨거운 땅에서 그대들은 초원의 모진 바람을 뱃속을 받는구나. 서하의 위구르. 칸의 가장 든든한 동맹군들. 용맹하고 당돌하다. 그들의 팔이 모래바람을 일으킨다. 무슬림들의 잘려진 터번 위로 그들이 침을 뱉는다.

키타이와 카라 키타이. 동쪽의 용사들. 주르체트, 만주들. 이민족 전사들. 허리가 긴 그들의 말이 전장을 용처럼 달린다. 그들의 말이 뱀처럼 셀주크의 살을 뜯어먹는다. 셀주크들이 허둥대며 이 용기병들 앞에서 달아나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용맹한 그들이 그들 말을 몰아 셀주크들을 미처 짓밟으며 함께 피에 젖는다.

선비, 돌궐, 흉노. 오래도록 한족과 싸워왔던 이들. 용맹한 자들이다. 문명을 부수는 자들. 질서파괴자들. 호라즘의 탑이 그들 앞에서 무너진다. 키단, 오이라크, 투르크맨. 이들 역시 무자비하다. 그들의 굵은 목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은 호랑이의 포효와 같다. 들쥐 같은 사라센인들이 벌벌 떤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에 비출 수 있는 비굴함도 잠시 뿐이다. 융적과 훈들. 바람과 같은 그들의 칼이 짓쳐나간다. 그들의 칼이 가장 빠를 때는 오히려 무슬림들의 살 속에 있을 때이다.

질척거린다. 철벙거린다. 축축하도다. 척척하고 끈적거린다. 죽은 개처럼 무슬림들이 입을 벌리고 쓰러져있다. 그들의 머리로 또 하나의 성이 쌓여지는구나. 하얗고 뽀얗던 그들의 말라붙은 흙이 피로 말미암아 검은 흙이 되어있다. 미처 피를 다 머금지 못한 흙 사이로 피가 베어 나온다. 성 전체가 피로 넘쳐난다. 찰랑거린다. 가득하다.

칠흑의 밤이 끝나고 해가 뜬다. 해는 만 천하에 무슬림들의 피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 타타르전사에겐 피가 없다.

6.눈

부하라의 성은 견고했다. 높은 벽. 그리고 그들은 풍족했다. 우리와 달리 그들에게는 우물이 있었고 많은 식량이 있었다. 시간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호라산의 땅 한 가운데에 있었다. 늑대가 가슴을 벌리고 달려들고 있다. 빨리 칼로 찌르지 않으면 그 울음소리를 듣고 늑대들의 동료가 우리의 뒷덜미에서 달려들 터.

나는 칸께 한 달, 오늘 보이는 달의 그늘과 다시 같아지는 날까지가 한계라고 일렀다. 그렇게 되면 저들이 우리 뒤에서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또한 나약하고 타락한 저들의 장군은 쉽게 공을 세우기만을 바랄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와 쉽게 교전을 벌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일렀다. 저들의 곡물창고는 부유하며 저들의 우물은 말의 대동맥처럼 쉬지 않고 물을 뿜어내고 있다고 일렀다.

원정을 떠나기 전에 칸께서는 꺼지지 않는 영원한 영혼의 푸른 하늘에게 답을 구하셨다. 그리고 칸께서는 답을 얻으셨다. 칸의 명령이 파도처럼 노랫소리를 타고 퍼졌다.

칸의 손가락들과 머리카락들이 부하라 인근의 마을에서 농민들과, 그리고 그들의 짐승들을 가져왔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집을 해체해서 진지 외곽에 마구간과 외양간을 세웠다. 그 그늘에는 그들의 짐승들이 들어갔다. 칸께서는 짐승들에게 곡식을 주라고 명하셨다. 이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풀은 칸의 말들이 먹어야 했기 때문에. 농민들은 짐승들에게 곡식을 주었다. 칸의 머리카락들이 농민들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농민들은 칸의 뜻을 거부할 수도, 그곳에서 도망갈 수 도 없었다.

