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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Nov 29. 2021

학벌주의와 대치동

조장훈, <대치동>, 사계절

이 책을 왜 읽었지?

"너 학벌주의 좋아해?"

이 질문에 대부분 다 입을 모아 말하겠지. 싫다고. 학벌주의는 없어져야 할 대상이라고.


나도 그랬다. 학벌주의. 싫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난 아주 심각한 학벌주의 추종자였다. 그 사람의 학벌에는 관심이 없다고 속으로 되뇌었지만 사실 궁금했다. 그가 나온 대학을 알면 선입견과 편견에 휩싸였다. 후회했다. 더 좋은 대학을 나왔으면 좋았을 껄. 자책했다. 난 왜 모의고사 보다 수능을 더 못 본 걸까? 20년 전 수능이 생각난다.



무엇이 남았나?

1.

난 지방 고등학교를 나왔다. 대치동이라는 말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입사 후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가 있는 곳이었고 그 원인은 학군 때문이라고 했다.



2.

고작 학군 때문에 부동산 값이 오르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도 그 원인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모르는 듯 했다. 그때 이 책이 필요했다.



3.

대치동 학원가를 난 이렇게 생각했다. '스스로 공부할 줄 모르는 돈 많은 집의 아이들이 아등바등 성적을 올리려 가는 곳. 난 스스로 공부할 줄 알기 때문에 가지 않아도 될 곳. 선생들은 기계처럼 삶에 쓸모없는 지식을 쓸어 담아 학생들의 머리에 넣는 곳.'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할 줄 모르기 때문에 간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공부할 줄 아는 아이들은 그 곳에서 더욱 성장한다. 쓸모없는 지식을 가르치는 곳 학교일 수도, 대치동일 수도 있었다. 학교도 대치동도 얼마든지 쓸모없는 곳이 될 수 있었다.



4.

대치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대치동의 교육은 교육 정책과 어떻게 가치를 주고받으며 성장했는지, 교육 정책에 대응하는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으로서의 대치동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걸 왜 알아야 하냐고? 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학벌주의에 빠져 유영하는 세속적인 욕망을 만날 수 있다. 내가 가진 바로 그 욕망의 극단을 볼 수 있다. 일단 욕망을 제대로 봐야 고민할 수 있다.



5.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것을 능력주의라고 한다. 우리는 능력주의 사회인가? 통합적인 사고력, 추론 능력 등을 평가하는 수능을 잘 보면 좋은 대학에 가고, 그럼 자연스레 좋은 직장에 가는 사회다. 다분히 능력주의 아닌가? 이준석도 그랬는데! 능력이란 무엇인가? 공부 잘 하는 능력, 그것도 20살로 넘어가는 시점에 단 한 번 본 시험으로 공부 잘 하는 능력이 결정되어버리는 것이 능력주의인가?



6.

우리는 학벌주의 계급사회를 능력주의로 믿고 살아가고 있다.

(p190~191) 이 나라 사람들은 지식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다들 서울대 나온 놈들이 세상을 다 망치고 있다고 말한다. (...) 놀라운 것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기 자식은 서울대, 명문대에 보내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는 점이다.



7.

그럼 이제 어쩌지? 잘 모르겠지만 4장에서 저자가 수험생에게 쓴 편지를 보고 내 아이가 이렇게 살았으면 했다.


1) 꿈이 없는 이는 자유를 가진다.

'청소년에게 꿈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한정된 정보를 미래에 투사하여 나름의 상상을 하는 것이다.'

나도 40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알 것 만같은 꿈을 왜 아이에게 강요했는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꿈이 아니라 자유다.


2) 칭찬은 사람을 고래로 만든다.

회사를 다니며 인정욕구로 고생했다.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회사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난 그렇게 길러졌고 칭찬 받기 위해 공부했고 일했다. 공부 자체의 즐거움, 일 자체의 즐거움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난 지금에서야 아주 조금이나마 알듯말듯하지만, 나보다 조금은 일찍 알았으면 한다.


3)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을 난 아직 갖지 못했다. 우리 아이는 이 당당함을 가지고 더욱 자유롭게 세상을 살길 바란다.



8.

조금 길지만 마지막으로 현 사회를 드러내는 한 문단을 인용하고 싶다.


(p394) 시험을 통과해 학벌을 얻는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계급장이라도 되는 양 사람을 분류하고,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를 타파하려는 교육 개혁 움직임에 앞장서서 반대한다. 자신이 사력을 다해 획득한 학벌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특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문 대학의 동문회는 학연 만들기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인턴이나 취업 연계라는 이름으로 갖가지 혜택을 제공한다. 그러니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몇 년이 걸리더라도 대학 입시에 인생을 걸 수밖에 없다. 이 땅의 교육열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강고한 학벌 계서제와 그에 따른 불평등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라는 증거다.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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