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에서 폴로와 떠돌이는 침묵을 마셨다. 마지막 더운 한모금의 물을 마시고나자 낙타의 위로 만든 주머니에는 이제 한 방울의 물도 남지 않았다. 둘의 입 안에 사막이 피어나고 있었다. 혓바닥은 꿈틀거리는 모래언덕이 되었다. 이빨은 달구어진 바위가 되어버렸다.
폴로가 마지막 발걸음이라고 생각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폴로는 자신 앞에 드리워진 그늘을 보았다. 떠돌이는 폴로를 바위더미 아래의 그늘로 이끌었다. 그 음지에는 바위를 타고 흘러내린 이슬이 모여 있었다. 둘은 바위가 모아놓은 한 바가지의 오아시스를 모두 들이키고야 말았다. 둘의 입속에는 젖은 초원이 되살아났다. 달구어진 바윗덩이는 흰 이빨이 되었다. 불길하게 꿈틀거리던 모래언덕은 부드럽고 유연한 혓바닥이 되었다.
떠돌이는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은 위험한 짓이라는 폴로의 의견에 동의했다. 떠돌이는 해가 지고나면 움직이기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둘은 그 곳에 짐을 풀었다. 둘은 마실 것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떠돌이는 폴로가 이야기하는 모든 먹을 것과 마실 것에 대해 자신의 감상을 덧붙였다. 그러나 폴로가 포도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굳게 입을 다물었다. 폴로는 신기한 듯, 떠돌이에게 물었다.
“그대는 세상의 모든 곳을 보고 모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먹고 마셨소. 그런데 포도주를 단 한 방울도 먹지 않았다고 내게 말하는 것이오?”
떠돌이가 답했다.
“선지자는 우리에게 한 방울의 술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술은 신을 향한 인간의 정신을 흐리게 할 뿐입니다. 취한 인간이 돼지와 닮은 것은 그것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폴로는 고개를 저었다.
“술을 마신 인간이 아름답지 않을 뿐이오. 과한 음주는 우리의 종교도 금하는 바이오.”
떠돌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술에 대한 이야기 중 아름다운 것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폴로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폴로는 진탕 포도주 빛에 젖어가는 사막의 하늘을 보았다.
“이야기는 포도알 하나에서 시작한다오.”
어느 한 포도알의 이야기
"다 이루었도다."
신의 아들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발을 딛고 계시던 시절의 이야기라오. 그 분께서 홀로 광야를 떠돌아다니던 시절, 모든 동식물은 기쁨으로 몸을 떨었소. 포도들은 그중 가장 기쁨에 겨워 날뛰었다오. 왜냐하면 그분께서 가장 기특하게 여기신 식물이 바로 포도였기 때문이오. 들어보시오. 노아는 방주에서 내려 처음으로 포도나무를 가꾸었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첫 기적도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이었소. 그것은 죄에 뒤얽힌 인간이 그분의 손길을 통해 순결한 영혼으로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라오.
피조물 중에 인간이 선택된 것처럼, 포도 역시 선택된 과실이었소. 포도들은 그 영광 속에서 한없이 붉어졌다오. 그래서 포도들은 결심했소. 포도들은 자신들이 선택된 만큼 자신들이 지켜야할 엄격한 의무와 규율을 만들었다오. 포도들은 더 이상 다른 과일들처럼 나태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소. 포도들에게 남은 즐거움은 이제 오직 그분의 입술을 적실 술이 되는 것뿐이었소.
나무뿌리에 적신 지독한 거름은 남김없이 빨아들여야 했소. 아무리 더워도 햇빛을 피해서는 안 되었소. 포도의 노력이 안쓰러워 그늘을 드리워주는 이파리에게, 오히려 성질을 내는 포도도 있었소. 빗방울에 얼굴을 적시는 것도 단연 금지되었소. 빗방울이 과일을 곪게 만들기 때문이라오.
포도들의 노력에 무엇보다 즐거워 한 것은 다름 아닌 포도밭 주인이었소. 포도들이 어찌나 충실해졌는지 주인은 성긴 가지를 쳐 내거나 부목을 댈 필요도 없었소. 힘들여 뿌리 밑동에 거름을 댈 필요도 없었소. 포도를 얻기 위해 울타리를 넘는 나그네를 쫓기 위해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좋은 열매를 쪼아 먹고 날아가는 새들 때문에 장대를 휘두르고 허수아비를 새울 필요도 없었소.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주인이 아니라 다름 아닌 포도들이었소. 그렇게 이를 악물고 과실을 맺은 포도들이 나그네나 새에게 제 과육을 베풀어 줄 리 있겠소?
