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을 위한 이야기(14)

모닥불 옆에서 마르코 폴로에게 (3)추한 사내와 나방의 이야기

by 엽서시

들어보시오. 마르코 폴로여.

내가 그대들 기독교들의 땅을 떠돌아다닐 적의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 무렵 알라께서 내게 주신 운명에 몹시 지쳐있었습니다. 마침내 내 말도 쓰러졌습니다. 때문에 나는 풀이 무릎까지 오는 황무지를 걸어서 지나야했습니다. 길고 긴 황무지의 끝에서 발견한 작은 마을은 당신들 땅 어디에나 있는 평범하고 초라한 마을이었습니다. 순무와 질경이가 밭에서 뒤엉켜 자랐습니다. 사람들은 호밀로 검고 소박한 빵을 구웠습니다.

알라의 뜻으로 나는 그 마을에서 꽤 오랜 시간을 묶게 되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악령들도 숨을 고르는 듯 했습니다. 때문에 나는 내게 오랜만에 주어진 축복과 안식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입에 안 맞는 음식일망정 마을 사람들이 이방인에게 베푸는 따뜻한 음식이 있었습니다. 비록 짚을 넣어 만든 것일망정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자비는 알라의 모든 피조물을 향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사람들이 버린 찌꺼기를 먹으며 사는 사내가 있었습니다. 모든 이유를 알 수 는 없었지만 사내가 버림받은 탓은 그 사내의 추한 몰골인 듯 했습니다. 사내의 얼굴은 도저히 동정이 가지 않는 추악함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내가 그대들의 신에게 저주받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습니다. 그가 나타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저주와 돌팔매질이 뒤따랐습니다. 비록 그는 꼬리와 뿔은 없었음에도 악마처럼 취급받았습니다.

내가 그를 지켜보던 날에도 그는 돌팔매질을 피해 마을 뒤의 헛간으로 달아나는 중이었습니다. 헛간 뒤에 숨어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울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내가 알기로 그는 매일 새벽, 마을의 작은 성당에 기도를 올렸습니다. 내가 그의 기도를 들을 수 있었던 까닭은 내가 그 성당의 헛간에 묵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 스스로도 저주받았다는 사실을 체념한 것인지, 성당 안에는 차마 들어가지도 못한 채 성당 앞의 성모상, 그대들 이교도들의 풍습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성모가 죽은 아들인 예수의 시체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에 기도를 올렸습니다. 자신의 추한 용모와 비참한 운명에 대해 말입니다. 사내는 신에게 자신의 용모를 바꾸어줄 것을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투박하지만 간절하고도 애절했습니다. 그래서 나 역시 비록 그는 이교도지만 알라께서 그를 굽어보아 주시기를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때 그의 입이 기도를 멈추더니 사내는 어딘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습니다. 그제야 나 역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비명소리가 돼지우리 옆에서 나는 까닭에 나 역시 그 비명소리가 단지 돼지들의 울음소리인줄 착각했던 탓이었습니다. 사내가 몸을 옮겼습니다. 비명소리의 주인은 추악하고 거대한, 새끼돼지만한 애벌레였습니다. 아이들이 돌을 던진 탓에 그 징그러운 온 몸에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사내가 나타나자 아이들은 사탄이 괴물을 몰고 왔다면서 저주와 욕설을 퍼붓고 떠났습니다. 사내는 발밑에 흐느껴 우는 애벌레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나는 사내가 자신의 몸을 가리던 천을 끌어내어 그 애벌레를 감싸 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내는 애벌레를 달래려는 것인지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다시 황무지 어딘가 자신의 보금자리로 몸을 옮기더군요.

그날 이후 사내는 웬 보자기를 항상 품에 안고 나타났습니다. 보자기 안에서는 항상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더욱 불쾌해하며 혹시 사내가 어디서 사탄의 새끼를 데려온 것은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그 사내를 동정하며 보자기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나조차도 그 사내의 몰골과 사내의 품 안에서 흐느끼는 애벌레를 상상하면 속이 거북해지곤 했으니 어쩌면 그들의 반응도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IMG_20150929_221806.jpg "그 애벌레는 사내 그 자신이기도 했습니다."

사내가 품에 안고 있는 보자기는 날이 갈수록 점점 커져갔습니다. 가끔 사내는 성당 뒤에서 애벌레를 풀어놓고 애벌레가 풀을 뜯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애벌레는 흐느껴 우는 대신 강아지가 칭얼거리듯 사내의 다리에 몸을 부비기도 했습니다.

그 추악한 애벌레는 사내의 추한 용모를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따라서 마을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 애벌레는 사내의 아들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또한 그 애벌레는 사내 그 자신이기도 했습니다. 짙은 새벽 속 사내의 기도는 더욱 간절하고 애절해졌습니다. 사내가 기도하는 동안 애벌레는 철없이 사내의 뒤를 맴돌며 맛있는 풀을 찾곤 했습니다. 더 이상 사내는 자신의 용모를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내는 그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아가기를 기도했습니다.

알라여, 당신의 피조물을 돌보소서.

그 추악한 껍데기 안에 담긴 가엾은 영혼을 생각하소서.

