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엽서시

그 수없는 치킨을 추모하며

by 엽서시


IMG_20150930_204854.jpg

벗은 나의 몸을 보며 어느 닭을 연민한다

이 무덤은 풀이 아닌 살로 덮여 있다

이 살 아래에는 스무살 시절의 내가 죽어 덮여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닭과, 닭과, 또 다른 닭과 그리고 수 많은 닭이 죽어있다

일종의 순장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미친듯이 산을 뛰어다니며 새를 쫓다 마침내 손가락으로 붉은 살과 피를 헤치는 즐거움 따위가 있으랴

길들여진 닭을 기름으로 길들여 먹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그리하여 이 몸을 보며 스무살 어느 순간의 나를 추모한다 가을 또는 겨울 만되면 시를 들고 우쭐거리던 어린 나를 동정한다

그리고 이제는 죽어 바스라진 나를,

죽음으로써 나를 길들인 닭을,

고대 왕의 무덤보다도 비참한 이 살더미를 연민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전화가 끝날 때마다 그 남자의 몸이 작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