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초원의 이야기
“칸의 공주와 맞닥뜨린 순간, 그는 자신의 오롯한 마음을 공주에게 빼앗겨 버렸다. 공주가 말을 허락하자 그는 공주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고 자신과 도망갈 것을 요청하였다.”
-이븐 나씨르-
“위대한 카간의 더없이 아름다운 공주님이시여, 저는 수없이 많은 것을 보아왔습니다. 제 눈 뒤에는 알라께서 이레 동안 창조하신 세상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제 귀 사이에는 이레를 말해도 다 말할 수 없는 세상의 이름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히 입술을 열어 진실로 말하노니 세상의 이름 없는 것들과 이름 있는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공주님의 아름다움에 비길 수는 없습니다. 제 미약한 여행길에서는 감히 공주님의 아름다움에 비할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이야기 속, 눈이 멀어버린 소년이 본 초원이라면 감히 제 입술에 공주님과 같이 올려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주님께 감히 간청하오니, 제가 당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카간의 어린 공주는 이 난데없는 요청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수없이 많은 구혼자가 있었지만 이토록 초라한 이는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공주는 세상 수많은 국가와 종교들의 예의범절에 답하는 방법은 배웠지만 무례함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공주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공주에게 절을 올리고 눈먼 초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눈먼 초원의 이야기
저는 알라께서 허락하신 수백 수천의 도시를 보았습니다. 그 중 개미굴처럼 사람들이 왕성하게 버글거리는 도시도 있었으나 깃든 생명체라곤 한 오라기 숨결도 내쉬지 않는 죽어버린 도시도 있었습니다. 제가 본 것은 비단 도시 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위대한 시인과 함께 달을 노래했다는 천년 묵은 버드나무도 보았습니다. 타르가의 숲에서는 바빌론의 이교도들이 세운 탑만큼이나 우뚝 솟은 전나무도 보았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웅장한 나무들만이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쥐똥도 엉겨 붙지 않을 덤불과 새 한 마리도 깃들기 힘들만큼 빽빽한 가시나무도 숱하게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해가 지지 않는 사막이 있습니다. 반대로 달이 영원토록 지지 않는 얼어붙은 황무지가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물에 대해서 들으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 물 속에서는 세상 어떠한 건물보다도 큰 바다의 거인이 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그 거인이 들숨을 내쉴 때마다 천지에는 물보라가 펼쳐지고 하늘에는 무지개가 피어오릅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땅에 펼쳐진 풀의 바다라고 할 수 있는 초원을 지날 때 초원에서 평생을 지낸 늙은이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때 저는 이십 여일을 넘도록 말 위에서 보낸 후였습니다. 저는 평생 떠돌아다녔지만 특히 그 이십 여일이야말로 평생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루한 여행이었습니다.
알라의 바람이 만들어낸 단단한 초원은 한결같은 구릉과 비탈길로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말도 끝없는 풀의 연속에 지친 나머지 풀을 보더라도 그 주둥이를 숙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노인의 천막은 마치 작은 섬과 같았습니다. 노인의 모습은 평생을 말 위에서 살아온 사람 같았습니다. 노인은 자신이 초원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이 끝없는 초원에 지킬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물으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아, 저는 그 순간 불경스럽게도 알라의 이름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제가 있는 그 초원은 다른 초원과는 분명 다른 아름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그곳은 녹색 하늘과 같았고 녹색 하늘에 펼쳐진 알라의 궁전과도 같았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쫓겨난 약속의 정원과도 같았으며 신선들이 노래하는 복숭아 과원과도 같았습니다.
노인이 ‘눈먼 낙원’이라고 부르는 곳이었습니다.
작은 덤불에는 손톱만한 메뚜기들이 튀어 다닙니다. 딱정벌레들은 알라께 경외하는 자세로 더듬이를 곧게 폅니다. 살이 통통하게 찐 땃쥐들은 초원의 풍요로움을 즐깁니다. 말들이 긴 갈기를 흔들며 향기로운 풀을 뜯습니다. 그 초원에는 무엇이나 풍족하며 무엇이나 향기롭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 초원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태초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이 초원은 나중에 피어난 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공주님께서는 혹 초원에 사는 야만인들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예, 아마 공주님께서는 이미 들으셨겠지요. 대양의 황제이자 세상의 칸인 칭기스칸께서 그 야만인들을 전사로 이끌어 세계의 끝에서 세계의 끝까지 말을 달리신 이야기를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러나 그 야만인들이 미처 전사가 되기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그 곳의 야만인들은 뿔로 만든 작고 구부러진 활과 마찬가지로 굽은 쇠칼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알라께서는 이 이교도들에게 믿을 수 없는 시력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도 알라의 지혜가 다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대대로 선지자 마호멧-그 분께서 평안하시기를-이 전한 알라의 말씀이 담긴 꾸란 한 글자 읽지 못하는 까막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언제나 이야기로 전했습니다. 노인들의 입에서 노인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보지 못한 세상의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그리고 낮과 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장님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이교도들은 양을 치고 독수리를 날려 쥐를 사냥하고 활로 토끼를 쏘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이들에게 장님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눈을 닫은 대신 초원의 지혜를 깨친 소년은 천막과 천막을 오가며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소년의 이야기는 이교도들에게 있어 단 물이었고, 국에 적신 빵이었습니다.