동시에 칸께서는 자신을 보다 먼 곳으로 옮기셨다. 그곳에서는 새로운 초막과 게르가 세워졌다. 이제 진지에는 농민들과, 그들이 상전으로 모셔야 할 짐승들만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진지에는 짐승들이 내뿜는 숨소리와, 그들의 냄새로 가득했다.

수 일이 지났다.

술탄의 장군은 이러한 일들을 알지 못한 채, 칸의 군대가 통풍을 위해 모전 천막, 게르를 버리고 나무와 풀로 진지를 구축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쉬운 승리만을 꿈꾼 그는 성안의 기병을 이끌고 야습을 하기에 이르렀다. 술탄의 장군은 불로 우리를 벌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리석도다.

칸께서는 진지에 불이 오르면 곧장 성 안으로 돌격할 것을 명하셨다. 일부는 진지 안에서 어리석은 호라즘 군대를 멸할 것을 명하셨다. 나는 그 날이 머지않아 다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이었다. 어리석은 술탄의 장군과, 그의 병사들은 진지 가까이에서 들리는 짐승들의 숨소리와, 인간의 숨소리를 듣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화약과 유황의 냄새가 곧 짐승들과 농민들의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술탄의 군사들은 진지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자신들이 피운 불로 자신들의 몸을 보여준 셈이 되었다.

우리의 화살은 빛을 향해 달겨드는 오아시스의 모기처럼, 그들의 살로 파고들었다. 화살은 그들의 뼈를 뚫고, 내장과 허파를 뚫고 그들의 혀를 꿰었다. 목에 박힌 화살이 그들에게 마지막 숨을 내뱉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술탄의 장군은 성문으로 도망가던 중 칸께서 숨겨놓은 부장들에게 붙잡혔다. 자비하시고 지혜로우신 칸께서는 그를 산 채로 잡아 부하라의 비밀을 토해내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그가 타고 있는 사슴 같은 작은 아라비아말은 빨랐다. 칸께서는 그가 부하라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그가 침묵하기를 바라셨다.

어둠 속에서 각궁이 휘어졌다. 성으로 향하는 작은 그림자를 향해 몇 개의 바람이 날아들었다. 말의 앞다리가 휘면서 동시에 말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말은 오른쪽 앞다리가 부러진 채 나뒹굴었다. 술탄의 장군은 등을 다쳤다. 칸의 머리카락들이 활을 쥐고 그와 부장들을 에워쌌을 때 그는 일어서지도, 칼을 쥐지도, 말을 하지도 못했다. 칸의 머리카락들은 그들의 부정한 피가 자신들의 몸에 닿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장군의 부장들이 칼을 쥐고 결사의 외침을 내뱉으며 달려들기 전에 화살들이 먼저 그들의 몸으로 마중을 나갔다. 칸의 머리카락들은 그 부장들과 장군들의 몸에 수십 대의 화살을 박아 넣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버리고 간 병사들을 뒤따르게 하였다.

술탄은 자신의 병사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의아했을 것이다. 교활한 그는 날이 새기 전에 성문을 닫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칸께서 이미 수천의 농민들로 성문을 막아 놓으셨다. 그들이 성문을 닫기 위해서는 그 수천 농민들의 몸을 먼저 치워야 했다. 그들이 농민들을 치우고 성문을 닫기 전에 이미 칸은 모든 준비를 끝내놓으셨다.

투석기와 거대한 노와 쇠뇌들, 파성기와 충차와 소차와 화포가 성벽을 향해 입을 벌렸다. 돌과 화살과 창과 나무와 쇠가 그들 사이에 놓여있는 공간을 접었다. 접고 접어진 공간은 마침내 줄어들어 말의 털끝보다도 줄어들었다. 그들의 절망은 접어진 공간만큼 부풀어 올라 하늘에 떠있는 새들을 부를 정도였다.

이미 저들의 지당한 운명을 안 까마귀들이 몰려들었다. 까마귀들. 그리고 수리들 중 사냥을 않는 거대한 수리들이 하늘을 날았다. 히레, 히레, 히레. 까마귀들이 젖은 신음소리로 우리를 축복했다.

