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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서시 Jul 04. 2023

도슨트: 반 고흐의 자화상

그림을 그려야겠다

구역질 사이 침을 흘리며 다짐했다

그림을 그려야겠다

불면의 밤 빙글빙글 도는 어둠을 보며 생각했다


바다를 그리자 

내가 그리지 않았던,

휘몰아치고 출렁이고 꿈틀거리는 것,

아니,

그렇다면 바다 아닌 것이 없다, 

밀밭도 태양도 별도 해바라기도

금빛 출렁임,

플라타너스가 교회가 첨탑이 꿈틀거린다 휘몰아쳐서는


꽝―

나를 때린다

그림을 그려야겠다

먼지 묻은 무릎을 털며 손바닥의 상처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낮은 것을 그리자 

더러운 화폭에 더러운 것들을 그리자

버림받은 붓으로 찾아주지 않는 물감을 섞자

혼자 사는 늙은이, 거리의 여자, 밤나무의 나방, 폐병이 든 광부…


감자 먹는 사람들…


아니, 아니다

그렇다면 나를 그려야 한다


더러운 화폭에… 

버림받은 붓으로… 

찾아주지 않는 물감들로…


오오…

꿈틀거린다 출렁이는구나


휘몰아친다

슬픈 사람들은 보시오

가난한 사람들은 보시오

내가 여기 그대들의 자화상을 그려놓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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