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걸작에 대하여
밤하늘은 존나게 까맣다. 별은 몇 없다. 그것이 깜박거린다는 말은 동화 속의 말이다. 별을 보며 소원을 빈다는 것 역시 동화 속에나 있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가끔 나는 그 희끄무레한 빛을 보며 어색한 소원을 빌곤 했다. 알퐁스 도데의 명작, '별'에서 목동은 그저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스테파네트 아씨가 편히 잠들기를 바랐다던가. 그 소박한 소원이 아름답다면 내 소원은 인류 불세출의 아름다움처럼 소박한 것이었다. 난 그저 먹고 살기를 바랐다. 목동인들 어떠랴. 스테파트네 아씨가 아니라 스테고사우루스가 내 어깨에 기대 잔들 어떠랴.
바라건대 우리에게 보습대일 땅이 있었드라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 그런데 이게 김소월이던가, 이상화던가. 아마 이러저러한 잡상에 빠져있을 즈음이었다. 아니, 사실 아무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게 그 밤은 수없는 2008년의 여름밤 중 한 밤이었다. 나는 신림동 쪽방촌에서 순경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 그 수많은 여름밤 중 마침 그날을 망각에서 건져낼 사건이 있었다.
노인의 말라붙은 비명이었다. 그 불분명한 외침의 의미가 분명해지는 순간, 난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내던지고 달려 나갔다.
"도, 도둑이야! 도둑....."
노인의 비명은 꿈처럼 끊기다 다시 꿈처럼 이어졌다. 이런 동네의 골목길을 흔히 얼기설기 얽혔다고 표현한다. 신림동 쪽방촌에는 켜켜이 쌓였다, 는 말을 덧붙여야 한다. 얼기설기 얽히고 켜켜히 쌓인 미로에서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이마에 무른 땀을 눌러 닦으며 근처의 골목에서 초조하게 서성였다.
또 다시 노인의 비명이 터졌을 때 나는 노인의 방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거칠게 쇠문을 두들겼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무슨 일입니까! 얄팍한 양철문이 와장창 울리는 소리와 함께 내 목소리는 자뭇 웅장하게 들렸다. 이 침묵을 깨는 것은 내가 내는 소리뿐이었다. 그 침묵을 홀로 깨뜨리는 이 불협화음에 어떤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안 순간, 내 주먹에는 초능력보다 무서운 공권력 같은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내 좁은 골목에 경찰차가 울리는 붉고 푸른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내심 뿌듯했다. 얼굴 없는 익명의 신고보다, 여기 이름 없는 시민의 행동이 더 의미있는 일이지 않은가. 혹시 이 일로 표창이라도 받으면 순경시험에 가산점이라도 들어가는 게 아닌가, 뚱딴지같은 생각을 하며 주머니를 더듬었다. 나도 신고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는데. 이런. 핸드폰이 없다. 골목길에 떨어뜨린 건가. 이런 씨, 얼굴이 일그러지려는 참에 진짜 공권력이 땀에 젖은 뚱뚱한 얼굴로 나타났다.
신고자세요? 네? 아닌데요, 전 지나가다가. 대충 상황을 설명했다. 아, 됐고. 돼지가 내 말을 끊었다. 이거 사실 신고는 주민분이 시끄러워서 하신 건데. 네? 웬 이상한 사람이 노인 혼자 사는 집에 문 두드린다고. 아니, 네? 자, 일단 한번 봅시다. 어르신! 어르신, 계세요? 돼지의 잇단 외침이 있고 난 후에야 문이 열렸다. 다행히 노인은 내 증언을 뒷받침해주었다.
