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삼국유사

도미설화 01

1. 노루 사냥

by 엽서시

두 목검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하늘에 명암을 더했다. 목검을 사이에 두고 두 사내의 눈빛이 마찰한다. 이글이글하던 눈빛이 잠깐 숨을 고르더니, 순식간에 서로의 거리를 벌렸다.

서로의 숨소리가 서로의 거리를 덮고 있는 공기 사이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뼈마디가 굵어 더욱 옹골져 보이는 사내의 이마에 비뚜루 댄 푸른 비단 띠에 햇빛이 부시게 쏟아졌다. 햇빛이 마주 내리쏘는 사내의 눈은 상대편에 선 상대를 보는 듯 보지 않는 듯, 아니 심지어 눈을 감은 듯 감지 않은 듯도 했다. 사내의 표정은 움직이지 않았으나 높게 쥔 사내의 목검 끝은 너실너실 춤을 추고 있었다.

둘의 침묵은 길었다. 숨을 죽이고 두 사내의 대결을 지켜보는 사내들의 맨 이마에 어느덧 땀방울이 어리기 시작했다. 사내들의 발치에는 저마다 곱게 접힌 비단 띠, 푸른색과 붉은 색의 비단 띠가 놓여있었다. 경합에서 물러난 자들의 표식이다. 즉 목도를 높이 쥔 채 홀로 푸른 머리띠를 묶고 있는 옹골진 사내가 바로 백제의 무제에서 우승한 사내다.

그렇다면 반대편에서 목도를 낮게 쥔 채 모두의 손을 땀을 쥐게 하고 있는 상대는 누구인가.

긴 머리를 바투 묶은 사내의 흰 이마에 질끈 묶인 비단 띠는 보라색이다. 이 비단띠가 말해주고 있었다. 이 자가 개루다. 바로 백제의 왕이다.

좌중에서는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목검을 쥔 두 사내 사이에서도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어디선가 철없는 곤줄박이가 비쭝비쭝 때 아닌 울음소리를 울었다. 그때 누군가가 악,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보다 먼저 개루가 허리를 길게 폈다.

개루의 목도가 비쭉 길이를 늘려 푸른 비단 띠의 사내에게 다가간다. 사내의 골통을 바수기라도 할 듯 바람을 흩부술 만큼의 세기다. 푸른 비단 띠의 사내가 재빨리 목도를 낮추어 개루의 목도를 흘린다. 동시에 사내의 목도가 개루의 오른쪽 허벅지를 베어 낼 듯이 다가서더니,

흘러가듯 그 속도를 늦춘다. 나비 날개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듯 사내의 목도가 개루의 허벅지를 빗겨나간다.

“바른편 다리!”

좌중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인다. 둘은 목도를 낮춘다. 시종 한 사람이 달려와 개루의 허벅지에 붉은 띠를 두른다. 이제 개루는 바른편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 다리를 베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칫하면 배를 베일 뻔 했다.”

시종이 띠를 묶는 것을 보며 개루가 미소했다. 머리의 푸른 비단 띠를 다시 고쳐 묶는 사내도 지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승부는 멀었습니다.”

“멀기는 무얼.”

시종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개루가 목도를 쥐었다. 그러자 사내도 다시 목도를 고쳐 쥐었다. 두 사람이 다시 목도를 바로 쥐는 것과 동시에 좌중이 고요해졌다.

먼저 뛰어든 것은 사내다.

푸른 비단 띠가 솔개처럼 개루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사내는 왼쪽 어깨를 잔뜩 당겨 목도를 몸에 붙이고 있었다. 사내의 목도가 개루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목도라 할지라도 맞는다면 목울대를 비롯하여 뼈가 으스러질 듯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그러나 개루는 사내의 일격을 날렵하게 피했다.

개루의 목도가 사내의 왼편 가슴팍을 올려붙였다. 미끄러지듯 날카로운 솜씨였다. 개루는 사내를 베어낸 그 자세로, 사내는 아직도 목도를 세운 그 자세로 멈추었다. 사내가 개루에게 세 번 절을 했다. 좌중에서 함성이 일었다.

“이번에도 왼 편이 흠이로구나.”

“부끄럽습니다.”

“재증걸루.”

