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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서시 Jun 25. 2021

「미스터 방」

서른 넘어 다시 읽기

 채만식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제 사심의 발로인지 모르지만, 정말 뛰어난 작가입니다. 일제 시대 민중들이 사랑했던 판소리의 말투를 본 따 소설을 쓴 것도 천재적인 발상입니다. 요즘으로 생각하면 유튜브나 예능 프로의 화법으로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이 이후 교과서에 실리는 셈이 되겠지요.

사투리를 쓰는 허술한 나쁜 놈이 주인공인 영화. 채만식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또 채만식의 소설 중 독특한 것은, ‘나쁜 놈’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기사 그가 살았던 일제시대를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나쁜 놈들 전성시대’였요. 채만식은 이렇게 나쁜 놈을 하나 골라 잡고는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하는 풍자의 대가였습니다.    


 채만식 이야기를 하고자 하 대뜸, 친일작가 아니냐며 이맛살을 찌푸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채만식은 친일파입니다. 문학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지요. 그러나 1944년이 되어서야 친일 행위에 발을 담근 채만식이 친일 작가로 유명한 것은, 그가 그 사실을 스스럼없이 밝히고, 사죄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풍자해서 아예 「민족의 죄인」이라는 소설까지 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살펴본 박태원도 친일 행위를 한 문인이지만 그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요.)


 오늘 같이 읽을 작품은 아예 모든 중심 인물들이 나쁜 인물인 소설입니다. 채만식 문학의 정수 중 하나인 「미스터 방」, 같이 읽어볼까요?     



 주인과 나그네 두 명이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술은 맥주, 안주는 라조기입니다.

라조기입니다. 저도 이 소설 아니면 몰랐겠지요.

 라조기는 닭을 튀겨 매콤짭짤한 양념에 버무려 볶은 중국 요리입니다. 이 소설은 1946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벌써 치맥을 다룬 문학이라니, 벌써부터 작가의 천재성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서른일곱 먹은 주인은 미스터 방, 머리가 하얗게 센 마흔여덟 살의 나그네는 그의 고향 사람인 백 주사입니다.

 주사는 일제시대 말단 관직이었습니다. 그러니 호칭만 보아도 백 주사가 일제에 가담했던 사람임을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미스터 방이라는 호칭은,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도 있었지요, 그렇습니다. 그가 미국에 협조하고 있음을 알려주네요.

 표면상으로는 화기애애한 술자리입니다만, 백 주사는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백 주사는 미스터 방의 과거를 알고 있거든요. 미스터 방은 과거 방삼복이라는 인물로, 그 조부는 고을의 아전이었고, 그 아비는 짚신장수요, 게다가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방삼복은 서울 시내에서 신기료 장수(구두를 수선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입니다.)를 하고 있었습니다.

 백 주사를 볼까요? 그의 칠대 조(祖)가 영의정이요, 오대 조가 호조판서를 지냈고, 삼대 조는 진사를 하였습니다(백 주사의 말에 따른 그의 족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여부를 떠나, 사실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점점 몰락하고 있군요.). 그는 이런 명문거족의 집안에, 심지어 그의 십이촌은 일제시데 동안 군수를 지냈고, 그 아들은 아예 조선을 떠나 만주국에서 촌장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의 아들이 경찰서 경제계 주임이었니다. 해방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명문거족이었습니다.

순사들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해방하기 전 마지막 2년은 그의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전성기였습니다. 공출과 수탈이 가장 극심하던 때, 오히려 경제계 주임이었던 그의 아들의 권한이 더욱 강해졌던 것입니다. 결국 해방 당일 밤, 군중이 그의 집을 습격하여 세간살이를 죄다 빼앗았습니다. 그 길로 서울로 도망나온 백 주사는 어떻게든 다시 재산을 찾을 수 없을까 궁리를 하던 중에, 방삼복이었던 미스터 방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백 주사가 보니 미스터 방은 번듯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으리으리한 집에, 식모에, 침모(針母: 바느질을 하는 하녀를 의미합니다.), 거기에 하녀가 한 명을 더 부리고 있습니다. 백 주사랑 술을 먹는 중에도, 미스터 방의 아내가 웬 봉투를 받아 옵니다. ‘서 주사’라는 사람이 뇌물로 봉투 안에 만 원을 넣어 놓았네요. 사실 당시 만 원도 적지 않은 돈인데, 미스터 방은 욕을 하며 그 만 원을 다다미 바닥에 집어 던집니다.

 백 주사는 놀랄 수밖에요.

 미스터 방이 이렇게 출세한 연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삼십을 바라보도록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던 방삼복(그러니까 미스터 방)은 어느 날 훌쩍 일본으로 떠납니다. 일본에서 칠팔 년을 보내고는 별 소득이 없자 이번에는 상해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삼 년. 그러고도 소득이 없자 처지식을 데리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여기까지는 백 주사도 알고 있는 내용.

실제로 용산에 포로수용소가 있었습니다. 주로 영국군들이 수감되었다네요.