자신이 정신이 좀 오락가락해서 원래 가끔씩 그런 소리를 지른다는 것과 도둑은 없었으며 이 청년은 자신의 비명을 듣고 도우러 왔다는 말. 돼지는 별다른 말없이 사라졌다. 워낙 좁은 골목이라 돼지가 골목으로 사라지고도 한참 후에야 붉고 푸른빛이 사라졌다. 나는 노인의 주름진 얼굴을 보며, 노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툴툴대야할지 걱정이었다. 일단, 핸드폰을 찾아야하는데 그건 어쩐다 싶었다. 노인의 구겨진 얼굴과 머리를 보았다. 방금 헛것에서 깨어난 노인의 눈은 흐리멍덩한 짐승처럼 보였다. 노인의 얼굴에는 어떠한 총기도 없었다. 거리에서 흔히 보는, 폐지가 잔뜩 쌓인 리어카에 기대 움직이는 그런 노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학생, 학생. 네? 학생, 혹시 시간 좀 있나? 네? 잠깐만 들어와 봐. 내가 보여줄 게 있어. 난 뚱한 표정으로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내 팔뚝보다 가는 앙상한 노인의 속셈이 인신매매 이런 건 아니겠다 싶었다. 그러나 또 다시 헛된 것에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아, 할, 아니, 어르신. 저 지금 바빠서 그런데. 아니, 잠시면 돼. 들어와 봐. 저 여기 뛰어오다가 핸드폰 떨어뜨렸다구요. 그거 안찾으면 안되요. 핸드폰? 노인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거 대단히 비싼 거지? 네. 그러니까 찾아야죠. 잠깐만, 여기, 잠깐만 있어봐. 노인의 몸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노인이 골방을 뒤지며 내는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어딘가 나사가 빠진 기계가 연주하는 반주처럼 느릿느릿 들렸다. 내가 복장이 터져 죽으면 그때 장기를 빼가려는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노인의 행동은 느렸다. 여태까지의 생을 두 번쯤 반추하고 억겁의 시간이 흐르고 아마 내가 노인만큼 늙어버렸을 즈음, 노인이 무언가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이게 뭐에요. 핸드폰 그거 이걸로 다시 사게. 내가 미안해서 그러니까. 하고 노인은 잠시 뜸을 들였다. 내가 돈을 세는 빈 틈을 본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쥐는 돈의 무게에 황당하고 황망하고 당황했다. 엄지손가락으로 넘기는 만원 지폐는 여태까지 생을 두 번 쯤 반추하고도 얼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끝을 보였다. 황망했다. 도무지 이런 집에 사는 노인이 가지고 있을 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정말 받아도 되는 건가, 무슨 어둠의 돈은 아닐까. 그러나 이미 내 몸은 노인을 좇아 노인의 퀘퀘한 집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단순한 노인네 냄새만은 아니었다. 테레빈. 한참 기억을 더듬은 끝에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유화물감을 녹일 때 쓰는 것. 다시 손끝에 묻히지 않겠다 했던. 어둠에 눈이 익기 시작했다. 마루를 덮은 신문지와 그 위를 굴러다니는 붓으로 한 발 한 발 디디는 것이 소란스러웠다. 저 붓 하나가 얼마짜리더라. 좋은 걸 써봐야 좋은 그림을 그릴 줄 안다고, 2만원이 넘는 붓도 한 달을 채 가지 못했다. 좀 아껴 써, 네가 집 들어먹겠다, 엄마의 악 받친 소리와, 무슨 한국의 반 고흐가 되겠다고, 쏟아 부었던 그 시간들과. 미대에 합격했을 때. 그리고 연, 홍연. 추억일지, 기억일지, 연이의 모습이 햐얗게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깨에 닿을 쯤, 맞춤하게 자른 머리. 염색을 하지 않아도 갈색기가 다분한. 하얀 얼굴. 캔버스처럼 하얗던. 수없이 보고 그렸던 어떤 석고보다 하얗던. 그리하여 내 흑연으로는 소묘조차 할 수 없던 그 아이, 까지. 순간이었다. 노인의 어두운 쪽방에 들어서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온갖 기억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아마도 이 빌어먹을 테레빈 냄새 때문이겠지. 덕분에 내 인생이 김밥이라면 단무지 같은 기억들. 아작아작 씹어 넘기는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 꼭두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렸다. 아까부터 수선이던 노인은 나를 어디에 앉아라, 아니 의자 위에 앉아라 법석을 떨었다. 그러더니, “걸작을 볼 준비가 됬나?”
