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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Nov 22. 2021

차별의 SF적(?) 의미

김초엽, <방금 떠나 온 세계>, 한겨레출판사

이 책을 왜 읽었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김초엽이다. 언제나 그의 신간을 기다린다. <지구 끝의 온실>의 감동이 채 식기도 전에 신간이 나왔다. 책이 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퇴근 후 포장을 뜯고 첫 장을 넘긴다.


무엇이 남았나?

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을 때는 신기함과 놀라움에 입을 떡 벌렸다면, 이번 책은 날 몰입하게 만들었고 무수히 많은 질문에 헤어나올 수 없었다.


2.

매 단편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엔 또 무슨 이야기일까? 이 사람은 사람일까? 외계인일까? 사이보그? 아니면 동물일지도... 상상이 자연스레 펼쳐진다.


3.

인물과 주변의 비밀을 하나씩 벗겨나가듯 이야기를 따라갔다. 따라가다 보면 묵직함이 전해진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생각해보게된다. 과연 나는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가? 내가 가진 특혜를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며 사는 갑질을 하고 있지는 않나? 질문한다.


4.

나는 사이보그인가? 스마트폰을 통해 항상 온라인 세계에 접속해 있는 사이보그가 아닐까? 스마트폰은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난 사이보그라 봐도 무방하겠다. 로봇은? 탄소로 이루어진 피부와 장기를 가지고 있어야만 인간일까? 로봇은 새로운 종임엔 틀림없다. 로봇이 감정을 가진다면 그리고 고통을 느낀다면 우리는 로봇을 함부로 망가뜨릴 수 있을까? 최후의 라이오니는 우리에게 묻는다.


5.

정상과 비정상이란 무엇일까?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판단하지? 장애는 비정상인가? 팔이 하나 있거나, 팔이 3개 있다면 비정상인가? 대머리는? 같은 것을 보거나,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인식하는 체계가 다르다면 이 또한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눌 수 있는가? 마리는 볼 수 없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더 자유롭게 춤에 다가갈 수 있었다. 무엇이 정상인가?


6.

(p174) "사람들이 나를 위해 대화를 멈춘 적 있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들을 서로 주고받는 걸 중단한 적이 있어? 공기가 침묵으로 가득 찬 적이 한 번이라도 있어? 그런 적 이 없다면, 나는 여기 속한 적이 없는 거야." (...) 조안에게는 두 개의 분리된 세계가 있었다. 하나는 단희의 방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밖의 모든 공간이었다.

후각으로 말을 하는 숨그림자의 세계에서 음성으로 말하는 조안은 그들과 섞일 수 없었다. 함께 살아갈 수 없었다. 우리 사회의 발달장애인에게도 두 개의 분리된 세계가 있는 건 아닐까.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 멈춰주지 않는 이 세상에서 불행한 건 과연 누구일까?


7.

권력은 분산된다. 그것이 역사의 진보다.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정치가 이제 모두의 손 끝으로 내려왔다.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말이다. 지식과 정보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을 통해 돈까지 분산되려한다. 모든 지식이 정리되어 있는 인지 공간이 있다. 이 곳의 지식이 전부이며, 사람들은 이를 믿고 따르고 의존하며 살아간다. 여기에 쌓여 있지 않은, 중요하지 않은 개인의 정보는 잊혀지고 사라진다. 결국 '나'는 사라지고 인지 공간만이 남는다. 인지 공간에서 떠나려는 처절하게 아름다운 시도를 만날 수 있다.


8.

시간은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겐 느리지만 누군가에겐 빠르다. 우리는 이를 믿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주어진다 믿는다. 단지 똑딱거리며 흐르는 시계의 소리와 태양을 돌고 스스로 도는 지구의 속도에 의지한 채 내 시간을 인식한다. 그렇지 않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 단번에 알게된다. 그리고 다른 시간의 흐름을 보내고 있는 내 옆의 타인을 인식하게 된는 건 덤이다.


9.

가볍게 읽지만 마음에 남는 묵직함에 통통 튀어 오를 수는 없다. 기발하지만 폐부를 찌르는 질문이 가슴에 남는다. 읽었음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완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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