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새끼가 왜 이리 말이 많아.
그래 남자는 말이 많으면 안 된다.
남자 새끼가 왜 이리 눈물이 많아.
그래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
남자 새끼가 왜 이리 약해.
그래 남자는 강해야 한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아버지께서 영주로 발령이 났다. 영주로 내려가시는 당일, 새벽에 일어나 아버지의 와이셔츠를 차로 옮기는 것을 도왔다. 장남의 보이지 않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을 거다. 내려가시면서 아버지는 나에게 한 마디 하셨다.
“이제 네가 가장이다. 엄마 잘 지켜”
14살이 가장이라니. 40이 가까워진 지금 난 단 한 번도 엄마를 지켜본 적이 없다. 엄마의 보호를 받으며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난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14살짜리 가장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와 여동생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난 눈물이 많다. 감동도 쉽게 받는다. 조금만 슬픈 영화를 봐도 펑펑 운다. 초등학교 시절 마이걸이라는 영화를 봤다. 마지막에 맥컬리 컬킨이 벌에 쏘여 죽는다. 그 장면에서 난 정말 펑펑 울었다.
난 겁이 많다. 7살 때 어머니는 나에게 미션을 주셨다. 계단 2칸을 한 번에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미션을 컴플릿하고 싶었지만 무서웠다. 2칸을 뛰면 착지 시 넘어져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나 보다. 어머니는 남자가 이것도 못 뛰냐며 답답해했다.
난 머리를 감는 게 무서웠다. 비누가 눈에 들어가면 따갑다. 그 순간이 공포스러웠다.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고개를 뒤로 젖혀야 했다. 그래야 눈에 비눗물이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부모님은 내가 앞으로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았으면 하셨다. 난 격렬히 거부했고, 아마도 아버지가 매를 드셨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약하고 예민한 나에게 남자라는 이유로 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강요당한다. 그렇게 학습되고 교육받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빠들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지 못한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우울감은 여기서 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참는다. 그 과정에서 감정이 소모된다. 몸안의 에너지가 줄어든다.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 주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해주길 바라보지만, 그런 일은 영화나 소설에서나 가능하다.
회사를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소모된 감정을, 써버린 에너지를 채워 넣기가 힘들어진다.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난 지금 화가 났다고, 짜증이 났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계속 참는다.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한다. 참는 걸 잠시 멈추고 줄어든 에너지를 다시 채워 놓아야 하는데 채워 놓을 방법이 없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어.
조금 혼자 있어야 할 것 같아.
상사가 날 힘들게 하네.
내 이야기를 조금 들어줄래.
요새 왜 이리 조급한지 모르겠어.
나 좀 도와줘.
아이와 계속 붙어 있었더니 에너지가 다 소진되었어.
나 산책 좀 다녀올 테니 아이 좀 봐줘.
당신이 매일 늦게 들어오는 건 정말 참기 힘들어.
오늘 회식 가지 마.
집안일이 너무 많아 힘들어.
일찍 들어와.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못한다. 지금 내 감정을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그 대신 얼굴에 짜증을 담는다. 그리고 참고 또 참는다. 가슴에 화를 담는다. 그리고 참고 또 참는다. 상대방이 내 감정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알아서 그에 맞는 행동을 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를 알아줄 사람은 오직 나뿐이기에.
그러니 솔직히 내 감정을 말해 본다. 힘들다고 말한다. 슬프다고 말한다. 예민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해 본다.
비장애인 형제들의 자조 모임인 '나는'에서 만든 책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에서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가넷 _ 지금까지 부모님과 나에 대해서 얘기했는데요. 아무래도 주 양육자가 주로 엄마이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아빠에 대한 얘기는 적은 것 같아요. 다들 집에서 아버지와 관계는 어떤가요?
나비 _ 음. 그다지 아빠에 대해서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요. 집에서 아빠는 어딘가 소외된 느낌이긴 해요. 퇴직하고 나서 집에 많이 계시긴 하는데요. 아빠는 동생에 대해선 어딘가 소극적이었어요. 동생을 아끼는 것 같은데, 막상 동생의 미래나 직업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말이 없어져요. 엄마와 함께 두 분이 열심히 저희 둘을 키우신 것 같긴 한데, 돌이켜보면 왠지 아빠에 대한 인상은 희미해요.
겨울 _ 맞아요. 정말 아빠에 대해서 할 말이 없어요. (웃음)
써니 _ 오빠든 저든 주 양육자가 엄마여서 그런지, 엄마에 비해 아빠와는 유대관계가 깊은 것 같지 않아요. 특히 제가 어렸을 때 아빠는 오빠의 장애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빠들은 보통 그렇잖아요.
삼각형 _ 저희 아버지도 인정하지 못하셨어요. 오빠에게 끝이 올 때까 지도, 아버지는 자기 아들에게 장애가 없다고 정말로 믿고 싶었던 것 같아요.
메이 _ 우리 아빠도 지금까지도 그래요.
가넷 _ 저희 아빠도 동생의 장애를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리셨어요. 웃기네요. 아빠들은 다 왜 그럴까요?
자녀의 장애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아빠들의 욕구에는 '남자다움'이 자리잡고 있다. 뒤틀린 남자다움은 경쟁을 강요하고, 이겨서 자신을 증명하라 말한다. 자녀의 장애를 자기 인생의 결손으로, 패배로 받아들인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이 먼저다. 강할 필요도 이겨야할 필요도 힘들지 않을 필요도 없다. 남자다워지려 애쓸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