 그런데 서울로 온 방삼복은 용산에 있는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는 본래 상해에서 조금 영어를 익혔는데, 이 영어가 더 늘게 되지요. 그 이후에 그는 구둣방에서 일했는데, 일본이 전쟁을 하면서 구두와 재료를 징발하자, 구둣방이 문을 닫게 됩니다. 그가 신기료장수로 쫓겨나게 된 배경이지요.

 그러다 해방이 됩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光復: 빛을 되찾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방삼복은 즐겁지 않습니다.

 “우라질! 독립이 배부른가?”

 그가 던진 이 한 마디는 방삼복의 인간됨을 가장 잘 나타낸 한 마디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독립은 사람들을 배불리지 않았습니다.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지요. 그러다 그는 미군 병정들이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고 무릎을 칩니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남아있던 모든 세간살이를 팔아 양복을 삽니다. 그리고 한 미군 장교의 옆에 가 섭니다. 미군 장교는 기념품으로 담뱃대를 사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하필 담뱃대를 파는 사람이 또 노인입니다.

 “하우 머치?”

 하고 묻는 장교에게 노인은 빽빽 소리만 지르고 있네요. 답답해하는 장교에게, 미스터 방은, 마치 구원의 빛줄기처럼 나타나서 말합니다.

 “더티 원.”

그 당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경회루 사진입니다.

 그의 영어는 사실 그정도 수준입니다. 경회루를 설명해달라는 장교, S 소위에게, 미스터 방의 설명은,

 “킹 드링크 와인 앤드 댄스 앤드 싱, 위드 댄서.”

 가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 영어로도 성공하기 충분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S 소위의 통역으로 취직하고, 이제 미스터 방이라는 호칭으로 불립니다. 방삼복은 미스터 방이 된지 사흘 만에 집을 삽니다. 일제시대에는 은행 중역이 살았던 사택, 반은 일식, 반은 서양식으로 되어 있고, 정원과 심지어 연못까지 딸린 집입니다. 이제 그에게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인력거를 탄 사람은 택도 없고, 주로 자동차를 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미스터 방에게 ‘뿌듯한 봉투’를 쥐어줍니다.

 이제 소설은 결말을 향해 달려갑니다. 백 주사는 방삼복, 아니, 미스터 방에게 부탁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되찾고, 자신의 재산을 빼앗아간 그놈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면 원 재산의 반을 내놓겠다고.

 앗, 미스터 방이 순순히 응하네요. 심지어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그의 말 한 마디면 이승만도 그만 제바리라나. 그러더니 냉수 그릇을 집어, ‘꿀쩍꿀쩍’ 양치를 합니다. 그러다가 노대(배란다)에 나가 물을 쭉 뱉는데,

 아뿔싸, 그 밑에 S 소위가 있었네요. 심지어 미스터 방을 올려다보고 있던 그 찰나,

 미스터 방의 ‘걸쭉한 양칫물(원문에 그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이 ‘백절폭포(아니, 무슨 양치를 이렇게 거창하게 한 걸까요.)’로 그의 얼굴에 쏟아진 것입니다. 허둥지둥 뛰쳐나온 미스터 방에게 S 소위는, 아마도 미스터 방에게 배웠을,

 “상놈의 자식!”

 고 욕설을 하며 그의 턱을 어퍼컷으로, ‘철컥’, 갈깁니다. 이 장면으로 소설은 끝을 맺지요.       



 학교에서는 결말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부풀어오르던 풍선이 한 순간에 터지듯, 미스터 방이 몰락하게 되었다고요. 그렇게 보면,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다룬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면, 걸리는 것들이 많습니다.

 백 주사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력 하나 없이 자신의 배경과 친지에 빌붙어 부를 누렸던 기생충이었습니다. 어차피 그는 광복 이후의 세대에 맞지 않는 인물이지요. 우리의 주인공, 미스터 방에 주목해보겠습니다.      


1. 가즈아, 미스터 방!

가즈아!!!!!!!!!!!!!!!!!!!!

 해방 이후 한반도의 남쪽에 미군이 들어왔습니다. 이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남겨두고 간 재산, 즉 적산(敵産:적의 재산)을 처리하는 것이었지요. 미군들은 현지 주민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또 자본주의의 체계에 따라 적산을 정리하고자 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경매였습니다.

 개별품목으로 하나하나 경매하기엔 너무 품이 많이 들지요. 그래서 적산(敵産)은, 마치 오늘날 랜덤박스처럼 묶여 경매에 올랐다고 합니다. 오늘날 게임회사 임직원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미군들도 이런 방식을 공정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게임 운영이 그렇듯, 공정하게 운영되는 확률 게임은 없나 봅니다. 애초에 이 경매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미군을 중개하던 통역사들이 이 경매에 개입합니다. 이들은 특정 사람이 많이 낙찰받도록 경매 시스템을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랜덤박스 안의 물품을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뜬금없이 ‘서 주사’라는 인물이 왜 미스터 방에게 뇌물 만 원을 건넸고, 미스터 방이 화를 내면서 “백만 원 하난 냉겨먹을 테문서”라고 했는지 말입니다.

