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엽서시 Jan 10. 2016

노력설

노력을 논하다


방에 개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손으로 눌러 죽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에도 개미가 같은 곳을 지나갔다. 그리하여 나는 또 다시 손으로 개미를 눌러죽였다. 그러나 그 다음날이 되자 또 다른 개미가 나타났다. 나는 그 개미를 죽이기 위해 손을 뻗다 슬퍼 손을 거두었다.


개미는 어찌하여 죽을 길을 가는가. 미물도 스스로 사는 길을 택하지 죽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혹자는 개미는 마음이 없어 전체를 위하여 죽는 것을 꺼리지 않을 것이라 하나 이는 옳지 않다. 개미 중에도 높은 이가 있어 낮은 개미에게  죽을 길로 가 먹을 것을 가지고 오라 명하니 작고 낮은 개미는 이를 벗어날 방도가 없어 죽을 길로 걸어가는 것이다.

개미는 자신이 사는 길을 택하지 못한다


알고도 죽을 길을 택하는 이 개미를 어찌 미련하다 할 것인가. 사람이 되어서도 죽을 길을 택하는 백성들이 적지 않으니, 오히려 사람은 앎을 버리고 죽을 길을 택한다. 백성들은 빚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를 가릴 거처가 없고 양식을 가꿀 논과 밭이 없으니 하루하 머리를 감싸고 누워 세상으로부터 눈을 가리기 바쁘다. 과거를 치려 하나 이 또한 용의치 않으며 어느덧 이 땅에서 사전과 공전을 가진 관리들은 모두 관리를 아비로 둔 자들이다. 백성들은 쟁기와 붓을 던지고 세상을 헐뜯고 욕하기 바쁘다. 이를 두고 관리들은 입을 모아 백성들이 노력하지 않는 세태를 두고 저마다 한 두 마디 말을 던지니 흡사 입에 채찍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노력(努力)이란 무엇인가. 힘쓸 노(努)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노비(奴)가 힘(力)을 쓰고 있는 글자이니, 노력은 노비가 힘을 쓰고 다시 힘을 쓰는 것을 말한다. 노비는 작고 낮은 개미와 같아 자신이 살 길을 택하지 못하고 주인이 죽을 길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함을 치면 머리를 조아리고 그 길로 향한다. 대저 사람들이 죽을 병에 걸려도 출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비적이 쓸고 간 마을에도 장사를 떠나는 것은 그가 어리석고 무지한 까닭이 아니라 그가 노비인 까닭으로 노비의 힘을 다 하고자 한 까닭이다.

작고 낮은 개미는 큰 개미가 가리키며 고함치면 머리를 조아리고 그 길로 향한다


내 생각해보건데 본디 노력은 노비의 힘이니 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노비의 주인이나 노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갑오년 이후 노비는 없어졌으나 세상에는 노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가득하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백성이 하루를 자연히 일구면 하루를 먹고사는 것이 이치이거늘, 백성이 노비의 힘을 다하여 일구어야 하루를 먹고사는 것은 백성을 노비로 만든 자가 있기 때문이니, 관리는 백성의 쌀을 훔치고 백성을 노비로 만드는 자를 응당 도적으로 보고 포졸을 보내어 오라로 묶고 육모방망이로 길을 앞세워 옥에 가두어야 할 것이다.


성인들이 말하길 예로부터 작은 도적은 집의 담을 세우면 막을 수 있으나 큰 도적은 이미 나라의 담 안에 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외침이 요즘 우리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 작은 도적은 자신이 한 짓과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을 부끄러워 감추고자 하나 큰 도적은 자신이 한 짓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제 이름으로 방을 내는 것을 가문의 복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람들은 큰 도적이 도적인 것을 알지 못하고 그를 장자로 여기고 그를 섬기며 그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이 여기니 나라는 곧 도적을 좇는 이로 가득한 소굴이 되는 것이다.
  

내 이를 슬피 여기니 붓을 들어 노력에 대해 논한다.




*옛부터 고려에는 '설'이라 하여, 이치에 따라 사물을 해설하고 시비를 밝히면서 자기의견을 설명하는 글이 있었다. 어느날 돌이켜 생각하니 지금 세상도 밤에 산길을 걷는 것처럼 시시비비가 분명치 아니하다. 어두운 길을 걷느라 위태한 중에는 흐린 등불도 길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는 법이니, 어두운 선비의 사견이나마 시비를 밝히는데 쓰고자 한다.  


* 노동도 노력만큼 고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하는 이의 노동 앞에 부지런할 근(勤)을 붙여 근로자라고 부른다. 이 땅에서는 노동도 근면하지 않으면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창귀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