이름을 바로 불린 푸른 머리띠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좀 전까지 거칠게 내어뿜던 사내의 숨소리는 잔잔하게 멎어있었다. 그의 얼굴을 내려보던 개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증걸루는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 시종이 그에게 다가와 왼편 가슴팍에서 오른쪽 어깨에 이르게 붉은 띠를 묶어 주었다. 시종이 띠를 묶을 수 있도록 팔을 들면서 재증걸루는 씩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개루의 등 뒤로 궁녀들이 얼굴을 가리고 따라나섰다. 그러나 재증걸루는 한 궁녀의 손이 아직도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잠시 후, 이번엔 징 소리가 동산을 울렸다. 저마다 연회복으로 갈아입은 귀족 청년들이 말에 올라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여기저기 붉은 띠를 두른 위로 활을 메고 있었다. 개루도 여전히 바른편 허벅지에 붉은 띠를 두르고 다시 징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숲 저편에서는 재증걸루와 병사들이 장대와 그물을 든 채 열을 맞춰 서 있었다. 무제에서 일등을 한 집안이 뒤에 이어지는 산제에서 동물을 모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말 위에 오른 재증걸루가 호듸기를 불었다.

함성소리가 숲을 흔들었다. 동시에 징 소리가 쇠를 박차고 달려 나가 동산 저편의 무리들의 귀를 뒤흔들었다.

숲에서는 꽹과리 소리가 자지러진다. 애꿎은 새들이 깃털을 덤불위로 흩뿌렸다. 젊은 종들은 놀란 꿩이 대가리를 박고 숨는 것을 좆아 다녔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놀라서 지르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노루, 노루다!”

“노루다. 저기, 저기!”

노루다. 재증걸루의 눈앞에도 큰 노루 한 마리가 흰 꽁지를 벌떡 든 채 덤불 이쪽저쪽으로 몸을 날래게 피하고 있었다. 재증걸루가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을 씩 웃으며 말을 몰았다. 호듸기를 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재증걸루의 손에 들린 것은 나무를 깎아 만든 곤봉이다. 활은 허리에 차고 있다. 동물을 모는 일을 했으니 손에 활을 들고 폼을 재는 것은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라고 해서 산제의 재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노루를 쫓아 얼마 말을 몰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말 입 주변에 흰 거품이 일었다. 나무등걸 뒤편에서 갑자기 나타난 덤불을 피해 고삐를 당기며 재증걸루는 점점 앞에 달아나고 있는 노루가 맘에 들기 시작했다.

큰 놈이다.

이제 숲을 달리는 것은 재증걸루 혼자였다. 하인들은 장대에 붉은 깃발을 세우고 삼베로 짠 그물을 쳐 동물들이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운 방벽 뒤에 모여 있었다. 이제 산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니 숲에 있다가 괜스레 활을 맞으면 재미없을 터였다. 어쩌면 몇몇 종이 군불에다가 운 좋게 잡은 꿩을 굽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잘 구운 꿩고기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재증걸루는 코를 벌름거렸다.

노루의 하얀 엉덩이가 점점 가까워졌다. 재증걸루가 눈을 치켜떴다.

숲 저편에서도 말이 발길질을 닫는 소리다 들렸다. 짙은 자주색 도포. 동공에 개루의 모습이 비치기도 전에 재증걸루는 말을 탄 것이 개루임을 알았다. 개루는 활을 빼들고 있었다.

노루의 엉덩이가 자신의 발굽을 재촉하는 것이 보인다.

개루가 활시위를 제 얼굴 옆으로 갖다 댄 것이 보인다.

재증걸루는 더욱 박차를 가했다. 곤봉을 든 오른팔을 높이 쳐들었다. 노루의 대가리가 말 오른편으로 점점 가까워졌다. 재증걸루가 손만 쭉 뻗으면 노루의 머리통이라도 쓰다듬을 수 있을 것처럼 말과 노루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 개루의 화살과 재증걸루의 곤봉이 공기를 갈랐다.

노루가 덤불을 뛰어넘었다.

땅에 박힌 화살은 아직도 분을 참지 못하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재증걸루의 곤봉은 노루의 머리 위를 바로 스쳤다. 숫제 개루의 허벅지에 그랬던 것처럼. 개루는 잠시 말을 늦추려 했으나 재증걸루는 고개를 비척 숙일 뿐, 여전한 속도로 달려나갔다. 예의 그 미소를 띤 채.

