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립을 위하여
1.탄금대
“이 곳이 탄금대에요. 어떻습니까, 아래로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기 습지가 형성된 것도 보이구요.”
인솔교사는 이곳에 온 것이 신난다는 말투다. 그러나 학생들은 건조했다. 문장들은 교사의 입 밖에서 무력해졌다. 학생들의 단단한 얼굴 앞에서 무력한 문장들은 방황했다.
“이 곳에서 역사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지요?”
답 없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솔교사는 스스로 답을 찾았다.
“그래요. 탄금대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타며 맥수지탄을 노래한 곳이기도 하고요. 또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신립이 배수진을 쳤다가 중과부적으로 패전한 곳이기도 하지요.”
옥녀봉 위에서 가지를 늘어뜨리고 인솔교사의 설명을 듣던 소나무가 몸을 떨었다. 바람이 그의 몸을 훑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람보다 진하고 강한 것이 소나무 둥치를 흔들었다. 소나무는 그것의 정체를 알았다.
원혼들이 흐느끼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신들의 죽음이 축약되어 한 문장으로, 한 도막의 단어로 설명되고 되풀이되고 해설될 때마다 원혼들은 흐느꼈다. 그들의 어리석은 패배가 무지하고 만용한 죽음이 이 땅을 다시 밟는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 반복될 때마다, 원혼들은 울부짖고 탄식했다.
바람이 그쳤음에도 소나무는 둥치를 떨었다. 그러나 그 탄식을 듣지 못하는 학생들은 교사의 설명을 귓등으로 흘리며 멍하니 탄금대 아래의 충주벌을 내려다보았다. 충주벌을 훑던 바람 한줄기가 치솟아 학생들의 얼굴을 치오르며 하늘로 솟구친다. 솟구치던 바람이,
2.충주벌
꺾인 꽃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두꺼워진 바람은 젖은 흙에 부딪치기 전 몇 번 둔탁하게 퍼덕였다. 축 처져있던 깃발이 그 힘에 잠깐 끝을 펄럭였다.
말의 고삐를 잡고 있던 병사는 깃대에 매달린 깃발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깃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단지 깃발 끝에 매달린 가닥가닥의 술이 작은 새의 가슴팍마냥 약하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충주벌은 안개로 자욱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갑옷 안섶이 축축하게 내리던 비는 다행히 그쳤다. 비가 더 온다면 아교를 먹인 활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왜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말이 고개를 흔들었다. 흩날리는 말의 갈기가 병사의 얼굴을 스쳤다. 사람도 말도 함께 축축하고 습습했다.
이레전만 하더라도 벼 자라는 소리뿐이던 충주벌은 소리로 가득했다. 말의 숨소리와 병사들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섞인 알 수 없는 소리가 벌판을 맴돌았다. 사람과 말의 냄새도 한데 뒤섞였다. 앞서 걸어간 말들이 싸지른 말똥들도 그 냄새에 한몫했다. 병사와 말들은 논을 돌아가지 않았다. 발굽에 짓밟힌 벼들은 뒤이은 말똥에 파묻힌 채 썩어갔다.
병사들은 이미 동래성이 항복한 소식을 들었다.
동래에 상륙한 왜군이 이 곳 충주까지 오는 데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충주는 동래와 한양 사이의 복장이나 다름없다. 충주가 당하면 이제 그 다음은 한양이다. 병사들은 끊임없이 두런거렸다.
나이가 많은 병사들은 단군 조선 이래 조선 땅에 이렇게 왜놈들이 깊숙이 들어온 적이 없었다며 혀를 찼다. 식자깨나 들은 병사들은 적의 기세가 파죽지세(破竹之勢)니 하며 문자를 읊었다. 그러나 말의 고삐를 쥔 병사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젊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풋내기였고 애송이였다.
그는 그저 어서 이 전쟁이 끝나기를 바랐다. 말을 타고 세차게 달려가 적을 향해 창을 내지르는 것을 끝으로 전쟁은 마무리되리라 믿을 뿐이었다.
그를 비롯한 충주벌에 모인 팔천의 병사들은 조선 최고이자 최후의 기병이었다. 조선이 가진 남은 무력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을 이끄는 것은 왕의 장인이자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조선 최고의 장수였다.
병사들은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배수의 진을 쳤다. 백발이 성성한 장수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병사들을 전율케 했다.
오늘 이 자리에 조선의 명이 달렸노라.
이기지 못하거든 이곳에서 모두 귀신이 되라.
그들 모두는 그렇게 외치며 입에 백마의 피를 발랐다.
마침내 행군이 멎었다. 사시(巳時:9시~11시)가 지났는데도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았다. 병사들은 일천 보 바깥의 왜군들의 깃발조차 볼 수 없었다.
깃발이 올라갔다. 병사들이 저마다 말에 올랐다. 이 젊은 병사 역시 등자에 발을 올리고 말에 몸을 실었다. 병사들 대부분이 한 번의 시도로 말 위에 몸을 실었다. 일부는 한참을 기우뚱거린 뒤에야 비로소 말 위에서 허리를 세웠다.
우군의 깃발이 움직였다. 우군 쪽에서 분주한 소리가 웅성거리는 동안, 중군과 좌군의 병사들 사이로 장교들이 분주히 병사들의 활과 칼을 점검했다. 조선 군사 전체가 하나의 시끄러운 동물처럼 으르렁거렸다.
