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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Feb 01. 2020

80년대생의 흔한 이혼 사유는 '육아'라고?

오늘은 찐이 아빠가 아닌 남편.

나는 아내에게서 받는 칭찬을 가장 좋아한다. 유효기간이 길고, 달콤하다. 아내에게 듣는 '잘했다' 혹은 '고맙다'라는 말에 난 흥분한다. 그래서 은근히 티를 내려고 노력한다. 설거지를 하면 아내 앞으로 가서 앞치마를 벗는다. 화장실 청소를 하면 '쉬 안 마려?'하고 넌지시 묻는다.


귀엽고(?) 센스 있게 티 내는 나에게 유쾌하게 웃으며 칭찬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칭찬은커녕 냉담한 눈빛만 돌아온다. 달콤한 칭찬을 바라는 나로서는 참기 힘들다. 아내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무슨 칭찬을 바라는 거냐, 자꾸 티를 내니 더 짜증 난다는 눈빛을 보낸다.


아내가 기사 하나를 나에게 전달했다. 최유나라는 이혼 전문 변호사의 인터뷰 기사다. 인스타툰 <메리지 레드>를 연재하고 있는 그녀는 80년대생의 흔한 이혼 사유의 90%는 육아라고 말한다.

자녀를 출산한 직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80년대생 부부들이 많이 찾아왔어요. (......) 표면상의 이유는 가정 폭력이나 외도라고 해도 잘 들여다보면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가 변질한 사례죠. 애 하나 키우는 게 너무 어려운 시대 같아요. 집값은 오르고 취업도 어렵고, 인식 변화로 집안의 기대치도 달라졌죠.

육아 문제가 가장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아이가 대여섯 살 때예요. 30대를 지나는 80년대생 부부 대부분의 아이가 이 나이대죠. 아이가 어려 뒤치다꺼리할 일이 많다 보니 ‘언제 들어오냐’ ‘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 같다’ ‘나는 노력할 만큼 하는데 왜 늘 불만이냐’ 하며 싸우게 돼요. 양보하지 않고 비난하다 보면 이혼으로 치닫게 되죠. 지금의 상황 때문에 싸우고 헤어지는 일이라 안타까워요. 아이가 크면 해결될 부분이 많거든요. 육아 문제는 성격이나 성향 차이가 아닌 역할 분담에 따른 부분이 커요.

-jobsN “1980년생들의 이혼 사유 90%는 바로 이겁니다” 에서 발췌-



육아가 '이혼의 이유'가 되는 이유


생각해 보니 칭찬이 멈추었던 시기가 둘째가 태어났을 무렵이었던 듯하다. 나의 귀여움과 센스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육아와 집안일은 아내만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에 동의한다. 내 세대는 특히 그렇다. 실제로 육아와 집안일에 많은 부분 참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머릿속 깊숙한 곳에는 아내를 '돕는다'라고 하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나도 그랬다. 그러니 아이를 돌보고, 설거지를 하며 그렇데 티를 내고 칭찬을 갈구하지 않았겠는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며 칭찬을 받으면 좋겠으나, 칭찬을 '갈구'하지는 않는다. 귀여움과 센스로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어느 정도 덮을 수 있었으나, 둘째가 태어난 이후 여러 가지 문제들이 누적되어 그냥 덮기에는 너무 컸다.


아내는 긴 시간 육아 휴직을 했다. 육아에 지쳐 있었다. 아이, 그것도 장애를 가진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했다. 아이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형제들이나 친구들을 보면 자존감이 떨어졌다. 힘들다고 이야기해 보지만 그 누구도 나를 공감해 주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나'만을 위한 시간이 없어지고 '아이'를 위한 시간만 가득 찬다. 감정은 소모되어 바닥을 드러낸다. 


