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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Oct 20. 2021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기: 또래조정

남의 경조사에 너무 애쓰지 않기

지난주 일요일에 상갓집에 다녀왔다. 친했던 대학 선배의 아내가 죽었다. 뇌출혈로 쓰러졌고, 3주 후 세상을 떠났다. 생각해보니 결혼식 사회를 내가 봐주었었다. 이렇게 가기 싫은 상갓집은 오랜만이다. 혼자 가면 무슨 말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


30분 정도만 들렀다 오겠다는 말과 함께 집을 나섰다. 아내는 싫었지만 꾹 참는 듯했다. 난 애써 무시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30분 정도만 있으려 했으나 상갓집 분위기는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고 난 새벽 2시 가까이 되어 집에 돌아왔다.


왔니...


아내는 피곤에 절은 눈을 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며칠 간 우리는 말이 없었다. 사과를 해 볼까 생각했지만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사과하기 싫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사과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밥은?
먹었어...

며칠 간 우리가 나눈 대화의 전부다.


아내는 참다 참다 나에게 말했다.

넌 아직도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인데 내가 정말 왜 화가 났는지 이야기해줘?


아내의 목소리는 거칠었고, 높거나 크지는 않았지만 두꺼웠다. 켜켜이 쌓였던 울분이 쏟아져나왔다.


난 아내의 눈을 도저히 쳐다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짜증을 가라 앉히기 위해서였다. 눈을 쳐다보면 짜증섞인 내 눈이 보일까 무서웠다. 그러나 이내 짜증이 울렁거림으로, 두려움이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장애가 있는 둘째를 전담하여 돌보았던 시간들, 회사 일이라며, 친구 간의 중요한 일이라며 술자리를 찾아다녔던 남편이라는 작자, 10년 만에 복직하여 적응되지 않는 일, 그런 자신을 보는 동료들의 동정 섞인 무시의 시선들, 육아는 당연히 엄마가 해야지, 라는 모든 사람들의 기저에 깔린 인식들, 아빠가 집에 있는데도 엄마에게 걸려오는 언제 퇴근하냐는 전화.


집은 썩어 문드러지는데, 난 힘들어서 죽기 직전인데 사회생활이랍시고, 다른 사람의 힘듦을 위로해 준답시고, 밖으로 나가는 그 위선과 같잖음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자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온갖 혜택과 이익은 다 누리면서 그 혜택이 당연하다는 듯 사는 남편이라는 작자를 쳐다보는 게 얼마나 억울했을까. 회사에서 받는 온갖 불이익과 무시의 시선들이 응당 내가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데,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심정이 얼마나 처참했을까.


어떤 말로도 아내를 위로할 수 없음을 깨닫고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낄 때, 첫째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책상으로 갔다. 사각사각 무언가를 쓰더니 우리 사이에 내밀었다.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기: 또래조정>

-규칙-
1.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다.
2. 상대방이 발표할 땐 끼어들지 않는다.
3. 또래 조정자는 공평하게 해결방법을 정한다.

※또래조정은 고자질이 아니에요※



-이제부터 내가 또래조정자야


-엄마부터 말해봐


-뭘?


-지금 왜 화가 났는지!


-난 아빠가 상갓집에 갔다가 말도 없이 너무 늦게, 새벽에 들어온 게 너무 화가 나!


-아빠는 왜 화가 났어?


-아빠는 지금은 화가 나지 않았어.


-그럼?


-아빠는 지금 반성 중이야.


-그래!


-그럼 이제 내가 조정안을 내놓을게. 보고 동의하면 사인해.


아빠: 아빠는 새벽 귀가를 하지 않고, 하더라도 말을 한다.

엄마: 매주 한 번씩은 이야기를 나누어 자신의 서운한 점을 솔직히 말한다.


조정안을 바라보고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아주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정안에 사인을 했다. 매주 자신의 서운한 점을 솔직히 말한다니, 이 얼마나 명쾌하고 본질적인 해결안이란 말인가.


그깟 상갓집이 도대체 무어냔 말이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의 죽음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지금도 내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수없이 죽고 태어난다. 그 사람에게는 문제지만 나에겐 전혀 문제가 아니다. 나에게는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


상갓집에 가면 친구들과 이런 말을 나눈다. 

-상갓집에서나 보는구나!

-올해 연말엔 꼭 얼굴이나 한 번 보자!


이번 경조사도 그랬다. 이런 끝인사로 마무리됐다. 물론 우린 연말에 보지 않을 거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자.


남의 경조사에 너무 애쓰지 말자. 가장 가깝고 소중한 대상과 매주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서운한 점을 솔직히 말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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