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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Dec 04. 2020

수영

※ 이 글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썼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수찬이는 수영 시간이 싫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5년째 수영 시간이 있었지만 이 귀찮음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교실에서 수영장으로 이동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이 끝나면 샤워도 해야 했다. 젖은 머리로 수업을 듣는 것도 찝찝했다. 수영복과 수건을 챙겨야 하는 게 싫었고, 수건을 가져오지 않는 아이들도 싫었다.


"야 수건 있냐? 나 안 가져왔는데 좀 빌려줘." 원철재가 당연하다는 듯 수찬이에게 말을 건넨다. 빌려주고 싶지 않다. 게다가 내가 쓰기도 전이다. 남자 중학생들의 세계는 지랄 같다. 안 빌려주면 쫌생이가 되어버린다. 수찬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수건을 건넨다. 쿨한 척은 덤이다. 주인보다 먼저 뽀송한 수건을 쓰면서 실실 쪼개는 원철재의 얼굴을 보니 구역질이 난다. 개새끼. 최소한 똥꼬는 닦지 않고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수영이 점점 싫어지는 수찬이었다. 이제 자유형은 무난히 하는 수찬이지만 무섭긴 무섭다. 물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없으니까.


초등학교 1학년, 엄마는 수찬이를 수영장에 보냈다. 수영은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얼굴을 보고 도저히 싫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싫다는 말을 하면 엄마의 눈은 무섭게 변하니까. 수찬이는 그렇게 선일 수영장에 다니게 되었다.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사실 만으로도 무서웠다. 그곳에서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들의 엉덩이를 키판으로 때렸다.


"음파! 음파!" 머리가 물과 뭍을 왔다 갔다 한다. 난간을 잡은 손을 재게 옆으로 옮긴다. 수찬이는 물에 있고 발은 땅에 닿지 않는다. 난간을 꽉 움켜잡고 '음'하며 머리를 물에 집어넣고 '파'하며 머리를 밖으로 내보낸다.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키판으로 엉덩이를 맞을 생각에 '음파'를 계속 외친다.


수찬이는 '음파'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듯했지만 이제 조금 여유도 생겼다. 여유가 생기자 키판을 잡아야 했다. 수영 선생은 난간을 잡고 발차기 연습을 시키더니 이제 키판을 잡으라 했다. 수찬이는 얕은 물에서 하는 키판 연습이 깊은 물에서 하는 '음파'보다 즐거웠다. 옆의 아이와 투닥투닥 장난을 치기도 했다.


며칠 후 선생님은 수찬이에게 키판을 잡고 성인 풀장에 뛰어들라고 했다. 초급반의 마지막 코스였다. 키판을 잡고 깊은 곳에 뛰어들어 발차기 만으로 건너편까지 다다라야 했다. 이걸 성공하면 키판을 놓고 손동작을 배워야 할 거였다. 수영장의 길이는 25미터. 수영장의 깊이는 1미터 80센티미터. 수찬이의 키는 1미터 28센티미터. 건너편에 다다르면 깊이가 줄어들지만 수찬이의 키는 넘을 터였다.


수찬이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수영장 물이 검은색으로 보였다. 검은 물에 액체 괴물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뛰어들면 그 큰 입으로 날 삼킬 거다.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길게 줄을 늘어섰다. 뭐가 그리 신난 건지 수찬이는 알 수 없었다. 재네들은 왜 무섭지 않을까. 아이들은 수영장 안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여유롭게 끝에 다다르는 아이들을 수찬이는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키판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두근거리는 심장에게 말을 걸었다. 좀 가만있어.


수영장으로 뛰어드는 줄의 맨 뒤에 섰다. 줄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5명, 4명, 3명... 수찬이 앞에 있던 아이들은 겁도 내지 않고 검은 물로 뛰어들었다. 2명, 1명. "자! 출발!" 쉿소리가 섞인 선생님의 음성이 고막을 때렸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물은 여전히 검은색이었다.


뛸 수 없었다.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여전히 물은 검은색이었다. 선생님은 다시 한번 "자! 출발!"이라고 소리쳤다. 들어가! 수찬아! 뛰어!


아... 안 된다. 도저히 안 된다, 수찬이는 생각했다. 무서워, 너무 무서워, 못하겠어. 수찬이는 뒤로 더 물러났다. 선생님은 키판을 잡아끌었다. 잡아 끈만큼 뒤로 더 물러났다. 울며 말했다. 선생님 못하겠어요, 안 돼요, 안 들어가면 안 돼요?


수찬이는 1달 동안 수영을 배우면서 선생님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네, 라는 대답만 했던 수찬이었다. 그런 수찬이가 지금 선생님에게 도저히 못 들어가겠다며, 들어가지 않게 해 달라며 울며 말하고 있었다.


퍽! 선생님이 손에 들고 있던 키판이 수찬이의 엉덩이에 닿았다. '음파' 연습을 하기 전 키판에 한 대 맞았었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수영장에 울리는 소리에 더욱 무서웠다. 수찬이는 바로 수영장에 들어가 '음파'를 했다. 지금 수찬이는 키판으로 맞고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했다. 단지 저 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수찬이는 계속 말했다. 들어가기 싫다고. 무섭다고. 안 들어가면 안 되냐고.


선일 수영장의 초급반은 키판을 잡고 건너편까지 가야만 마무리되는 커리큘럼이었다. 선생님은 이 커리큘럼을 끝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고, 어떻게 해서는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아이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계속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 때려 억지로 밀어 넣기엔, 수찬이는 너무 간절해 보였다.


물을 사이에 둔 수찬이와 선생님의 실랑이는 그렇게 끝났다. 수찬이는 잠시 쉴 수 있었고, 선생님은 일단 다른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했다.


잠시 쉬는 동안 수찬이는 물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키판을 잡고 그 물에 계속 뛰어들었다. 검은 물은 입을 벌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무사히 건너편에 닿았고, 도착한 순간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퍼졌다. 수찬이는 그 웃음을 계속 보았다. 어떻게 웃음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두근거렸던 심장이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등에 묻은 물기가 거의 다 말라갈 무렵 수찬이는 키판을 들고 선생님에게 갔다.


결심을 한 수찬이가 대견했다. 선생님은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좋아! 해보자! 사명감이 더욱 불타올랐지만 잡아끌거나, 키판으로 엉덩이를 때리지 않았다. 어렵게 결심한 만큼 수찬이를 바라보며 기다려 주었다. 이미 건너간 아이들도 수찬이를 바라봤다.


더 이상 물이 검은색으로 보이지 않았다. 소독약과 섞인 하늘색 수영장 물이 보였다. 둥둥 떠다니는 코딱지와 콧물도 보이는 듯했다. 첨벙. 키판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뿐만이 아니라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손은 쭉 펴지 못했고, 머리는 물속으로 집어넣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인지 기우뚱거리며 입으로 물이 들어왔다.


무서웠지만 발차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만이 자신을 살려주리라 믿었다. 세포 하나하나에서 에너지를 끌어모아 발로 물을 쳐냈다. 천천히 천천히 수찬이는 앞으로 나아갔다. 건너편에서 친구들은 수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찬이의 심장은 계속 빠르게 뛰고 있었다.


축축한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수찬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왜 이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축축한 수건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원철재 이 개 같은 자식. 다음부터는 꼭 내가 먼저 닦기 전에는 수건을 빌려주지 않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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