마침내 우군의 깃발이 일제히 크게 펄럭였다. 우군이 먼저 움직인다.
곧이어 좌군의 깃발이 펄럭였다. 젊은 병사도 고삐를 바투 당겼다. 한 박자 늦게 심장이 뛰었다. 신발 뒤축으로 말의 배를 가볍게 걷어찼다. 습기에 무겁게 젖어있던 공기들이 뺨에 세차게 부딪치며 흩어졌다.
팔백 보.
두두두두두두두. 충주벌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까지 기어들어온 왜놈을 맞아 조선 땅이 몸을 일으키려는 것처럼.
칠백 보.
여기저기서 병사들의 밭은 외침 소리가 들렸다.
오백 보.
한 옹쿰씩 땅을 접어나가는 것처럼 왜군들이 가까워졌다. 왜군의 깃발에 적힌 한자를 읽을 수 있었다. 왜군들의 표정이 보였다.
삼백 보.
저마다 고삐를 놓고 활을 빼들었다. 말의 속도는 최고조였다.
백오십 보.
시위를 놓는다.
잘 익은 물오이 씨앗처럼 여기저기서 왜군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일백 보가 채 되기 전, 병사들은 말 머리를 돌렸다. 일부 서투른 병사들은 왜군들과의 거리가 30보도 채 안남을 만큼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다. 붉은 진흙이 튀었다. 말이 방향을 돌리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삼백 보.
다시 왜군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활 통에서 저마다 다시 활을 꺼냈다. 다시 시위를 매겼다. 뺨에 붙인 화살 깃이 파르르 매의 소리를 내며 떨었다.
백오십 보. 조금 더 다가가야 한다.
일백 보.
일백 보였다. 병사들이 시위를 놓으려는 순간이었다. 시위를 놓던 순간, 젊은 병사는 어쩌면 병사들 사이에서 돌던 헛소문을 떠올렸는지는 모른다.
왜군의 신무기. 왜군들이 창끝에 촉을 달지 않고 창 자루만 들고 다니는 데 그 안에 화약을 쟁여놓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흡사 철포 같기도 하고 시위가 없는 노(弩)같기도 한 그 막대가 토해내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해도 눈과 귀에서 피가 터져 나온다고 했던가.
왜군들에게서 벽력같은 소리가 터졌다.
여기저기서 말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피를 쏟으며 고삐를 놓친 주인을 떨어뜨리고 왜군의 대열로 달려드는 말도 있었다. 젊은 병사는 활을 놓친 것도 잊은 채 빈 주먹으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고 있었다.
다시 왜군들에게서 벽력같은 소리가 들렸다. 병사는 한쪽 손을 올려 자신의 귀를 더듬어 보았다. 피가 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병사는 그 손으로 가슴을 내리눌렀다. 그리고 병사는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이유가 놀란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갑옷에서 배어나오는 검붉은 자국이 자신의 피라는 걸 깨닫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얼하게 가슴에서 번지는 통증도 믿기지 않았다. 입 주위에 바른 백마의 피가 말랐는데.
가슴에 번지는 피는 마르지 않네.
병사는 고삐를 놓쳤다. 자신이 충주벌의 진흙에 고개를 처박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말은 주인을 잃은 것도 모른 채 앞으로 날아가듯 달려가고 있었다. 병사는 말의 엉덩이에도 붉은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병사는 왜군 쪽에서 터져 나오는 마른 벼락소리를 세 번을 더 들었다. 그 후에는 모든 소리가 한데 뭉쳐 고막 안으로 갇혀버렸다.
젊은 병사가 죽고도 조선군은 마지막 한 번의 돌격을 더 감행했다. 그리고 그 것이 끝이었다. 수천 년 백성들이 쌀을 길러온 흙에는 남한강과 달천의 물기가 어려 있었다. 흙은 물렀다. 말들은 진흙에 다리가 묶인 채 울부짖었다. 왜군들은 벽력 소리를 터뜨리며 천천히 전진해왔다.
그날 조선 최고이자 최후의 기마병들은 궤멸했다.
3.니탕개
‘아직은 늙지 않았다. 아직은······.’
신립은 자부했다. 아니, 자위했다.
그러나 요사이 들어 정신을 놓는 순간이 많아졌다. 방금 어전에서도 그러지 않았던가. 신립은 고개를 흔들었다.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늙는다는 것은 단지 백발의 털과 얼굴의 주름을 의미하는가.
늙는다는 것은 기대보다 기억에 의지하는 것이다. 살아온 세월이 백발로 꼰 새끼마냥 생각을 단단히 묶는다. 고집과 아집이 왼고개로 새끼를 꼬아 올린다.
늙는다는 말은 장수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장수에게는 늙었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말로 그 말을 대신한다. 늙은 장수는 쓸모없다. 필요한 장수는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다.
늙었다는 말은 약하다는 말과 동등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늙은 장수를 두려워한다. 장수가 늙었기 때문에 전쟁에 패하는 것도, 장수가 늙었음에도 전쟁을 이기는 것도 모두 두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장은 항상 전장에서 마지막 패로 던지는 것이다. 노장이 져서 얻을 피해와 노장이 이겨서 얻을 명성을 모두 걸고.
늙지 않았다고 자위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들리는 늙었다는 말이 신립을 옭아매었다.
