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놈은 본디 덜렁대기를 잘했다. 심부름을 시키면, 꼭 한 가지씩 잊어먹곤 했다. 그 것이 두부 한 모가 됐건, 참기름 한 병이 되었건. 때로는 잔돈을 길거리에 흘리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이건 어쨌어? 모난 눈으로 물으면 아들의 눈은 더욱 땡그랗게 변했다. 동그란 아들의 눈동자가 발 끝에 떨어지는 걸 보고나서야 나는 화가 풀리곤 했다.
죄송해요, 하는 아들에게 남편은 꼭, 죄송하면 죄송할 짓을 하지 말아야지, 사내새끼가 불알 두 쪽 빼고 덜렁거릴 게 뭐있어, 그냥 그것도 떼 버려, 하고 핀잔을 주었다. 남편의 말은 독하고 박했다. 그럴 때면 기십년을 살을 붙이고 산 남자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 털은 함함하다고 했던가. 나도 속을 삭일 때가 있었지만 결국 어쩔 수 없는 어미의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내 새낀걸. 어느 어미가 이 일곱 글자에 자유로울 수 있으랴.
어느 날 한참, 자식놈이 이만큼 덜렁거린다고 자랑아닌 자랑을 늘어놓다가, 병원에라도 데려가보지 그러냐는 친척의 말에 역정을 내기도 했다. 내 아들이 아프다니. 그저 덜렁거릴 뿐인것을.
증세가 심해진 것은 제대 이후였다. 아들이 지갑을 잊어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전역증도 어느 날 사라졌냐. 너 술 먹고 잊어버린 거니, 라는 내 질문에 아들의 둥그런 눈빛이 흔들렸다. 네, 아뇨, 아뇨. 그리고는, 잘 모르겠어요, 또 아들의 눈은 발 끝에 떨어졌다.
핸드폰을 잊어버리는 일도 잦았다. 핸드폰을 주웠다는 버스기사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고 자식놈과 함께 핸드폰을 찾아오는 길에 나는, 아빠에게는 비밀이다, 하며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 어둔 밤길에도 아들의 둥그런 눈이 나를 한참 바라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은 점차 나가는 것을 꺼렸다. 휴학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휴학계를 내러 학교를 가는 그 짧은 길에도 아들은 두려워했다. 엄마, 아들은 쭈뼛거렸다. 같이 학교 가면 안돼? 그래, 같이 가자. 나는 부러 힘주어 말했다. 아들이랑 데이트하고 좋지. 아들의 손을 잡은 내 손에도 한참 힘이 들어갔다.
휴학계를 낸 뒤, 아들은 방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남편의 눈은 외양간에 있어야 할 소가 거실에 있는 것을 보는 눈빛이었다. 남편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아들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의 침묵은 전에 없이 짙었다. 저녁상을 두 번 차리며 나는 부자의 슬픔을 모두 조용조용히 씹었다.
아들이 바깥을 나가는 일이라곤 이제 나와의 '데이트'가 전부였다. 간혹 아들의 손을 잡고 극장을 가는 것이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아들에게 자주 질문을 던졌다. 그 배우가 접때 그 배우였나? 이 감독이, 접때 그, 그 무슨 영화지? 그래, 그, 도둑들 나오고, 그래, 그 영화했던 그 감독이니? 나는 배우도 감독도 구분 못하는 아줌마가 되어 버스 안 사람들이 전부 이 쪽을 힐긋거릴 때까지 푼수를 떨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그 동안에 아들은 영화표를 잊어버리고 말하았다. 분명 손에까지 쥐어주었던 것을. 아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다시 그 둥근 눈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괜찮아, 재발권받을 수 있어. 이런 걸 갖고 뭘 그래. 엄마도 친구들이랑 영화볼 때 자주 그러는 걸.
그날 처음으로 아들은 병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엄마, 나, 무서워, 다 잊어버리면 어떡해?
