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수(漢水)의 맹인, 도미
한수가 넘실거리는 모래밭 너머로 굴딱지 같은 집들이 띄엄띄엄 놓여 있다. 개중에 눈에 띄는 큰 집이 있다. 폼새는 마치 큰 마구간 같다. 집에 걸맞지 않게 지붕에 너와를 얹은 것이 오히려 더욱 보기 싫은 풍경이었다.
집을 두르는 벽은 통나무들을 조밀히 붙여 세운 방벽이다. 위는 날카롭게 깎여 있는 것이 마치 작은 성벽을 보는 것 같았다. 문 근처의 벽에는 하나같이 말이 묶여있었다. 이런 볼품없는 집에 어울리지 않은 기름진 말들이다.
말 한 마리가 다시 한 번 코를 내저었다. 누군가를 비웃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이 세상에 정나미가 다 떨어진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집에서 가장 넓은 사랑방 안쪽 목에서 흘러나왔다. 안쪽 목에 앉아 연신 콧방귀를 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 볼품없는 집의 주인 도미다.
도미, 도미. 위례성의 아이들도 뛰어 놀며 놀려대는 이름이다. 얼굴은 두꺼비 같은데 눈은 두더지. 앞다리는 쩔뚝쩔뚝.
노래 그대로 도미는 소경이었다. 시커멓게 말라붙은 눈구멍에는 흰자위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오른손도 굽어있었다. 그러나 위례성에서 아이들 말고는 함부로 도미 이름을 들이대는 사람은 없었다. 도미가 위례성 제일가는 왈패들의 우두머리기 때문이다.
바깥목에 앉은 잘 차려입은 이가 오히려 도미의 태도에 절절 매고 있었다.
“그럴 거면 그냥 두어.”
“아니, 무얼 두고 가란 말입니까?”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소매로 이마를 문질러 닦았다. 떨리는 말과 다르게 조심성 없어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도미 앞에서는 사실 무슨 행동을 해도 상관없었다. 도미에게 들리지만 않는다면.
또 하나, 도미의 집에는 권세가의 색공(色貢)들만 찾아드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권세가의 손님들이 직접 여인을 찾아오기도 한다는데, 가끔 달이 어두운 밤이면 머리에 보라색 비단 띠를 두른 귀공자가 직접 말을 타고 도미의 집으로 찾아온다는 말도 있다. 이 역시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하는 소문이다.
무튼 그런 말 때문에 귀가 간지러운지 도미는 귀를 연신 긁어대더니 한 쪽으로 엉덩이를 들고 방귀를 뀌었다. 비단옷의 사내는 얼굴에 오만상을 지어보였지만 신음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대신 다시 한 번 간청하는 목소리를 냈다.
“공께서 긴히 요청하시는 데 어쩌겠는가.”
“공이든 나무옹이든 내 알게 뭐람.”
“그러지 말고 한 번 봐주게.”
도미가 다시 한 번 콧방귀를 뀌었다.
“저 사향노루는 공이 오늘 산제에서 잡으신 거라네. 내 아닌 말로 살다 살다 저렇게 큰 노루는 처음 보았네. 물건이 몸 따라 간다고 그것도 으뜸가는 크기인 걸 보아 사향도 많을 터인데······. 자네도 알잖은가. 높으신 분들 모시려면 자네도 사향이 필요할 테고······.”
말을 마친 비단옷의 사내는 옷섶에서 금이 든 주머니를 들어 한 번 흔들어보였다. 그리고는 도미에게 주머니를 던졌다. 두꺼비가 파리를 낚아채는 솜씨로 도미가 주머니를 낚아챘다. 주머니의 무게를 가늠해보기도 하고 귀에 대고 흔들어 보기도 하던 도미가 주머니를 제 옷섶에 집어넣었다.
“그럼 둘만 데려가슈. 딱 둘이요.”
“알겠네. 도미.”
비단옷의 사내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미, 나 그럼 가네.”
도미는 대답대신 다시 한 번 콧방귀를 뀌었다. 도미의 방을 나온 사내는 수염을 쓸더니 턱짓으로 하인들을 가리켰다. 하인들이 고개를 숙이더니 재빨리 노루를 마당 한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이런 집에 어울리지 않는 진한 사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얼굴을 가리고 여인 둘이 가마에 올랐다. 한 여인은 자주빛 치마가 발에 끌리는 것을 허둥거리며 나왔다. 그 뒤를 녹색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뒤를 따랐다.
왈패들이 진득하게 희롱해대는 것을 무시하며 하인들이 기둥에서 말을 끌렀다. 버드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려 말과 가마를 애써 가리려 했다.
말이 멎은 곳은 궁궐 앞이었다.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대궐문이 희미한 소리를 내며 비단 옷을 입은 사내의 일행을 맞아들였다.
왕벚이 궁 안에 가득 흐드러져 있었다.