부하라의 성은 견고했다. 그리고 그들은 풍족했다. 그들에게는 우물이 있고 많은 식량이 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늑대가 가슴을 벌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빨리 칼로 찌르지 않으면 그 울음소리를 듣고 늑대들의 동료가 우리의 뒷덜미에서 달려들 터 였다.

그래서 칸께서는 빠르게 그들의 심장을 찔렀다.

7.머리카락

타타르는 어디로든 행진하네. 불 속이든 물 속이든 그가 원하면 어디로든 행진하네.

우리의 눈에 저들이 작은 활을 준비하는 것이 보인다. 저들의 가느다란 화살이 하늘에 둥실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바람을 이기기도 벅찬 화살이 저만치 앞에서 떨어진다. 우리는 왁자하게 웃는다. 흥겹다. 즐겁다. 웃는다. 노래한다.

칸의 손가락들이 소리 지른다. 농민들이 오아시스에서 베어낸 나무들로 만든 공성무기들을 끌고 간다. 뼈와 근육밖에 남지 않은 우리들은 말을 타고 노래를 부르며 성벽으로 달려간다. 거대한 철퇴와 쇠뇌. 큰 석궁과 투석기들. 쇠와 나무와 화살과 돌덩이가 저들의 성벽과 나잘한 저들의 살을 두드린다. 잘라진 살덩이들이 성벽을 적신다.

성문이 열린다.

까마귀들과, 수리들이 기쁨의 환성을 지른다.

부하라가 항복한다.

칸께서는 성에 있는 모든 병사들을 참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성에 있는 모든 병사를 참하기를 원했다.

몇몇 병사들이 정해진 운명에 반항한다. 그들은 어설프게 날뛰고 조잡하게 성낸다. 좁은 골목길에서 작은 방패를 든 그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그들의 일부는 성벽에서 내려오지 않고 칸의 머리카락들을 맞는다. 칸의 머리카락들은 화살로 그들을 맞는다. 인자한 대지는 거대한 몸으로 성벽에서 떨어지는 그들의 더럽혀진 몸뚱이를 맞는다.

성벽을 빼앗기자 그들이 타르바간처럼 군다. 집과 집 안에서 무슬림들의 칼과 창이 어둠을 물고 우리를 노려본다. 그러나 칸께서는 타르바간을 어떻게 사냥하는지 알고 계셨다. 우리는 불을 놓고 건물을 부순다. 방카르들을 풀어논다.

방카르들이 꼬리를 치며 고개를 저으며 어두컴컴한 무슬림들의 굴로 들어간다. 더러운 투르크인들의 목덜미 냄새를 맡는다. 아슬란, 부야가르, 일데. 맹수의 이름을 가진 맹수. 방카르들은 용맹함으로 그 이름에 보답한다. 방카르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부하라를 메운다. 투르크인들이 비명으로 화답한다. 그들의 검은 목덜미가 방카르의 입 안에서 갈갈이 찣어진다. 그들의 흰 뼈가 방카르의 턱 안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부하라가 무너진다. 불에 타고 쇠와 돌에 맞아 부하라가 무너진다. 연기가 하늘을 메우고 통곡이 공기를 메운다. 시체가 땅을 메우고 포로들이 성문을 메운다. 까마귀의 깃털이 골목을 메우고 썩은 피가 도랑을 메운다.

타타르의 노랫소리가 사막을 메운다. 호라즘이 벌벌 떨도록.

타타르는 어디로든 행진하네. 불 속이든 물 속이든 그가 원하면 어디로든 행진하네.