어전에서 왕을 뵈었다. 백발이 성성한 늙은 신하들 앞에서 왕은 신립에게 전장에 나갈 것을 명했다. 조선 총사령관의 지위를, 조선의 모든 말을 징집할 권한을 주었다. 왕이 친히 칼을 내렸다. 그리고 몇 번째 잔일지도 모를 어사주를 따라주었다. 신은 오른손이 떨리는 것을 감추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야했다.
그럼에도 흔들리는 잔 안의 술을 보며,
신립은 니탕개를 떠올렸다.
‘잔뼈가 굵도록’ 여진과 싸워왔지만 니탕개는 그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여진들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말 위에 아이를 얹어놓는다고 했다. 땅을 밟는 시간보다 말 위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고 했다.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쓸 나이가 되면 활을 들린다고 했다.
신립은 그런 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신립은 기병을 이끌었다.
서로 시위를 겨누고 화살을 날렸다. 26년 전 뺨을 스쳐간 여진의 뼈 화살은 신립의 얼굴에 흉터를 남겼다. 신립은 가만히 손으로 그 상처를 더듬어 보았다. 그때 화살이 뺨을 찢는 순간에도 신립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건 신립에게 화살을 쏜 여진도 마찬가지였다. 신립의 화살이 그의 목을 관통해도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여진은 용맹한 이들이었다. 팔다리가 끊기고도 저항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냄새 고약한 침을 뱉어대면서 풍기면서 항전했다. 갑주를 뚫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뼈로 촉을 만든 화살을 날렸다. 병사들은 그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장수들은 병사들이 여진을 비웃도록 두었다. 그리나 신립은 여진들이 조선 병사들의 얼굴을 겨누고 살을 쏘는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뼈가 쪼그라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여진의 마을을 불태웠다. 여진의 여자와 아이들을 죽였다.
팔다리가 끊기고도 침을 뱉으면서도 저들이 막고자 했던 것이다.
여진도 수많은 조선의 마을을 불태웠다. 조선의 여자와 아이들을 죽였다.
저들의 팔다리를 끊고 그 침을 맞으면서도 우리가 막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둘은 서로의 여자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여진과 조선은 전장에서 마주했다. 서로 팔다리를 끊고 서로 침을 뱉었다. 서로 화살을 날리다 붙어 칼로 육박전을 벌이는 그 전장에서 불쌍한 것은 말 뿐이었다. 불쌍한 것들. 오오. 진심으로 불쌍한 것들.
신립은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니탕개.
지금도 떠오르는 그 얼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머리. 니탕개의 오른쪽 눈썹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흉터. 좁은 콧날.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서로 초점이 맞지 않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혹 사팔뜨기였던 것일까. 신립은 살아있는 니탕개를 만나 그 의문에 답을 구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죽은 니탕개의 머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신립은 잘린 니탕개의 머리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마치 애인의 얼굴이라도 되는 것처럼. 목이 잘린 단면을 보아도 믿기지가 않았다.
니탕개가 죽었다니.
여진의 대장.
여진 기병 일만을 이끄는 대장이었다.
신립 휘하에는 오백 기의 철기병이 있었다. 자살에 가까운 돌진이었다. 부장이 만류했지만 신립은 웃었다. 광기 어린 웃음이었다. 젊은 장수였기에 그처럼 웃을 수 있었다. 백마의 목을 쳤다. 애꿎은 것. 불쌍한 것.
말의 목에서 솟는 피를 내어 모두의 입에 발랐다.
죽자. 고이 죽어 선산에 묻히지는 않겠다. 이곳에서 귀신이 되자. 동강난 몸으로, 꿰뚫린 몸으로 압록강 너머의 귀신으로 조선을 지키자. 승냥이를 상주로 삼고 검수리가 조문을 오게 하라. 그것이 조선 무인의 긍지다.
오백 명의 함성이 신립의 말에 화답했다. 신립은 오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귀신이 되자.
부장에게는 말을 세 필 주었다. 아군 오백 기가 적의 일만 기에 꿰뚫릴 것을 대비해서였다. 전투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압록강을 건너게. 장부를 미리 써두게. 여진이 아군 오백 기를 대파하고 강을 건널 것이니 그에 대비하라고.
호방한 말만큼 신립은 두려웠다.
패배. 오백 기를 압도하는 일만 기, 그리고 그 일만 기를 압도하는 패배의 공포가 니탕개라는 낯선 여진의 이름과 섞여 신립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가 용병(用兵)의 달인이라는 것이 사실인가. 그가 여덟 살 때부터 부족들의 싸움에 참여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가 여진들에게 쇄자갑을 입을 것을 종용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가 한족에게서 병법을 익힌 것이 사실인가. 그가 조선말을 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이 싸움이 있기 전부터 그가 압록강 근처에서 조선군의 움직임을 캐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의 부인 중 다수가 조선 여자라는 것이 사실인가.
치사(馳射)다. 활로 쏘며 달려들 것이다. 치돌(馳突)은 시간을 끌지 못한다. 강 건너의 아군이 정비할 수 있도록 우리 오백 기는 이곳에서 시간을 끌며 최대한 버틴다.
아직 수염도 채 나지 않은 애송이 신립은 그렇게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초원의 해가 아직 어슴푸레할 무렵, 신립을 필두로 한 오백 기가 삼각뿔의 대형으로 여진에게 달려들었다.
언덕 위에서는 부장이 이미 완성된 장부를 들고 말을 타고 초조하게 전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전투는 극악하리만큼 조잡했다.