고 물었다.
걸작. 걸작이라.
나는 늘 걸작을 꿈꿨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림을 그리며 한 평생 살겠노라, 다짐한 수많은 학생들처럼. 나 역시 내가 천재인 줄 알았던 까닭이다. 그 오판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크레파스로 범벅이 되어, 알아보지도 못할 무언가를 그려냈을 때, 어머니가 지었던 환한 미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초등학교 1학년, 콧물도 마르지 않은 풋내기의 그림이 어디에서 대상이라도 받았던 것일까.
“천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라.”
-로맹 롤랑이 한 말이야.
그 사람이 누군데.
-나도 잘 몰라. 노벨 문학상 받은 사람이라던데?
그래. 미켈란젤로 정도 된다면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를 천재라고 믿는 동안, 나는 걸작을 꿈꿨다. 다빈치처럼. 그의 「모나리자」처럼. 불세출의 미소를 그려내리라.
물론 현실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걸작보다 꿈꿔야 할 것이 많았다. 대입부터 졸업, 취업까지. 다른 것을 꿈꾸느라 걸작은 늘 그 뒤에 미뤄지기 십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걸작을 꿈꿨다. 언젠가 피렌체에 가야지. 그 곳에서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봐야지. 그의 걸작과 내 눈 사이에는 어떠한 것도, 단지 몇 미터에 지나지 않는 거리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을 거야. 벌레가 잔뜩 꼬인 편의점 형광등을 보며 나는 대리석과, 대리석에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살을, 그리고 미켈란젤로를 생각했다.
“나는 돌을 깎는 것이 아니라, 돌 안에 가두어져 있는 위대한 형태를 찾는 것이다.”
그는 천재야.
홍연. 나는 다시금 그 이름을 떠올렸다. 피렌체, 두오모, 바티칸, 시스티나, 그런 낯선 지명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그 아이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내가 상병쯤이었던가, 홍연은 진짜 이탈리아로 떠났다. 미안이라는 쪽지를 남기고.
나는 펑펑 울었던가, 아니면 그냥,
씨발, 이라는 욕설만 남겼던가.
씨발, 이라는 말은 차가운 물처럼 나를 진정시켰다. 이 좁은 골방도, 저 노인도, 마치 내 청춘처럼 우습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은 또 얼마나 비현실적이란 말인가. 걸작이란 말은 15세기에나 있는 말이다. 현실적인 것은 딱 하나, 바지 주머니에 든 두툼한 현금봉투 뿐이었다. 그래, 조금만 저 노인 비위를 맞추면 돼. 조금만 버티자.
그래요, 고개를 끄덕였다.
딸깍, 불이 켜지고,
오,
씨발.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린다. 시간이 흘러 이제 그 그림의 세밀한 부분은 희미해지고 뭉개진다. 그러나 그 그림을 처음 마주한 순간의 그 감정은 잊히지 않는다. 외마디 욕설을 내뱉을 때마다, 혹은 들을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걸작을 떠올린다.
당신도 이종섭이라는 이름은 한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한국 구상화를 세우고, 완성한 사람. 살아있는 국내 화가들 중 가장 비싼 그림을 그려내는 사람. 물감과 붓으로 캔버스에 금을 빚어내는 사람. 1984년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소3」는 14억 4천만 원에 낙찰되었단다.
과연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 는 생각을 했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캔버스를 보며 나는 미켈란젤로를 떠올렸다. 그림은 흡사 그의 걸작 「최후의 심판」과 유사했다. 다만 노인의 캔버스에 담긴 심판은 고야의 검은 그림처럼 훨씬 어두웠다. 빛은 적었고, 어둠은 웅장했다. 그림의 저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흡사 심판자처럼 오른손을 하늘로 올려붙이고 있었다. 그는 불타는 듯 했고, 아니, 어쩌면 이미 불타버린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의 좌우에는 세상이 있었다. 모두 나체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뼈와 근육이 불거진 노동자와 군인들과 김밥을 마는 아주머니와 껌을 팔며 구걸하는 노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멀끔한 얼굴의 사업가, 마치 선거 전 명함을 돌리는 듯한 태도로 심판자를 바라보고 있는 정치인이 있었다. 그들 모두는 심판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고개만 남고 모래더미에 묻힌 개처럼 그림을 바라보았다.
