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위례성
3. 위례성
두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왁자지껄한 노동요 소리.
여기저기 진흙을 개기 위한 구덩이가 있다. 사내들이 어깨로 지고 온 물을 구덩이에 붓는다. 구덩이에 물을 내려놓은 사내들은 하나같이 주변에 나가떨어진다. 갈수기라 물을 뜨기 위해선 꽤나 멀리 가야한다. 구덩이 안에는 흙을 젓는 사내 둘이 있다. 나무 삽으로 흙탕물을 개 진흙을 만든다.
구덩이에서 진흙을 푼 사내들은 통나무로 만든 옹벽 사이에 진흙을 넣고 통나무 따위로 그 위를 다진다. 토벽이 알맞게 다져졌다 싶으면 통나무를 떼어낸다. 통나무를 나르는 건 소지만 성을 쌓는 건 소가 아니다. 소는 때때로 투레질을 해가며 진흙이 잔뜩 묻은 네다리로 서서 건초를 질겅질겅 씹고 있다.
토성을 쌓는 일은 쉽사리 진척되고 있지 않았다. 탓은 물이 말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장마가 지기 전에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금만 비가 와준다면 좋으련만. 재증걸루는 비가 올 리 없는 야속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덥다. 손가락 굵기의 낭창낭창한 몽둥이를 든 병사 몇 명이 이 쪽을 흘끔흘끔 훔쳐본다.
재증걸루가 손을 든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징 옆에서 졸고 있던 늙은 병사가 신나서 징채를 휘두른다.
점심이다. 신난 일꾼들과 병사들이 소리를 지른다. 물지게를 내려놓고 질질 끌던 통나무를 힘껏 집어던진다. 소의 등짝을 철썩 내려치고 손을 휘두르는 이도 있다.
찐 보리와 콩. 절인 호박잎. 소금.
재증걸루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두엄냄새에서 산제의 사향 냄새를 맡는다. 은은한 국화향. 우거진 풀 사이로 고개를 흔들고 있던 나리꽃.
“제놈들. 성 쌓으라고 끌고 왔더니만 쌀만 축내고 있지.”
재증걸루 옆에 주저앉는 이는 고이만년이다. 위례성의 쌀 수급을 맡은 그에게 있어서는 이 공사가 달가울 리 없다. 고이만년은 주저앉아 이마에 땀을 훔친다.
“이깟 공사가 뭐라고 참. 개루도 미친 게지.”
재증걸루는 그냥 비실비실 웃었다. 오른손을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자네도 미친놈이지. 개루에게 금을 닷 냥이나 받았다더니, 이 위례 흙먼지를 마시고 싶던가?”
“이럴 줄은 저도 몰랐지요.”
고이만년이 혀를 찼다. 재증걸루는 그저 껄껄 웃어보였다.
“젊어서야 사서 고생한다지만 이게 무슨 노릇인가? 원 사람도 실없이······.”
“그러게 말입니다.”
병사 하나가 상을 들고 두 장수 앞에 서 있다.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재증걸루가 손짓했다. 병사가 상을 내려놓고 상을 덮은 천을 걷어다 제 옆구리에 뚤뚤 말고는 사라졌다. 병사 앞에서 흥분을 한 것이 적이 마음에 걸렸던지 고이만년이 목소리를 조금 줄였다.
“그대는 고구려를 어찌 생각하는가?”
고기전을 집으려던 재증걸루의 손이 멎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뜬소리가 파다하네. 위례성 공사가 늦어지는 까닭에 대해.”
재증걸루가 고개를 들었다. 붉어진 눈이 고이만년을 향했다. 고이만년이 고기전을 대신 집었다. 고기전을 우물거리며,
“개의치 말게. 자네도 알다시피 난 개루가 보낸 사람이 아닐세. 오히려 그 반대라면 반댈지. 이 말을 자네한테 스스럼없이 하는 것도, 난 이제 저어할 바가 없네. 자네처럼 무예로 사랑을 받을 나이도 이제 지났어. 다만 사람이 나이가 먹으면 생각이 많아지네.”
고이만년이 말을 마쳤다. 재증걸루도 머뭇거리던 손을 움직여 고기전을 집었다. 대신 입에 넣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 말입니까?”
“백제.”
고이만년이 다시 고기전으로 손을 뻗는다.
“그리고 고구려.”