다음날 나는 대학병원을 찾았다. 낯선 약 냄새가 풍기는 병원 공기 속에서 나는 문진표를 적었다. 환자분, 혼자오셨어요, 하고 묻는 간호사에게 달려들어 따지고 싶었다. 아니요, 사실 환자는 내가 아니라 내 아들이에요, 내가 환자였다면 내 아들이 나를 데리고 왔을 거라구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의사의 말에 괜히 가슴이 뛰었다. 치매요, 하고 대답하는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수상했다. 몇 가지 검사를 하는 동안 가슴은 멈추질 않았다. 이 와중에도 내가 미친 년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느 엄마가 이제 군대를 갓 제대한 아들에게 치매라는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 내 빈 주먹에 땀이 고였다.
의사는 결국 내 공갈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탄 약도 효험이 짙진 못했다. 용하다는 한의사가 지은 총명탕도 아들의 총명을 되찾지 못했다.
아들의 병세는 진해졌다. 결국 남편은 아는 사람을 통해 병원 진료를 잡았다. 그러나 병실에 오래 묵지는 못했다. 아들과 나는 집에 돌아왔다. 남편은 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고, 아들이 나를 잊어버린 것은 영화표를 잊어버린지 꼭 석달 째 되는 날이었다.
그 이틀 전 아들은 입을 열고, 말도 채 하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얼어붙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은 나를 잊고야 말았다. 나를 보는 눈빛이 다른 무엇을 바라보는 눈빛과 다르지 않았다. 멍하니 벌어진 아들의 입에서 말간 침이 천천히 늘어지다가 이내 바닥에 닿았다.
아들이 말하는 것보다 나를 더 오래 기억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할까. 아들의 흐린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소를 닮은 눈동자에 멍청한 어미의 모습이 비췄다.
더 일찍 데려갔어야지,
남편의 한숨이 가슴을 갈랐다. 아들의 손을 붙들었다. 소가 닭을 보는 것처럼 아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나를 무너뜨렸다.
한참을, 흐느꼈다. 눈물이 치밀어올랐다. 오래 약불로 끓인 찌개가 마침내 넘고 마는 것처럼. 나의 서러움도 임계점을 넘고야 말았다. 내장 밑에서 살갗에 오르기까지, 그야말로 나는 소름이 돋도록 울었다. 아들이 약할 수록 강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이 자리에는 그저, 아들 잡아먹은 멍청한 년과, 병원도 데려가지 않은 미친 년이 울고 있었다. 내가 내 안을 치고 후들겼다. 꺽꺽 북받칠 때마다 나는 그 울음을 삼키지 않았다. 전부 토해냈다. 토해내고야 말았다.
문득 손에 무언가 닿았다.
아들의 손이 고사리 줄기가 오므라드는 것처럼 내 손을 쥐었다.
그러더니.
아들이 천천히 내 손등에 입술을 부볐다.
까마득한 기억이 솟았다. 아들이 까치처럼 작을 무렵, 장에 갈 때면 아들은 늘 내 손을 쥐고 까불락거렸다. 착하지, 꼭 잡은 아들의 손에 힘을 주고 아들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러면 아들은 그 답으로 내 손등에 제 입을 맞추곤 했다. 이 입맞춤은 나와 내 어린 것의 질긴 기억이었다.
무너지듯 아들의 머리통을 끌어안았다. 엄마 손 없이 울음밖에 모르던 그 다섯 살 꼬맹이. 침 흘리는 것도 모른 채, 엄마만 보면 좋아라 헤헤 웃던 그 아이. 유난히 말이 늦던 아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물으면 눈치도 없이 늘상 엄마만 좋다고 해서 아빠를 곧잘 시무룩하게 만들던 아이. 장래 커서 엄마랑 평생 같이 살거라고 말하던 기특한 아이. 조금 늦긴 해도 총명했던 아이. 곧잘 우등상도 타곤 했던 아이. 이른 나이에 군대를 가겠다고 해서 엄마아빠를 놀라게 했던 아이. 일찍 어른되서 효도하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배웅도 필요없다 큰절하고 떠나는 아이를 보며 그 무뚝뚝하던 남편도 눈시울을 붉혔더랬지.
그래, 나는 고슴도치다. 다시 아이가 내 품을 벗어나 걸음을 걸을 때까지 나는 다시 어미가 될 것이다. 세상 어느 것도 아이를 다치게 하지 못하도록, 잔뜩 가시를 돋울 것이다.
아들아, 대신 너는 영원히, 영원히 함함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