8.손가락

정오가 되자 자비로운 칸께서 자신의 몸을 부하라의 부정한 땅에서 거두어 들였다. 더 이상 술탄이 쥔 병사들은 없었다. 수많은 술탄의 병사들이 항복을 바라고 몸을 굽혔으나 칸께서는 적의 병사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머리카락들은 술탄의 병사들이 저항하거나 항복하거나 그 둘의 모든 경우에도 어떠한 자비 없이 그들의 목을 내리쳤다. 몇몇 투르크 병사들은 타타르 병사들이 자신을 죽일 무기를 가지고 올 때 까지 그 곳에서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모든 곤봉과 도끼와 칼이 검게 적셔졌다. 타타르의 가죽 옷은 더 이상 깨끗하지 않았고 그들의 먼지 쌓인 두꺼운 부츠위에는 마른 피가 엉겨 붙었다.

만호장들이 천호장들을 불러 모았다. 천호마다 배치된 한족 의사들이 게르를 다니며 다친 병사들을 치료했다. 성한 병사들은 천호장의 지휘에 따라 부하라의 모든 주민들을 성 밖으로 내몰았다. 칸께서는 자신의 머리카락들이 엉키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시지 않으셨다. 타타르인들이 주르체트의 황금 수도에서 벌인 약탈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칸께서는 모든 일을 도시에 익숙한 키타이 출신의 지휘관에게 맡기셨다. 키타이의 만호장과 천호장들, 칸의 주먹과 손가락들은 엄격한 지휘로 머리카락들을 쓸어내렸다. 명령은 노래가사가 되어 불려진다. 머리카락들이 성문을 지나 텅 빈 부하라로 흘러들어간다. 흘러들어간다. 부하라의 부가 머리카락들을 타고 흘러나온다. 흘러나온다.

칸께서는 모든 재물을 초원의 주민들의 것까지 분할하셨다.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과부와 아들을 잃은 늙은이, 형을 잃은 동생 따위의 것까지 모두 나누셨다. 그들은 초원에서 먼저 초원으로 간 전사들을 기다리는데 지친 이들이었다. 약탈은 꼬박 사흘 낮이 걸렸다. 포로들을 나누고 나누어 주는 데에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막을 지나 홀쭉해진 칸의 몸은 이제 다시 부로 부풀어 올랐다.

9.혀

오아시스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아직 젊은 나무는 신의 행운을 받아 자신의 곧은 허리로 큰 그늘을 드리울 수 있었다. 사막을 건너온 여행자들과 순례자와 상인들이 그 나무 밑에 머물렀다. 나무는 그들이 쏟아내는 포도주와 창녀와 향유로 흥청거렸다. 더 이상 그늘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는 나무의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무는 깨닫지 못하고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무는 스스로 자만을 부추기는 것을 즐겼다. 이 때 초원에서 불어와 사막을 넘어온 바람이 나무의 잎과 친해지기를 바랐다.

“그대의 잎이 드리운 그림자에는 향유가 넘치고 꿀이 흐르는 구려. 포도주가 샘처럼 솟고 여자들의 발찌가 노래를 하고 있소. 내게는 풀잎의 향기가 있소. 독수리의 깃털이 있소. 염소와 양떼들의 울음소리가 있소.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겠구려.”

그러나 나무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람을 모욕했다. 취한 이들이 바람에게 침을 뱉고 창녀들이 바람을 모욕했다. 바람이 이들에게 줄 초원의 향기도 더럽혀져 버리고 말았다. 바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는 자는 알지어다. 꺾이지 않을 것을 믿던 자는 가장 먼저 땅에 입을 맞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나무가 바람을 비웃으며 입을 열려 하였다. 그러나 바람이 미간을 찌푸리자 사막의 천지에서 모래바람이 일었다. 바람의 입이 벌어지자 나무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조차 없었다. 항아리가 깨지고 술이 쏟아졌다.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바닥을 굴렀다. 나무가 자랑하던 그림자마저 바람에 휘날려 버렸다. 마침내 바람의 입에서 우렁우렁한 노성이 터져 나왔다. 사막의 저 편에서, 초원의 짙은 풀 향기를 품은 바람이 밀려들었다. 말총과 말 갈기같은 것들이 나무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먼지와 모래바람이 수많은 다리를 들고 일어섰다. 그림자가 그림자를 파묻으며 함성을 질렀다. 한 그루의 나무는 한 그루의 나무에 지나지 않았다.

