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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Mar 03. 2022

코로나와 시큰해지는 콧날

2월 28일에서 3월 1일로 넘어오는 새벽 한 시 경. 아내가 나를 깨운다. 첫째가 열이 나기 시작한다. 집에 있는 자가 진단 키트로 검사를 한다. 결과는 음성. 열은 내리지 않는다. 자가 진단 키드가 진통제도 아니요, 치료제도 아니니 당연히 열이 내리지 않겠지만 음성인데 열이 떨어지지 않으니 괜스레 서운하다.


삼일절은 우리의 조상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처절하게 일본 제국주의와 맞선 날이다. 2022년 삼일절에 우리 가족은 코로나와 싸우게 됐다. 물론 원하던 건 아니었지만. 코로나인듯하나 확증은 없는 상태에서 높아지는 열에 부루펜 시럽을 뿌려 식힌다. 잘 버텨주고 있는 아이 옆을  KF94 마스크를 쓰고 지킨다.


힘이 빠진 아이, 아프다며 끙끙거리는 아이를 보는 건 힘들다. 독감에 걸리고, 폐렴에 걸렸을 때도 아이는 끙끙댔고 난 옆을 지켰다. 지금과 달리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고, 아이는 자신이 바이러스를 옮길까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이 그때보다 더 힘든 건 이때문이다.


열이 나는 이마에 수시로 손을 얹고 등을 쓰다듬고 볼을 어루만지고 안아주고 싶다. 그러나 아이는 열이 39도가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만지지 말란다. 자기 때문에 가족들이 코로나에 걸리면 어쩌냐고, 그럼 정말 큰일이라고 말하는 아이 옆에서 난 콧날이 시큰해진다.


다음 날 아침, 자가 진단 키트는 선명한 2줄을 드러냈고 아이와 나는 보건소로 가서 PCR 검사를 받았다. 아이는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부루펜을 시의적절하게 잘 뿌리고 아이가 아주 잘 버텨준 덕에 열은 이미 내린 후였지만 확진자다. 이제 조금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아이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항해서 아주 잘 버텨주었다. 목이 조금 아프고 기침을 다소 했지만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다행이다.


첫째에게는 미안하지만 첫째가 열이 나기 시작했을 때 난 첫째보다는 둘째를 걱정했다. 절대 코로나 바이러스가 둘째에게 가게 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둘째를 제외한 온 가족은 마스크를 썼다. 잘 때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고 귀에서는 피가 나고 진물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가 경련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흔히 경기라고 불리는 경련은 너무 끔찍해서 생각하기조차 싫다. 그 경련을 하루에 10번도 넘게 했던 아이가 바로 우리 둘째다. 아이가 경련을 하기 시작하면, 옆에서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초를 재고, 핸드폰이 없으면 뒤집어진 아이의 눈이 돌아올 때까지, 뻣뻣하게 굳어버린, 경직된 아이의 몸이 돌아올 때까지 속으로 1초... 2초... 3초... 를 헤아렸다. 1번만 봐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 광경을 5년간 봤다. 속으로 계속 초를 세면서, 제발 돌아와... 제발 돌아와... 를 되뇌면서.


수족구, 구내염, 독감 등 열을 수반한 모든 바이러스 성 질병이 걸리면 경련을 했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물론 다른 바이러스도 둘째의 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않으니 열도 나지 않았고 당연히 경련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경련을 하지 않은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오늘 코로나 바이러스가 둘째의 몸으로 들어왔나 보다. 다시 경련을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심장이 뛰고 얼굴이 빨개진다. 아이가 열이 오르기 시작하니 나도 열이 오르는 듯하다.


첫째는 자기 때문이냐고 내게 묻는다. 아니라고, 네 탓이 절대 아니라고 말하며 다시 콧 날이 시큰하다. 네 탓이 아님에도, 정말 그 누구의 탓도 아닌데도 자신의 탓이라 자책하고 괴로워할까 두렵다. 꼭 안고 네 탓이 아니라 말해주고 싶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둘째의 열이 39도를 향해 간다. 재빨리 부루펜을 먹인다. 3시간이 지난 후 다시 열이 오른다. 이번엔 타이레놀을 먹인다. 2시간이 지나니 다시 39도가 넘는다. 부루펜을 먹인다.


해열제를 먹어도 쉽사리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39도가 넘는 열을 버티며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고모가 보고 싶단다. 다시 콧날이 시큰해진다. 예전 같으면 38도에 가까워만 져도 경련을 걱정했을 텐데 말이다.


해열제를 많이 먹이긴 했지만 예전보다는 낫다. 다행이다. 아이가 꽤 잘 버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제 막 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긴장을 늦출 순 없지만 확실한 건 아이가 많이 컸다는 사실이다. 강해지고 단단해졌다. 그대로라 생각했던 아이는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었다.


피하고 또 피하고 다시 한번 피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코로나는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아이들도 버티고 아내도 버티고 나도 버텨본다. 버티다 보면 심장이 조금은 단단해지고 무서운 세상에서 심장이 쪼그라드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그렇게 코로나와의 동거가 시작되고 내 콧날은 시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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