치기에서 우러나온 신립의 돌격만큼이나 유치한 운명이었다.
니탕개는 여진의 선두에서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치사(馳射). 눈 먼 화살이었음이랴. 니탕개 그 자신이 알아차리기도 전 화살이 그의 가슴을 바투 꿰뚫었다. 등까지 뚫고 나온 화살은 날개뼈 밑에서 촉을 내밀었다. 니탕개가 피거품을 뿜고 나뒹굴자 장수를 잃은 여진은 뿔뿔이 흩어졌다.
팔다리가 끊기고도 저항하던 여진의 병사는 없었다. 패주하는 여진들은 자신의 말을 잃을 것이 두려워 여러 개의 고삐를 쥐고 달렸다. 니탕개만이 홀로 여진이었다. 나머지는 일만의 메뚜기였던가.
그들은 모두 용맹을 잊어버렸다.
오백의 철기병은 여세를 몰아 여진의 마을을 돌며 불태웠다.
완성된 장부를 찢고 새로 작성한 장부에는 열 자도 채 넘지 않는 한자가 적혀있었다. 신립이 일만의 여진을 격퇴하다. 장부는 손에서 손을 거치면서 불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임금이 신립을 불렀을 때 그것은 일천 자 가까이 되는 장문의 보고로, 신립도 믿을 수 없는 무공이 화려하게 범벅되어있었다.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도 신립은 믿을 수 없었다.
사위가 왕에 오르던 때도.
신립은 믿을 수 없었다.
무과에 급제하여 청운의 꿈을 꾸던 날도, 이 정도의 야망을 꿈꾸지는 못하였다. 지나치게 높은 누각이다. 그러나 이후로도 신립은 전장에서 패하지 않았다. ‘잔뼈가 굵도록’ 살았다. 쌓은 전공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흔들리는 누각에 올라 신립은 그날의 초원을 생각했다.
여진의 시체로 가득한 초원.
구출한 조선인 포로 중 한 사람이 들판에 널린 여진의 시체들 중 니탕개를 알아보았다. 까마귀를 쫓았다. 다행히 니탕개의 머리는 아직 온전했다. 굵은 은 귀고리를 하고 있었다. 그 귀고리는 전에 이곳에서 죽은 조선 장수의 가락지라고 했다. 신립은 죽어 널브러진 니탕개를 바라보았다. 혹 자신이 쏘았던 여진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니탕개의 얼굴은 낯선 것이었다.
‘이 자가 죽지 않았더라면, 일만의 여진은 모두 팔다리가 끊길 때까지 싸웠을까?’
‘일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었음에도 선두에서 달려드는 장수가 있었기에 여진은 용맹하게 싸울 수 있었단 말인고.’
그 이후로 니탕개의 얼굴은 신립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렸음에도 이제 숨길 수 없이 늙어버린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는 얼굴이었다. 신립이 쌓아올린 명성도, 그 혁혁한 전공도 언젠가 허무하게 가슴팍에 화살을 맞고 들판에 널브러지는 날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거라고 니탕개는 신립을 조롱해댔다. 네놈도 나와 다르지 않다, 네놈도 나와 다르지 않다. 여진말로, 그리고 때로는 조선말로 니탕개는 신립을 조롱해댔다. 신립 자신도 입을 다물었다. 꿈에서 허무하게 들판에 쓰러져 있는 모습은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관복도 말도 자신의 것이다. 그러나 쓰러져 있는 그 자신의 몸뚱이에 박힌 얼굴은 언제나 니탕개였다.
니탕개의 얼굴은 밤과 낮을 드나들었다. 깨어있는 와중에도 점점 더 자주 나타나는 얼굴이었다. 중신들의 얼굴. 자신들을 올려다보는 젊은 장수들의 얼굴. 훈련 되지 않은 병사들의 얼굴.
패배. 의심. 전사. 회의.
니탕개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어전에서 왜 손을 떨었던고. 신립은 왕을 보지 못하였다. 곤룡포를 입고 자신에게 술을 내려주는 니탕개, 임금과 사위의 탈을 쓴 니탕개를 보았을 뿐이다. 의심. 회의.
“왜군이 새롭게 철포를 조작하고 병을 정비하였다고 하는데 공이 어찌 이를 돌파할 것인가.”
신립은 눈을 감았다. 철포가 기병을 어찌 뚫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직 철포는 활에 비할 것이 되지 못한다. 신립은 개량된 철포랍시고 내놓은 승자총통을 보고 고소(苦笑)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조잡한 철구에서 터져 나오는 조악한 화력의 탄환들. 신립이 보기에 아직 철포는 각궁에, 편전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역사 삼백 년의 조선 철포가 그러할 진데 왜놈들의 철포가 어찌하겠는가.
그 조그만 탄환이 과연 말의 살과 가죽을 찢고 심장을 관통할 수 있겠는가.
갑주를 뚫고 지나갈 수 있겠는가.
왕은 그저 신립을 의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신립이 늙었기 때문이고.
신립이 늙었기 때문이었다.
4.악몽
“새재에서 방어전을 하는 것이 마땅하오.”
“이미 왜군이 올라오는 속도가 단순한 왜구의 무리라고 할 수 없는 작태이옵니다. 장군. 한시 바삐 저들을 맞아야 함이 마땅한 줄로 아뢰오.”
신립이 눈을 떴다.
“왜군의 대부분이 보병이다.”