포도들은 오로지 하나의 영광을 위해 익어갔소. 지독한 고통 속에 포도들이 시들시들해지는 날이라도 주인은 걱정하지 않았소. 아무 경전이나 펴들고 주님의 말씀을 읽는 것만으로 포도들은 자신들끼리 정한 의무를 떠올렸소. 물론 그 포도들의 고통을 과연 주님께서 원하셨는지, 또는 주님께서 그 포도들의 고통에 대해 어떠한 말씀을 하셨는지 그 것은 주인에게도 포도들에게도 중요하지 않았소.
그러나 모든 포도들이 그렇게 영광을 바라보고 익어가는 것은 아니었소.
한 송이의 포도가 있었다오. 같은 포도넝쿨에 매달린 열매였지만 그 포도는 광야를 떠돌아다니는 떠돌이나 다름없었소. 당연히 그 포도는 다른 포도들의 무시와 염려를 한 몸 가득히 받았소. 그러나 포도는 개의치 않았소.
더운 날에는 그늘 속에서 쉬었소. 거름이 지독하면 마시지 않았소. 하늘에서 시원한 빗줄기가 떨어지는 날이면 아낌없이 얼굴로 빗방울을 받았소. 떠돌이가 바라면 이파리 사이에 숨겨진 제 열매를 드러냈소. 새가 원하면 가장 잘 익은 열매를 내어주었소. 다른 포도들이 고통 속에서 기도를 읊는 동안 이 포도는 비루한 몸을 흔들며 신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노래했소.
시간은 정직하게 흘렀소. 수확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포도밭 주인은 밭을 둘러보았소.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큼지막하고 아름다운 열매들을 보며 주인은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었다오. 그러던 주인은 한 포도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소. 오직 딱 한 송이였다오. 작고 초라한 포도가 있는 것이 아니겠소. 아무런 고민도 없이 주인은 그 포도를 꺾어 던져버렸다오. 슬픈 얘기지만, 그 비루한 포도가 던져지는 것을 동정한 포도는 없었던 것 같소. 다른 풍성한 포도들은 속으로 고소한 웃음을 지었소.
그러나 이 작고 초라한 포도는 금방 기운을 되찾았소. 포도는 비록 길바닥에 떨어져 제 몸이 썩어가는 순간 속에서도 항상 신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알고 있었소. 포도는 신의 축복이 고통과 인내 속에서만 있다고 믿지 않았소. 포도는 신께서 포도를 창조하신 이유 그대로를 지키리라 속으로 생각했소. 우리의 눈에는 곪아 썩어가는 포도가 길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와 들쥐, 땃새 따위에게는 마른 목을 적셔주는 은총이였다오.
다른 포도들이 처녀들의 손에 의해 줄기에서 내려져 아름답게 짜인 바구니 속에서 눈을 감는 동안 그 포도는 온갖 비참한 조무래기들 속에서 눈을 감았소.
시간이 지나 포도도 싹을 틔웠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형편없는 넝쿨이었소. 심지어는 열매도 맺었다오. 그러나 얼마나 그 열매가 초라한 것이었을지 생각해보시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열매였다오. 특히나 모든 포도들이 아름답게 익어가는 그 즈음에 누가 그런 열매를 따려 들었겠소. 나그네나 떠돌이, 거지, 병자들이 그 포도송이로 목을 축였다오.
다시 수확의 시기가 다가왔소. 주인은 처녀들에게 모든 포도들을 수확하도록 명했소.
좋은 포도들은 좋은 술이 되었소. 아름다운 처녀들이 포도들을 깨끗이 헹구고 껍질을 벗겼소. 최상급의 효모가 뿌려졌소. 포도즙은 향기로운 참나무통에서 오래도록 잠들었소. 그렇게 만들어진 술들은 고대 시인의 말처럼, 메마른 입에서 신의 노래를 꽃 피울 만큼 뛰어난 것이었다오. 그 술들은 비싼 금화에 팔려 부자들의 잔칫상, 또는 귀족들의 연회장에 놓였소. 그리고 흥청흥청한 시간 끝에 그것들은 값비싼 오줌이 되었소. 그리고 희미한 자국만을 남기고 땅에 스며들어갔다오.