고삐를 쥔 개루는 잠깐 말을 진정시켜야 했다. 어느새 재증걸루는 개루가 온 숲 쪽으로 사라졌다. 노루가 사라진 덤불과 재증걸루가 사라진 비탈 쪽을 넘겨보던 개루는 다시 노루를 쫓아 말을 돌렸다.

동산에서는 시종들과 시녀들이 한창 주인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더운 물과 수건을 들고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던 시동 한 사람이 우뚝 자리에 멈췄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말을 탄 이가 여기에는 웬 일인가. 게다가,

산제에서 몰이꾼들을 지휘하고 있어야 할 재증걸루가.

재증걸루는 힘겹게 말고삐를 쥐고 있었다. 시종 몇 명이 다가섰지만 잔뜩 흥분한 말을 진정시키기는 어려워보였다. 그 중 한 사람에게 고삐를 건네주려는 듯 손을 뻗던 재증걸루가 그만 말에서 떨어졌다.

시종들이 탄식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 그도 귀족 중 한 사람이기에, 시종들이 재빨리 재증걸루의 몸을 지고 장막 뒤로 향했다. 아직도 잔뜩 성이 나있는 말을 달래기 위해 덩치 좋은 종들이 말의 눈치를 보며 주위를 돌았다. 안 그래도 시끌벅적하던 동산에 소란 하나가 덧붙여진 셈이다.

궁녀 하나가 더운 물과 수건을 들고 장막 뒤로 향했다.

장막에는 재증걸루 혼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른 시종들은 말을 잡느라 바쁜 까닭이었다. 궁녀는 누워 있는 남자의 곁에 가만히 물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빤히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땀이 흥건하다. 궁녀는 한참을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얼굴을 만지려는 것처럼 수건을 들어 남자의 이마를 닦는 순간.

푸른 비단 띠가 풀러지면서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기겁한 궁녀의 손을 잡아 챈 것 역시 순식간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넘어갈 듯이 가쁘던 숨소리는 온데간데없다. 남자는 미소했다. 아직 손 잡힌 것을 모르고 있던 궁녀가 그제야 손을 빼며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보고 재증걸루가 무어라 말하려 하더니,

그만 가슴을 부여잡고는 쓰러져 버렸다. 놀란 궁녀가 남자의 어깨 밑에 손을 넣어 쓰러지는 이가 땅에 부딪치려는 것을 막았다. 남자의 뜨거운 살이 품 한가득 느껴졌다. 그리고 궁녀의 품 안에서 다시 재증걸루가 미소를 지었다.

“대체 무슨 짓입니까.”

궁녀가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그러나 궁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재증걸루는 자신의 온 몸으로 궁녀의 떨림을 느꼈다. 그리고 속으로는 가만히 궁녀의 모습, 개루의 뒤를 따르던 궁녀의 손을 생각했다. 그 손의 떨림. 재증걸루가 천천히 손을 들어 궁녀의 흰 손을 감쌌다.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남자의 손에 싸인 여자의 손이 가만히 남자의 가슴에 살붓이 내려앉았다. 궁녀는 옷 밑에서 벌걱거리는 것을 느꼈다.

재증걸루가 가만히 옷 속으로 제 손을 집어넣었다. 앞섶에 들어간 그의 손에 들려나온 것은 다름 아닌 나리 한 송이다. 궁녀는 여즉도 재증걸루에게 안기다시피한채로 마치 마술을 보는 양 그 꽃을 바라보았다.

“무슨 꽃입니까.”

궁녀가 입을 열었지만 정말 그 꽃이 몰라서 묻는 눈치는 아니다. 재증걸루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여기까지 상하지 않고 오느라 조심했습니다.”

궁녀의 손이 꽃을 쥐었다. 재증걸루는 가만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궁녀가 꽃을 머리 뒤로 가져가는 것을 넋을 잃은 듯이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나리가 궁녀의 머리에서 봉우리를 틔웠다. 재증걸루가 입을 여는 순간 장막 바깥으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궁녀가 몸을 돌려 바라보았다. 시종장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리, 괜찮으십니까?”