비단옷의 사내가 시종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달빛에 진 꽃잎들이 땅에 쌓여가고 있었다.
“오늘이 약속한 날이 아닙니까?”
“오늘은 왕께서 이미 약속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까지 일을 맡긴 사람이 누구인데······.”
둘의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는 동안 바람이 불었다. 비단옷의 사내가 제 손으로 이마를 쳤다. 바람이 궁궐을 넘어,
비원으로 향했다. 시녀들이 시중을 들고 있는 누각에서도 벚꽃이 흰 꽃잎을 날리고 있었다. 왜의 신하들이 그토록 감탄하던 벚꽃.
“술은 잘 하지 못합니다.”
개루가 따라 준 잔에 입술을 때며 재증걸루가 말했다. 개루는 미소했다. 개루가 숨을 내쉴 때마다 국화향이 둘 사이를 맴돌았다.
“너의 실력은 아름답다.”
개루의 뒤에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近蓋婁王
개루의 별칭.
신라인들이 개루에게 왜도 다섯 자루와 중국의 비단을 바쳤다. 또 하나, 신라인들이 작은 상자를 꺼냈다. 됫박 크기의 작은 오동나무 상자였다. 저렇게 고이 간직한 것이라면 야명주라도 되는가. 중신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개루가 인사말을 한 후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흰 그림자가 비췄다. 개루가 주먹을 집어넣었다. 햅쌀이었다.
“신라는 벌써 수확을 시작하는가.”
중신들이 술렁였다. 신라인들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재증걸루는 침을 삼켰다. 신라는 백제에게만 사신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신라인들이 한수 포구 근처에서 백제인을 구했다는 것을 개루는 들어 알고 있었다. 아마 통역을 구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고구려왕도 지금 신라인들이 보낸 햅쌀을 만져보고 있을 것이다. 북쪽 험난한 땅의 고구려에게는 더욱 매력적일 것이다.
개루가 손짓을 했다.
고개를 숙인 재증걸루가 단 앞으로 나섰다.
개루가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백제의 시조는 온조태조니 그 근원은 고구려의 뿌리에 닿아있도다. 엄지손가락은 고구려를 뜻한다. 시종장이 종종걸음으로 비단에 둘둘 만 것을 가져왔다. 얼핏 칼자루가 보였다.
개루가 비단을 젖혔다.
고구려의 칼이다.
여기저기에서 탄식소리가 터져 나왔다. 칼이 크다. 단지 날이 크다는 말이 아니다. 칼 몸뚱이 길이를 훌쩍 뛰어넘는 칼자루가 마치 중국의 칼을 보는 듯 하다. 코등이도 넓고 두툼하다. 이런 칼을 쓰는 이유는 고구려가 기병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칼 자체는 시우쇠를 두드려 만든 것이다. 검은 철이 공기에 제 험상궂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럴 리 없건만, 알싸한 쇠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한 기분이다. 칼을 꺼낸 것만으로 주변의 공기가 철철철철 흐르고 있었다.
재증걸루가 고개를 들었다. 순간 신라인들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처용······.”
한 신라인이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다. 재증걸루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귀신의 형상이었다. 재증걸루가 칼을 쥐었다. 그리고 칼을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고 살을 떨리게 만드는 소리가 신라인들의 옷깃을 휘저었다. 신라인들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칼이 한 신라인의 코로 날아들다가 멈추었다. 진흙 한 겹의 차이. 좌중에서 손뼉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라인들만이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멎어 있었다.
개루가 좌중으로 손등을 내보이며 손가락을 모두 폈다. 백제. 모든 손가락은 엄지손가락 뼈에 맞닿아 있지만 그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오히려 엄지손가락보다 더 멀리. 개루가 좌중에게 보여주는 것이 백제의 내일이라면 개루는 백제의 오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덟 팔(八)자를 손금. 백제의 땅을 가르는 한수와 그 밖의 강들이 저마다 흘러 바다에 닿는다. 마치 손에서 뻗어 나오는 핏줄이 팔에 닿고 다시 몸에 닿는 것처럼. 개루는 그렇게 백제의 땅을 꼭 빼닮은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시종 한 사람이 또 비단 뭉치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아도 자리에 앉은 모두가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백제의 칼이다. 개루는 말없이 비단을 걷었다.
좌중 모두가 숨이 멎었다. 탄식 소리마저 없었다. 유달리 긴 자루가 아니었다면 왜도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감파랑색의 칼날은 말이 없었다. 벼려낸 기왓장 같은 색깔이었다. 귀신의 형상을 한 재증걸루가 이번에는 백제의 칼을 들었다.
신라인들의 이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개루에게도 들렸다. 개루는 미소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고래의 일이다. 신라인들이 칼춤을 잘 추는 아이를 보내 백제의 왕을 찔러 죽인 것은.