오아시스에 돋은 한 그루의 나무는 그 그늘로 많은 영화를 누렸지만 초원을 건너온 바람을 이겨내지는 못하였다. 나무는 결국 쓰러지고 나무에 달린 꽃과 열매들은 모두 짓밟혔다. 이제 그늘도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나무가 품고 있던 샘마저 말라버렸다.

이 것이 저 호라즘의 도시, 술탄의 도시 부하라에 일어난 일이다.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귀가 없는 이는 웃을지어다.

9.눈

네 번의 해가 흘렀다. 호라즘, 페르시아의 위대한 제국은 막을 내렸다. 이름을 헤아리기도 벅찬 도시들이 칸에게 성문을 열었다. 그 중 이름을 말하기도 힘들만큼의 도시들의 칸의 자비를 오해하고 칸을 거역하였다. 기억하기조차 힘들만큼의 도시들이 지도에서 역사에서 끝으로 기억에서 사라졌다. 술탄은 제국의 끝에서 비굴하게 죽었다. 끝은 비참했다.

칸께서 메르키트를 친 이후로 호라즘 징벌에 이르기까지 칸께서 그 자신의 눈과 코와 입과 혀와 머리카락과 어깨와 팔과 손가락과 머리카락을 소홀히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역시 그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만 명의 칸은 그래서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다.

10.무슬림

알라께서는 위대하시다. 알라만이 홀로 위대하시다.

알라의 어떠한 뜻이 그 지옥의 참화에서 나를 구해냈는가. 나는 무도하게도 나를 재앙에서 구원한 알라를 원망하였고 이 재앙의 세상에 날 떨어뜨린 어머니를 원망하였다. 나의 두 눈이 볼 수 있다는 사실과 나의 두 허파가 아직도 숨을 내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원망하였다. 나는 해가 거듭될수록 이 재앙에서 뒷걸음치기에 바빴다. 눈을 가리고 내 기억을 거부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내게 더 이상 뒷걸음 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재앙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과연 이익이 될 것인가. 이 재앙은 인류가 역사를 기록한 이후에 일어난 최대의 재앙이었다. 아니, 이것은 아담이 낙원을 빠져 나온 이후 최대의 재앙이었고 특히 무슬림에게 닥친 일대의 시험이었다. 알라는 천사를 시켜 노아에게 귀띔하여 대홍수를 피하게 하였으나 이 타타르인들의 재앙을 귀띔한 천사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타타르의 대홍수 앞에 우리는 자신의 신앙이라는 작은 나룻배를 타고 견뎌야 했다. 그러나 숲의 불이 꺼지고 연기가 사라진 흙에서 다시 풀이 돋아나듯이,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재앙에서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나를 덮친, 알라의 위대한 뜻을 받들던 이 찬란한 도시가 어떻게 재 구덩이가 되었는지를 적을 것이다. 나의 두 눈이 보았던 것을 나의 혀가 곱씹을 것이다. 나의 혀가 곱씹은 것을 나의 두 손이 적어 내려갈 것이다. 그 모든 재앙의 풍경이 지금 눈앞에서 지나가고 있다. 타타르들의 말소리가, 부하라를 채우던 피의 냄새가 사막의 바람처럼 기억의 시간을 거슬러 지금 내 앞에 나타났다. 나의 손은 이제 그 모든 것을 적기에 바쁘다. 믿는 자들은 회개하라. 믿지 않는 자들은 기억하라. 이 또한 알라의 벌이다. 오만한 자들에게, 언제나 자신이 신의 뜻을 대변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알라가 내리시는 벌이다.

