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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an 22. 2021

재택근무라 다행이다.

자존심을 세우려 애쓰지 않기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자는 걸 더 좋아한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와 함께 자는 건 좀 그렇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렸을 때 아빠와 함께 자는 건 왠지 불편했다. 엄마와 함께 자는 건 매우 포근하고 좋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빠와 매우 잘 자는 편이다. 첫째 빤뽀는 아빠와 함께 자는 데에 거부감은 없다. 장난을 많이 치는 아빠와 자면 웃다 잠들기 때문에 좋아할 때도 있다. 둘째 찐이는 아니다. 엄마와 함께 자는 게 당연했다. 다른 사람과 자는 건 머릿속에 없었다.


최근 1년간 잠들기 전 찐이에게 마사지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운동기능이 떨어지는 아이의 근육을 풀어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마사지를 하다 보니 아이가 잠드는 게 아닌가. 아이를 재우기 위해 마사지에 집중했다. 이제는 아이의 마사지 자체에 집중하며 교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찐이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함께 잠드는 1년은 우리 가족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아내는 찐이를 재우는 일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시간에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다. 책을 읽고 산책을 했다. 빤뽀는 엄마와 함께 잘 수 있었다. 아빠와 자는 것도 좋지만 엄마와 함께 자는 것에 비할바 아니다. 난 찐이와 더욱 친해졌고 덤으로 일찍 잘 수 있었다.


어제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찐이 마사지를 시작했다. 아이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젠 씩 웃으며 발을 내밀고, 이것 저것 주문까지 하는 녀석이다. 발을 정성스레 주무르고,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꾹꾹 누르고, 허벅지와 종아리를 풀어주었다. 어깨와 팔을 쭉쭉 늘려주었다. 머리와 배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눈을 끔뻑였다. '1분' 머릿속에 떠오른 시간이었다. 60부터 하나 씩 줄이며 숫자를 세었다. 40을 지나갈 무렵, 가슴을 쓰다듬다 손가락이 찐이의 턱을 조금 강하게 스쳤다. 상처가 날 정도는 아니었으나 정신이 돌아오기엔 충분했다.


"엄마!"

"코자!"


찐이는 엄마와 함께 자겠다는 의사를 계속 표현했다. 왜 내가 잠들려고 하는 데 니가 내 눈 앞에 있냐는 눈빛이었다. 엄마는 운동을 갔으니 아빠와 자야 한다고 말해주고, 책을 읽어주고, 옛날이야기를 해줘 봤지만 역부족. 결국 거실로 나가 엄마를 불러왔다.


이 상황에 조금 당황했지만 오늘은 빤뽀와 재밌는 시간을 보내다 자면 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갔다. 나와 눈이 마주친 빤뽀는 울먹이며 나에게 물었다. 


"오늘 찐이 누가 재워?"

"나 오늘도 엄마랑 못자?"


아이의 울먹임은 나를 책망했고, 아이의 말은 내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공간은 사라졌고, 생각이 날 지배해버렸다.


"내가 무슨 죄를 졌니? 내가 큰 잘못을 했니? 찐이 재우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그냥 물어본 건데 왜 이리 짜증이야!"


아이는 나 오늘 엄마와 잠들 수 없게 되어 너무 속상해...라고 나에게 말을 걸었을 뿐이었다. 나는 아이의 말을 열심히 노력한 내 수고를 넌 왜 알아주지 않는 거니, 왜 이렇게 노력한 날 비난하는 거니,라고 받아들였다. 내 마음대로.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에게 죄책감을 주었다. 아이를 화풀이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순간 느꼈다. 내가 잘못했구나. 바로 사과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과 대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나 그냥 잘래!"라고 말하곤 잠들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자존심을 세우려던 내 마음은 조금 누그러져있었다.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으하하! 빤뽀! 어제 많이 속상했지... 미안 미안"

장난치듯 이야기를 꺼내 볼까?


"빤뽀야 미안해. 어제는 아빠가 너에게 너무 심한 말을 한 것 같아. 미안해."

이렇게 담담하게 사과할까?


첫 번째는 너무 장난스럽게 보여 진심을 가릴 수 있어. 그래. 진심을 담아 담백하게 사과하는 게 좋겠어.


사과는 어렵다. 사과를 하면 내 체면과 권위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굴욕감이 느껴질 수도 있고, 내 결점을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 괴롭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막이 형성된다. 자존심이 상하고 내 존재가 약해질 것만 같아 두렵다.


오늘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다. 10시가 넘어갈 무렵, 밖에서 물을 따라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빤뽀다. 난 밖으로 슬그머니 나가본다. 아이는 나를 흘낏 쳐다보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난 아이의 시선에 흠칫 놀랐지만 태연한 척 배고프지 않니?,라고 묻는다. 아이는 아무 말이 없다. 난 배고프면 언제라도 말하라 이르고 다시 업무로 복귀한다.


점심시간은 되지 않았지만 아이에게 다시 한 번 묻는다.


"빤뽀. 배고프지 않아?"

"배고파."


그렇지. 네가 배가 고프지 않을 리 없다. 아이가 좋아하는 식탁을 차려야겠다. 빵을 토스터에 굽고, 딸기잼을 꺼내 놓는다. 미리 씻고 손질해 놓은 양상추와 파프리카를 썬다. 파프리카는 그나마 빤뽀가 제일 좋아하는 야채다. 아침에 브로콜리도 미리 데쳐놓았다. 브로콜리 자체는 싫어하지만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 브로콜리는 좋아한다. 달걀 프라이를 준비한다. 약간 튀기듯 요리한다. 기름을 넉넉히 두른다. 노른자는 절대 터지면 안 된다. 아이는 노른자를 먹지 않기에 흰자에 노른자가 묻지 않아야 한다. 터지지 않아야 노른자를 원형 그대로 발라낼 수 있다.


사과를 위한 식탁이 완성되었다. 아! 사과를 해야 하니 사과도 한쪽 잘라 놓자. 좋다.



"빤뽀 와서 밥 먹어"

"응..."

"빤뽀, 어제는 아빠가 조금 심하게 말했지?"

"응"

"미안해. 다음부터는 아빠가 주의할게."

"그래. 용서해 줄게"


아... 사과가 아주 잘 끝났다. 난 얼굴이 빨개졌지만 이제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걸 잊고 먹자.


사과 앞에서 너무 자존심을 세우려 애쓰지 말자. 그깟 자존심 때문에 타이밍을 놓치면 더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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