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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Dec 18. 2020

다른 건 다 하는 데, 요리는 좀...

달걀말이│아빠와 남편 그리고 나의 식탁

TV를 보면 요리를 하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훤칠한 키, 수려한 마스크, 혹 두 가지를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남성적인 웍질(움푹 파인 무쇠 프라이팬을 상하좌우 자유자재로 흔들며 음식을 조리하는데, 보통 음식이 웍 밖으로 나왔다 다시 들어가며 화르륵 불꽃이 피어난다), 도마 위에서 '딱 딱 딱 딱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얇게 잘려나가는 양파를 보면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 한 번도 요리를 해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요리를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하죠.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실제로 요리를 하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남자들의 유튜브 요리 채널은 넘쳐나지만 집에서 요리를 주도적으로 하는 남자는 없습니다(통계를 내 본 적은 없습니다만 확실히 제 주변은 10에 8은 요리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충동으로 저지르기엔 너무 어렵거나 귀찮은 것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예전에 친구들을 만나 요리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집에서 제가 한 요리 몇 가지를 말해줬더니, 대단하다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난 결혼 전에, 다른 건 다 하는 데 요리 만은 빼 달라고 했어. 와이프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결혼했지. 그래서 난 요리는 안 하고 설거지 담당이야.


다른 친구들도 요리는 영 소질이 없다며 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빠가 청소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빠의 청소, 빨래는 일상이 되어 버렸죠. 저는 아빠와 함께 놀았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빠가 아이와 함께 노는 건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아빠가 해주는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라면도 요리라고 한다면 몇 번 있네요). 이제 아빠의 요리도 일상이 되어야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왜일까요? TV의 요리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의 요리 채널이 요리를 뭔가 전문적이고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요? 청소, 빨래가 일상인 것처럼 요리도 일상입니다. 엄마가 요리를 잘하는 이유는 많이 해봤기 때문이고, 엄마의 밥이 맛있는 이유는 실패를 많이 해 봤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피자팬을 사 와서 처음 해준 피자는 정말 맛없었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없고 잘하면 좋겠지만, 딱히 잘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요리를 하고 그 요리를 가족들과 함께 먹으면 그뿐이지요. 맛이 없으면 다음에 조금 더 맛있게 하면 됩니다. 유전자에 박힌 요리 재능도 장인의 품격이 느껴지는 화려한 칼질도 미스터 초밥왕처럼 바다에 나가서 최고의 요리 재료를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쉽게 쉽게 가보는 건 어떨까요? 그냥 내가 만든 음식을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먹는 상상을 해보는 겁니다. 내가 만든 음식 덕분에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웃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좋죠. 음식이 맛없더라도 괜찮습니다. 처음엔 말이죠. 엄마도 처음엔 더럽게 맛없는 음식을 만들었을 겁니다. 피망만 들어간 피자처럼 말이죠.


만약 요리가 거의 처음이라면 달걀말이를 추천합니다. 무언가 어려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게다가 실패하면 스크램블로 바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달걀'말이'를 해줄게!,라고 말하지 말고 오늘 달걀'요리'를 해줄게!,라고 말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더 중요한 건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다는 겁니다. 달걀과 프라이팬, 그리고 요리 세계에서 영혼의 동반자 소금만 필요할 뿐입니다.


1. 프라이팬을 준비합니다. 저는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을 준비했지만, 만약 코팅 팬이 있다면 코팅 팬을 준비해주세요. 스테인리스는 아직 때가 아닙니다.

왼쪽이 코팅팬, 오른쪽이 스댕팬입니다.


2. 달걀 3~5개, 대왕 달걀말이가 먹고 싶다면 그 이상을 꺼내어 풀어줍니다.




3. 달걀을 풀 때 우유를 조금 넣어 주면 고소한 달걀말이가 됩니다. 후추를 넣으면 비린내를 잡아주고요. 만약 없다면 안 넣어도 됩니다. 가족 중에 요리사가 없다면 알아채지 못할 겁니다. 요리사가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있지도 않겠지만요.


4. 소금도 원하는 만큼 넣어 줍니다. 짜게 먹으면 안 좋지만 맛없게 먹는 것도 안 좋습니다. 달걀 3개를 풀었다면 반 티스푼 정도가 전 맞더군요. 그라인더로 할 때는 30번 정도 갈아 넣습니다. 어쨌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딱 맞는 간을 찾아보는 행복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5. 달걀을 다 풀었다면, 프라이팬을 달궈줍니다. 코팅 팬은 2~3분 중불에서 달궈 주면 되고, 혹시... 만약 혹시... 스테인리스 팬 밖에 없다면 최소한 6~7분 정도 달궈줍니다. 기름도 조금 넉넉히 두르고요. 처음 스테인리스 팬을 써보시는 거라면 그냥 스크램블을 해 먹는 것도 방법입니다. 달걀말이랑 맛은 똑같습니다. 다 기분 탓이죠.



6. 저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 넣었지만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맛있습니다. 그냥 달걀 둘러주고, 살살 말아 줍니다. 어떻게 말하야하느냐... 사실 여러 번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팁을 하나 주자면 왼손에 뒤집개, 오른손에 젓가락을 들고 살살 말아보세요.



7. 헉... 조금 탄 거 같지만, 말면 똑같습니다. 무시하고 그냥 말아줍니다.



8. 음식은 역시 데코죠. 잘라 놓으니 그럴듯하죠.



9.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말린 인생을 풀 수는 있지만, 말린 달걀을 풀 수는 없다. 단지 터질 뿐이다. 무조건 말리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가지고 도전해 보세요. 터진 것도 터진 것 대로의 매력이 있습니다.


10. 어때요 참 쉽죠!


가끔 달걀말이에서 삶을 봅니다. 삶은 달걀이죠. 삶은 달걀 마는 것과 같아서 소중히 다루고, 살살 다루지 않으면 결국엔 터져버리게 되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터지더라도 안 터진 것과 똑같이 맛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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