 미군의 묵인과 방조 아래, 그리고 우리의 험난한 근현대사의 틈바구니에서 이 통역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게 됩니다. 물론 소설에서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었겠지만 미스터 방은 S소위의 통역이 되고 사흘 만에 ‘호화스런 저택’을 구입했을 정도입니다. 요즘 광풍이라는 코인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사흘마다 집 한 채 값이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일요일은 쉰다고 해도 일주일에 집이 두 채입니다. 1년이면 아파트 한 동도 무리가 아닙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만, 집 하나 없이 민달팽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요즘, 생각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발 가즈아!!!!!!!!!!!!!!!!!!!!!!!!!!!!!!!!!!!!!!!

2. 미스터 방은 악인인가요?


 미스터 방은 악인인가요? 소설을 보면 미스터 방도 백 주사처럼 악인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면, 그는 책임감 좀 없고, 공동체 의식도 좀 없고, 교양도 좀 많이 없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지만 누군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미스터 방과 같은 이런 위인들을 문학에서는 ‘소시민’으로 부릅니다. 1980년대 소설계에서 소시민은 더 이상 악인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흔한 사람으로 묘사되지요.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미스터 방은 악인일 수도 있지만, 사실 백 주사처럼 선을 넘은 사람은 아닙니다. 말마따나 그는 ‘총기가 좀 좋’았고,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미스터 방 때문에 많은 적산(敵産)들이 본래 주인이었던 조선의 민중들에게서 벗어나 서 주사 같은 한 줌 모리배들의 손아귀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미스터 방이 없었어도, 다른 통역들이 그 짓거리를 대신 했을 것입니다.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이 소설의 교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미스터 방과 같은 부정적인 인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요. 그러나 정말 우리 사회가 그렇나요? 「미스터 방」 마지막 페이지만 덮고 나면, 미스터 방처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나요?

 (물론 양칫물은 조심해야 하겠지만요.)

다시 보자 양칫물


3. 미스터 방은 몰락했을까요?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S소위에게 한 대 얻어맞은 미스터 방은 정말 몰락했을까요?

 일단 당시 통역들의 존재는 희귀했습니다. 실제로, S 소위 역시 미스터 방이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알자마자 ‘사뭇 끌어안을 듯이 반가워하는 양’을 보였습니다. 그러니 S 소위는 미스터 방을 용서할지도 모릅니다. 뭐, 자기도 욕을 하고 ‘어퍼컷’으로 줘 팼으니, 분이 풀렸을 수도 있구요. 또 설령 S 소위가 아니더라도, 미스터 방이 다른 연줄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 역사라면, 미스터 방은 다시 살아났을 겁니다. 어쩌면 끝내 백 주사의 청을 들어줬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어쩌면 바로 이게 채만식이 하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릅니다. 설령, 설령 이 미스터 방은 몰락하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당신은 통쾌함을 느끼겠지만,


 보십시오.


 이 책을 덮고 나면 세상에는 수백, 수천의 미스터 방들이, 백 주사들의 손을 잡고 우쭐우쭐 줄기를 뻗어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수백, 수천의 미스터 방들이 잠들어 있을, 1946년 서울의 모습입니다.

예시로 적절한 사진은 아닌 것 같네요.

 쭉쭉 뻗어나가는 기세를 보여주는 사람을 두고, 호랑이의 등에 탔다고 하지요.

 정작 본인은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일지 모르지만, 밖에서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미스터 방에게 S 소위가 호랑이였다면,

 지금도 부동산, 테마주, 비트코인, 알트코인 등 수많은 호랑이들이 있습니다. 등 위에서 “가즈아!”를 외치며 앞서 달려가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타야 할까. 그러나 그 등 위에서 떨어지는 사람들도 보이네요. 아, 지금 타면 저렇게 덤탱이 쓰는 거 아냐? 다시 들려오는 외침, “가즈아!”. 아니, 지금이라도 타야 하나.      


 언젠가는 이 투자 광풍과 몰락 역시 현대사의 틈바구니로 기억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호랑이의 등 위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조롱하겠지요. 그렇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이 올라탈 수 있는 호랑이가 어디 있을까 호시탐탐(虎視眈眈) 노릴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미스터 방」은 단순히 이렇게 살지 마시오, 하고 훈계하는 소설은 아닙니다. 시대도, 나도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모두가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을 때, 그럴 때일수록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채만식은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 출신입니다. 얼마든지 미스터 방이 될 수 있었던 그는 자신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1946년, 「미스터 방」을 발표한 이후, 채만식은 앞서 말했던, 자신의 친일행위를 고발하고 반성하는 내용을 담은 「민족의 죄인」을 집필합니다. 「민족의 죄인」은 1949년 발표되었습니다. 채만식은 1950년 6월에 작고했습니다. 누구는 자신의 알량한 재주로 부를 누릴 때, 채만식은 소설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지금도 사회 경제면의 뉴스를 보면, 올라가는 미스터 방과, 떨어지는 방삼복들이 넘쳐납니다. 세상살이가 본래 그런 것이라면,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호랑이를 타지 않더라도, 제 걸음 속도로 걸어가는 수밖에 없지요.      


 묵묵히 제 걸음을 걸어가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PS. 제 오백 번째 게시글이네요.

      진심이 전해질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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