무성한 백발의 수염 사이에서 신립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떠들어대던 장수들이 한순간에 입을 다물었다. 네놈은 음서(蔭敍)로 들어온 자가 아니더냐. 네놈은 무과 때 말 위에서 목창을 채 가누지도 못하던 자로군. 네놈은 병법만 읽어댔을 뿐 전장에 서 본 적도 없는 백면서생이 아니더냐. 그렇게 외치고 싶은 것을 참기 위해 신립은 어금니로 입 안의 살을 지그시 깨물었다. 다시 신립이 침묵하자 좌중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조령에서 방어전을 함이 최선이오.”
“방어전이라니?”
“장군께서 말씀 하셨듯 지금 들어오는 왜군의 절대다수가 보병이오. 이들이 조령을 오르는 데만도 많은 곡량이 필요할 뿐 아니라 피로가 누적되어 있을 것이오. 조령은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일 뿐 아니라 험준한 요새요. 따라서 요새를 지키고 오는 적을 막는 것이 병법에도 이르는 말인즉.”
장수들이 분분한 가운데 신립은 수염을 떨고 있었다. 전장에 서보지도 못한 이들이 병법을 논한다. 이들 중 과반이 문신(文臣)이다. 이들은 여기서도 입을 놀려 싸우려는가. 붓으로 적의 목을 베려는가. 닥나무 종이로 적의 화살을 막으려는가.
신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신립이 말하리다.”
신립은 입을 다물었다. 신립의 오른손이 심하게 떨고 있었다. 하마터면 칼을 뽑을 뻔 했다. 좌중은 니탕개의 얼굴로 가득했다.
그리하여 신립은 자신이 늙었음을 새삼 느꼈고.
어쩔 수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왜군의 대부분이 보병이다. 그 수를 짐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동래를 격파한 왜군은 제 1병에 불과할 뿐, 제 2군과 제 3군이 속속들이 동래에 도착하고 있다고 들었다. 또한.”
“경상좌도방어사 변기 등이 다시 조령에서 일전을 벌일 것을 말하나 이는 옳지 않다. 조령은 우리에게도 좁은 지형이다. 적에게 곡량이 없는 것을 말하나 아군도 조령에서 말을 먹일 곡량이 없다. 또한 조령에서는 기병을 운용할 수가 없은즉, 이는 산성에서 말을 죽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말을 죽이고 산성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적의 강점이 두려워 우리의 강점을 포기하는 것이니 병법에서 이르는 싸우기 전에 지는 것을 걱정하는 작태요, 곧 장수의 자세라 할 수 없다. 또한 팔천의 기마는 조선의 전 기마이다. 저 기마를 포기하고 설령 새재에서 우리가 왜군을 이긴다 한들 다시 팔천의 기마를 어디서 구하겠느냐.”
“또한 왜군은 전란을 겪고 이겨낸 자들이니 공성전에 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아군은 방어에 능하냐고 묻는다면 이 또한 왼고개를 틀 일. 과연 새재에 끓는 기름이 준비되었단 말인가, 아니면 화살이 준비되었단 말인가. 수성(守城)은 공격보다 더 많은 화살과 장비가 필요하다. 지금 조령에는 그러한 물자가 준비되어있지 않은 즉.”
“장수들이 병사의 훈련을 탓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나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은 나의 탓도 크다. 장수들의 말 그대로 병사들은 기마에서 몸을 가누는 것도 능치 않다. 그러나 왜의 땅은 평야가 협소한즉 기병이 발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저들은 기마를 보는 것에 능하지 않다. 또한.”
“아군의 훈련이 그리 성하지 않음을 말하면서 어찌 조령까지 행군함을 입에 올리는가. 조령에 들기도 전에 병사 태반이 탈주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병사라는 것은 말에 올라타면 없던 용기도 생기는 법이다. 게다가 적이 보병이라면 더욱 더.”
“따라서 기마의 운용이 용이한 들판에서 적을 맞아야 한다. 마땅한 벌판이 없은 즉,”
“충주의 탄금대에서 진을 친다.”
좌중의 하나가 입을 열었다.
“배수진입니다. 장군.”
신립은 그를 노려보았다. 니탕개야. 아직 죽지 않았느냐.
“국운(國運)이 걸린 전투다!”
수염이 떨렸다.
“장수가 패주의 방도를 생각하고 있는가!”
신립은 주먹을 쥐었다. 함부로 입을 놀리던 장수가 고개를 숙였다. 신립이 좌중을 돌아보았다. 신립과 눈을 마주치려는 이가 없었다. 그것은 한없이 쓸쓸한 광경이었다.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친다. 병사들을 독려해야 한다. 우리에게 유리한 전투가 될지라도, 이 전투가 마지막 전투가 아님을 그대들도 되새겨야 한다.”
“좌군, 우군, 중군으로 나누어 활꼴로 진을 친다. 중군이 먼저 치사(馳射)하여 들어가면 왜군이 이를 막기 위해 몰려들 터인즉, 이를 좌군과 우군이 포위한다.”
“치사(馳射)라 하셨습니까?”
“그렇다. 치사(馳射)다. 활로 쏘며 달려드는 것이다. 왜군의 보병은 장창을 쓰고 새로이 철포를 조작하였다 하니, 무작정 달려드는 치돌(馳突)은 위험하다.”
“······.”
