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그냥 코로나 걸리면 걸리는 거라 생각하고 그냥 다녀."
"코로나 그거 이제 그냥 감기 같은 거야."
"그냥 한 번 걸려버리는 게 낫겠어."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과 마음 편하게 맥주 한잔 하지 못해 아쉬울 때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둘째가 열성 경련을 하기 때문에 절대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내 자유가 제한당할 때마다 떠올랐다. 그러나 첫째가 코로나에 걸리고, 코로나에 걸린 케이스들을 검색해 보고 나서 내가 했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알았다.
첫째가 코로나에 걸렸다. 2일이 지나자 둘째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둘째는 열이 나면 경련을 한다.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경련을 하지 않았다. 열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스크 덕분이다. 그랬던 둘째가 열이 난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둘째의 경련은 정말이지 다시는 보기 싫다.
항상 구비해놨던 해열제를 먹였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이제 많이 컸잖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잘 버틸 거야.'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고, 코로나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새벽 1시 아이가 자고 있는 안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허으윽!
신랑 신랑!
뭐야! 무슨 일이야.
해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올라간 열은 잘 낮추지 못했다. 그제야 카페 등에서 사례를 찾아보니 해열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무수히 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난 멀었다. 꼭 일이 벌어지고 나서 후회를 한다. 첫째가 코로나 확진이었을 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상황을 바라보았다면 아이의 경련을 막을 수 있었을 거란 후회가 밀려왔다.
코로나를 너무 얕봤다. 더 후회됐던 건 아이를 너무 믿었다는 거다. 아니, 아니다. 아이를 너무 믿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힘들고 싶지 않았던 거다. 아이를 간호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또 예전의 그 힘듦을 겪고 싶지 않았기에 아이가 견딜 수 있을 거라 내 마음대로 결정했다.
해열제도 너무 많이 먹었다. 코로나는 해열제로 열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 몰랐다. 열이 떨어지지 않으니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해열제뿐이었다. 아이 옷을 벗겨놓고 물수건으로 계속 닦아주는 방법도 있었다.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힘들기 때문이다.
경련을 한 다음 날. 난 수행을 하는 마음으로 저녁 4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한 시도 옆을 비우지 않고 물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닦았다.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열은 39.5도 이상으로 오르진 않았고, 복용한 해열제의 양도 전 날의 1/4에 불과했다. 몸은 힘들었고, 마음은 편했다.
지금 아이는 자고 있다. 아직 열은 있지만 큰 고비는 넘긴 것 같다. 코로나는 감기가 아니다. 코로나는 코로나다.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병이 될 수 있다. 기저질환이 있다면 그 가능성은 커진다. 기저질환이 없더라도 위험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경련을 한번 하면 다음 경련이 있을 가능성이 커진다. 경련을 하는 동안은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며 시간이 길어지면 뇌에 손상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경련이 무섭고, 계속해서 경련을 하는 건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열 조절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입원을 알아봤으나 쉽지 않았고 집에서 나와 아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일 밖엔 없었다. 첫날부터 닦아 줬어야 했다는 후회는 밀려왔지만 어쩌랴. 이미 벌어진 일인걸.
코로나 바이러스가 들어와 열이 나기 시작하면 해열제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아직 코로나에 걸리기 전이라면 알아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