어느 날인가, 사내는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내가 나타나지 않자 오히려 마을사람들이 사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혹 사내가 마을에 해꼬지를 일으키려는 속셈이 아닌가 겁이 났던 것이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내게도 사내의 행방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이방인인 내게 배풀었던 그들의 친절을 생각하면 내가 아는 사실들을 이야기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침묵으로 알라께서 선지자 마호메트-그 분께서 평안하시기를-를 통해 우리에게 일러준 계명, 너희는 너희보다 약한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라는 계명을 지켰습니다. 나는 속으로 그 애벌레가 번데기가 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생각은 맞았습니다. 애벌레는 고치를 짓고 번데기가 되었고, 사내는 그 번데기를 지키기 위해 한시도 자리에서 뜰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끝내 사내를 찾고야 말았습니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사내가 마을 헛간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가 그만 사로잡힌 것이었습니다. 사내를 잡은 마을사람들은 사내를 묶어 끌어다 놓은 채 한껏 의기양양해 하였습니다. 그러다 사람들은 사내가 항상 품고 다니던 그 보자기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내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사내의 침묵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사내를 밀쳐낼 듯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내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였습니다. 누군가가 사내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몽둥이와 돌멩이, 나아가 쟁기와 낫이 사내의 몸을 내리찍었습니다. 그러나 사내는 번데기처럼 몸을 웅크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늘 저편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하늘을 어둡게 가리며 거대한 나방이 날개를 뒤흔들며 마을로 내려앉았습니다. 나방의 날개에서 지저분한 가루가 마치 눈처럼 지붕과 담 위에 쌓였습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습니다. 나방은 말 갈기 같은 더듬이를 저으며 사내에게 다가갔습니다. 나방은 침묵했습니다. 아, 폴로여. 그대는 나방에게 입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그 밤의 조용한 은둔자이자 침묵은 바로 알라께서 그들에게 입을 허락하지 않은 까닭 입니다.

그러나 나는 들었습니다. 나방의 머리가 찢어지면서 들리는 그 비명, 그것은 몇몇 아이들에게는 돼지우리 곁에서 들었던 그 비명을 떠올리게 만드는 절규였습니다. 끔찍한 울음이었습니다. 울음은 드높아지고 마치 마을을 부술 것처럼 허공을 뒤흔들더니 그만 사라졌습니다. 침묵이 길어지자 마을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의 손에는 쟁기와 횃불, 몽둥이 따위의 닥치는 대로 들고 나온 조잡한 무기들이 단단히 들려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았습니다.

나방은 사내의 시체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죽어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떠올렸습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분명했습니다. 폴로여, 미리 기독교도인 그대에게 사과하겠습니다. 어쩌면 내가 기독교도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의 무슬림으로써 내게 떠올랐던 모습을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엉켜있는 시체를 보며 성당 앞의 성모상을 떠올렸습니다. 죽은 예수의 시체를 안고 조용히 슬픔을 가라앉히는 성모상의 모습.


IMG_20150929_213757.jpg "나방은 사내의 시체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죽어있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추악한 성모상에게는 아름다움이 아닌 슬픔과 비천함이 가득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곧 떠날 시간이 다가왔음을 짐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손에서 쟁기와 횃불, 몽둥이 따위가 하나 둘 놓이는 것을 보며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 후로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나의 마을이 사라지고 지워질만큼 긴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우연히 그 지방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내 발이 나도 모르게 그 마을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내가 알던, 질경이와 순무가 뒤엉켜 씨름하던 마을은 없었습니다. 그 대신 아름다운 성당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방인에게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수사에게서 그 성당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 이 성당 터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 작은 마을 앞, 황무지에 한 이방인이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느 한 사내가 그 이방인을 자신의 초라한 집으로 모셔가 정성껏 치료하였다고 합니다. 상처가 낫자 이방인은 자신의 본 모습인 천사의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영광스러운 휘광에 휩싸인 천사는 그 사내를 그대로 천국으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수사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제게 전해주며 눈물까지 글썽였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였지만, 직접 내가 본 이야기와는 몹시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고개를 젓지 않았습니다. 수사는 내 손목을 이끌어 성당 안으로 데려갔습니다. 성당 안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 알라께서도 용서하실 만큼 아름다운 그림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내와 사내를 천국으로 이끌기 위해 끌어안은 천사의 그림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천사의 날개는 깃털로 뒤덮인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나비의 날개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날개에 대해 수사에게 물어보려 입을 열었으나 문득 그 순간 사내의 기도가 모두 이루어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알라여, 그대의 기적은 이 곳에서도 분명하게 빛을 발하였습니다. 추한 사내는 비로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애벌레는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사내를 천국으로 이끌었습니다.

마르코 폴로여, 추함과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대는 지금 이 사막의 추함을 말했습니다. 사막의 황량함과 이 곳에 한없이 가득한 외로움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추함은 아름다움이 됩니다. 그것은 썩은 시신이 묻힌 자리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세월이 지나 어느 순간에 그대는 이 사막의 풍경을 한없이 아름답던 풍경으로 떠올릴 것입니다. 그 순간 사막의 황량함과 외로움은 잊혀지고, 그대가 오로지 이 땅의 주인으로 앉아 하늘에 한없이 반짝이던 별을 바라보는 순간만이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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