심판자의 체구는 작았다. 그러나 그는 흡사 거인, 그것도 대결을 눈앞에 둔 거인이었다. 나는 이 그림이 대결하고자 하는 것이 무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적은 자식을 집어삼키는 크로노스처럼 끔찍한 무엇인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 적을 이미 알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이미 그 적의 품 안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는 그 적을 바라보지도 못하리라. 오로지 머리만 남은 개처럼, 저 심판자를 바라보는 게 전부리라,
는 생각이 들었다.
걸작이다.
“걸작이지, 그치?”
노인의 말에 나는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노인도 내 대답을 채근하지 않았다. 이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그의 인생을 걸쳐 마지막 순간에 그의 걸작을 완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그 것을 깨달았다.
“자네는 그림을 볼 줄 알아.”
노인은 흡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다른 놈들은……. 그림을 볼 줄 모르는 놈들은 안돼. 암, 안되고 말고…….”
노인이 허튼 소리를 중얼거리는 동안 나 역시 이제 처음 그림을 본 감동에서 슬슬 깨어나고 있었다. 표정을 추스르며 뭐 잘 그리셨네요, 따위의 말을 중얼거렸다.
“그래서 자네한테, 내가 부탁할 것이 있어.”
뭔데요?
“이 열쇠 좀 받게.”
뭔데요?
노인은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있었다.
“이 그림이 언제 공개되어야 하는지, 아나?”
언제요?
“11월 24일이야.”
예? 왜요?
내 ‘예?’는 ‘에?’와 ‘예?’가 섞인 목소리였다. 아마 더욱 바보같이 들렸겠지.
“그날은 내가 마지막으루…….”
노인의 기침은 거셌다.
“ 마지막으루 「소3」를 공개한 날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새끼들에게, 내가 이젠 그림을 못그린다구……. 지껄인 그 새끼들……. 개새끼들. 지들이… 그림은 줫도 모르는…….”
다시 한 번, 기침이 노인을 뒤흔들었다. 신기하게도 걸작을 막 내보였을 때의 노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제 노인의 몸에 감도는 것은 식은땀과 노인 특유의 옹졸한 증오가 전부였다.
“나는 아직 안 죽었어……. 이 이종섭이는…….”
한참 기침으로 몸을 흔들던 노인이 다시 몸을 세웠다. 노인은 나를 바라보았다. 문득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냄새가 고약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다음 주에 요양원에 들어가.”
네?
“아마 기자들이……. 찾아오겠지. 평론가들도, 그 개새끼들도. 이제 죽어가는 이 노인네를 보며, 여태까지의 말을 후회할 거야. 다들, 지랄들을 하겠지. 이제 내가 죽으니까……. 다들 얼마나 지랄들을 할지…….”
노인의 눈에 누런 눈물 같은 것이 어리었다. 그게 기침 때문인지 옹졸한 분노 때문인지는 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유언을 남겨놓았어……. 유언은 11월 24일에……. 그때까지 여기 이 집 주소는 아무도 몰라.”
말을 줄이더니, 갑자기 노인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를 거야. 천재 이종섭이……. 삼성 이병철이, 정주영이가, 그림을 달래도 안그린 내가, 전두환이가 그림을 달래도 안준 내가 이런 쥐새끼 굴에……. 내가 말이야, 이 이종섭이…….”
쥐새끼굴. 맞지. 신림동 쥐 굴.
“자네가 이 열쇠를 맡아주게. 그때까진 자네가 여기서 살아도 좋구……. 집세는 12월치까지 냈으니 걱정말구……. 집주인도 조용한 사람이야. 자네처럼 조용한.”
손에 들린 열쇠를 바라보았다. 열쇠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걸작이 될게야. 내가 죽은 뒤에 이 세상에 남기는.”