그들의 키는 작다. 추할 정도로 작은이들도 보인다. 얼굴은 홀쭉하지만 강파르다. 이는 성기고 길며 빼곡하다. 눈은 작고 추하며 추한 얼굴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있다. 눈썹은 바로 그 위에서 길게 자라있다. 목은 짧지만 굵다. 어깨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넓어 이야기 속의 마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손은 골격이 앙상하지만 크고 두껍다. 그들의 손 자체가 하나의 철편을 떠올리게 한다. 허벅지는 굵고 무릎 아래로 정강이는 짧다. 이들의 몸은 마치 구리를 다져넣은 것처럼 단단하고 억세다. 이들의 추한 몸뚱이는 마치 희랍신화의 타르타로스에 갇힌 거신족들의 몸뚱이에서 온갖 추하고 강한 것들만 뽑아내어 만들어낸 것 같다.

이들의 잿빛과 회색빛, 갈색과 누런색이 혼합된 양털 옷은 발목까지 내려온다. 옛 고서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이들, 먼 초원의 야만인들이 쥐 가죽으로 옷을 입었다고 적고 있다. 이들은 귀를 덮어 내리는 모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다. 이 거대한 모자는 이들의 왜소한 몸집을 부풀려 거대한 악몽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들은 바지를 입고 아주 밑창이 튼튼한 장화를 신고 있다. 이들의 갑옷은 오히려 가벼운 가죽 갑옷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등에는 갑주를 두르지 않는다. 이것은 칸이 이들에게 도망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거운 칼과 곤봉, 구부러진 활과 뾰족한 화살, 창과 도끼를 말 위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이들이 말을 달리는 동시에 안장에서 일어서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희랍 신화의 반인반마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들의 말은 키가 작고 머리가 크며 다리가 짧다. 어깨가 낮아 키가 작은이들도 도움 없이 말에 쉽게 오른다. 말의 입은 거칠고 억세다. 초원의 풀과 곡식, 오아시스의 거친 잎을 가리지 않고 뜯어먹는다. 믿을 만한 이야기에 따르면 이들의 말떼가 포도밭을 나무까지 뜯어먹어 망치곤 한다고 한다.

또한 이들이 끌고 다니는 개는 머리가 하나인 켈베로스같다. 털은 검고 길며 얼굴은 그들의 주인을 닮아 누렇다. 이 개들은 이빨이 억세고 매우 잔혹하며 용맹하다. 평소에는 주인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며 게으르다. 그러나 전장에서 이 개들은 마치 사자처럼 돌변하여 적을 물고 뜯는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타타르들은 이 개에게 사람의 살을 먹여 사람을 공격하는 데 거리낌이 없게 만든다고 한다. 이들은 중국인들과 전쟁을 벌일 때에도 이 개들을 이용해서 중국인들의 기병을 몰살 시켰다고 한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이 개들은 여느 개들과 달리 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치 유럽의 개들이 양을 몰듯이 말을 몬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이 개를 사자개라고 부르며 두려워한다.

타타르들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죽음과 병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도시를 파괴하고 밭을 뒤엎고 성 안의 사람과 성 밖의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죽인다. 병사들은 그 가족과 함께 모조리 죽임을 당하였다. 나는 이들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을 여러 번들은 적이 있다. 이들은 먼저 골격이 연한 노파들을, 그 다음엔 아이들을 그리고 끝으로 여자를 먹어치운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나면 마치 이들은 복수가 끝난 네미시스, 풍랑을 끝낸 바다와 같이 다시 잔잔해진다.

부하라. 한때 알라가 가장 사랑하시던 번영한 제국의 도시는 이제 흙과 바위의 도시가 되었다. 기둥들의 도시가 되었고 바람만이 그 곳에서 즐겨 논다. 그들이 불과 벼락으로 덮고 간 이 도시에는 오직 부엉이만이 바람과 함께 신음한다.

