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자이언트북스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작가 김초엽의 첫 장편 소설이 나왔다. 어찌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전 예약을 했고 책을 받았다. 김초엽 작가의 친필 사인이 앞 장에 떡하니 있었다.
1.
가까운 미래. 지구는 '더스트'라 불리는 먼지로 뒤덮인다. 이 먼지는 대부분의 생물체를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만들었다. 인간은 거대한 돔을 만들기 시작했다. 돔으로 들어간 자는 살아남았고, 돔 밖에 남은 자는 대부분 죽었다. 내성종을 제외하고는.
더스트에 내성이 있는 사람을 내성종이라 부른다. 내성종과 돔 안의 사람들은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한다. 돔 안의 사람들끼리도 반목하고, 내성종끼리도 싸운다. 모두가 거대한 혼란 속에 살아가고 있다.
2.
이 책은 2055년 더스트 폴 폭발 이후 2062년 더스트 1차 감소, 2064년 더스트 2차 감소, 더스트 시대의 종식 선언, 그리고 더스트 시대가 흐릿해 지는 시점까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더스트 시대에 대한 몰랐던 사실과 오해 그리고 지금 살아남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은 살아남은 자의 후손이라는 불편한 진실, 이를 받아들이는 남은 자들의 간사함과 죄의식이 책에 묻어있다.
3.
돔 밖에 남은 사람들은 피폐한 삶을 살아나간다. 강한 더스트로 죽거나, 먹을 것이 없어 죽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 이것이 더스트 시대의 삶이다. 돔 안도 마찬가지다.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공동체는 언제나 붕괴를 맞이한다.
4.
죽음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공동체. 더스트 시대에 그런 낙원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다. 그 곳의 이름은 프림 빌리지. 과연 프림 빌리지는 존재할까? 그 곳은 과연 낙원일까?
5.
더스트의 종식은 더스트를 분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들의 헌신과 인류 전체의 위대한 협력이 더해진 결과이다. 이는 과연 사실일까? 이것이 과연 전부일까?
6.
이 책의 제목대로 지구 끝에는 온실이 있었고, 그 온실엔 식물과 식물학자가 있었다. 이 책과 함께 달리다 보면 온실에 다다른다. 온실엔 해답이 아닌 질문이 가득하다.
7.
나에게 이 세상의 중심은 당연히 인간이었고 그 중에서도 나였다. 고기를 먹는 것이 당연했고, 인간이 다른 종을 지배하는 것이 마땅했다. 누가 중심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듯 하다. 인간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기 때문에. 그러니 우리는 절대 오만해질 필요가 없다.
(p365)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
8.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내내 등장 인물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고민했다.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이름이 대다수였고, 난 계속 고민했다. 전혀 중요하지 않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