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이의 초등학교 1학년과 성인지 (감수성) 예산
발달 장애가 있는 찐이가 학교에 간다는 사실 자체에 감동했던 게 벌써 1년 전이다. 첫째 초등 입학의 경험 상 기대와 걱정이 반반 섞인 설렘이 있어야 했지만 걱정과 불안이 반반 섞인 초조함만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초조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음이 '아쉽게도' 증명되었다. 2021년, 초등학교 1년 동안 통합 교육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시스템, 인프라, 역량, 문화 그 어느 것 하나도 갖춰져 있지 않은 채 법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통합교육”이란 특수교육대상자가 일반학교에서 장애유형ㆍ장애정도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 것을 말한다.'라고 적혀있지만, 학교는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지 않고, 특수 교사는 개인기로 난관을 헤쳐나가길 강요받는다. (1년 간의 경험을 근거로 한 주관적인 생각에 따르면) 통합 교육은 장애인 인권에 대한 기본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통합반 담임교사와 1년을 지내게 될 가능성이 꽤 큰 확률로 들어 있는 럭키 박스와 같다. 학교는 민원을 방지할 수 있는 능력을 우선으로 통합반 교사를 골라 배치한다(역시 이 또한 100% 내 경험에 비추어 그렇다. 그렇지 않은 학교가 더 많을 거라 믿고 싶다).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 것'은 그저 글자일 뿐이다.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적어도 내 1년 간의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장애 아동을 대하는 대로 장애 아동을 대한다. 선생님이 장애 아동을 아무리 말해도 자기 말을 죽어도 듣지 않는 모자란 아이지만 불쌍하니 잘 보듬어 주어야 할 대상으로 대한다면 비장애인 아이들은 그대로 따라 할 뿐이다.
"찐이도 이렇게 대답을 잘하는 데 여러분들이 이렇게 대답을 못하면 되겠어요?"
(이 말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면... 김지혜 교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어보길 권한다.)
"찐이 쉿! 자꾸 이렇게 소리 지르고 떠들면 엄마가 데리러 안 와요!"
어떤 아이는 쉬는 시간에 찐이 앞에 와 전화를 하는 시늉을 하며 엄마가 오지 않는 다며 찐이를 자극하곤 한다. 찐이에게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는다는 건 세상이 없어지는 일이다.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는다. 예민한 아이가 더욱 예민해지고, 표현이 더욱 과격해진다.
더욱 참혹한 건 아이를 바라볼 때, 이러한 과정이나 경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찐이는 통제가 안 되는 아이, 장애인이라 어찌할 수 없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 교사와 비장애인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소리 지르는 버릇없는 아이, 과격한 표현을 하고 아이들을 미는 폭력적인 아이로 찐이를 쳐다본다.
이런 1년을 버티고 2학년이 되었다. 콧날이 시큰하고 눈이 아려온다. 찐이는 아직도 학교가 불안하다.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찐이도 그렇다.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자신에게 선물했던 그 공간이 여전히 불안하다.
그래도 잘 적응했다.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죽을 만큼 노력했다. 경험하고 성장했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경계를 넓혀나갔다. 형아가 된다는 말에 듬직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모 대통령 후보는 '성인지 감수성 예산'을 떼어내어 핵 위협을 막겠다고 한다. 그 예산(사실 예산이 아니라 점검을 위해 각 부처의 예산을 분류한 것 뿐이지만)의 일정 부분은 장애인 활동 지원, 발달재활서비스, 여성장애인 출산 및 교육지원 등 장애인의 생존권과 관련되어 있다. 약자의 생존권 예산을 떼어내 국방비를 늘리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사실 그 예산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그걸 알아보고 확인해 보기에 내 삶이 조금 팍팍하기도 하다. (지금도 첫째는 코로나 확진이고 둘째가 걸리는 건 상상하기도 버겁기에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전염을 막기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다. 이 와중에 회사에서는 왜 이리 연락은 많이 오는지... 돌아버리겠) 성인지 (감수성) 예산이 비효율적인 제도일수도 있고, 쓸데없는 절차일수도 있다.
내가 무서운 건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근거없이 약자의 목숨 중 일부를 군사력으로 바꾸려는 태도와 발상이다. 그것도 아쉬 쉽게. 핵 위협은 전 국민의 생존권과 관련되어 있으니 더 중요한 일이라서? 그것이 그렇게 중차대한 예산이라면 사람의 생존과 관련 없는 검찰 예산을 줄이면 어떨까? 그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논리 아닌가? 약자의 예산은 반발이 적으니 줄이기 쉽기 때문일까? 내가 너무 비약한 걸까?
2학년 때는 일단 도움반에 있기로 했다. 아주 조금씩 적응해 나가며 통합반에 참여해 보려 한다. 모 대통령 후보의 발언 때문이 아니다. 통합 교육에 대한 지원은 부족하다. 장애 아동의 안전을 보장할 최소한의 인력도 지원받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이 특수 교사의 개인기로 정신없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통합반 담임 선생님의 역량에 100% 의지해야 한다. 아이의 학교 생활을 가지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올해는 당첨 확률이 낮은 럭키 박스를 열어보고 싶지 않다.
관심은 건드림이다. 어떤 말, 어떤 행동, 어떤 장면이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고 이 건드림이 관심으로 이어지고 이 관심이 공감으로 이어진다. 찐이의 1년이 내가 쓰는 이 글이 아주 작은 건드림이 되길 바란다.