이때 남편이 필요하다. 그런데 남편이라는 작자는 야근을 하고 회식을 한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야근도 없는 편이고, 회식도 적은 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 냔다. 다 합치면 일주일에 집에 일찍 들어온 날이 늦게 들어온 날 보다 많다는 사실을 모른다. 일찍 들어온 어느 날, 눈 앞에 '내가 너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도왔으니 칭찬해줘'라고 유머랍시고 깝죽대는 남편이 보인다. 짜증이 난다. 화가 난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혼을 하고 싶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가 크면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 아이는 금방 커서 자기 앞가림을 하기 시작한다. 손이 덜 간다. 내 시간이 많아진다. 소모된 감정이 조금씩 채워진다. 남편의 인식은 맘에 안 들지만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 아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손이 더 갈 수 있다. 자기 앞가림을 평생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떡하지? 이 싸움을 어떻게 마무리하지?



마음 근육을 키운다.


묵묵히 내 할 일을 한다. 그저 내 할 일을 했기 때문에 칭찬을 바랄 필요도 없다. 자기 할 일을 한 거지만 그 속에 열정과 사랑을 보았다면 칭찬한다. 화가 나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아내의 말에, 아내의 짜증에 내가 화가 난 것이 아니다. 난 지금 화를 내고 싶은 상황이었을 뿐이다. 화를 내기 위한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움직일 수 조차 없는 불행이 날 감싸더라도 이 상황을 대하는 내 태도는 내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해야 함을 항상 되뇐다.


아내의 말과 행동을 비난하거나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불쑥 내 마음대로 판단해서 말할 때가 있지만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불편한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연습을 한다. 잘못을 이야기하고 사과한다. 아내의 말을 듣는다. 온몸을 다해 공감한다. 잘 되지 않더라도 노력한다. 마음 근육을 키운다.


이제 아내와 나의 사랑은 호르몬의 영역이 아니다. 노력의 영역으로 들어온 지 오래다. 그러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세바시>에서 김창옥 강사의 강의 중 한 구절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헬스장에서 개인 트레이너와 운동을 했다. 데드리프트였는지 뭐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15개를 하라고 했단다. 8개 정도 하고 못하겠다고 했다. 트레이너는 더 하라고 했다. 그래서 더 했다. 억지로 2개를 더 했다. 정말 더는 못하겠다고 했다. 그럼 자신이 잡아줄 테니 버티기만 하라고 했다. 버티는 것도 힘을 쓰는 거라며. 2개를 버텨냈더니 트레이너가 말했다. 자기는 하나도 힘쓰지 않았단다. 손만 대고 있었단다. 정말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몇 개 더 들고, 몇 번 더 하는 게 운동이 되는 거란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혼자 무언가 더 하려고 하면 다칠 수 있단다. 그래서 내가 있는 거란다. 그러니 이 PT를 연장해야 하지 않겠는지. 김창옥 강사는 바로 6개월 연장했다.


아내와 나는 서로 개인 트레이닝을 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바라본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상황이 다다른다. 할 수 있다고 힘을 준다. 지금부터 강해지는 거라고. 그러다 정말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이르면 잡아준다. 가슴에 손을 얹고, 어깨를 잡아주며 조금 더 하자고 한다.


감정 소모되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이 있다. 한 발자국도 걷기 힘들고, 한 순간도 생각을 이어나가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순간. 조금만 건드려도 눈물이 흐르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를 것만 같은 그런 순간. 그럴 때 옆에서 내 가슴에 손을 얹어 줄, 내 어깨를 잡아줄 개인 트레이너가 필요하다. 다치지 않게 옆에서 지켜봐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는 아내이고, 아내에게는 내가 된다.


찐이가 아니었다면 그냥 덮어두고 지나갔을 일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일이다. 내 성격상 그냥 좋은 게 좋은 거고, 웃었으면 됐다고 넘겼을 거다. 아이가 크면서 조금씩 편해지며 아내와의 개인 트레이닝을 종료했을 거다. 찐이 덕분에 아내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내가 변해야 함을 느꼈다. 서로 지켜보고, 도와주며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었다.


한 6개월 전쯤인가. 더 이상 티를 내지 않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해도, 밥을 차려도, 화장실 청소를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했음을 숨겼다. 새벽에 몰래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아내는 나에게 한 마디 했다. '요새 반찬을 사 먹지 않고 집에서 아주 잘해 먹네. 네 덕분이야.' 이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서 전율이 일었다. 짜릿했다.


아내와의 개인 트레이닝을 6개월 연장한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mohamed Hassan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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