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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Apr 15. 2022

주변에 장애인이 많이 보이는 나라

그리고 그 장애인을 쳐다보지 않는 사람으로 가득 찬 나라


"아! xx 짜증 나네 xx! 왜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막고 난리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풀네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그 단체다. 나도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전국장애인철폐연대'라고 튀어나오곤 한다. 이 단체에서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막았다. 버스를 타려고 지하철 역사에서 빠져나오니 30~40명의 사람들이 마을 버스정류장에 운집해 있었다. 나도 회사에 1시간 늦었다. 그때 저 말이 들려왔다. 넌 딱 하루 불편하지만, 장애인들은 평생이 불편합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준석과 박경석의 토론 유튜브에 달린 댓글과 그 댓글에 달린 대댓글이다.

(댓글) 이 토론을 보면서 사회복지사분들, 사회복지 부처에서 근무하시는 공무원분들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이준석 당대표야 직접 한두시간정도 이야기를 들어주는걸로 끝이겠지만 이분들은 매일 매일 이 이야기들을 들어야한다고 생각하니 존경스러울 수밖에요
(위 댓글의 대댓글)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종사중인 사회복지사 입니다. 복지사들의 입장 끌고와서 장애인 단체 비난할 생각들 하지마시고 박경석님의 주장과 문제의식에 귀기울여 주세요.


댓글을 옹호하고 박경석 대표와 전장연, 장애인을 조롱하고 욕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저 대댓글은 정말 오죽 답답했으면 사회복지사 분이 비난을 받고 묻혀버릴 걸 알면서 달았나 싶다. 댓글을 보면서 참 무서웠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찐이를 비난하고 조롱하고 억압하고 위협하는 꿈도 꿨다.


그래도 좋다.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페북은 물론이고 어제 꼬꼬무도 지적, 정신 장애인을 시설에 가둬 놓았던 수심원 사건을 다뤘다. 즐겨 듣는 팟캐스트인 매불쇼에서조차 장애인에 대한 특별 코너를 마련했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핀란드, 터키, 미국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지, 어떤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지, 복지 체계는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더라.



주변 사람들과 기후위기, 인권, 비거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누구도 이 주제를 꺼내지 않고 이 주제를 꺼내게 되면 "아.. 재 좀 이상한데?", "넌 참 특이하구나.."라는 말을 듣게 될까 두려울 따름이다. 실제 "저는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자 엄청나게 놀라더니 "이야.. 너 참 특이하구나."라는 말을 들었다. 농담 조로 "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쳐요!"라는 말까지도 들었다. 물론 나에겐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항상 내가 가진 생각을 감추고 혹시라도 내가 기후위기, 인권, 비거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때를 대비해서 유머 감각을 어필하려 노력한다. 난 기후위기를 대비하는 행동을 지금 당장 해야 하고,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아직도 차별과 억압에서 살고 있고, 장애인 인권,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육지 동물과 바다 동물의 섭취를 반드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생각하지만 난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인식시키려는 일종의 대비책(?)이다.


그런(?) 사람이란 고루하고 지루하며 예민하고 유난스럽고 까탈스러워 이것저것 지적하고 불만이 많은 사람을 뜻한다. 여기에 항상 대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혹시라도 날 잘 모르는 사람과 해당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면 '저 사람이 날 그런(?) 사람으로 본 건 아닌가...'라는 불안을 가지곤 한다. 참 피곤하다.


왜 그래야 하지? 왜 이런 인식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하는 거지?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겠지만 장애인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만들고 꼬여있는 장애인에 대한 왠지 모를 불편함과 어색함을 풀 수 있는 건 역시 접촉뿐이다.


매불쇼에 따르면, 그들이 한국에 와서 놀란 건, 주변에 장애인이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터키, 핀란드, 미국에서는 거리에 많던 장애인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의료 기술이 뛰어나서 모든 장애를 다 고쳐버렸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나가기도 힘들고, 나가서도 힘들다. 물리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들다. 나가는 것보다는 집에 있길 선택한다. 나도 우리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기 전에 항상 마음을 다 잡는다. '괜찮아. 그래 괜찮아. 다 똑같은 사람이야. 내가 잘못된 게 아니야. 저 들이 잘못된 거야.'라고 중얼거린다.


정치인이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을 하고, 그 토론 영상에 장애인을 조롱하는 댓글이 무수히 달리더라도 장애가 이슈가 되고 토론하는 이 상황은 좋다. 예전이었으면 그냥 무시해 버리고, 혐오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넘어갔을 법한 상황이 이슈가 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방증이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은,

첫 번째, 신체장애에 대한 부분만 이슈가 된다는 점이다. 발달 장애인에 대한 제도와 인식은 처참하다. 박경석 대표가 말했던 것처럼 장애인 이슈로 100분 토론에 나가는 게 소원인 시점이다. 이게 어디냐 싶다가도 조금 아쉽긴 하다. 발달(지적) 장애에 대해서도 이슈가 되고 활발히 토론했으면 한다.


두 번째,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복지 제도에 대한 해외 사례에 대해 정리한 책이나 아티클이 있으면 좋겠다. 매불쇼를 듣다 보니 전문가가 아니라 재미는 있지만 깊이와 신뢰가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렵고 지루하게 말고 재밌게 풀어쓴 대중서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해볼까?, 생각하다가도 힘들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가로막는다. 그런 책이나 아티클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다. 없다면 누군가 멋진 분이 써 줬으면 한다.


세 번째, 예능에서 장애에 대한 부분을 더 다뤄주면 좋겠다. 유 퀴즈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 데, 런닝맨도 좋지 않을까? 신체적 지적 제한을 주는 규칙을 지키며 게임을 하는 거다. 장애가 얼마나 힘든 건지 공감해 보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너무 숙연해지진 말고.


접촉의 힘을 믿는다. 눈에 많이 보이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눈치를 보지 않으려면 꾸준히 접촉하는 것이 필요하다. 접촉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관련 책을 읽고 너무 가볍지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모임을 하는 것도 좋고, 내 주변에 장애인이 정말 없는 건지,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건지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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