어떻게 회의를 끝냈는지도 모르게 어느덧 막사 안에 남아있는 것은 신립 혼자였다. 일어서 혼자 막사 안을 걷던 신립은 상에 놓여있는 각궁(角弓)을 집어 들었다. 왕이 하사한 것이다. 이 두 손에 직접 내려 준 것이다. 이 늙은 몸이 어전 앞에 고개를 숙이고 기어가 받아온 것이다.
신립은 마치 그 활을 처음 보는 양 더듬었다. 좋은 활이다. 물소의 뿔이 마치 버드나무의 뿌리처럼 질기고 유연했다. 혹 조선이 각궁으로 무장한 병사들로 역심(逆心)을 품는 것이 두려워 명은 조선에 파는 물소의 뿔도 수를 헤아리고 있었다. 곧 탄금대에서 벌어질 전투를 바라보는 것은 한양의 임금뿐만이 아니다. 그 뒤엔 명의 황제가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니탕개.
한양의 니탕개.
명의 니탕개.
검고 반들반들한 활의 몸을 쓸던 신립이 활에 시위를 걸었다. 활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만곡으로 굽어있던 활은 꿈틀거리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빈 시위를 당겨보았다. 앙상한 신립의 팔뚝이 깨질 것처럼 부풀더니 금이 가듯 핏줄이 퍼진다. 시위를 놓는다. 허공이 날아가 허공을 맞추어 깨뜨린다.
신립은 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니탕개를 떠올렸다.
그날 밤 신립은 악몽을 꾸었다.
5.격전
세 번의 돌격이 끝났다. 좌군과 우군이 패주했다. 중군은 호구(虎口)에 든 형국으로 왜군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조총소리가 쉴 새 없이 보병을 압박했다. 날뛰는 것은 주인을 잃은 말 뿐이었다. 대장군이 있는 위치까지 밀려든 왜군을 보며 신립은 장수들을 돌아보았다. 고삐를 바투 당겼다. 말발굽이 땅을 긁었다. 과연 좋은 말이다.
신립과 장수들이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분전 중에도 신립은 미소했다. 늙었다. 이 와중에도 이리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니.
말 위에서 왜군 하나의 몸을 칼로 비스듬히 베며 달려 나갔다. 신립이 베었다기보다는 말의 힘이 베어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칼을 물고 있던 왜군의 살과 갑옷이 벌어졌다. 어깨가 반쯤 잘려나가 붉은 피를 후드득 쏟아내면서도 아직 서있는 왜군의 모습을 뒷눈으로 흘기며 신립은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땅이 젖어있구나.
여기저기서 왜군의 철포 소리가 들렸다. 조선군은 패주하고 있었다.
왜군은 머리를 깎고 천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여진과 흡사했다. 본디 오랑캐란 다 그런 것인가. 뒤에서 창이 날아들었다. 잽싸게 몸을 틀어 피한 신립이 고함을 지르며 다시 칼을 휘둘렀다. 코를 베인 왜군이 비명을 질렀다. 벌린 입으로 칼을 쑤셔 넣었다. 엉성하게 나있던 이빨들이 칼날에 부딪치며 우두두 부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신립은 얼굴을 찡그리며 왜군의 가슴을 걷어찼다. 칼이 뽑혀 나왔다.
“장군, 포위되었습니다. 장군!”
“도망하셔야 하옵니다. 장군. 패잔병을 수합하여 무리를 만드셔야 함이 먼저인 줄로 아뢰오!”
이 와중에도 너희는 도망을 가겠다는 것이냐. 신립은 자신에게 외쳐대는 젊은 장수 들 중 한 사람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네 이름이 신흠이었던가. 아니면 내 조카였던가.
신립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또 다른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익혀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다시 신립이 칼을 휘둘렀다. 젊은 장수들도 훈련되지 않기로는 병사와 다를 바 없었다. 주변의 장수들 역시 포연과 포성에 놀란 말을 바로 다루는 것만으로도 지쳐있었다. 과연 저들과 함께 길을 뚫을 수 있을까. 길을 뚫는다면. 설령 길을 뚫는다면?
길을 뚫는다 하더라도 그 끝에 길이 있는 것은 아니리라.
오히려 신립은 막힌 길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이 즐거웠다. 말이 젖은 땅을 디디며 미끄러지면 고삐를 바투 당겨 구렁에서 말을 빼낸다. 말과 일체가 된 장수에게 왜군은 감히 창칼을 겨누지도 못하고 있었다. 과연 미숙한 놈들이로고.
칼에 손가락을 상한 왜군 하나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다시 칼을 휘둘렀다. 이가 나간 칼은 철퇴나 다를 바 없었다. 목덜미가 한 웅큼이 달아난 니탕개가 비명을 입에 문채 쓰러졌다.
니탕개······.
니탕개?
신립이 놀라 방금 자신이 벤 왜군을 바라보았다. 니탕개가 아니다. 저건 왜놈에 지나지 않아.
“장군, 지금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저들이 우리에게 철포를 쏘고 있지 않사옵니다. 장군, 이것은 우리를 생포하려는 계략이외다! 몸을 피하셔야 할 때요, 장군.”
“장군! 어디로 말고삐를 돌리시는 겝니까?”
“그쪽으로 가시면 안됩니다!”
“장군!”
6. 배수진
신립은 스스로 절벽에 올랐다. 우륵은 이 절벽에 올라 망한 나라를 탄식했다. 악사는 가야금으로 망국을 탄식했다. 패전한 장수는 무엇으로 탄식하는가.