그러나 아직도 신라인들은 그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연회 때마다 하얗게 분칠을 하고 칼춤을 춘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백제인들도 이 일을 잊으리라는 법은 없다. 사실 삼국 사이 에 사신을 죽이지 않기로 암묵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칼춤. 칼 빛이 하늘빛을 닮아갔다. 제 움직임에 어깃장을 놓는 공기의 색을 닮아갔다. 햇빛에 흰 날이 부연 잔상을 남겼다. 흰 빛이 재증걸루의 몸을 반 넘게 뒤덮었다.
그리고 마침내 칼이 멎었다. 좌중에는 박수소리도 없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개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종들이 고구려의 칼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재증걸루에게 다가왔다. 재증걸루는 왼손에 고구려 칼을, 오른손에 백제 칼을 들었다. 몇 번 휘둘러보았다. 묵직한 쇳소리에 사람들에게 다짐이라도 받은 것처럼 침묵이 감돌았다. 한 신라인 밑에 진한 물웅덩이가 하나 생겨나는 것을 재증걸루는 못 본 척 하였다. 그때 개루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말아 쥐었다. 손바닥과 손가락이 일어나 머뭇거리고 있는 엄지손가락을 뒤덮었다. 백제가 일어나 고구려를 치리라. 징소리가 울리고 장막 양 옆에서 병사들이 눈을 가린 고구려인 둘을 끌고 왔다. 두 포로는 알아듣기 힘든 억양의 고구려말로 무어라 외쳐대고 있었다.
가면 뒤의 재증걸루는 눈을 감았다. 병사들이 두 고구려인을 꿇어앉혔다. 둘의 사이는 약 두 보 정도. 왕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재증걸루가 둘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두 칼이 서로 엇갈리듯이 빛나더니, 신라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고구려인 둘은 여전히 꿇어앉은 채였다. 왼쪽에 있는 고구려인이 쓰러졌다. 이미 머리가 날아간 채다.
그 머리는 신라인들의 술상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신라인의 옷에 붉은 핏방울을 뱉어내면서. 신라인들의 비명으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시종들이 달려들어 술상에 오른 고구려인의 머리를 치우고 그들이 진정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때까지도 오른쪽의 고구려인은 여전히 꿇어앉아있었다.
다만 목 아래에서 흘러내린 피가 옷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눈은 희게 치켜뜨고 있었다. 이미 목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병사 하나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고구려인의 머리를 밀었다. 그러자 목 위에 얹어져 있던 머리가 그만 몸 아래로 툭 떨어졌다.
신라인들은 여전히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이게 둘의 차이요.”
개루가 입을 열었다.
고구려의 칼. 그리고 백제의 칼.
백제의 칼.
재증걸루는 가면 뒤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너의 재주는 아름답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가 놋그릇보다 아름다운 것처럼. 너의 칼솜씨도 그렇다.”
왼편의 헛점. 재증걸루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옆구리에 비단끈이 달려있는 것 같았다. 개루는 잔을 들었지만 재증걸루가 따라 잔을 들지 않는 것을 보고 혼자 미소하고는 술을 삼켰다. 잔을 내려놓으려는 개루의 손이 조금 떨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시녀가 재빨리 대신 잔을 받았다.
“걸루야.”
“예.”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
재증걸루는 자기도 모르게 상에 놓인 술잔을 쥐었다. 실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재증걸루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잔에 입을 갖다댔다. 국화향의 쓴 술이 입 안에 들어왔다.
개루가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아직 가족을 이루지 않은 젊은 장수인 재증걸루가 수도 위례성에 머무르고 있다. 즉 잡힐 만한 인질도 없는 장수가, 그것도 백제에서 가장 뛰어난 무사가 궁궐 옆구리에서 칼을 물고 도사리고 있다.
개루는 의심이 많은 이다. 재증걸루는 속으로 그 사실을 곱씹었다. 재증걸루가 지방으로 떠나고 있기를 바랄까? 아니면 자신이 감시할 수 있도록 위례성에 머물기를 바랄까. 하나의 시험이라면 시험이다. 재증걸루는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개루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음은 자명했다.
그리고 답도 자명했다. 떠나자. 떠나자.
신라 쪽 국경을 맡자. 삼년산성을 바라보는 곳쯤에 자리를 잡자. 가서 호족들을 얼러가며 쌀과 땅을 받고, 그러다가 호족의 이쁜 막내딸을 얻고, 아들을 낳고. 이제 더 칼은 뽑지 말지. 조용히, 조용히 살자. 그것도 좋은 삶이다.
그거면 됐다.
생각을 마친 재증걸루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개루와 개루 옆에 선, 술잔을 들고 서 있는 시녀를 보았다. 시녀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과 동시에 재증걸루의 속에서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했다.
아. 여태 무슨 고민을 바보처럼 했단 말이냐.
“위례성 공사 맡기를 자원하나이다.”
순간 아랑이 술잔을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