털이 부숭한 손이 입으로 고기전을 잘도 가져다 넣는다. 재증걸루는 산나물을 집었다. 고이만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위례성 공사는 쓸데없는 공사일 뿐이야. 이깟 토성으로 고구려의 강병을 막겠단 말인가?”
재증걸루는 다시 산나물을 고쳐 집었다. 고구려의 칼.
“이건 개루를 위한 공사일 뿐이네.”
“왕을 위한다니 그 무슨······.”
고이만년이 기름 묻은 손을 옷에 비볐다. 그리고 그도 역시 재증걸루가 집은 나물을 집었다.
“들어보게”
나물을 우물거리며 고이만년이 말을 이었다.
“왕이 쓸데없이 공사를 여기저기서 벌이고 있네. 중신들도 고역이거니와, 백성들도 이 무슨 개고생이란 말인가. 이 공사가 쓰잘 데 없는 것은 왕도 잘 알고 있어. 왕은 사람들이 저를 두려워하길 바라네. 이제 공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왕에게 매달릴 밖에 없는 것이네. 이 공사를 끝내라는 그 한 마디를.”
“······.”
“산제에서 왕이 직접 목도를 휘두르지 않나, 신하보다 앞서 말을 달리며 노루를 쏘지 않나.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야. 개루는 그런 인간이네.”
재증걸루는 말없이 고기전을 우물우물 씹었다. 개루의 얼굴을 떠올렸다. 재증걸루의 옆구리에 목도를 먹이고 짓던 개루의 표정. 제가 잡은 노루를 신하들에게 돌려보이던 개루의 표정. 개루는 그 얼굴로 위례성 공사판을 보고 있을까.
“늙은 중신들을 믿을 때가 아니야. 기놈들은 죄다 제 배 불릴 생각이나 하는 역적 무리나 다름없네. 그 판에 놀아나는 개루도 마찬가지일 뿐.”
고이만년의 목소리가 더욱 잦아들었다.
“나는 정치는 모르네. 그러나 칼 쓰는 법은 그래도 듣고 보아 아네. 자네가 산제에서······.”
고이만년이 재증걸루를 바라보았다. 기름기가 어린 누런 눈을 맞보던 재증걸루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개루에게 지던 그 꼬락서니를. 그리고 자네는 금 닷 냥을 받았지. 알고 있네. 자네가 꼬리를 말던 개새끼마냥 목도를 사리던 꼬락서니를. 자네도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 그러나······. 아마 고구려가 쳐들어오고 나면 이제 그 애송이 개루 놈도 제대로 된 칼 맛을 볼 것이네. 자네도 그때가 되서야 사리는 법 없이 칼을 휘둘러 보겠지. 그러나 그 이전에 흘릴 피가 너무 많아. 그 애송이 놈 때문에 백제가 흘릴 피가······."
너무 많아. 고기전과 함께 고이만년이 말을 꿀떡 삼켰다.
“차라리 고구려와 손을 잡는다면. 개루란 놈이 그럴 리 없지만 조금 고개를 숙이고 손을 잡는다면. 어차피 우리는 한 핏줄 아니던가. 그리고 저 가야와 신라 촌놈들을 베고 이 땅을 통일한다면 중국에 맞서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네. 성을 세우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야.”
“그렇습니까······.”
재증걸루는 손가락에 묻는 밥풀을 입으로 옮겼다. 주먹밥의 소금기가 남아있는 손가락에서 짭짤한 맛이 흘렀다. 재증걸루가 손가락을 핥는 것을 보며 고이만년이 걸죽한 웃음을 흘렸다.
“아직도 애 같구먼.”
“애 맞습니다.”
재증걸루도 낄낄 웃음을 내보였다.
“하긴 내 아들 뻘인 자네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스워. 마치 자네가 백제의 수호신이라도 되는 양······.”
“어불성설입니다.”
고이만년이 씩 웃으며 질그릇에 담긴 된장국을 들이켰다.
“그런데 자네는 그 금 닷냥을 어디에 썼나? 보아하니 모양새 내는 데 쓴 것 같진 않은데 말야.”
수염에 묻은 국물을 소매로 문지르며 고이만년이 꺼내는 말이다.
“도장을 만들었습니다.”
“도장?”
“예. 원래 제가 가진 도장이 워낙 변변치 않아서.”
거침없는 재증걸루의 답변에 고이만년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몸을 일으켰다.
“가시렵니까.”
“가야지. 내 아들뻘인 자네한테 잘 얻어먹고 가네.”