긴 장대를 든 니탕개가 달려온다. 칼로 장대를 쳐낸다. 잘린 장대를 휘두르는 니탕개의 손목을 치고 칼날을 돌려 목을 내리친다. 목뼈에 부딪친 칼날이 징 울린다. 피를 뱉어내며 무어라 외치는 니탕개의 가슴을 발로 찬다.
옆에서 다른 니탕개가 달려든다. 칼로 칠 겨를이 없었기에 그냥 발로 내리 찼다. 니탕개의 얼굴에 못이 빼곡한 신발이 박힌다. 신발을 뽑아내자 얼굴이 반죽처럼 되어버린 니탕개가 나동그라진다.
뒤쪽에서 니탕개가 깃발이 묶인 장대를 휘두른다. 어깨를 맞았다. 둔탁한 고통이다. 다시 니탕개가 소리를 지르며 장대를 휘두른다. 신립도 칼을 휘둘렀다. 장대는 베어냈으나 무뎌진 칼날이 미처 깃발을 베지 못한다. 깃발에 말려버린 칼을 신립은 놓쳐버리고 만다.
니탕개가 또다시 달려든다. 니탕개의 칼날이 신립의 종아리를 스친다. 신립은 다시 그 니탕개의 얼굴을 발로 걷어찬다.
일만의 니탕개로구나.
신립은 허탈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말을 돌려 달려 나갔다. 뒤에서 신립을 쫒아 달겨오던 장수들이 신립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누군가가 외마디 고함을 지르며 빈 손의 신립에게 왜도를 던졌다. 신립이 그 칼을 받고 뒤를 돌았다. 신립에게 왜도를 던진 장수는 가슴팍을 창에 관통당한 채 말 위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다른 니탕개가 그를 말에서 끌어내리고,
목을 잘랐다.
목을 잘린 장수의 이름이 신흠, 이었던가. 내 조카, 였던가.
7.필마단기
이제 장군을 외치는 소리도 없다. 오직 니탕개들만이 신립을 둘러싸고 있었다.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니탕개.
그리고 신립.
신립은 강을 보고 있었다. 배수진으로 병졸들이 도망할 생각을 없애고 싸움에 전념케 한다는 생각은 얕은 것이었다. 헤엄을 쳐 그 넓은 강을 건너는 이들이 많았다. 저토록 자맥질에 능한 이들이 어찌 수군에 모이지 않았단 말인가. 놀랄만한 일이다.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조선 군사들은 말을 탄 채 강을 건넜다. 말은 가르치지 않아도 헤엄을 친다는 것을 저 놈들이 어찌 알았을꼬.
아니다. 저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오직 저들이 아는 것은 두려움뿐이다. 그렇기에 저들은 달아난다. 달아나고 또 달아난다.
신립은 몸을 떨었다.
두렵다. 두렵구나. 갑주 안이 불에 달군 것처럼 뜨거워 땀이 흥건한데도 이처럼 몸이 떨리는구나. 전장은 두렵지 않았다. 다만 전장이 아닌 것들이 두려웠다. 그래서 신립은 전장에서 도망하지 못했다. 말 위에 오른 채 도망하는 이들이 가득한 강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너도 달아 나거라. 저들을 좇아 너도 달아나라. 훠이훠이 달아 나거라. 머리만 남은 니탕개가 신립의 주위를 날아다니며 소리 질렀다. 죽을 준비가 되었느냐, 신립아, 니탕개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서려있었다. 얼핏, 니탕개의 목소리가 왕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립은 고개를 저었다. 불충이다. 불충.
조선의 병사들은 죽을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메뚜기나 다름없던 여진들이 떠올랐다. 불쌍한 것들. 애꿎은 것들. 신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달아나는 조선의 기병들이 측은키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일만의 여진이 달아나고 남은 여진의 마을을 자신이 어떻게 했더라?
그 여진들처럼 저들도 병사가 아니다. 저들이 결사의 다짐을 했던가. 저들이 훈련이라도 한 번 제대로 받은 자들이던가.
저들은 그저 말을 탔을 뿐이다. 졸병으로도 끌고 다니지 못할 이들이 단지 말 위에 올라 있었을 뿐이다.
저 멀리에서 니탕개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신립은 이제 칼을 들 힘조차 없었다. 그러나 신립은 다시 왜도를 바투 쥐었다. 칼을 쥘 힘조차 없다 한들 저들이 다가오면 저들의 목을 칠 힘은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구냐. 잔뼈가 굵은 장수가 아니더냐. 신립은 고소했다. 신립은 죽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신립은 누구로서 죽어야 한단 말인가.
아집만 부리다 자신과 자신의 부하까지 모두 죽게 한 졸장으로? 왕의 사위로 촉망을 받다 패전의 책임을 지게 된 노장으로? 도망한 조선인들을 대신 해 목숨을 잃는 그저 한 명의 조선인으로? 앞으로 있을 왜놈들의 살육에 대한 책임자로?
아니면 말을 탄 병사 중 한 사람으로서.
문득 신립은 자신의 갑주가 너무 화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자신도 머리를 깎고 가죽옷을 입었다면. 죽기에는 더 편했을 것이다.
신하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신하로 죽는구나.
말 위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말 위에 죽는구나.
