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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서시

전화가 끝날 때마다 그 남자의 몸이 작아졌다

by 엽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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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그 남자는, 아마 퇴근길이었을 그 남자는, 이미 늦어버린 명절 안부전화를 돌리느라 법석이었다. 무슨 부장과 무슨 어디 동기회 회장과 무슨 체육회 회장에게 전화를 하며 그는, 이마에 무른 진땀과 번들거리는 기름기를 소매에 적셨다. 전화를 마치고, 남자는 잠시 허공을 보더라. 보더니 작은, 아주 작아서 개미도, 눈치채지 못할 한숨을 쉬었다. 그 네 통의 안부 전화동안 남자는, 조금 작아진 듯 했다. 일 년이 한가위만 같다면, 남자는, 얼마나 더 작아질까. 얼마나 더 작아지고 나서야 남자는, 개미도 눈치채지 못하는 세상에서, 후련하게 숨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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