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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Dec 24. 2021

개싸움에서 지적 토론으로 가는 길

피터 버고지언, 제임스 린지, <어른의 문답법>, 윌북

이 책을 왜 읽었지?


아버지와 감정적으로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9살이던 딸아이가 "아빠! 할아버지는 맨날 이런 TV(정치를 다루는 종편) 많이 봐서 아빠보다 똑똑하거든. 이제 그만해!"라고 말하면서 종료되었다. 당시 극한의 감정으로 치달았던 이슈는 김기식 금융위원장의 외유성 해외 출장 의혹이었다.


이 책이 그때 나왔어야 했다. 이 책을 읽었더라면 감정적으로 싸우는 단계까지 가지 않았다. 생산적인 대화로 흘러갔을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그 사안에 대해 생각보다 아는 것이 적었다. 그저 서로의 믿음이 부딪혀 굉음을 내었을 뿐이다.


무엇이 남았나?


1.

대화는 일상이기에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단지 톤을 조금 낮추고 부드럽게 이야기하자고 다짐할 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난다거나, 논란이 있는 대화 주제가 나오면 상대를 짓이겨 싸우거나 자리를 피할 뿐이다. 허공에 맴도는 대화만 하다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2.

아이와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아이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다 화를 참지 못해 자리를 피했다. 화를 내진 않았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나는 아이에게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아빠랑 대화하다보면 너무 아빠 주장만 밀어붙이고 그거에 조금 이라도 다른 의견이나 반대를 하면 나쁘고 안타까운 사람으로 만드는 거 같아. 그래서 아빠랑 대화하기도 꺼려지고. 아빠 말대로 내 의견도 좀 존중해주고, 아빠 입장은 절대 그런 의도로 말하는 게 아니라는데 난 그렇게 받아드려지고 진심으로 상당히 불쾌해. 그니깐 앞으로 나랑 이런 이야기를 할려면 내 기분도 생각해보면서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다시 한번 느낀다. 난 어른의 문답법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다.



3.

천천히 삶에 적용해 나가며 다시 읽고 또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일단 한 번 주욱 읽은 후 하나씩 정리해서 대화에 적용해봐야겠다 다짐해본다. 총 6장으로 되어 있으며 내 문답력(?)의 수준에 따라 작동 원리와 실용적인 해법을 알려준다. 기본 → 초급 → 중급 → 상급 → 전문가 → 달인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를 모두 마스터한 나를 상상해본다. 언제나 어른의 모습으로 유연하고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4.

프롤로그의 제목에 이 책을 쓴 그리고 읽는 목적을 말해준다.


개싸움에서 지적 토론으로 가는 길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친구와 30대 초반 새벽까지 술집에서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대화가 아니라 싸움이었고 내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결국 우린 너무 시끄럽다는 경고를 받았고 역시 무시했다. 술집에서 쫓겨나 다른 술집으로 이동해서 다시 목소리를 높여 싸웠다. 개싸움이었다.



5.

당시 대화의 목적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보수 꼴통 같은 친구가 답답하고 불쾌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 다른 견해를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텐데 당시에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랬으니 개싸움으로 변했을 테지. 지적 토론으로 가기 위한 기본은 대화의 목적일 인식하는 것.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6.

이 책은 나와 다른 도덕관, 세계관, 정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응용 인식론, 인질 협상과 전문 협상, 사이비 종교 탈퇴, 심리학 제반 분야의 다양한 영역의 검증된 연구 성과를 토대로 했다. 그렇지만 어렵지 않다. 쉽게 읽을 수 있다. 적용이 쉬울지는 모르겠다.



7.

지금 당장 적용해보고 싶은 기법은 2가지였다. 먼저 '본보기 보이기'. 상대방에게 원하는 행동이 있다면 내가 먼저 본보기를 보인다. 사실 내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읽지 않은 장서 효과)을 깨닫게 되면 고집으로 이어지던 대화가 잘 풀릴 수 있다. 나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어 본보기를 보이고, 상대방이 믿고 있는 어떤 사안에 대해 설명을 부탁하면 내가 생각보다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8.

두 번째는 '배우기'. 그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경위와 맥락을 진심으로 배우겠다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에서는 '인식 원리'라고 하던데 여기에 초점을 맞춰 배우겠다는 관점으로 질문한다면 상대는 만족감을 느끼고 대화는 생산적으로 흘러간다.



9.

진정한 어른의 대화를 원한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성장판독서모임 이 아니었으면 읽지 않았을 책이다. 내가 #독서모임 에 나가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평생 가도 읽지 않을 책을 읽게 되고 그런 책 중에 보물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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