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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서시 Jan 09. 2016

창귀설

창귀가 넘치는 세상에서 창귀를 논하다


범에게 먹힌 사람의 원혼을 창귀라 한다.

창귀탈. 범에게 물려 죽은 이의 원혼은 범의 시중을 드는 창귀가 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창귀는 원귀이나, 그 원이 짐승에게 닿아있는 고로 그 원을 푸는 대신 짐승의 시중을 든다. 범이라 하는 짐승은 산중의 짐승 중 가장 큰 고로, 늘 굶주려있다. 그러니 창귀는 늘 사람을 불러 범의 먹이로 떠미느라 바쁘다. 창귀가 사람을 불러내고자 하는데 귀신이 부르는데 달갑게 나올 사람이 적은 즉, 아는 사람을 부를 수 밖에 없다. 창귀는 이미 지상의 서러움과 슬픔을 잊고 오직 범을 섬기고 범이 기꺼이 여기는 것에만 미쳐 생전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사람들을 범의 수염 밑으로 몰아넣기에 이른다. 창귀가 사람을 불러내는데, 지아비는 지어미를 부르고 지어미는 지아비를 부르며, 딸은 어머니를 부르고 아들은 아버지를 불러 이내 한 가족이 모두 범의 먹이가 된다.

오늘날 무지몽매한 이들의 정이 각박하여 호식을 당한 이들과 사돈을 맺는 것을 꺼려하고, 그러한 이들을 마을에서 내쫓고 팔매질한다. 이는 두려움에서 온다. 자신도 창귀의 부름을 받아 범의 먹이가 되고, 자신의 가족들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두려움은 사람을 가장 어리석게 만드는 장막이다. 일어나 앉아 생각해보니 아마도 창귀의 전설은 범에게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들이 울며 산과 골짜기를 다니다가 다른 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누군가 지어낸 것이었으리라. 혹은 짐승이라 하는 것은 한 번 다닌 길을 다시 다니기를 좋아하니, 범이 같은 집을 들이쳐 환을 내는 것을 설명하고 이 집에 사는 이들을 피신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두려움이 염려를 덮어 이제 호환을 당한 이들에게 욕을 하고 팔매질하는 것을 기꺼워한다. 이것은 창귀가 본래 자신의 원을 잊고 다른 사람들을 범에게 팔아넘기기 급급한 것과 무엇이 다르랴.

까치와 범

오늘날 산과 들에는 범이 없다하나, 아직도 가족을 잃거나 직장을 잃어 무릎을 찬 바닥에 대고 슬퍼 울부짖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달래기는커녕 호환을 당한 사람들로 여기고 이들을 피하고 업신여기며, 욕하고 팔매질하며 내쫓기를 마치 자신의 의무처럼 행한다. 이는 측은지심을 아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원이 맺힌 귀신의 마음인즉, 누가 오늘날 창귀를 찾는다면 과연 이들을 창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창귀는 창귀를 만들고 옳기며 들끓기 시작하는 것이니 곧 세상이 창귀로 가득하여 창귀가 부르짖는 슬픈 노래와 이를 가는 소리가 천지에 가득하다. 노인들에게 물으니 창귀는 신 매실과 소라를 좋아하여, 그것을 먹는 동안에는 자신의 원을 잊는다 한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범을 잡을 때에는 그 덫 옆에 매실과 소라를 놓아 창귀가 그것에 정신이 팔린 동안 범을 잡았다.

들끓는 창귀는 보이는데 범은 어디에 숨어있는가.

오늘날 세상에도 창귀가 가득한데 그러나 오늘날의 창귀는 무엇에 자신의 원을 잊을 것이며, 과연 창귀들의 주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물으니 노인들은 고개를 저으며 그런 것은 알지 못한다 한다. 끓는 원을 달랠 길이 없어 이렇게 적는다.


*옛부터 고려에는 '설'이라 하여, 이치에 따라 사물을 해설하고 시비를 밝히면서 자기의견을 설명하는 글이 있었다. 어느날 돌이켜 생각하니 지금 세상도 밤에 산길을 걷는 것처럼 시시비비가 분명치 아니하다. 어두운 길을 걷느라 위태한 중에는 흐린 등불도 길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는 법이니, 어두운 선비의 사견이나마 시비를 밝히는데 쓰고자 한다.  


*나는 주로 네이버 뉴스로 소식을 듣는다. 세월호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 꼭 댓글을 확인한다. 그곳에는 늘 창귀들이 들끓는다. 이제 위안부 뉴스에도 창귀들이 들끓는다. 창귀들은 슬픔을 업신여기고 회담을 추어올리기에 급급하다. 저들의 댓글에는 저들의 두려움이 있다. 그런데 저 두려움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이며 저 두려움을 쫓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 역시 두려울 뿐이다. 범이 두렵고, 우리도 저들처럼 창귀가 되는 것이 두렵다.

바야흐로 창귀가 넘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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