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뒷 산 탐험기? 고난 극복기?
어쨌든, 산책. 동네 뒷 산.
올해 7월부터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 '가족 산책'이라 이름 붙여 꽤 타이트(?)하게 운영 중이다. 근처 공원이라도, 아파트 단지 한 바퀴라도, 꽈배기와 아이스크림을 사러라도 매주 나간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나간다. 한 번이라도 멈추면 그대로 멈춰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산책이 우리 가족에겐 힘들다. 큰 아이(빤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공감, 사랑, 미소, 협상, 회유, 여기에 약간의 협박까지 가미해야 빤뽀는 움직인다. 융합 서비스나, 종합예술에 가깝다.
둘째(찐이)의 마음은 주식시장이다. 변동성이 너무 크다. '상한가'인 날은 "운동하러 갈까?" 툭 던지기만 해도 "네!" 하면서 옷을 입는다. '하한가'를 치면 뭔 짓을 해도 "싫어!"만 외친다.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하미 마~(하지 마)"를 무한 반복한다.
산책 나가는 일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한 번 그만 두면 평생 함께 나가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스산한 느낌이 얇은 막처럼 피부를 덮고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소모되는 감정을 부여잡고 아이들을 얼르고 달래서 밖으로 나간고 싶어 진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면 상쾌한 바람이나 따듯한 햇살이 날 맞이해 준다.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그러나 이 날만은 바람이나 햇살도 내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이게 동네 뒷 산이여, 에베레스트여
우리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야트막한 산이 있다. 어른 걸음으로 30분 정도면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다. 공감, 사랑, 미소, 협상, 회유, 약간의 협박을 빤뽀에게 시전 했다. 지루한 협상이 이어졌고 1시간 만에 협상이 극적 타결되었다. 이 번 주 산책은 동네 '뒷 산'으로 결정했다. 빤뽀는 이 정도 산이라면 수용할 만하다며 기분 좋게 길을 나섰다.
그 기분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파트 현관을 지나자마자 찐이는 자동차를 찾았다. 차를 타고 산에 간다 생각했나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찐이는 계단과 약간은 험한 듯한 산길이 어우러진 아차산을 좋아한다. 아차산을 가자는 이야기를 말로는 안 되니 몸으로 표현한 거였다. 찐이는 남의 차 앞에서 "ㅊ짜! ㅊ짜!"를 외쳤다.
빤뽀와 이미 뒷산으로 합의를 한 상황이었기에 조금 강제적으로 찐이를 데리고 뒷산으로 향했다. 지금도 산에 가는 거라 강조했고, 오늘은 차가 아니라 걸어서 간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저 길로 걸어가면 산이 나올 거라 아이를 안심 시켰다. 찐이는 약간 의심하는 듯지만, 사탕을 산다는 말에 이내 의심을 거두어들인 듯했다. 조금 떼를 썼지만 산이 나올 거라 생각하며 따라나섰다.
10분 정도 길을 걸었을 무렵, 찐이는 손으로 산 모양을 만들며 "산!", "산!"이라 외치기 시작했다. 왜 아직 산이 나오지 않느냐는 거였다. 사탕을 입에 넣어줘 봤지만, 소용없었다. 울고, 떼쓰고, 왔던 길로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빤뽀는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고, 엄마나 아빠가 마음을 바꿔 아차산성을 갑자기 가자고 할까 봐 짜증 게이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내와 눈빛을 교환했다.
'일단 산까지 가면 괜찮겠지?'
'응. 그래. 그럴 거야. 일단 산까지'
'가자. 산을 보면 괜찮아질 거야'
텔레파시를 주고받은 우리는 빠르게 움직이기로 했다. 난 찐이를 업고 거의 달리다시피 걸었다. 그리 먼 길은 아니었지만 멀게 느껴졌으며, 그리 가파른 길을 아니었지만 가파르게 느껴졌다. 뒷 산에 도착하니 온 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찐이는 누가 보면 오줌 쌌다, 고 착각할 정도로 내 등과 닿은 부분이 젖어있었다.
산에 갔지만 찐이는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자기가 생각한 산이 아니었다. 찐이는 엄마가 그림 그려주는 걸 좋아한다. 엄마가 그려준 그림이 자신의 요청과 조금이라도 다른 구석이 있으면 10번이고 다시 그려달라고 한다. 노래도 잘 기억한다. 자신이 원하는 노래가 아니면 전주가 끝나기도 전에 "빼!"(다른 곡을 틀어주세요라는 뜻)를 외친다. 이런 찐이를 우리는 과소평가했다. 산이면 될 거라 안이하게 생각했다. 큰 실책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울고, 떼쓰고, 버둥거렸다.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씻기고 샤워를 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침대에 누워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이제 산책은 아차산으로 가자...
힘들지만 행복하다?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생각도 하기 싫은 과거가 있다. 나 같은 경우 군대가 그랬고, 고등학교 3학년 때가 그랬다. 가끔 생각나지도 않을 뿐더러, 일부러 생각하면 불쾌해지곤 한다. 힘들었지만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갔던 농활이 그랬고, 20대 중반에 갔던 평화대행진(도보 국토 횡단)이 그랬다. 농활에서는 열이 펄펄 나서 제정신이 아니었고, 매일 40km를 걸어 온 몸이 만신창이 였지만 생각하면 행복하다.
지금 우리 가족이 주말마다 나가는 산책이 그렇다. 가면 빤뽀와 싸운다. 산책을 싫어하니 말에 짜증이 섞이고 아빠는 자비롭게 감정을 받아주어야 하는데 자비는커녕 맞받아친다. 그러니 티격태격 싸운다. 그럼에도 몇 주가 지나면 서로 웃으며 그때 싸운 이야기를 한다. 찐이 때문에 힘들었던 뒷 산 산책도 '뒷 산 탐험기'라 부르며 웃는다.
힘든 일을 함께 겪는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다. 힘든 상황에 너와 내가 함께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 위로가 된다. 저 사람과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저 사람만은 나에게 정말 공감해 줄 수 있을 거란 확신을 갖는다. 아내와 내가 "네 마음 나 밖에 모른다."라고 말하며 나에게 더 잘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빤뽀도 찐이도 아내도 나도 산책을 나가며 서로를 생각한다. 차곡차곡 쌓이는 추억만큼 일상에서의 웃음이 쌓인다. 끈적끈적 끈끈해지는 관계만큼 일상이 더욱 단단해진다. 상처가 아물며 더욱 강해지듯 공감 근육이 발달한다.
지치고 힘들고 짜증 나고 화날 때도 있지만,
어쨌든, 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