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디플롯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 책상 위에 책을 올려 놓았더니, 지나가는 사람마다 묻는다. 무슨 책이야? 에세이야?, 아닙니다. 사회심리학 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다정함의 가치를 다룬 책입니다, 라고 답했다. 에세이의 탈을 쓴 사회과학 책이다.
1.
적자생존. 다윈은 이 말을 쓴 적도 없지만 진화론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아 진화했다며 능력주의를 진화의 산물이라 설파한다. 능력이 없다면,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면 뒤쳐지는 것이 당연하고 강요한다.
2.
반론을 제기하고 싶으나 제기할 수 없었다. 진화론에 어찌 딴지를 걸 수 있겠는가. 그리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건 그냥 생각해도 상식적인 듯 했다. 능력주의가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으나 무턱대고 거부하긴 힘들었다.
3.
이젠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 능력주의 따위 충분히 웃어 넘길 수 있다. 난 친화력 가득한 호모사피엔스니까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만이 가진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은 친화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기 자신을 가축화했다. 이로인해 친화력은 세대를 거듭할 수록 발전했다. 사람뿐이 아니다. 개와 보노보도 자기 가축화를 통해 살아남았다.
4.
보노보는 자기가축화를 통해 전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보노보의 세계에서는 아이를 살해하지 않는다(침팬지는 꽤 많이 살해한다). 음식을 나누어 먹고(침팬지는 맨 윗 서열부터 먹는다), 여성을 강간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연대하여 공격성 있는 수컷들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고, 친화력 높은 수컷을 짝짓기 대상으로 선택한다.
5.
늑대는 멸종 위기지만 개는 번성했다. 늑대 중 친화력이 강한 부류는 인간 옆으로 와서 쓰레기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스로 가축화되었다. 친화력은 결과적으로 종의 번성에 유리했다.
6.
보노보도 개도 자기 가축화를 통해 친화력이 강한 종으로 진화했다. 사람도 스스로 가축화하여 친화력이 강한 종으로 진화했다. 생물 종 중 가장 높은 인지 능력과 자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 보상을 계산 할 수 있었고 여기에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점차 발전했다. 인류는 지구상 가장 번성한 생명체가 되었다.
7.
공동체 내부에서는 공격성이 있는 사람을 걸러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다. 안정적으로 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사회성(친화력)이 높은 사람이 살아남고 더 친화력있는 종으로 진화했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전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8.
안타깝게도 자기 가축화는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외집단의 비인간화다. 내부 집단에 대한 친화력이 높아진 대신, 외부 집단에 대한 비인간화가 이루어졌다. 그 순간 외부 집단에 대한 친화력은 사라지고 더욱 폭력적인 공격성이 대신 자리잡는다.
9.
이에 대한 대안은 접촉이다. 외집단도 나와 같은 생명체라는 존중과 조화의 접촉이 필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이야기다. 스토리는 재밌고 쉽다. 이 스토리에 나와 다른 인간, 생명체에 대한 인간적인 내용과 감성이 담겨야한다. 그래야만 다정함의 부산물인 혐오와 차별, 전쟁과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