칸은 부하라의 모든 병사들을 죽인 후, 모든 왕족과 부자와 귀족들을 죽였다. 그러고 난 후 도시 안의 모든 주민들을 내보냈다. 거부하는 모든 이들은 죽었다. 그리고 이들은 한 때 술탄의 자랑이며 부의 상징이던 이 도시를 약탈했다. 부하라의 소금 한 톨과 곡식 한 낱까지 앗아간 후에 이들은 도시를 파괴했다. 상 위의 먼지를 훑어 내듯, 키로 쭉정이를 까불어 내듯이 이들은 이 도시를 지워버렸다. ‘어느 바위도 제자리에 놓인 것이 없었고 어느 기둥 하나도 제 들보를 성히 받치고 있는 것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가 되었다. 한 때 알라를 찬양하고 글을 쓰고 음악을 연주하던 귀한 손들이 이제는 야만인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한 때 높은 모스크 아래서 술탄과 권력을 다투던 술탄의 어머니도 이들의 노예가 되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타타르들은 그녀의 눈앞에서 그녀의 하인 모두를 죽인 후에 그녀를 묶어 말의 엉덩이 아래로 끌려 보냈다고 한다.

이들이 나타나면서 일어난 수많은 재앙들은 다만 부하라만의 것이 아니었다. 사마르칸트. 오트라르. 우르겐치. 발흐. 바나카트. 호젠드. 메르브. 니사. 니샤푸르. 티르미드. 헤라트. 바미안. 가즈니. 페샤와르. 카즈빈. 하마단. 아르다빌. 마라게. 타브리즈. 트빌리시. 아스트라한. 니샤푸르, 오 니샤푸르. 나는 그곳에서 내 아들을 잃었다. 칸의 사위를 죽인 니샤푸르는 그 배신의 댓가로 자신의 땅에 기거하던 모든 생명을 죽이는 형벌을 받았다. 남자와 여자와 동물들의 머리가 하늘까지 이르는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히말라야에서 키프카스까지, 동쪽 대륙에서 서쪽 대륙까지 이 타타르들이 일으키는 재앙은 인류를 휩쓸었다.

오만하지 말지어다, 문명의 탑 위에서 춤추는 이들이여. 자만하지 말지어다. 신전에서 고개를 숙인 자들이여. 거만하지 말지어다. 부의 궁전 안에서 노래하는 이들이여. 항상 겸손할 것이며 항상 경건할 것이다. 알라의 뜻은 단지 가뭄과 풍랑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 그분의 격노는 야만인들의 화살촉을 통해 인간의 오만을 벌하시곤 한다. 타타르는 알라의 뜻이셨다. 그분만이 참화로 우리를 정화할 뜻을 내셨다.

야만인들을 통해 내보이시던 그 큰 뜻은 이제 이 늙은이의 조잡하게 엮은 글을 통해 후대에게 작은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나의 뒷걸음질은 이제 끝났다.

알라께서는 위대하시다. 알라만이 홀로 위대하시다.

사람들은 나를 귀한 전사라 부른다. 모전 천막에 사는 이들의 칸이라 부른다. 대양의 황제라 부른다. 그러나 내게는 모든 피붙이로부터 버림받던 시절이 있었다. 노예가 되어 칼을 쓴 시절이 있었다. 그럼으로써 나는 내 안의 모든 나약한 것들을 쓸어버렸다. 그럼으로써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강한 것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

무슬림들은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며 즐겨 떠든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그의 적들을 몰아내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타고 그들의 소유물을 빼앗는 것이다. 그들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는 것이고 그들의 부인과 그들의 딸을 안는 것이다.”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내 말을 하는 것을 즐긴다. 그들은 내가 한 말을 숭상하기도 하고 혐오스러워 하기도 한다. 내가 부와 향락을 두르고 다니는 늙은이라고 하고 피와 살육을 몰고 다니는 귀신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칸이 된 지금도 낡은 델을 입는다. 거친 덤불에 쓸려도 찢어지지 않는 옷을 좋아한다. 칸이 된 지금도 조랑말을 탄다. 느리지만 건강하고 편하게 오래달릴 수 있는 말을 좋아한다. 좋은 옷과 빠른 말은 아직 내게 맞지 않다. 아름다운 여자와 화려한 노예들은 내가 가진 뜻에 맞지 않다. 나는 내가 그것들을 가짐으로서 그것들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가지지 않음으로서 그것들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나는 절대 강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지혜롭지도 않다. 나는 초원의 산보다 낮다. 설사 내가 초원의 산, 저 성산(聖山)과 같은 위치에 올라서는 날이 있을지라도 결코 강하다고 자부할 수 없는 일이다. 가장 작은 짐승일지라도 그 산위에 오르는 날엔 그 산보다 높아질 수 있다.

