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을 위한 이야기(1)서문
그는 폴로가 가져온 선물 중 하나였다
0. 서문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떠돌이가 공주를 차지한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는 전 세계 곳곳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의 절반은 공주이며, 결국 또 세상의 절반은 공주를 바라는 떠돌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 역시 그런 떠돌이가 공주를 얻는 뻔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나 더하는 까닭은 이 이야기를 전하는 나 역시 떠돌이인 까닭이다.
역사서들은 하나같이 쿠빌라이 칸의 수많은 딸 중 서른일곱 번째 딸의 수려한 외모를 칭찬하고 있다. 그렇지만 역사서들 중 칸의 아름다운 공주가 어떤 칼리프나 영주, 왕 또는 황제와 결혼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내가 운이 좋게 찾은 이 낡은 이야기 속 공주가 꼭 그녀라고는 할 수 없다. 또 설령 이야기 속의 공주가 그 공주라 할지라도 이 이야기가 사실을 전하고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하나의 비유라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완전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전하는 나의 실력 또한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에 미리독자들에게 사과를 드린다.
또한 번역에 도움을 준 고려대학교 박명래 교수와 나즘 무라트씨, 그리고 미처 이름을 싣지 못한 터키 국립도서관 앙카라 큐트파네의 사서에게 감사의 인사를 바친다.
그는 폴로가 가져온 선물 중 하나였다.1. 그는 폴로가 가져온 선물 중 하나였다.
위대한 칸, 카간에게 폴로는 그를 북아프리카 출신의 기병 포로라고 설명했다. 폴로가 그를 그렇게 설명한 까닭은, 그가 폴로에게 자신이 북아프리카 출신 기병 포로라고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말한 지역에서 마지막 전쟁이 있었던 것은 적게 잡아도 이백 년 전의 일이었다. 폴로는 그를 사막에서 마주쳤다. 그는 사막에서 ‘원래부터 그 자리에 돋아나 있던 것처럼’ 서 있었다.
그는 스스로 길잡이를 자청했다. 카간의 궁전에 가본 적이 있냐는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폴로가 길을 잃지만 않았어도 이 미심쩍은 길잡이를 고용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폴로는 사막을 벗어나기 위해 그를 고용했다. 그러나 사막을 벗어난 후에도 그는 떠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폴로를 세계의 중심이자 원 제국의 수도, 칸발릭의 궁전까지 이끌었다.
그는 지도를 보지도 않았고, 나침반을 읽지도 않았다. 별이 없는 하늘 속에서도, 바람 한 점 없는 초원에서도 묵묵히 길을 걸었다. 그가 걷는 길은 때로는 미로 같았으며 때로는 곧이 뻗은 대로 같았다.
저녁이 되어 모닥불을 지피면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폴로를 만난 것처럼 매일같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이야기 대부분은 폴로는 물론이거니와 일행들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폴로의 소개가 끝나고 그는 카간에게 자신을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사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카간에게 예를 표한 후, 배배 꼬인 소라껍질과 카간의 궁정에서 뜯은 자주색 꽃잎, 그리고 눈의 결정이 새겨진 작은 돌멩이를 바쳤다.
카간이 그에게 물었다.
“이 소라껍질은 무엇인가.”
“바다에 잠긴 벼락입니다.”
카간이 그에게 물었다.
“이 꽃은 무엇인가.”
“땅에 묻힌 것들이 꾸는 꿈입니다.”
카간이 그에게 물었다.
“이 돌은 무엇인가.”
“외로움입니다.”
그래서 카간은 그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사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간은 이 거짓말쟁이의 목을 베어 죽이고 싶었지만, 폴로가 그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를 물린 자리에서 카간이 폴로에게 말했다.
“거짓말쟁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래서 카간은 그를 자신의 수없이 많은 공주들 중 한 명의 노리개로 보냈다.
그리고 카간은 그를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