재증걸루도 웃었다.
“어디 이게 제 쌀입니까? 왕이 한턱 낸 쌀이지요.”
고이만년이 웃으며 재증걸루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더니 그의 표정이 놀랍도록 굳어졌다.
“왕의 쌀이 아니야. 백제의 쌀이지.”
이 한 마디를 뇌까린 고이만년의 표정이 다시 풀어졌다. 그러나 뜬구름 잡는 듯한 말투로 고이만년이 입을 열었을 때 표정이 굳어진 것은 재증걸루였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참, 자네도 요새 개루가 웬 궁녀에 미쳐 산다는 말은 들었나?”
고이만년은 재증걸루의 표정은 읽지 못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개루가 그 년 치마폭에 빠져 도미 쪽에도 발걸음을 끊었단 말이 있네. 그래서 요새 색공놈들이 울상이라더만. 그 개눔들은 썩어빠져도 싸다만.”
“그······.”
말을 꺼내려던 재증걸루가 입술이 떨리는 것을 깨닫고 가만히 아랫입술을 물었다. 고이만년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요새 누가 궁궐을 월담 한다는 말이 도네.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있구.”
재증걸루는 가만히 입술에 힘을 주었다.
“혹.”
“그 궁녀의 이름이 혹시·······. 뭐랍디까?”
입술의 떨림이 잦은 모양이다. 그러나 고이만년은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이 재증걸루를 내다보았다.
“사람들이 궁녀 이름을 어찌 아나? 시종장도 모를 터인데.”
“······.”
고이만년이 다시 한 번 재증걸루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나는 이만 가겠네. 어차피 자네하고는 얼굴도 자주 볼 사이네만 종종 와서 이렇게 이야기 하지. 자네가 싫다 해도 어쩔 수 없네. 이 늙은이가 심심한 터에.”
“싫을 리 있겠습니까.”
재증걸루가 웃어보였다.
“젊은 애가 웃으니 이 늙은이도 웃게 되는구만. 그럼 나는 가네.”
고이만년의 일행이 공사장을 돌아 빠져나갔다. 빈 쌀자루를 지고 가는 소들의 목에서 쩌렁쩌렁한 방울소리가 울렸다. 나라의 소라는 징표다. 방울소리를 내는 소 앞에서 일꾼들과 병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방울소리가 멀어지고 다시 왁자지껄한 소리가 몸을 높였다.
재증걸루는 식은 상에 올려진 고기전을 집었다. 그러나 먹을 생각은 없었다. 재증걸루는 방금 고이만년에게 궁녀의 이름을 묻던 자신을 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 겁쟁이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무얼 물어 본 것이더냐. 혹 머리에 꽃을 꽂던 궁녀일까 그렇더냐. 그러나 염려가 진한 먹으로 재증걸루의 눈앞에서 그림을 그려대기 시작했다.
개루가 궁녀를 안는다. 머리에 꽃을 꽂은 채 바들바들 궁녀가 떤다.
그 밤. 노루에게서 흘러나온 사향 냄새가 개루의 옷에 진동을 하던 그 밤. 꽃은 이제 고개를 숙이고 시들어있다. 개루의 두 손이 꽃을 쥔다. 꽃이 바들바들 떤다. 개루가 꽃을 뽑아 바닥에 내던진다. 온돌이 뜨겁게 마루를 지진다. 아직까지 파닥파닥 숨을 쉬던 꽃잎이 늘어진다. 개루가 궁녀를 안는다. 꽃이 시든다. 개루가 또 궁녀를 안는다. 꽃이 떨어진다. 개루가 다시 궁녀를 안는다. 꽃이 진다. 개루가······.
어느새 재증걸루의 콧가를 맴돌던 꽃 냄새는 사라진지 오래다. 다시 역한 두엄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꽃술에 범벅이던 그 진한 노랑빛의 꽃가루도 없다. 이 곳에 휘날리는 건 오직 흙 가루 뿐이다. 그 고운 품새도 찾아볼 수 없다. 왁자지껄하고 게으른 일꾼들과, 몽둥이를 든 병사들 사이에서 비명소리와 악다구니만 있을 뿐이다.
이름을 못 듣기를 잘하였다. 이름을 못 듣기를 잘하였다. 어차피 이름도 모르는 궁녀지만······.
재증걸루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왜 위례성에 있는가. 나는 왜.
시들어 떨고 있는 꽃 때문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