열쇠를 바지주머니에 넣으며 나는 다시 걸작을 바라보았다. 그림 속 심판자는 여전히 저 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바지주머니 양 쪽이 묵직했다. 말할 수 없이 큰돈이었고 말할 수 없이 비현실적인 무게였다.
노인의 방을 나왔다. 며칠 후, 독서실 로비에서 훔쳐본 신문에는 노인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한국 미술계의 거장, 마지막 입을 열다. 노인과의 인터뷰 기사였다. 노인의 모습은 단정하고 그래서 조금 어색해보였다. 노인의 이름이 이종섭이라는 것을 그때 신문기사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노인은 진짜였다. 나는 걸작을 떠올렸고, 동시에 바지주머니가 묵직하게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가끔 나는 홍연을 떠올렸다. 이탈리아에서 만났다는 그 남자는 아직도 사귀려나. 아니면. 홍연을 마주친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걸작은 꼭 이탈리아에 가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아, 그 뒤에 알겠냐, 썅년아를 덧붙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노인이 죽은 것은 그로부터 두 달 쯤 지난 뒤였다. 신림동 은행나무들이 한참 꼬릿꼬릿한 냄새를 풍기는 9월이었다.
이종섭, 그는 어떤 화가로 기억될까.
이종섭 화백 별세, “삶과 예술을 하나로 보여준 분.”
이종섭 화백 별세에 애도 행렬. “세상을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시켰다.”
이종섭 화백 별세 소식에 정치권 “한국의 화백을 잃었다.”
이종섭 화백 별세, 미술계 “캔버스에 사색을 담은 시대의 화백”
온통 노인의 그림과 사진이 신문과 TV화면을 장식했다. 뒤이어 노인의 마지막 그림이라는 「소3」도 이곳저곳을 메웠다. 노인이 그린 그림들의 가격이 대폭 올랐다는 소식도 뒤따라 나왔다. 최근 경매된 것 중에는 노인이 영수증 뒤에 그린 까마귀 그림까지 있었다. 그 운수 좋은 영수증은 무려 530만원에 낙찰되었다.
노인의 고향인 충남 청양군에 노인의 기념관이 생긴다는 소식이 잇따랐다. 노인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제계의 큰 어른이 그림을 기증하겠다는 소식과, 노인이 모교에 기증한 그림을 두고 학교와 노인의 자식들이 소송을 벌인다는 뉴스도 뒤를 따랐다.
노인의 일로 부산스러웠던 것은 채 일주일이 전부였다. 세상은 다시 잠잠해지고, 다른 일로 법석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다시 걸작을 볼 생각이 들었다.
내가 노인의 방에 마지막으로 찾은 그 시간도, 어두운 밤이었다. 사실 훤한 대낮에 찾아가도 별 문제없을 텐데. 어째서인지 나는 아마 노인을 찾아갔던 그 더운 여름밤을 더듬고 있었던 모양이다.
열쇠로 방문을 열고, 차가운 유화물감 냄새 속에서 의자를 찾았다.
의자에 앉고,
아, 씨발.
이번엔 노인이 없으니 내가 불을 켜야지. 불을 켜고 다시 앉았다.
다시 눈앞에 걸작이 펼쳐졌다.
심판자와, 세상과 죄인들.
나는 챙겨왔던 스케치북과 주머니에 있던 연필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림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노인의 선은 여물고 견고했다. 둥근 어깨와 각진 어깨가 맞물려있었다. 심판자의 허벅지와 노동자의 허벅지는 닮았지만, 창부의 허벅지와 정치인의 허벅지는 닮지 않았다. 따라 그리는 것이 막힐 때마다 나는 노인이 이 그림을 어떠한 모델도 없이 이 ‘쥐새끼 소굴’에서 그렸다는 사실을 떠올리려 애썼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나는 결국 노인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바라건대 우리에게 따라 그릴 실력이 있었드라면.
실력, 아니 보습. 쟁기. 쇠날.
