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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Sep 09. 2021

어떻게 낯선 사람의 차에 올라탈 수 있을까?

레이첼 보츠먼, <신뢰 이동>, 흐름출판

이 책을 왜 읽었지?

어떻게 모르는 사람에게 집을 빌려줄 수가 있지? 어떻게 모르는 사람의 차에 올라탈 수 있지? 어떻게 리뷰만 보고 판매자를 신뢰할 수 있지?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숙박할 곳을 예약하고, 쿠팡이나 배달의 민족에서 리뷰를 보고 상품이나 음식을 신뢰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리뷰를 신뢰하지 않았다. 나조차도 상품이 불만족스러울 때 리뷰를 올리는 것 대신 조용히 다시는 그 상품을 사지 않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 리뷰를 올려주는 에이전시도 많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리뷰가 의사결정에 거의 대부분을 관여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제도 리뷰를 보고 배달 음식을 시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레이첼 보츠먼의 <신뢰 이동>은 그 답을 알려준다. 바로 '분산적 신뢰'다.   


무엇이 남았나?

1.

신뢰란 무엇일까? '신뢰는 결과에 대한, 그러니까 주어진 상황이 얼마나 잘 풀릴지에 대한 평가다', 또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며 '미지의 대상과의 확실한 관계'이다. 신뢰가 있다면 삶은 단순해지고, 신뢰가 없다면 물건을 사고 택시를 타는 일상적인 일까지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2.

마차가 열차로 열차가 자동차, 비행기로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두려움, 불편함, 이상함을 견뎌내야만 했다. 지금은? 자동차와 비행기는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 되어버렸다. 신뢰 도약이다. 제도, 기술 등을 통해 미지의 세계로 넘어간다. 차량 공유와 자율주행차는 다음 신뢰 도약 대상이다. '신뢰 도약을 이루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고 우리가 창조할 수 있는 것과 창조자가 될 사람의 범위가 확장된다.'    


3.

지금 우리는 지역적 신뢰를 넘어 이룩한 제도적 신뢰가 무너지고 분산적 신뢰로 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재벌은 적게 처벌받고 힘없는 자는 법대로 처벌받는 책임의 불평등은 곳곳에서 보인다. 금융위기를 통해 자산을 가진 기득권 층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이득을 챙겨가는 것을 체험했다. 인플레이션을 결정하는 건 권력을 가진 소수다. 인플레이션을 결정하는 소수 엘리트, 기득권 층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그리고 그 자리는 분산적 신뢰가 채운다.    


4.

분산적 신뢰란 '개인들 사이에 수평으로 오가는 신뢰, 네트워크와 플랫폼과 시스템을 통해 가능한 신뢰'다. 음식점, 우버 기사, 승객, 숙소를 빌려주는 자와 빌린 자, 판매처, 심지어 개인까지 평점을 매기고 평판의 흔적을 남긴다. 블록체인은 은행 같은 제도권 내 기관에 신뢰를 부여하여 원장을 관리하는 대신 원장을 모든 구성원에 분산 기록하여 신뢰를 획득한다. 이것이 분산적 신뢰고 지금 우리는 '제도적 신뢰가 체계적으로 약화되고, 좋든 싫든 분산적 신뢰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모호한 회색 지대'에 있다.    


5.

분산적 신뢰가 가능한 세 가지 조건은 1) 새로운 개념에 대한 신뢰, 2) 플랫폼에 대한 신뢰, 3) 타인이나 봇에 대한 신뢰이다. 새로운 개념을 신뢰하고 이어 플랫폼을 신뢰하고 개인(혹은 로봇)에 대한 신뢰까지 순차적으로 이어질 때 분산적 신뢰가 가능해진다.    


6.

'새로운 개념에 대한 신뢰'는 3가지 질문을 통해 구축된다. "그것이 무엇인가?"(어떻게 친숙해지는가, 캘리포니아롤 원리), "내가 무엇을 얻는가?"(What's in it for me, WIIFM), "또 누가 그것을 하는가?"(신뢰 인플루언서)    


7.

'플랫폼에 대한 신뢰'는 브랜드가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과 같다. 초기 브랜드는 개인의 평판에 좌우되었다. 표준화, 대량생산이 시작되면서 상표, 로고, 포장, 표어 등에 의해 브랜드의 기능적인 가치와 정서적 가치를 혼합하여 브랜드의 전면에 내세웠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업의 브랜드를 우리는 신뢰하고 소비한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며 고객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로 변화했다. 즉, 브랜드의 만들어진 이미지보다 평판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고객과 고객 사이의 신뢰, 고객과 플랫폼 사이의 신뢰로 분산되어 플랫폼을 평가하고 이것이 플랫폼에 신뢰를 부여한다.    


8.

'타인이나 봇에 대한 신뢰'는 신뢰와 신뢰성을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신뢰와 신뢰성은 다르다. 신뢰, 그 자체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인가(신뢰성)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성 판단의 기준은 외모, 첫인상, 브랜드 이미지, 제복 등 다양하지만 최근에는 온라인 평판, 관계망이 중요해졌다. 능력, 신뢰도(지속적으로 이 행동을 할 것인가?), 정직, 이 세 가지는 신뢰의 근거가 된다(상대가 거짓을 말해서 무엇을 얻을 수가 있을지, 즉 나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나를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신뢰의 근거, 즉 능력, 신뢰도, 정직과 관련이 없는 신뢰 신호들, 예를 들면 외모나 말투 같은, 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9.