고삐를 바투 쥐었다. 팔은 떨렸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죽음을 각오한 이 순간에도 죽음이 다가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만주에서 조악한 칼을 쥐고 달려들던 여진들이었다면 자신의 목줄기를 내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입가에 백마의 피를 바르고 날뛰던 젊은 신립, 수염도 돋지 않은 젊은 신립이라면 가슴으로 화살촉을 받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립은 더 이상 젊지 않다. 왜군 또한 여진이 아니다.
왜군. 방금 왜군이라 하였는가.
신립은 자신을 잡기 위해 장대를 들고 몰려드는 왜군들을 보았다. 니탕개의 얼굴은 없었다. 신립은 왜군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서 알 수 있었다. 지금 니탕개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신립 자신이었다.
저들은 나를 죽이지 못한다. 저들은 결코 신립을 죽이지 못한다.
이 전장에서 신립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신립뿐이로구나.
신립은 눈을 감았다. 그 사실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감은 눈꺼풀 속에서 일만의 여진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서 니탕개가, 머리가 붙어있는 니탕개가 달려오고 있었다. 니탕개의 오른손에 들린 칼이 햇살을 받아 번쩍였다.
다시 신립은 눈을 떴다. 그리고 말을 돌렸다. 탄금대가 아찔하게 꺾어져 충주벌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단 한 명의 왜군도 없었다. 이 드넓은 벌에서 방해받지 않고 말을 달릴만한 유일한 곳이었다. 바위는 단단하지만 말발굽을 상케 하지 않느니라. 신립은 고삐를 당겼다. 말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달려 나갔다. 과연 좋은 말이었다. 바람이 솟구쳤다. 넘실거리는 푸른 강이 눈앞에서 빠르게 쏟아졌다.
필마단기.
신립은 칼을 들었다.
그야말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의 돌격이었다.
8.신립
신립은 감은 눈을 떴다.
분전 끝에 신립이 탄금대에 뛰어들어 자결하다.
자신의 죽음은 몇 글자로 전해질 것인가. 또 몇 글자가 그 위에 덧붙여질 것인가. 달아난 이가 많다. 말 세 필을 남겨 장부를 올릴 이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신립이 패배하다. 신립이 자결하다. 장부를 올리는 이도, 장부를 읽는 왕도 믿지 못할 이야기다.
신립은 그들을 위해 수백 번의 전장을 이겼다. 조악한 장비와 적은 수로 수많은 적과 맞섰다. 신립은 전장에서 단 한 번도 우위에 서 본 적이 없었다. 열세와 열세의 전장을 승리로 범벅한 끝에 신립은 처음으로 패배를 맞았다.
아니, 변명은 필요 없다. 좋다. 이제 신립은 패장이다. 이제 그들은 신립이 어째서 패배했는지 자결하였는지 이해하지도 이해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신립의 낙하는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신립의 질주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말에 오른 채 왜도를 들고 신립은 탄금대에서 뛰어내렸다.
이것만이 사실이다.
신립은 왕을 떠올렸다. 니탕개의 가면을 벗은 순수한 왕의 얼굴을 생각했다. 불쌍한 어린아이와 같은 그 겁 많은 얼굴. 신립은 왕이 너무나도 가여웠다. 그 겁쟁이가 어떻게 왕위에 올랐단 말이냐. 자신의 죽음을 듣고 나면 왕은 또 얼마나 겁에 질릴꼬. 울며불며 할 것인가. 불쌍한 것.
팔천의 기병. 신립은 말을 타고 강을 건너 달아나던 이들을 떠올렸다. 언젠가 그들이 다시 병사로 돌아올 수 있기를, 팔다리가 끊겨도 침을 뱉으며 왜군과 싸울 수 있기를 바랐다. 그 기세로 싸운다면 조선은 지지 않으리라.
다만 신립이 두려운 것은, 자신의 죽음이 니탕개의 죽음처럼 되지는 않아야 한다. 신립이 죽었다는 사실이 조선을 겁쟁이로 만들어서는 아니 된다. 나는 한 사람의 군인일 뿐이다. 말을 탄 군인일 뿐이다.
저기 앞에 있는 니탕개가 있다.
그를 베어야지.
시퍼런 물속에서 니탕개가 칼을 빼어들고 달려들고 있다. 말 주둥이가 서로 부딪칠 듯 가까운 거리다. 니탕개는 흡사 물에 비친 신립 자신의 그림자처럼도 보였다.
신립은 왜도를 쳐들었다. 신립 자신은 졸장으로 패장으로 남을 것이다. 신립의 역사는 지금 이 패전으로 끝을 맺을 것이다. 그러나 신립의 죽음은 또 다른 전투를 낳을 것이다. 전투는 또 다른 장수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장수도 잔뼈가 굵어지도록 싸워나갈 것이다. 신립이 없어도 조선은 싸울 것이다.
문득 신립은 우렁찬 고함소리를 들었다. 누구의 고함인가. 왜놈들의 것인가. 아니면 내 속에 눌러 붙어 있는 니탕개의 것인가. 그도 아니면 그 수십 년 전 만주벌에서 외치던 조선병사들의 고함소리인가.
신립은 미소했다. 아아. 정말 늙었구나. 이 와중에도 다른 생각에 빠져있다니, 이 늙은이야.
그리고 곧 이어.
풍덩.
물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신립은 칼을 휘둘렀다.
물이 베어지는 순간 이 전쟁의 끝을 본 것처럼 신립은 미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