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옆에서 마르코 폴로에게 (4) 늙은 주사위 정령과 벌레의 이야기
사막은 끝나지 않았다. 폴로와 떠돌이는 절벽의 그늘 밑에서 한낮의 뙤약볕을 피하고 있었다. 그때 떠돌이가 손가락으로 절벽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이교도의 신들이 절벽에 새겨져 있었다. 폴로가 성호를 긋는 동안 떠돌이는 그 수많은 우상들을 바라보았다. 우상들의 모양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원주민을 닮은 신들의 상반신은 벌거벗었으며, 때로는 팔이 수십 개, 수백 개씩 달린 것도 있었다. 신들은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것 같기도 했으며, 어떤 큰 깨달음을 되새기는 것 같기도 했다. 폴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런 것이 과연 신의 뜻이겠는가.”
떠돌이가 눈을 돌려 폴로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신의 뜻은 무엇입니까.”
폴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사랑이네.”
그러자 떠돌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알라의 뜻은 오직 사랑이며, 그것은 저 태양의 햇빛, 대지 위의 바람처럼 지상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눈 먼 소경처럼 세상 곳곳을 떠돌아다녔습니다. 나는 물속에서 물을 찾는 고기와 같았으며, 술탄의 창고에서 곡식을 찾는 쥐와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콘스탄티노플의 뒷골목에서 정령과 이야기를 할 줄 안다고 떠드는 눈 먼 집시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알라의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제게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늙은 주사위 정령과 벌레의 이야기
오래된 도시의 하수구는 노인의 혈관과도 같습니다. 씻겨가야 하는 것이 씻기지 않고 남은 찌꺼기들로 가득한 법이지요. 뛰어난 술탄의 의사들도 열병과 홍역을 다스릴 수는 있겠지만, 신의 뜻인 노화는 어쩔 수 없듯이 하수구에 쓰레기가 쌓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집시의 주름진 갈색 손에서, 아이들의 통통한 손에서, 늙은 장인의 단단한 손에서 만들어진 온갖 사물들은 하수구 곳곳에 쌓여 작은 동산을 만들지요. 그리고 이것을 노리고 달려드는 온갖 짐승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숨조차 꺼려하는 그곳에서 온갖 질병의 근원인 쥐를 비롯하여, 사탄의 자식인 파리 등등 오물을 먹고 사는 짐승들은 그 곳에서 행복해하며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신이 정해주신 끝이 있지요. 한 늙고 병든 벌레 하나가 마침내 자신의 죽음을 깨닫고 하수구의 후미진 구석으로 몸을 끌고 나타났습니다.
신과 가장 닮은 피조물이라고 스스로 떠들어대는 인간만이 신의 법칙을 거부하려듭니다. 납과 횟가루로 주름을 감추고, 갖은 영약을 먹어 죽음을 늦추려고 듭니다. 하지만 신의 수레바퀴는 멈추는 일이 없지요. 오히려 가장 비천한 피조물인 벌레들은 그 수레바퀴를 거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최후를 알게 되면 조용히 죽음을 기다릴 뿐입니다.
늙은 벌레는 작은 조약돌에 걸터앉았습니다. 그때 벌레의 엉덩이 밑에서 웬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대는 누구시오?”
벌레는 놀라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벌레의 침침한 겹눈과 더듬이는 이미 낡아 쓸모가 없었지요. 그러나 그 목소리는 곧 자신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이 후미진 곳을 지나가는 길손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아마 당신은 내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할 것입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주사위에 깃든 정령입니다.”
벌레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령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령이 자신에게 무슨 용무가 있는 것인지 물었지요.
“아, 그대의 목소리를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벌레라 하더라도 신께서 내려주신 눈과 더듬이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겠지요.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모든 주사위는 던져지는 순간, 하늘을 향한 윗면에 나온 숫자로 그 운명이 결정되는 법입니다. 그대는 부디 나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지 않겠습니까?”
사실 늙은 벌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감각을 잃어버릴만큼 늙어버렸기 때문이지요. 대신 그는 공손하게 정령이 자신의 숫자를 알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주사위를 가지고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합니다. 주사위는 신이 만든 궁창을 담은 것이라고도 하지요. 태양과 달을 제외한 천체인 이 땅과 하늘에 뜬 수성, 금성, 화성과 목성, 토성이 주사위의 각 면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 주사위를 굴려 신의 뜻을 점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노름꾼들의 변명이지요. 신은 주사위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직 노름과 돈에 눈이 먼 인간들이 신의 뜻을 흉내 내어 만든 것이 바로 나, 주사위지요. 그렇지만 나 나름대로 변명할게 있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그 분만큼 공평하지는 않더라도, 나는 제법 공평합니다. 인간이 신을 흉내 내어 만든 또 다른 것인 법을 보십시오. 그 것은 얼마나 불공평합니까. 임금과 왕족, 부자와 장군에게는 항상 좋은 판결이 나오고, 거렁뱅이와 농부, 공방에 일하는 아이와 젖 짜는 처녀에게는 항상 안 좋은 판결이 나오지 않습니까? 세상에 그런 주사위는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이 말입니다.