그러나 초원에는 풍요가 있지 않습니다. 초원에는 알라께서도 어찌하시지 못한 거대한 악령이 있어 항상 고통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어느 해, 큰 가뭄이 들어 무리는 결국 초원을 떠나야 했습니다. 무리는 많은 회의 끝에 소년을 두고 떠나기로 했습니다. 알라여, 그들을 용서하소서. 당신의 나약한 종이 가진 육체는 당신의 법보다 굶주림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까닭입니다.
무리가 떠나고 소년은 둥근 모전 천막을 떠났습니다. 목이 마르고 다리가 말라붙어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소년은 장님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해가 떠오르는 동쪽으로 걷고 있는지 놀이 물드는 서쪽으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직선으로 나아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소년은 알라께서 허락하신 만큼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지친 소년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소년은 비록 태양은 볼 수 없었지만, 그 태양의 열기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초원의 말라붙은 땅에서 물이 샘솟았습니다. 깡마른 덤불에서 꽃과 이파리가 피어났습니다. 촉촉한 흙을 열고 개구리와 풀벌레들이 기어 나와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작은 새들도 모여들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침내 춤추는 사슴과 두발로 뛰는 토끼들까지 소년의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통으로 가득 차 있던 초원은 순식간에 기쁨과 즐거움의 노래로 넘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래가 미처 다하기도 전에 초원의 한 구석에서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악령이었습니다.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찬 초원의 악령이 울부짖는 그 소리를 듣자 초원의 꽃과 벌레와 개구리와 새와 사슴과 토끼들은 모조리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소년은 어디로도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악령은 무시무시한 몸을 뒤틀며 소년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소년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악령은 고통이 없는 초원은 초원이 아니라며 투덜거렸습니다. 악령은 가뭄, 버려짐, 외로움, 고독, 지침이 없는 초원은 낙원에 지나지 않는다며 알라께서 자신에게 맡긴 역할에 대해 말했습니다. 악령은 소년의 이야기가 자신의 초원을 부수고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태껏 소년이 상상한 초원에는 아름다움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소년의 초원에는 고통과 슬픔과 좌절과 절망과 죽음과 악취와 가난과 무지와 가뭄과 굶주림과 목마름과 쓰라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그런 초원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악령에게 잠깐의 시간을 요구했습니다. 악령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년은 그 잠깐의 시간동안 초원을 상상했습니다. 물론 그 초원에는 아름다움 뿐 아니라 고통과 슬픔과 좌절과 절망과 죽음과 악취와 가난과 무지와 가뭄과 굶주림과 목마름과 쓰라림도 있었습니다. 소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악령은 그 자리에서 달려들어 소년을 먹어치웠습니다. 그러나 악령은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악령은 눈을 감았습니다. 악령은 눈을 감고 초원을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고통과 슬픔과 좌절과 절망과 죽음과 악취와 가난과 무지와 가뭄과 굶주림과 목마름과 쓰라림이 있는 초원,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초원이었습니다.
이교도들이 말했습니다.
비록 우리는 초원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년이 쓰러진 ‘눈먼 낙원’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곤 한다고. 그렇습니다. 그 초원에는 초원의 악령이 눈을 감은 것처럼 완전한 아름다움이 가득했습니다.
노인을 떠나 만난 이교도들은 이 초원의 이름에 대해 다투기도 했습니다. 눈먼 소년이 죽었기 때문에 ‘눈먼 낙원’으로 불리게 된 것인지, 악령이 이 곳에 대해서만 눈을 감았기 때문에 ‘눈먼 낙원’인지, 아니면 이 곳에 찾아온 여행자들이 마치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이 곳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것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비록 그곳은 낙원이지만, 진짜 초원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낙원을 한 발자국이라도 떠나는 순간부터 다시 초원은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교도들은 말합니다. 눈먼 소년의 영혼은 이 낙원에 앉아 초원을 보고, 우리는 초원에 앉아서 낙원을 본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낙원을 본 자들은 오롯한 눈, 낙원을 보기 전의 눈으로 초원을 바라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즉 우리는 그 낙원을 보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오롯한 초원을 소년에게 바치는 셈입니다.
이 둘 다 초원을 바라보는 시각임은 분명합니다.
아름다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주님, 제게 있어 이 세상은 초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낙원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