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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서시 Oct 20. 2023

이러한 밤이 되면

나는, 우리는 인연이 아니었다는 당신의 말을

생각합니다. 손깍지를 베개 삼아 누운 채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연이기 위해서는

이전 생과 그 이전의 생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많은 옷깃을 스쳤어야 했을까요

우리가 인연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옷깃을 놓쳤던 것일까요

당신의 말이 모질었던 것은

어쩌면 이전의 생에서 내가 모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모르지요, 어쩌면 나는, 발굽을 절고 있는 당신 앞에서 새끼를 뜯어먹는 들개였었는지도 모릅니다

탤레비전의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듯 말예요

그렇다는 것은, 또 어쩌면 나는,

이 다음, 또는 이 다다음의 생에서,

당신에게 모진 말을 뱉게 될까요,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이번에는 내가 모질게 굴었던 얼굴들이 지나갑니다

내가 뱉은 모진 말들이 지나갑니다 철새처럼

끼룩끼룩 날 보고 웃으며, 저들끼리 떠들면서 말이지요

그러고 보면, 내가 받은 그 모진 말은,

당신이 모질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 모진 말들의 대답이었나 봅니다


아, 우리가 다시 인연이 되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나는 더 많은 옷깃을 스쳐야만 하겠지마는

어째서인지 나는 이렇게 손깍지를 베개 삼아 이렇게 누워있을 뿐입니다


인연조차 아니었던 우리의 일도 철새처럼 나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여기 당신이 읽지 못할 이 편지와

누구도 스치지 못하는 나의 옷깃뿐입니다

하늘에는 그림자도 남기지 못하는 별들이 깜박이고 또 깜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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