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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Feb 29. 2020

내 삶의 의미를 세상에 물어서는 안 된다.

빅터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팀 페리스는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타이탄들이 공통적으로 칭찬하는 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찰스 멍거의 <불쌍한 찰리>, 로버트 치알다니의 <설득의 심리학>,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 칭찬하고 더 많이 인용한다.


사피엔스와 싯다르타에 이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도전했다.


책을 읽는 내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삶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이지? 그 의미를 나는 세상에 묻고 있었나? 내 안에서 찾고 있었던 건 맞나? 난 자유를 만끽하면서 살고 있었나? 그저 하루하루 재미있게 사는 게 제일 아닌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재미있게 사는 건가? 고난과 고통이 밀려올 때 난 어떻게 했었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작가가 누구인지가 궁금해졌다.


빅토르 에밀 프랭클(Viktor Emil Frankl)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태어난 사람이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으며,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 등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 정신의학자이자 신경학자, 심리학자였다.
로고테라피의 창시자이며, 오스트리아 정신요법 제3학파인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했다. 저서인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포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이 책을 작성하면서 존재의 의미의 중요성과 수용소에서 계속해서 살아갈 의미를 찾았다.
-위키피디아에서 참조-

의도하지 않았고, 의도하고 싶지도 않았겠지만 그의 흔치 않은 수용소에서의 경험이 지식과 운을 만나 이 책과 로고테라피라는 학파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료하고, 각자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1.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유를 갖는다.


빅터 프랭클은 어떠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단 하나의 자유는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그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를 결정할 자유이다. 인간은 모든 것이 구속된 극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자유를 갖는다.


수용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남을 위한 희생,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창 밖의 나무나 모닥불을 바라보며 치유받았던 순간, 수감자들끼리 만들었던 자조 모임들,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이를 강의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던 순간에서 사람들은 '마지막 자유-태도를 결정할 자유'를 선택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p139-


살면서 수용소에 가게 될 일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수용소와 같은 극한 상황 피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통을 피할 수 있을까? 모든 고통은 지극히 상대적이기에 살면서 극한 상황을 피할 수는 없다. 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고통은 어쩌면 매일 매 시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단 한 가지 사실. 이에 대응하는 태도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한다. 이를 통해 고통을 받아들이고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게 된다. 지극히 수동적인 상황에도 말이다.



2.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상황도 견딜 수 있다.


삶의 의미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빅터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을 빌려 삶의 의미가 갖는 중요함을 전달하고 있다.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p138-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p174-


난 5년간 난 힘들었다. 우리 가족 전체는 버티고 또 버텼다. 병원에서 감정적, 육체적 고통을 느꼈고, 집에서 죄책감과 박탈감을 느꼈다. 사회에서 따가운 시선과 소외감을 느꼈다. 아내와 나는 이 상황을 견뎌내야만 했다. 상황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힘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를 바꿔줄 신적인 존재의 영향력은 없었다.


우리는 유머로 이 상황을 견디기도 했다. 새벽 3시 응급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24시간 '김밥헤븐'에서 김밥을 샀다. 이 와중에도 배가 고프다며, 역시 참치김밥은 진리라며 크게 웃었다. 왜 우리는 큰 아이에게만 지력 스탯을 몰빵 했냐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극한 상황을 웃음으로 극복해 보려 했다.

  

유머는 잘 작동하기도 했지만 감정 소모끝단으로 가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아내의 감정과 내 감정이 모두 소모되는 그 순간 우리는 싸웠다.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집안을 큰 아이는 아주 잘 감지했다. 지력뿐 아니라 눈치라는 스탯을 큰 아이는 스스로 찍고 있었다.


삶의 의미는 힘든 상황에서 찾을 수 없는 거라 생각했다.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찾는 거라 생각했다. 상황이 변하기만을 바랬고, 나 스스로 태도를 선택할 자유를 행하지 않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자 견디어 내기 힘들어졌다.


돌파구는 책이었다. 아내와 나는 시간이 나면 책을 읽었다.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어떤 책이던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에게 '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은 없었지만, '내 삶의 의미'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이 힘을 태도와 행동으로 쓰고 있는 지금, 빅터는 내가,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었다.



3. 세상으로부터 받는 질문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p181-
시련은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 -p187-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p221


`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나'라는 사실을 40이 다 되어서야 깨닫는다. 항상 세상을 향해 질문했다. '나'는 누구인지 말이다.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난 항상 그러했다. 스스로 '나'에 대해 질문하고 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민할 시간에 남들이 좋다고 하는 지식을 머리에 욱여넣었고, 고민할 시간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고민할 시간에 영화를 보고, 고민할 시간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공부, 친구, 술, 영화, 스마트 폰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세상이 나에게 던진 질문에 답을 하는 일을 등한시했다. 내 삶을 온전히 내가 책임지려는 생각이 없었다. 남 탓을 하고, 부모에게 기대고, 친구에게 기대고, 아내에게 기댈 뿐이었다. 내 인생에 그 어느 것 하나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은 없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척하고 남 탓을 했다.


빅터는 인간을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했다. '행복할 이유'는 의미에서 나오며, 그 의미는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지며 삶의 질문에 대답할 때 찾을 수 있다.



행복하기 위해 산다?

살다 보면 화가 나는 상황이 많다. 짜증 나는 상황은 더 많다. '아...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젠장. 화가 난다.', '돈만 있으면 정말 멋지게 살 수 있을 텐데... 아 슬프다.', '부장님은 나한테 왜 이리 화를 내는 거야, 짜증 나 죽겠네...', '남편 때문에 정말 짜증 나고 화가 난다.' 이런 상황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


상황에서 내 잘못은 없는 듯 보인다. 돈이 문제고 부장이 문제고 남편이 문제다. 그러 빅터가 말한 대로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도 그 상황을 대하는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기에 난 선택할 수 있다. 돈이 없지만 행복할 수 있는 태도를, 나에게 화내는 부장에게 연민을 품을 수 있는 감정을, 남편의 행동과 내 반응 사이에 충분한 공간을 둘 수 있는 아량을 지길 선택할 수 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행복한 삶을 난 살고 있으니까. 행복은 내 선택의 결과이자 과정이고 선택은 내 자유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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