미켈란젤로는 젊었을 때 도굴을 했단다.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만이 자신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어느 조각품을 따라 깎던 그는 절망의 눈물을 흘렸다. 그 콧날을 도저히 따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참 절망하던 그의 눈에,
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끌을 들고 고대조각품의 코를 밀어버렸다. 자신이 따라할 수 없는 걸작이었기에. 그는 파괴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무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안에는,
롤러가 있었다. 나는 내 손이 롤러에 검정색 물감을 잔뜩 묻히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물감을 짰다. 노인의 방구석에서 찾아낸 물감들을 모두 처발랐다. 롤러를 움직였다. 모든 색이 섞이면 나오는 색은.
검정색이 캔버스에 번지는 것을 보았다. 어둠이 아닌 검정색. 검정색이 무참하게 캔버스를 집어삼키는 것을 오른손이 저릿하도록 보았다. 중간에 나도 모르게 롤러를 집어던졌나보다. 나는 다시 붓을 집어 들었다. 미친 듯이 붓을 놀렸다.
나도 차마 심판자의 몸을 칠하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심판자의 몸에 붓이 자국을 내었고, 그 다음에는 어둠이 심판자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이윽고 캔버스는 그저 까맣게 변해버렸다. 아주, 존나게 까맣게.
열쇠를 잠그고 방을 나오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걸작을 망친 것일까. 아니, 그건 당연한 거고. 혹시 이거 들키면 어떡하지. 아니, 그걸 떠나서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이것도 홍연이 네가 해주었던 얘기였나. 미켈란젤로는 최고의 걸작 피에타를 그의 나이 24살에 조각했다. 당연하게도, 그 조각은 삽시간에 유명해졌다. 그러나 정작 미켈란젤로는 그에 비해 유명세가 덜했던 모양이다. 결국 심통이 난 미켈란젤로는, 어느날 밤 몰래 성당으로 가서 성모의 옷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고 말았다.
MICHAEL. ANGELVS. BONAROTVS. FLORENT. FACIEBAT.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었다.
성모의 옷자락에 감히 사람의 이름을 적어 넣으나 “MADE IN CHINA”를 적어넣으나 마찬가지의 범죄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미켈란젤로 그가 천재였기에 할 수 있는 기행이었다. 어쨌거나 천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노일지 두려움일지, 아무튼 벌벌 떨었다. 그러나 천재였기에 성모의 옷자락에 제 이름을 새겨 넣었다. 물론 천재도 인간이었기에, ANGELVS의 E를 빠뜨리는 바람에 다시 조그맣게 새겨 넣는 실수까지 하면서.
그리고 성당을 나오면서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느님은 저렇게 밤하늘을 아름답게 만드시고도 어디에도 자신의 이름을 넣으시지 않았는데. 나는 어찌 이리도 오만하였는가. 그리하여 미켈란젤로는 그 뒤로 자신의 작품에 서명하는 일이 없었단다.
그리하여 나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올려다본 밤하늘은,
그저 존나게 까맸다. 별은 몇 없다. 어떤 아름다움도 없었다. 미케란젤로가 눈물을 흘리고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잠들게 한 그 별은, 이제 없다. 아마 저기 빛나는 몇은 인공위성일, 거봐, 움직이잖아, 그러니까 별이 깜박거린다는, 말은, 동화 속에나, 나오는 말이다, 는 생각에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한 번 터지기 시작한 웃음은 온 몸을 뒤흔들고 나서야 사라졌다.
아, 존나 웃었네. 씨발…….
눈가를 훔쳤다. 어느새 떨림이 멎었다. 존나게 까만 밤하늘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노인의 그림은 어떻게든 걸작이 될 것이다. 평생 구상화를 그렸던 그가 마지막에 추상화를 그리다, 형태를 포기하고 예술을 완성하다, 소의 화가 이종섭, 밤하늘에 마지막 작품을 담다 등등. 액자에 걸린 그의 그림을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 그림 어디에도 노인의 이름은 없다는 것을 눈치 채는 사람은, 아마 적을 것이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신림동의 하늘에 미켈란젤로도 감동했다는 신의 걸작은 없다. 아니, 있을 리 없지. 걸작은 15세기에나 남아있는 말이니까.
아, 미켈란젤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