온라인 평판의 중요성은 다크넷에서 증명된다. 마약을 거래하는 온라인 시장인 다크넷은 평판이 전부이다. 개인적인 테두리에서 마약 시장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판매 사이트에 리뷰를 보고 마약을 주문하고 판매상들은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최고의 전략은 훌륭한 고객 서비스이며, 좋은 평판은 위험 프리미엄을 가져다준다. 평가 제도는 부정적인 피드백은 잘 올리지 않는다는 점, 홍보 에이전시가 있다는 점 등에서 불신이 있을 수 있지만, 평가 제도가 있다는 자체가 사람들을 더 바람직하게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10.

평판은 다크넷, 전자 상거래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인간관계 평가 앱 피플, 중국의 시민 점수는 개인을 계량화하고 점수화하여 실제 생활에 적용한다. 음악, 그림, 책, 사진뿐 아니라 사랑, 우정, 관심, 관계까지 디지털화되었다. 알고리즘에 의해 계량화되고 판단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기본은 마련되어 있다. 알고리즘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11.

현재는 기술이 작업을 처리할 뿐이지만 미래는 작업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지능 폭발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두렵도록 흥미로웠다. 초 지능 기계가 발명된다면 이것이 인간의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이라 많은 학자들이 내다봤다. 이제는 AI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바둑에 이어 포커까지 AI가 인간을 능가했다. 이는 감각, 전략, 심리 분야에 AI가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판단을 AI에게 맡기고 인간의 판단보다 더 신뢰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12.

필리핀 얍(YAP) 섬의 페이(FEI or RAI)라는 고대 화폐는 화폐의 본질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약 4m, 4500kg의 도넛 모양의 석회암이 그들의 화폐다. 이 섬에서 배로 400km 떨어진 곳에서 이 석회암을 얻을 수 있고, 얍 섬에서는 석회암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위조가 불가능하다. 집단의 기록, 공동체의 마음에 소유권이 기록되어 물리적으로 옮기지 않아도 소유권 이전이 가능하다. 석회암을 가져오다 바다에 빠뜨려도 괜찮다. 모두가 알고 있다면 이 화폐의 소유도 가능하다. 오히려 가치가 더 올라갔다.    


13.

비트코인은 디지털 페이(FEI)다. 블록체인 기술로 인해 위조가 불가능하고, 모두의 장부에 기록된다. 그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도 일어나지 않는다. 블록체인은 새로운 가치 저장 수단이다. 소유권의 패러다임이 권위에서 분산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중간에 금융기관이라는 중개인 없이 개인 간 거래를 하고, 가치를 저장할 수 있다.    


14.

(p378) 대다수 사람이 블록체인이 아직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블록체인은 인터넷처럼 될 것이다. 블록체인 없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상 말이다. 인터넷은 우리가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블록체인은 가치를 교환하는 방식과 신뢰의 대상을 바꿔놓을 것이다.    


15.

분산적 신뢰는 아직 시작 단계이다. 사람들은 아직도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줄 궁극적인 의사결정권자를 원한다. DAO해킹에 대한 이더리움 하드 포크 결정으로 이어지는 사례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분산적 신뢰에 기반을 둔 개념의 개발자나 지도자는 지휘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명령을 내리는 전통적인 선장과는 다르다'. 당시 모두가 부테린을 원했고 구성원의 51%를 설득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16.

자율주행차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 문제는 우리를 멈칫하게 한다.

(p312~13) 연구자들은 다양한 상황을 제시한 결과, 참가자들이 이론적으로는 자율주행자에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을 설정해서 다수보다는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결정을 내리기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결과는 개인의 선택에 관한 부분이다. 대다수의 참가자가 남들은 공익을 우선하는 자율주행차를 구입하기를 바라면서도 특수한 상황에서 자기를 희생기키도록 설정된 차를 구입하겠냐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17.

중국의 시민점수 또한 미래의 신뢰 혁명에 우울함을 더 한다.

(p250~251)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 현재 상태를 끊임없이 개선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다. 오래도록 꿈꾸던 연복에 도달하면 잠시 기분이 좋아지지만 이내 더 높은 연봉을 갈망하게 된다.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리고 '좋아요'를 121개 받으면 잠시 기분이 좋지만 이내 '좋아요'를 125개 이상 받을 만한 게시물을 올리고 싶어진다.

(중국의 시민점수는 우리를 이렇게 만들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가족들이 둘러앉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희한한 대화가 오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아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여보, 오늘 당신 점수가 38점 떨어졌던데요. 주택 개조 융자를 받으려면 점수가 높아야 되는 거 알잖아요. 다음 달에 우리 아들 대학 입학 지원서에 가족 점수가 올라가는 거 잊었어요?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점수가 떨어진 거예요?"



18.

결국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그 사람(것)은 신뢰할 만한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일 뿐이다. 남에게 판단을 맡기지 말고 기술과 평준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을 내릴 때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나만의 소박한 방식으로 책임'지는 것이다. 이것이 미래의 신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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