사실 노름의 결과가 어떻든, 그것은 주사위가 알 바가 아닙니다. 그저 공평하게 데굴데굴 구르는 것이 나의 일이지요. 그러나 지금 내가 그대에게 내가 어떤 눈이 나왔는지 묻는 것은 그럴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작고 가벼운 금속이지요. 나를 만든 사람은 다마스쿠스에서 온 눈 먼 노인인데, 그가 눈이 먼 이유는 어느 노름에서 속임수를 쓰다가 들켰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나와 내 형제들을 만들어 내다판 돈으로 도박 빚을 갚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느 도박장으로 팔려갔지요. 나는 그야말로 도박판 위에서 태어나 도박판 위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도박판은 참으로 신기한 곳입니다. 마치 지옥이 너무 비좁은 바람에, 신이 지옥의 한 구석을 떼어다 이 세상에 붙여 놓은 것과 같지요. 이곳에는 임금과 백정과 사기꾼과 포주가 한 탁자에 앉습니다. 수도승이 역겨운 말을 내뱉고 장군이 겁에 질립니다. 외팔이 외다리가 성한 사람을 이기고, 늙은이가 장성한 청년을 벼랑 끝으로 밀어 떨어뜨리지요. 그러나 결과는 같습니다. 이곳에 발을 들인 사람은 모두 타락하지요. 이곳에서는 차라리 악마의 이름을 부르는 게 더 낫습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지만 악마는 주사위를 건드리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이 도박장에서 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한 청년을 보았습니다. 그는 아마 어떤 일로 큰 빚을 진 모양이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딸은 벌써 노예상인에게 담보로 잡혀있었고, 그의 어린 아들은 길거리에서 떨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와 상대방은 번갈아 주사위를 던지며 목적지까지 말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상대방은 그의 말은 목적지에 딱 한 칸만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상대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한 상인의 첩이 낳은 아들로 몇 판이고 도박을 져도 다음날 다시 헤헤거리면서 등장하는 녀석이었지요.
가난한 청년은 나를 쥐고 애타게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신을 찾았고 신의 자비를 찾았고 신의 사랑을 찾았습니다. 주변의 이들은 그의 행동을 비웃었지만 나는 그가 진심으로 울부짖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그가 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도, 신이 그를 도울 수 있는 것도 오직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내가 6이 나와야만 그가 이길 수 있었습니다. 6분의 1의 확률이지요. 그 정도 확률에 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결코 지나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는 공중에 나를 힘껏 던졌습니다.
모두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지요. 나 자신도 눈을 질끈 감고 가난한 청년의 승리를, 그리하여 그가 신의 사랑을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안타깝게도 탁자 바깥에 떨어져 하수구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도박장에서 탁자 바깥에 떨어진 주사위는 계산하지 않는 법이지요. 가엾은 청년의 운명을 비웃는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비탄한 이를 비웃는 악마의 웃음소리였지요.
나는 이 하수구에서 청년의 비명을, 탄식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신의 사랑조차 받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나는 그의 운명을 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빚을 갚지 못한 왼손이 잘려 어느 부자의 농장으로 팔려갔을 것입니다. 그의 처와 딸은 노예가 되어 또 다른 부자의 시중을 들겠지요. 그의 하나 남은 아들은 술탄의 군인이 되어 기독교 땅 어느 곳에선가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자, 나는 도박의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당신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탁자 바깥에 떨어진 주사위를 계산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정한 규칙이지, 신께서 정한 규칙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정한 법률은 오직 하나, 사랑이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수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가난한 청년도 그의 상대를 맡았던 상인의 아들도 이제 흙이 되어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그 도박판의 결말도, 그들의 결말조차 아는 셈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내가 무슨 눈이 나왔는지 확인해줄 이를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6이 아닌 다른 눈이 나왔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신께서는 그에게 다시 요행을 바라지 않도록 가르침을 주고자 하셨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보다 더 단순한 것이지요. 젖을 보채는 아이에게 젖을 주고 빵을 바라는 거지노파에게 빵을 주는 것입니다.
그 세월 동안 내가 궁금한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내가 6이 나왔다면 신께서는 그를 구하신 셈입니다. 땅에 내린 자신의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자, 신께서 나를 위해 당신을 보내셨습니다. 이제 신 대신 당신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나의 눈은 무엇입니까?“
정령의 말이 끝나자 늙은 벌레는 조용히 주사위에게 다가갔습니다. 다리를 뻗어 그의 위에 쌓인 녹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감각이 없어진 자신의 더듬이로 세심하게 주사위를 더듬었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그대의 눈은 6입니다. 신께서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늙은 벌레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오랜 기다림이 끝난 정령도 하수구에 스며든 낮은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주사위에 무슨 눈이 나왔는지 알 수 없게 된 셈이지요.“
이야기가 끝나자 폴로는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가엾은 청년을 동정하는 것이 신의 사랑이며, 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정령에게 한 늙은 벌레의 거짓 대답이 신의 사랑이네. 신의 사랑을 믿는 자들이 행하는 것이 바로 신의 사랑이지. 주사위에는 ‘만약’이 있지만 신의 사랑에는 ‘오직’ 뿐이라네.”
떠돌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라 외에 신은 없도다. 그러나 신의 뜻 또한 사랑 외에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