나라를 갖는 것과 군대를 갖는 것은 다르다. 군대는 힘으로 움직인다. 나의 머리카락과 손가락과 주먹과 팔로 이루어진 나의 군대가 그것을 말한다. 그러나 나라는 훨씬 다르다. 힘과 심장과 머리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왕과 귀족과 신이, 백성과 농노와 노예들과 뒤섞여진 것이 바로 나라다.

하늘은 하나다. 나는 평생 하늘의 뜻을 묻고자 한다. 나는 몽골을 합치고 칸들을 몰아냈다. 그리고 주르체트의 황제를 쓰러뜨렸다. 호라즘의 술탄을 베었다. 그리고 그곳들에서 흘러나온 부가 초원으로 향하는 것을 본다. 맨손으로 야크의 똥을 줍던 소녀들이 비단 옷을 입고 이가 빠진 입으로 골수를 발라내던 노인들이 하인들이 상아자루 칼로 발라내주는 고기를 먹는다. 초원을 지배하던 이들이 비단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이 내 눈에 보인다. 사람이 죽고 죽이면서 한 일들이 내 눈에 스친다. 부서진 도시들. 무너진 석상과 다리들.

이 모든 것들은 하늘의 뜻이었는가, 아니면 나의 뜻이었는가.

왕과 그 친척의 목을 베고 장군들을 살받이로 만들고 귀족들을 성벽에서 떨어뜨린 일들. 대신 법률가, 의사, 대상, 사무원, 천문학자와 지리학자, 역사가, 교사, 랍비, 예언자, 점쟁이, 외교관, 번역가, 서기관, 장인들과 공인들에게 귀한 일자리를 준 일들.

이 모든 일들은 하늘이 한 일이었는가, 아니면 내가 한 일이었는가.

나는 수많은 하늘을 보았다. 부르칸 칼둔에서 본 하늘은 지금 내가 보는 하늘과 같다. 내가 노예였을 때 본 하늘은 케레이트, 나이만 칸을 베고 자무카를 베고 칸이 되었을 때 본 하늘은 주르체트의 황제를 베고 호라산의 술탄을 벤 후에 본 하늘과 같다. 초원과 벌판과 사막과 오아시스와 도시에서 보는 하늘은 같다.

나는 그저 이 하늘 아래의 땅들 역시 하나로 만들고자 했다. 그들이 하나의 하늘 아래서 만나는 것을 보고 싶다. 땅 동쪽 끝의 사람이 땅 서쪽 끝의 요리를 하는 것을 냄새 맡고 싶다. 그들이 손가락처럼 많은 신의 이름과 경전을 벗어나 한 몸으로 흐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내가 원한 일인지 하늘이 원한 일이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붓의 끝으로 종이의 위에 나의 이야기를 쓴다. 내가 파괴한 도시와 내가 세운 도시의 이름들을 쓴다. 내가 죽인 사람들과 죽이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는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바란다. 나는 그들이 나의 무용을 적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를 찬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내가 행한 모든 일에 물음을 품고 악의를 내뱉고 저주하기를 바란다. 나의 끝없는 불패의 원정이 그들에게 끝없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원정동안 나는 여러 번 울었다. 두려웠고 서툴렀고 화가 나고 슬펐다. 내가 겪은 이 모든 일들에 대해 아랍인의 펜 끝과 중국인의 붓 끝이 제각기 다른 물음을 묻기를 바란다. 그 모든 물음은 제각기의 답을 얻을 것이다.

세상은 저마다의 입을 통해 그들과 그들이 되었던 나를 기억할 것이다.

공포의 이름으로. 경외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악마의 이름으로.

나는 몽골이다. 나는 타타르다. 초원의 아들들이다.

나는 귀한 전사이며 모전 천막에 사는 모든 이들의 칸이며 대양의 황제다.

나는 칭기스 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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