그러나 그대도 기억하듯 훌륭한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만 있는 것은 아니었소. 울타리에서 피어난 초라한 포도넝쿨도 있었지. 그 넝쿨에서 딴 열매가 무슨 술이 되었을지 술을 알지 못하는 그대도 알 수 있을게요. 말 그대로 아무 부랑자들의 목을 채워주는 그런 술이 되었다오. 아주 형편없는 포도주였지. 말 오줌에 취할 수 있다면 말 밑에라도 고개를 처박을 로마 병사들도 얼굴을 찌푸렸소. 그러나 한 늙은 병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식초 같이 시어버린 그 술을 떠 담았지. 그 것은 무더운 날 늙은 병사의 오랜 습관에 지나지 않았소. 심지어는 술을 떠 담은 그 병사 역시, 자신이 그 술을 마시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오.
병사는 투덜거렸소.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사형수들을 호위해야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라오. 그 병사는 전날 도박장에서 진 탓에 그날의 호위를 맡았지. 병사는 자신의 불운과, 그리고 빌어먹을 반역자들을 향해 온갖 이교도의 욕과 저주를 내뱉었소. 그리고 무거운 군장을 챙기고 막사를 나섰소.
사형수는 모두 셋이었다 하오. 모두들 반역자였지. 로마의 권위에 대항한 정치범 한 명과 로마의 율법을 어긴 흉악한 강도 두 명. 사형수들은 자신이 매달릴 나무를 지고 언덕을 올랐소. 그리고 나무에 매달렸소. 사형수들의 입에서는 흘러나오는 비명과 흐느낌을 귓등으로 흘리며 병사는 또 주사위를 던졌소. 그 자리에서 병사들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낙은 노름으로 얻을 수 있는 사형수들의 마지막 재산 뿐이었다 하오.
그러나 늙은 병사는 그 순간마저 운이 없었던 모양이오. 다시 한 번,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이교도 신들의 이름을 빌어 죄수들에게 욕을 내뱉었소. 따가운 햇볕이 그를 내리쬐었소. 그러나 그는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소. 그의 임무는 그 사형수들이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까지 그 곳을 지키는 것이었기 때문이지. 강도를 한 죄로 사형을 언도받은 두 사형수는 먼저 숨을 거두었소. 이제 단 한 사람만이 체중이 손발을 내리누르는 고통에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소.
‘목이 마르다.’
늙은 병사는 고개를 돌렸소. 그 힘없는 목소리는 죄수의 목소리였다오. 죄수의 목소리는 느리고 흐릿했소. 그냥 넘길 수도 있었을게요. 하지만 병사의 무디고 닳아빠진 가슴 속에서 오랜 군장처럼 팽개쳐 둔 동정심이 고개를 들었소. 병사는 문득 자신이 가져온 그 식초 같은 술을 떠올렸소. 로마의 법은 지독히도 엄격한 것이어서, 사형수에게 은사를 베푸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지. 그러나 병사는 이정도 형편 없는 술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소. 어차피 누구도 마시지 않을 술이었기에.
병사는 땀을 닦기 위해 목에 둘러두었던 천을 창에 묶었소. 그리고 그 창을 올려 사형수의 메마른 입술에 그 형편없는 술을 적셔 주었다오. 사형수는 말없이 그 술로 입술을 적셨지.
‘다 이루었다.’
죄수의 몸뚱이가 늘어졌소. 병사는 로마의 원칙대로 죄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물과 피가 함께 흐르는 것을 보고 그 언덕을 내려왔소. 병사는 언덕을 내려가면서 시어버린 포도주를 길에 쏟아버렸지.
그러나 그대는 알 것이오. 그형편없는 포도는 이 땅의 가난하고 초라한 형편없는 것들의 목을 적셨소. 그러나 언제나 가난하고 초라한 신왕의 아들은 그 형편없는 안식 속에서 눈을 감았소.
폴로는 이야기를 마쳤다. 모닥불에 비친 둘의 얼굴은 오래 묵은 술의 색깔로 사위어 들었다. 떠돌이는 입을 열었다.
“에스파냐의 땅에서 그대들의 사제가 내게 말해주었소. 기도는 거짓된 경건함에서 피어나지 않는다. 기도는 진실한 비참함에서 맺어진다. 신께서는 거룩함에 계시지 아니하나니 너희는 공연히 너희의 삶 바깥에서 그분을 찾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