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을 위한 이야기(16)

모닥불 옆에서 마르코 폴로에게 (3)성지에 대한 이야기

by 엽서시

폴로여, 들어보시오.

예루살렘에 가 본 적이 있습니까. 황금빛 모스크와 무너진 벽이 있습니다. 검은 모자를 쓴 유대인이 바삐 상점 문을 닫습니다. 유대인의 가게 뒤에서는 터번을 쓴 무슬림들이 소리쳐 기도합니다. 그 사이로 미사포를 쓴 기독교도 여인들이 성묘 교회로 무리져 종종걸음을 칩니다.

그 곳은 모두의 성지입니다.

나는 그 곳에 있었습니다. 그대들 기독교도들의 투석기가 내던진 바윗덩이가 예루살렘의 흰 벽을 내리치던 그 때, 나는 그 곳에 서있었습니다. 나는 맹세했습니다. 성지가 빼앗기느니 성지 위에 서 있는 이 두 다리가 무너져 썩어버리는 것을 택하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내 오른손에 들린 칼이 그대들 기독교도들을 베고 또 베어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대들은 상처 입은 야수처럼 흉폭하고 새끼 잃은 어미만큼이나 용맹했습니다. 우리는 무함마드께서 승천하신 우리의 성지를 빼앗기고야 말았습니다.

내가 또 다시 성지 근처의 사막에 다다랐을 때, 나는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스스로 신성한 성지를 찾아 그들은 떠났습니다."

오로지 성지에 올리브를 나르기 위해 떠돌아다니는 이교도 베두인들이 한 이야기였습니다. 뜻밖에도 그들은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십자군 무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천막 안의 모든 사람들이 웃었습니다. 성전이 기독교도들의 승리로 끝난 오래인데 어떻게 아직도 떠돌이 십자군들이 성지를 찾아 헤맬 수 있겠냐는 비웃음이 술 대신 빈 잔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베두인들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며, 생생하게 기사들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나는 베두인들의 말을 곱씹으며 전장에서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보았습니다. 포효하는 사자와 백합꽃의 그림. 흰 천에 그려진 붉은 십자가. 나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들은 용맹스런 기사단이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들은 그들의 깃발을 보는 것으로 운세를 점치곤 했습니다. 그들의 깃발을 보고도 살아남는다면 그자는 운이 좋은 남자였습니다. 사실 그들의 깃발을 보고 죽는다 하더라도 운이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악착스러운 악마였습니다. 화살비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았으며 빗발치는 칼 세례에도 결코 피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단지 그 기사들은 성지를 찾기 위해 아주 먼 곳에서 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온 땅은 아주 어둡고 추위가 가득한 땅으로 저승과 가까운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고향에는 신의 은총이 없었기에 그들은 신을 찾아 이 남쪽까지 걸어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기 전에 성지를 찾기 전까지는 결코 쓰러지지 않겠노라고 신께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악착같이 무슬림들을 죽였습니다. 어린 아이도 여인들도 그들에게는 용서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성지를 더럽히는 날숨을 내뱉는 그 어떠한 이교도도 용서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십자군의 무력함과 형편없는 군기 속에서도 그들이 성지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가득 채운 분노, 그 것 때문이었습니다.

기나긴 전쟁이 끝나갈 무렵, 마침내 성지의 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들은 십자군 중 가장 먼저 성지에 발을 딛었습니다. 성지 안에서도 그들의 분노는 식지 않았습니다. 성지 안에는 이교도들과 이교도들의 상징이 득실거렸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의 분노는 식지 않았습니다. 분노가 식지 않은 탓에 성지 안에 있는 어떠한 것도 그들에게는 신성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검을 휘둘러 이교도의 흔적을 지우려 들었습니다. 무슬림들이 피와 비명을 토해내며 쓰러졌습니다. 유대인들이 자비를 구하며 버둥거렸습니다. 성지 안의 기독교도들도 그들에게는 용서를 베풀 형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기독교의 탈을 쓴 채 이교도들의 비호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는지, 기사들에게는 이해 될 수 없는 범죄행위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성지를 모두 파괴하려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이교도의 손길이 닿은 성상, 이교도의 양식이 담긴 성당도 그들에게는 용서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그렇게 성지를 되찾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축제를 열었습니다. 그 축제는 피와 주검과 폐허 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성전에서 가장 용맹하게 싸운 그들의 모습이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예루살렘의 성벽 바깥에서 그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지를 찾으러 떠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사막으로 떠났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이 남기고 간 말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용맹했던 기사단과 관련된 기록을 지웠습니다. 그렇게 역사 속에서 포효하는 사자와 백합, 그리고 붉은 십자가의 기사단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째서 예루살렘을 떠난 것일까요. 베두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은 예루살렘을 되찾은 순간 그 곳이 성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성지는 스스로 신성한 곳이지 누군가의 피와 파괴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신성함을 잃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성지가 아니었을 뿐 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지를 찾아 다시 짐을 꾸렸습니다. 더 이상의 분노가 필요 없는 곳, 파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 이미 스스로 신성한 성지를 찾아 그들은 떠났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걷는 길과 길 사이를 다니지 않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사막과 좁은 절벽 사이를 무시로 다닙니다. 그들에게는 시간도 인과의 법칙도 더 이상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실로 고독하게 자신의 성지를 찾아 해멜 뿐입니다.

이후 나는 사해 근처에서 그들 무리를 실제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녹슨 갑옷을 입고 마른 피에 갈래갈래 찢어진 성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장검과 무거운 방패를 든 채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성지를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안식을 주고 싶었지만 그들은 어떠한 안식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성지를 찾아 헤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모래바람 사이로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옳은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들이 성지를 모두 파괴했다면 우리는 다시 우리 모두의 성지를 찾기 위해 싸우거나 헤매지 않을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는 자신의 성지를 찾아 돌아볼 시간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성지를 찾아 떠돌아다닙니다. 어쩌면 그들은 모두의 성지에서 눈을 돌리고 자신의 성지를 찾아 헤매는 유일한 종교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성지를 다시 빼앗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성지를 다시 잃을 것입니다. 신실한 무슬림들과 독실한 기독교도들이 피를 흘리며 성지를 적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지는 예루살렘에 없습니다. 성지는 황금빛 모스크에 있지 않습니다. 무너진 벽에도 있지 않습니다. 성묘에도 있지 않습니다. 성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지는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성지는 신성한 곳으로 남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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