재증걸루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궁녀는 재증걸루에게 고개를 숙이고 장막 바깥으로 뒷걸음쳐 나갔다. 물그릇과 수건을 놓아둔 채. 재증걸루는 시종장에게 궁녀의 이름을 물어볼까 하다가 마음을 돌렸다.

“왕께서 오셨더냐.”

“예. 큰 노루를 잡으셨다 하더이다.”

재증걸루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왕께는 이 일을 말하지 말거라.”

“이 일이라 함은?”

“내가 쓰러진 것. 왕께서 걱정하실까 저으기 두렵구나.”

“예.”

“다른 이들에게도 입단속 시키고.”

“예.”

다짐을 받으며 재증걸루는 장막을 나섰다. 날라리 소리가 하늘을 간지른다. 잔뜩 신이 난 시동들이 덩실덩실 춤추듯 화살에 맞은 노루 따위를 지고 어디론가 향한다. 재증걸루도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그들을 쫓아 나선다.

술상이 차려지는 가운데 산돝, 노루 등이 엎드려 있다. 짐승들이 쌓여있는 옆에서는 시동들이 까치, 꿩 등의 산새들을 가지고 어디론가 달음박질친다. 숯을 굽는 냄새가 진하다. 구운 새고기 생각에 재증걸루는 입맛을 다셨다.

산제에서 돌아온 귀족들이 저마다의 공훈을 떠들며 왁자지껄 잔치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슬슬 술상위에 구운 고기와 맑은 술이 올라왔다. 늙은 시종장이 애먼 고함을 지르고 시종들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다시 잔칫상이 판을 피운다. 귀족들이 자리에 앉았다. 재증걸루는 왕의 오른편 상석에 앉았다. 산제의 꽃은 개루가 쏘아 잡은 거대한 사향노루였다. 건장한 시종들이 왕이 잡은 노루를 메고 잔칫상을 한바퀴 돌았다. 반 바퀴 쯤 돌았을 때 노루가 한번 몸을 퍼득였다. 가까운 상에 앉은 사람은 눈을 홉뜨며 놀랐지만, 다른 이들은 왁자하니 웃었다.

개루의 술상은 다른 이들의 술상보다 높은 곳에 있다. 큰 부채를 든 시종들이 햇빛이 개루의 살을 범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궁녀들의 어깨 너머로 좌중의 술자리가 보였다. 술상은 한껏 흥에 달아있었다.

개루도 술잔을 들며 미소했다. 개루의 눈이 잔치판을 빠르게 훑었다.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는 좌중을 보며 개루는 입에 담긴 술을 넘겼다. 짙고 쓴 국화향이 여린입천장을 달구었다. 꽃향기에 취하는 기분,

한 송이 꽃이 개루의 눈에 들어왔다. 개루가 손짓했다. 멈칫하던 꽃이 검은 가마를 헤치고 넘실넘실 개루에게 다가왔다. 개루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궁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고운 얼굴이다.

“고개를 들어라.”

꽃이 뒤통수로 넘어가며 궁녀가 고개를 들었다. 개루는 잠시 동안 궁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머리에 꽂은 꽃은 어디서 났더냐.”

궁녀는 개루의 시선을 차마 더듬지 못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입을 달싹이는 얼굴에는 부끄러운 빛이 가득했다. 죄를 지은 아이처럼 옹송거리고 있는 그 모습이 개루의 마음에 들었다.

“목이 마른가 보구나.”

“이 아이에게도 한 잔 따라 주거라.”

시종이 궁녀에게 술을 따랐다. 주둥이에서 국화 줄기가 뿌리를 뻗어 잔에 붉은 액체를 채웠다. 넘실거리게 잔을 받는 궁녀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시거라.”

놋잔에 궁녀의 입술이 닿았다. 붉은 술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궁녀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궁녀는 눈을 꾹 감더니, 참은 숨을 토해냈다. 밭은기침을 두어 번 하던 궁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개루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개루와 시선이 맞닿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개루는 껄껄 웃었다.

“이제 술도 먹었겠다. 내 네가 아직도 말을 못하나 보겠다. 네 이름이 무어냐.”

“이름이 무어냐 물으시잖두.”

옆에서 시종장이 작게 소근거렸다. 개루의 눈썹 사이가 찌푸려지려는 찰나 궁녀가 입을 열었다.

“아랑입니다.”

“아랑이라.”

개루는 미소하며 다시 술잔을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삼국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